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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15가지 품성
https://youtu.be/3nz7rXObX5s?si=bfgviyawyYqtj4zj
2026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15가지 품성
고린도전서 13:4~7
부 르 심:마태복음22:37~40
교 독 문:85번, 요한일서 4장
찬 송:10(34),135(133),304(404)
기 도:2026년도의 새해 기도
1)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15가지 성품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2)회개하는 구원을 이루소서
3)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4)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되게 하옵소서
5)자유 대한민국, 교회의 회개부흥, 성령충만, 전도
할렐루야 샬롬!
새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이라 부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을 강조하는데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합니다.
무엇보다 제일은 예수님의 사랑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므로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믿음으로
소망을 품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15가지 품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15:4~7)”
육체의 일로 현저한 못된 열매 15가지가 되지 말고
2026년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15가지 품성의 열매를
1년 12달 달마다 훈련하고 심고 거두는 열매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년
1 월: 사랑은 오래참고
2 월: 사랑은 온유하며
3 월: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4 월: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5 월: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6 월: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7 월: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8 월: 사랑은 성내지 하니하며
9 월: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10월: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1월: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12월: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며 견디느니라
1.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오래참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오래참는 것입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져버리고 육체의 일로
타락하는 불순종으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은 육체의 일로 현저하게
나타나게 하는 육체의 품성 15가지를 가지게 하였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라디아서5:19~21)”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란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사랑하심으로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2:17)”
금단의 열매는 못된 열매로 육체대로 사망의 쏘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육체대로 살아 경계하지 않은 뱀의 미혹으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오래참는 품성으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세기3:21)“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오래참음으로 입는
그리스도로 옷입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도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13:14)”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품성의 첫 번째 오래참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오래 참으심으로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타이 더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노라(베드로후서3:9)”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품성 오래참음에 회개하여 천국이 가까이 오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온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온유한 성품이십니다.
구약성경의 인물 중 온유함의 대명사가 모세였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12:3)”
온유란 부드럽고 겸손함을 말합니다.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다 하더라도
모세 역시 자신의 숨어 있는 기질에는 혈기가 있어 결국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에 참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에
자신의 기질에 가라앉은 혈기의 화가 쏟아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민수기20:10~11)”
백성들이 물이 없다는 이유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불평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문에 엎드리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지팡이를 가지고 아론과 함께 모으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우라는 여호와의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혈기와 분노로 회중에게 말하였습니다.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민수기20:11~12)”
여호와의 사랑은 온유한 품성으로 말씀하셨으나
모세는 혈기와 분노 교만으로 불순종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반석에 물이 나는 기적은 일어났지만 모세가 그리스도의 온유함은
뒤에 두고 자기의 기질로 행하는 것은 여호와께 책망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
라(민20:12)”
하나님의 인도는 감정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품성을 가지는 온유함이 되어야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품성의 온유함을 배우는 것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11:28~30)”
3.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품성 세 번째는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입니다.
투기(시기)란 남이 잘되는 것을 미워함입니다.
투기, 시기를 질투라고도 말합니다.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사랑에 투기하는 자가 됨으로 망하는 자가 있었으니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입니다.
반면에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므로
오히려 멋진 인생을 살다가 간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하는 품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1> 사울왕이 다윗을 시기하여 죽도록 미워하다
1>-1. 수금을 잘타는 다윗은 성령에게 크게 감동받은 사람
사울왕이 처음에는 다윗을 만났을 때 사위로 삼을 정도로 다윗을 좋아하였습니다.
사울왕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버림을 당하고나서
악령이 사울을 번뇌케 하는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밤잠도 자지 못하는 불면증에 이상한 신음소리까지 내었습니다.
신하들이 의논하여 수금을 잘타는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다윗을 데려오게 사울에게 구하였습니다.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삼상16:18)”
사울왕에게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타며 여호와를 찬양하였습니다.
다윗의 수금 타는 소리와 찬양을 들은 사울에게서 악신이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귀신이 들렸다 하여도 성령에게 크게 감동받은
사람의 악기소리와 찬양은 사람의 속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가버리는 역사하심이 일어날 수 있음을 믿습니다.
1>-2.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이기는 믿음
블레셋 사람들이 군대를 모으고 이스라엘과 싸우고자 하였습니다,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 엘라 골짜기 진을 쳤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었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3미터나 되는 거인으로 싸움에 능한 자였습니다.
골리앗을 본 이스라엘의 왕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렛 사람 골리앗의 맞짱 뜨자는
제의에 놀라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이 사십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어도
이스라엘 진영에서 골리앗에게 나서는 자가 없었습니다.
다윗이 이새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줄 떡 열 덩이를 가지고 현장에 갔더니
적의 골리앗이 싸움을 돋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청하여 골리앗과 싸우기를 고하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삼상17:32)”
사울은 다윗의 용기에 골리앗과 싸울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다윗은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에게 나아갔습니다.
블레셋 사람 골리앗은 다윗을 보고 업신여겼습니다.
골리앗은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유일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에 의지하였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골리앗과 다윗이 싸움은 다신교와 유일신교의 싸움입니다.
골리앗은 다신교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다윗은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고
여호와께 속한 전쟁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소유에 붙이셨음을 믿어 큰 소리 칠 수 있었습니다.
기름부으심으로 성령에게 크게 감동된 사람은 적의 모양이 클지라도
능히 이길 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라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을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11:22~24)”
다윗이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졌습니다.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엎드러졌습니다.
다윗이 물매로 던져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이기었습니다.
다윗이 달려가서 골리앗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내어 그 칼로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자기 자기 용사 골리앗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였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아 성령에게 크게 감동한 자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어 성령에게 크게 감동하는 용기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3.다윗을 시기하는 사울왕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입니다.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사울을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삼상18:7)”
사울은 이말에 다윗을 시기하였습니다.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삼상18:8)“
이후로 사울을 다윗을 시기한 이유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시기하지 않은 품성으로 칭찬하고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시기하지 않은 품성을 가진 요나단
2>-1.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자가 되자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였습니다.
요나단의 마음과 다윗의 마음은 연락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다윗은 성령에게 크게 감동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자였습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사도행전13:22)“
다윗의 자손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합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합하지 않았던 사울왕은 성령은 떠나시고
악령이 역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같은 마음을 품어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였습니다.
다윗같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사람 요나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시기하지 않은 품성을 가져 자기보다 다윗을 낫게 여겨 다윗을 자기 목숨같이 지켰습니다.
요나단은 그 아비 사울왕에게 다윗을 위하여 직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시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용기를 보였습니다.
“요나단이 그 아비 사울에게 다윗을 포장하여 가로되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삼상19:4)”
다윗을 포장한다는 것은 다윗을 두둔하고 칭찬한다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몸같이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다윗으로 인하여 사울왕과 요나단 간의 심한 갈등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왕 다음에 인간적으로 왕이 될 수 있는 실세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사람의 뜻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기름 붓게 하시어
왕이 될 것임은 자기가 아니고 다윗임을 알았습니다.
요나단은 사람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왕 다음은 다윗임을 알게 하였습니다.
“곧 요나단은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삼상23:17)”
요나단은 사울왕과 함께 길보아 전투에 나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사울은 길보아 전투에서 패전하여 중상을 입어
자기 칼을 취하여 그 위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사울왕과 그 세 아들과 다 그 날 길보아 전투에서 죽었습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시기하지 않은 사랑의 품성을 가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요나단으로 인하여 은총을 받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삼상9:1~13)“
다윗은 사울왕이 죽자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집에 요나단을 인하여 은혜를 갚고자 남은 자를 찾게 하였습니다.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삼하9:1)”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내어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찌니라”는 약속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아버지 요나단을 인하여 받는 복에 므비보셋은 감동하였습니다.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삼하9:8)”
절뚝발이었던 므비보셋은 아비 요나단으로 인하여 은총을 입어
사울의 밭을 가지게 되었고 왕의 상에서 먹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성품 “시기하지 않음”으로
얻는 은총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