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해 첫날이 후딱 지나가고 둘째 날을 맞이합니다.
해마다 느끼는 둘째 날의 마음입니다.
게다가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그냥 게으른 자가 되고 맙니다.
세월을 아끼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본문 주해)
9~11절 :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 참 빛이신 예수는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빛을 비추셨지만 세상이 빛을 깨닫지를 못한다. 이는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적인 소경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둠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예수님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인 줄 알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12~13절 : 12절 말씀은 전도할 때 인용되는 유명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구원의 주도권이 사람에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꼭 13절 말씀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구원이 사람에게 주도권이 있다면 하나님은 거저 사람의 변덕에 놀아나는 무능한 분이 되는 것이다. 어둠이 빛을 영접하는 일은 자기 죽음의 일이다. 그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사람으로 할 수 없다. 그래서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만 영접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난 자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자들로서, 그들이 때가 되어 복음을 듣고 믿게 되는 것이다.
14~18절 :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신 분이시며, 그 영광을 사도들이 보았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1:1~2)
요한은 그 영광을 아버지께서 주신 독생자 곧 외아들의 영광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전한다.
15절은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논한 삽입 구절로서 표준새번역에서는 괄호로 처리되어 있다. (그러므로 14절은 16절로 이어진다.)
지상적 출생은 하나님의 아들보다 세례 요한이 먼저이나, 태초부터 현존하시는 아들이 요한보다 먼저 계심 즉 그리스도의 선재를 말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다.
그러므로 죄인 된 자가 예수님을 믿어 받는 것이 은혜와 진리인 것이다. 이는 도저히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부어진 은혜, 넘치는 은혜를 뜻한다.
‘은혜 위의 은혜’는 17절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어졌으나 아버지의 영광인 은혜와 진리는 아들을 통해 주어졌다는 것이다.
율법은 인간이 죄 아래 갇혔음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누구도 인간의 행위로는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이라는 그 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율법이다.
그런데 오직 하나님의 긍휼 곧 불쌍히 여김으로 그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만 주어진다.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주셨다.”(18절, 새번역)
아버지 ‘품속’은 태초부터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1절) 있는 상태이다. 아들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아들 안에 거하신 것이다. 이것은 아들이 아버지 안에 감추어진 상태, 곧 아버지 품속에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
(나의 묵상)
남편을 따라 처음 교회를 다니게 되었을 때, ‘내가 하나님을 믿어준다’고 생각하였다.
종교를 가질 수도 안 가질 수도 있는 것도 나의 선택에 달렸고, 또 여러 종교 가운데 기독교를 선택한 것도 나의 의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내가 교회 나가게 되었다는 것을 곁에서 들은 직장 동료가 ‘문선생을 인도하신 하나님!’이라고 기뻐하는 말을 듣고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교회 안 나갈 수도 있는데....뭐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인가....’ 하였다.
그것은 오늘 본문 12절 말씀을 오해하였고, 13절 말씀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믿음이 나의 선택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 창세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던 것이요, 전적으로 주님께 받은 선물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은 사람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아담 이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어 태어난 존재이다.
세상의 선악 판단 체계를 가지고 태어나 땅에 붙어서 땅의 영광만을 구하며 살게 된 존재들인 것이다.
그 가운데 열심히 살던 내가 십자가에서 가장 비참하고 초라하게 죽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니 한 번 믿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복음을 듣고 알게 되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더더욱 믿음을 가지기 어려운 지경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멀쩡한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세상 것에 관심도 두지 말고,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함께 죽으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경을 알면 알수록 더 지독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선한 일을 해도 또 그 심중에 죄를 품고 사는 인간이 나라는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땅의 복이란 것이 사탄의 속임수요, 거짓이며 썩어질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하늘의 신령한 복, 영생의 복에 대한 이해와 사모함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이것은 성령이 임한 증거이다.
처음, 나의 선택의지였다고 말한 그 교만한 입이 쑥 들어간다. 아니 내 입은 없어졌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알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은혜를 받은 자가 된 것이다.
더구나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함으로 아버지 품속에서 아들의 영광을 보는 자가 되니 은혜 위에 은혜를 받은 자가 된다.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신 그 영원의 시간 속으로 내가 들어가 매일 기쁨의 춤-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의 춤-을 추게 되니 이것이 바로 은혜 위의 은혜인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빛을 보고는 어둠 속으로 파고들어갈 뿐이요,
그 빛이 싫어서 주님을 십자가에 죽인 자들과 한 패인 저를 그 어둠에서 불러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정신이 없는 자에게
매일 말씀을 통해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을 알아가는 기쁨입니다.
은혜와 진리 가득한 예수님과 함께 오늘도 아버지 품속에서 기쁨의 춤을 춥니다.
이 기쁨을 만나는 모든 영혼들에게 전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