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어느 도시를 방문했는데, 왕이 나가서 그를 영접하기를 망설였다.
총리대신이 왕에게 물었다.
“붓다를 직접 영접하지 않으시겠다면, 저는 사임하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당신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러자 왕이 물었다.
“대체 왜 그런가?”
이 총리대신은 조정에 없으면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왕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권력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내가 왜 거지를 영접해야 하는가?”
나이가 많은 총리대신이 말했다.
“당신이 거지이고, 그가 황제입니다. 그게 이유입니다.
당신이 그를 영접하지 않으면, 당신을 모시는 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왕은 붓다를 영접해야 했다. 왕은 내키지 않았지만, 직접 나갔다.
하지만, 그가 붓다를 보고 돌아와서는 그 늙은 총리대신 앞에 엎드려
그의 발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옳았소. 그는 왕이고 내가 거지입니다.”
삶은 오묘하다. 때로는 왕이 거지이고, 거지가 왕이다.
겉모습에 속지 말라. 내면을 들여다보라.
가슴이 기쁨으로 고동치고
삶의 궁극의 법칙, 본성, 도道와 조화를 이룰 때 풍족해진다.
가슴은 그대가 전체와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룰 때 풍요로워진다.
그것이 유일한 풍요로움의 원천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언젠가 눈물을 흘리며
‘너무 늦었다.’라고 말하며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대가 자신의 삶을 파괴하도록 도와줄 수 없다.
나는 그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풍요로운 삶을 그대에게 선사하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오쇼의 <성공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첫댓글 2천5백년 전에 고타마 붓다가 불과 29세에 출가하여 6년간 고행한 후 35세에 깨달음을 얻고서 45년을 설법과 고행으로 보내다가 80세에 열반을 하였습니다. 2천년전 그리스도는 30세에 설교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여 3년만인 33세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당하고 사흘후에 부활하였다고 합니다. 최근이라 할 수 있는 안중근 의사의 이또 히로부미 암살도 그의 나이 31세였습니다. 이렇듯 붓다의 30세 그리스도의 29세, 안중근의 31세를 볼 때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 인생에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시 그 나이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회상해보니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