[찬샘별곡 Ⅲ-62]오매, 이걸 어쩐다냐? 온 들판이 삘건허네
불과 한 열흘새, 온 들판 나락들이 삘건히져 버릿다(빨갛게 돼 버렸다). 수확조차 엄두내지 못하게, 올 쌀농사는 아예 ‘베리분(버려버린)’ 것이다. 이른바 ‘멸구폭탄’(우리 표준어는 ‘멜구’다)을 맞은 것이다. 군사용어로 쓰이는 초토화焦土化가 바로 이런 것인가? 한양의 '소가족'(아내와 큰아들내외)과 추석을 쇠겠다고 다녀온 사이, 난리가 난 것이다. 군데군데 대형 동그라미처럼 맞은 곳도 있지만, 아예 몇 필지고간에 연달아 싸그리 전멸한 곳도 천지삐까리다. 임실군과 순창군이 특히 그런 모양, 비상非常사태인 것은 틀림없으나 재난인 것을, 손쓸 방법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 노릇을 어찐다냐? 그냥 논바닥과 농로에 주저앉아 하늘이나 원망하며 몇 시간이든 통곡이라도 헐거나? 허망한 이 마음, 농심農心이 아니고, 허심虛心이다. 허심은 '마음을 비우라'는 뜻이라며 위안을 삼을거나? 보느니 처음이고 듣느니 처음이다. 혹자는 30여년만에 온 재앙이자 재난이라고 한다. 멜구라니? 소싯적에 들어는 본 곤충이름이다.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농약을 안힛는 개비만’ 한다. 어찌 농약을 안했을 것이냐? 멸구약을 10번도 더 한 농부도 있었다. 사이비 농사꾼인 나도 4번 했다. 드론으로 뿌리는 약 효과가 없다쳐도 이럴 수는 없는 일. 펄벅 <대지>의, 메뚜기들이 한번 떼로 몰려오자 온 들판이 남아나는 게 ‘1도’ 없이 쑥대밭이 됐다는 장면이 생각난다. 멜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인산인해人山人海가 아니고 ‘멜구산 멜구해’가 황금벌판으로 출렁거려할 들판을 밤마다 며칠간 작살을 낸 것이다. 그냥 무작정 갈아엎어야 할 판인 것을. 형에게 소식을 사진과 함께 보내니 “살다살다 이런 일 첨같다. 살벌하다. 모두가 쌀농사 하대下待하다가 받은 응보일까? 몇십년째 잊고 살았던 멸구라니…” 댓글이 왔다. 예전부터 ‘농사는 하늘이 도와줘야 한다’는 말은 진리이다. 인력人力으로 안되는 것이 ‘천하대본天下大本’ 농사인 것을. 3년 전인가 ‘신동진 벼’에 깨씨무늬병이 달아붙어 베려버린 적이 있었지만, 그 폐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여, 올해는 ‘안평벼’를 많이 심자했더니, 되레 이 난리가 난 것이다. 아 차라리 멜구 피해가 상당히 덜한 신동진을 심을 것을.
이러니, 그러잖아도 인구 소멸위기에 봉착한 농촌지역은 무엇을 해먹고 연명할 수 있을까. 쌀값이 80kg 한 가마에 16만원이라는 말도 들었다. 이것 참, 커피값보다 못하다며 언제까지 자조만 할 것인가?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버젓이 말하는 공복公僕의 우두머리는 누구인가? 민생은 어렵지만 곧 회복될 거라고 말하는 높으신 경제관료들은 또 누구인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끌어당기려고 노심초사하는 기초 단체장들은 또 무릇 기하이던가? 허기사, 재난을 가지고 정치와 위정자 탓을 헐 것은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타들어가는, 이미 숯처럼 까맣게 된 농심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건 ‘돈’ 문제가 아니고, 속이 쏘오쏙 아픈 것이 문제이다. 새벽녘 들판에 서서 망연자실 바라보며, 그 더웠던 여름날 논두렁 풀을 깎고 풀약(제초제)을 한 게 억울하다. 에이-. 풀이고 농약이고 다 내비둬 버릴 것을, 하는 생각이 어찌 들지 않겠는가.
살충제, 제초제, 이삭거름, 비료, 수도 없이 물꼬를 본 그 세월, 그 지극정성이, 또 거기에 들어간 비용조차 건질 수 없다는 현실이 하냥 슬프다. 올해는 피를 발본색원, 끝장을 낼 작정으로 마세트를 12봉지나 논고랑을 실제 다니며 맨손으로 뿌렸거늘, 오후 통재, 오호 애재. 에라이-, 모르겠다. 한 잔 술에 시름을 잊고 ‘한탄가恨歎歌’나 불러보자.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눔아, 긍개로 사램이라면 한없이 겸손히야 쓰는 거다. 글고 말이여,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것이여. 허나, 그리도 심(힘)을 내라. 올해가 가면 내년이 또 올끼다’ 그렁가? 올해는 '나쁜 년'이고 내년은 '좋은 년'인가? 과연 그러한가? ‘아이고, 아부지. 나는 모르것소. 내년부터는 이것도 작파해 볼 거시오’ 그나저나 나는 ‘쥐꼬리 연금’으로 연명은 허것지만, 여기에 목숨 건 이 땅의 농사꾼들은 어찌 살 거나? 살기야 살것지만, 허망한 이 마음을 어떻게 추스릴거나? 아지 못하겠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