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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영화 천룡팔부(天龍八部)속의 바둑 아무리 드라마지만 공배에다 두면 어떡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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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은 바둑을 통해서 협객들의 도를 묘사했고 인물들의 성격을 그려 나갔다. 예를 들어 모용복과 구마지가 대국을 할 때, 구마지는 돌을 아주 빨리 놓는 반면 모용복은 한수한수 매우 어렵게 둔다. 구마지가 웃으면서 “모용공자, 그대는 변과 귀에 있는 싸움에서 조차도 빠져 나오지 못하면서 어찌 중원을 다투려고 합니까?”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아주 교묘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매일같이 황제가 되려는 꿈을 꾸는 모용복은 잠시 온갖 생각이 뒤얽히며 만감이 교차하더니, 온갖 생각이 산산조각나며 모든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런 신의 필치는 김용소설의 특징이다. 그는 기도(碁)로서 각 고수들의 무공을 비유해 나타냈다. 날카로운 칼날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지만 반상의 살기는 무림을 뒤흔들기에 충분했고. 문(文)으로써 무(武)를 써 내려가고 바둑으로써 살기(殺氣)를 써내려 가는 김용의 독특한 필치가 느껴진다. 올해 초 중국에서 막을 내린 40부작 TV 무협 드라마인 BTV(북경방송국)의 <천룡팔부>를 놓고, 중국위기협회 주석인 천주더9단을 비롯해 바둑계의 정상급 고수들은 <천룡팔부>에 나오는 바둑 장면들에게 대해서 아쉬움과 쓴소리를 한마디씩 했다. 북경청년보(北京靑年報)에 실렸던 내용을 정리해 본다. 정리, 번역 : 김경동 ![]() ![]() 천9단은 “현재 방영된 드라마의 바둑관련부분은 보고 난 후 화가 치민다기 보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일반적인 폐단은 전문가를 초빙해 자문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간만 바둑을 아는 사람들이라도 보고 나면 웃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극에서 두 사람이 바둑 두는 장면을 보면 정말 바둑돌을 놓는 것이 아니라 마치 중국장기를 두는 것 같다. 어떤 것은 이쪽에 돌을 놓다가 저쪽에다가 돌을 놓는 등 바둑 판 위에 돌을 가득 놓기는 놓았는데 전혀 바둑의 모양이 아니다. 감독이 조금도 (바둑)상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어떤 노력도 하지않은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말이 여기까지 이르자 점잖기로 유명한 천9단조차도 약간 격분했다. “단정정은 사람을 찾아서 단예를 구했고, 황메이 승려가 칭파오(단연경) 객과 바둑으로써 무공을 겨루는데 두 사람은 하늘 높이 올라 이리저리 날아가니 바둑판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진롱대국의 그 회(回) 방송에서 여러 차례 클로즈업해서 바둑판을 보여주었는데 내가 보니까…어휴, 이런 고수들도 이렇게 엉뚱한 곳에 두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분통을 터뜨린 것. 무슨 이유었을까? 단예가 올라 가고 나서 후반부에 몇 장면이 더 있었고, 마지막 착수는 허죽이었다, 분명히 진롱의 정해(正解)는 그 부분을 스스로 메워서 죽도록 놔두는 것이다. 그들이 여러 수를 공배자리(대국 마지막 단계인 끝내기에서 쌍방이 집과 무관한 공공의 점에 착수를 하는 것을 말함)에 두거나 혹은 알 수 없는 이상한 곳에 착수하는 것 등을 보면 정말 참을 수가 없다. 비록 고수들이 두는 것이 모두 잘못됐지만 다른 바둑영화나 드라마와 비교했을 때 <천룡팔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진롱(珍瓏) 바둑의 장면은 바둑의 모양과 바둑의 형세를 찾아 볼 수 있어 적어도 두는 것은 바둑이다.”라고 말했다. <천룡팔부>를 특히 좋아하는 천주더는 “여타 드라마중에서도 <천룡팔부>는 바둑 내용이 가장 많은 무협소설이다. 드라마도 두 편은 바둑싸움을 묘사하는데 사용하고 있어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아주 엄격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진롱자는 바둑을 두는 도중, 모든 노력을 다해 편성해 만든 삶을 구하는 어려운 문제이다. <천룡팔부>책중에 나오는 어느 한 유명한 진롱대국은 독자들이 푹 빠져들게 했다. 소요파의 최고 수장인 무애자(无涯子)가 3년간의 시간을 들여도 ‘진롱의 기형(棋形)’을 만들어 냈으며 아울러 자신의 제자인 소성하(蘇星河)를 시켜 천하영웅들의 기형 격파 도전을 받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소요파 장문인의 자리를 내걸었음에도 30년 동안 흑도 백도의 길을 걷는 모든 고수들중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 바둑은 뜻밖에 승려인 허죽이 눈을 감고 “자첨만(自添滿:큰 대마가 자살을 함으로써 전국면을 해결하는 것)”의 수단을 둠으로 해서 어지러운 과정을 통해 부딪치면서 해결되었다. 하나의 국면중에서 패속에 패가 있고 빅이 있으며 장생이 있고 또 되먹여 치거나 수를 메우는 등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모양들이 나온다. ![]() 고대 바둑은 비록 명문화된 바둑규칙이 없었지만 이런 곳에는 돌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은 일종의 규칙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김용의 어휘선택과 의도는 당연히 아름다운 상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김용의 기력으로 이런 기술적인 문제는 잘 알고 있을 것인데 아마도 이 ‘진롱’ 부분을 쓴 것은 인생의 도리를 쓰기 위한 이유가 더 클 것이다. 단예의 패배는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에 돌을 버리려고 하지않은 데에서 비롯되었으며, 모용복의 패배는 권력욕이 너무 커서 세력을 잃지않으려고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오직 생김새가 추하게 생기고 출생이 비천한 승려가 오로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수를 내면서, 자기가 스스로 큰 부분의 손실을 아까와 하지않고 맞부딪쳐 풀어 나갔다. 그리하여 허죽은 소요자 노선배의 70년 내공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소요파의 최고 수장의 자리를 받았으니 이렇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을 두고 “득경시실, 실경시득(득은 곧 실이며, 실은 곧 득이다)”이라는 도리를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흑을 잡기 위해 발가락을 뭉개버린 엽기 황메이 승려와 칭파오 객이 바둑으로 무공을 겨루는 장면에서 스스로의 기력이 못하다는 것을 아는 황메이 승려는 오히려 칭파오에게 4점을 놓으라고 재주를 부린다. 칭파오가 동의하지 않자 다시 3점을 놓으라고 했으나 칭파오는 역시 거절을 했다. 칭파오를 자극하기 위해서 황메이는 “보아하니 당신의 바둑도 그렇게 뛰어난 것 같지는 않으니 내가 3점을 접어주면 되겠소” 라고 말했다. 칭파오는 낮은 치수로도 높은 치수로도 두고 싶지 않아 호선을 요구했으며, 황메이는 결국 뱃심이 부족해 “그런 치수라면 두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칭파오는 이런 수법에 말려들지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돌을 가리기 시작했다. 황메이는 “내가 70세 이후에 두 다리의 발가락이 홀수이겠는가 짝수이겠는가 맞춰보라”라고 말했다. 칭파오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더니만 짝수라고 했고 황메이는 양말을 벗어 보이니 10개의 발가락이 모두 잘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 황메이는 “이 늙은이는 금년에 69세입니다. 방금 내가 말한 것은 70세 이후다. 당신이 현재 몇 개의 발가락인지 좀 보라?”라고 말을 마치고는 쇠망치를 꺼내어 오른쪽 새끼발가락을 힘껏 내리치고는 발을 동동 구르자 피가 바닥에 흘렀다. ‘천하제일의 악인’이라고 불리는 칭호의 칭파오 조차도 잠재우며 황메이는 결국 흑번을 차지했다. 오로지 흑을 잡기 위해 자신의 발가락을 뭉개버린 엽기적인 스토리다. 황메이의 고육책이 도대체 가치가 있는가? ![]() 소설 <천룡팔부>중에 나오는 많은 고수들의 무공은 아주 높고 바둑실력 또한 아주 높다. 이런 고대 아마추어의 기력을 도대체 얼마나 될까? 이와 대해서 천주더9단, 리우샤오광9단, 치우지홍(邱繼紅)5단 등의 고수들이 모여 토론을 벌였다. 단예:아마추어 기사중에서는 정상급 기사로 아마6단의 실력이다. 황메이와 칭파오(靑袍)가 무술을 겨루는 장면에서 단예가 포석단계에서 황메이에게 7수를 가르쳤는데 이 7수는 황메이가 한 두 치수 앞서가게 하는 수 였으므로 이것으로 볼 때 단예의 기력이 높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하다. 단예가 고수인 것을 알 수 있기에 충분하다. 소요자(逍遙子)의 진롱을 단예는 풀 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그의 기력이 그리 좋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다. 즉, 오늘날의 프로기사도 대국중에 잘못된 착수를 두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과 같다. 단예의 천부적인 자질은 총명하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배워서 프로기사의 수준에 이른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단연경(段延慶) : 황메이와 칭파오는 정선치수로 두었는데 만약 단예가 훈수를 하지않았다면 틀림없이 황의 형세가 나빴을 것이다. 단예가 황메이에게 가르쳐준 후 칭파오는 곧 알아 차리고는 “이것은 다른 사람이 너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넌 이런 바둑을 둘 수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거의 두치수 가깝게 뒤지고 있을 때 칭파오는 이곳에서 두기가 쉽지않다고 두지않고 방향을 바꾸어 황메이의 또 다른 돌을 공격하자 황메이는 즉시 응수하기가 어려웠다. 이것으로 볼 때 칭파오의 기력이 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판단컨대 단예보다 약간 낮은 아마5단정도의 실력이라고 느껴진다. 황메이 : 오랜 동안 바둑을 두었지만 지능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바둑 두는 것은 아주 보통이다. 칭파오에게 정선으로 두면서도 여전히 밀린다. 잘해봐야 아마 3단정도. 황메이는 점화사(拈花寺)에서 무공이 가장 높은 승려로 본래는 보정(保定)황제(단예의 백부)를 도와 싸우는 사람이었으나, 뜻밖에 바둑시합을 하게 됐다. 그가 바둑을 잘못 두었다고 할지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소요자(逍遙子) : 치우지홍5단은 ‘소요자가 현재 ‘전국아마대회 우승자’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치우5단은 ‘소요자가 평생 바둑을 연구했고 곳곳을 떠돌면서 천하의 많은 고수들을 물리쳤으며 그렇게 심오한 바둑을 놓을 수 있는 것을 보면 <천룡팔부>의 모든 인물중 유일하게 프로기사 초단의 실력을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천주더 9단은 오히려 “이런 것은 문제를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한다. ‘과거에 아주 많았던 길거리 사활은 천하에 풀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단지 이런 길거리대국의 패권자들은 어떤 국면에 대해서는 비교적 익숙해 있을지는 몰라도 이것이 결코 그들의 진정한 실력을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다. 소요자의 제자인 소성하(蘇星河)도 ‘길거리파’로서 모든 길거리패의 수를 풀수는 있지만 일단 국면을 바꿔 놓으면 아마도 풀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용복, 구마지의 기력은 단연경보다는 낮으며 대체로 아마 4단정도의 실력이다. 진롱과 맞붙은 허죽은 눈을 감고도 감히 바둑 두는 것을 보니 바둑맹(盲)보다는 좀 나은 것 같다. 아쉽게도 전체 책에서 나오는 여류기사는 아주 적으며 신선누이인 왕위이엔(왕어언)이 아마도 바둑을 볼 줄 아는 정도의 실력일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인 모두의 관점은 만약 이상의 선수중에서 리그전을 펼친다면 소요자와 단예가 1,2위를 차지할 것이고 2진그룹으로는 단연경, 모용복, 구마지(鳩摩智)등 일 것이다. 김용은 여전히 중국문단의 전무후무한 대사(大師)이며 대협객다운 인물이다. 그는 바둑을 두는 것을 아주 좋아해서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기도(碁)를 만날 때, 매번 황공무지해 한다. 국수들 중에도 김용의 팬들이 적지 않으며 그들과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상호숭배’하는 표현을 쓴다고 할 수 있다. 지난 80년대에 김용은 자신의 책을 국가 바둑팀에 자주 보내왔다. 화쉐밍 등 젊은 기사들은 매일 이불 속에서 그의 책을 보았는데 제2권을 가져가는 사람은 나중에 제1권을 다시 봐야 하는 비애도 맛본다. 김용과 중국 정상급 고수들과의 왕래는 자못 깊어 이미 수 십년이 되었다. 천주더와 김용의 인연 1980년 천주더9단은 갑자기 위암에 걸렸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때이기에 당시 그와 김용은 단지 마음만이 맞는 사이일 뿐 서로 잘 알지 못했다. ![]() “김용은 내가 만난 사람중 가장 잘 배운 사람중 한 사람이다.그는 언제나 진지하게 복기하고 이해가 안가면 질문을 하니 그의 기력이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김용은 승부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고수 앞에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제나 아주 기분 좋은 상태에서 바둑을 두고 꾸준히 노력해 매 대국에서 얻는 것이 있다.” 당시 중국의 최정상 고수였던 천주더와 김용의 대국은 4점 치수로 이루어 졌다. 천9단은 김용의 기력을 아마5단의 실력정도라고 평가했으며 다른 기사들도 김용의 기력은 아마4단에서 5단사이라고 말했다. 후에 천9단은 이에 관해 웃으면서 “김용은 덕망이 높으며 바둑에 대한 공헌도 적지 않으니, 1,2단 정도 더 보태도 상관없다.”라고 말했다. 김용이 슨 14편의 무협소설을 모두 본 천9단은 “김용 스스로는 제일 좋은 작품이 <녹정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천룡팔부>가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평가. 김용의 바둑 스승 녜웨이핑-창하오 녜웨이핑, 선쥔산(沈君山), 김용 이 세사람은 바둑친구들이지만 각각 서로 10살 차이가 나서 자못 의형제 같은 느낌이 든다. ![]() “받지않으면 안됩니다.” 김용의 태도는 아주 진지했으며, 그는 “프로기사는 이것을 업으로 삼기 때문에 지도료를 받지않는 것은 규율을 깨뜨리는 것이 된다.”라고 말했다. 녜9단은 “이뿐만 아니라 김용 선생은 또 다른 취미가 하나 있다. 기력이 그보다 높은 기사이기만 하면 그는 매번 스승으로 모시고 아주 예의를 깍듯이 하고 선물 등 을 준다. 이러니 김용 선생의 스승은 천하에 수도 없이 널렸으며 모두 합치면 100단도 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녜9단은 약간은 과장되게 김용의 취미를 설명한다 “한번은 김용이 창하오를 보고는 아주 좋아 하더니 끌고 와서는 스승이 되어 달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죽을 맛이었다. 창하오는 나의 제자인데 김용도 나를 스승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가 창하오를 스승으로 모시면 나와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강호의 인사들은 모두 김용의 스승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나를 비웃지는 않을 것이다.” 리우샤오광 부부와 김용 리우샤오광은 “김용은 바둑을 둘 때 참을성이 나보다 좋다.”라고 말한다. 리우9단의 홍콩 집은 김용의 집으로부터 한블럭 거리에 있는데, 홍콩에 들러 집에 갈 때 리우9단은 자주 김용을 방문하고 그와 바둑을 둔다. ![]() 부인이 장고를 할 때 리우9단은 “나는 기다리는 것이 짜증이 난다. 참지 못하고 부인보고 빨리 두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김용은 언제나 조급해 하지 않고 우아한 풍채로 똑바로 앉아 있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이는 두 사람이 두는 연기바둑인 셈인데 일반적으로 승자는 리우샤오광이었다. 이처럼 김용은 아주 낙천적이다. 바둑을 다 두고 나서 김용과 그의 부인은 꼭 리우샤오광 부부에게 식사를 하고 가라고 붙잡는데 이것도 김용의 집에서 바둑을 둘 때의 규칙이 되었다. 출처 |
첫댓글 재밌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