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다들 늦지 않게 일어나 준비에 바쁘다. 다행히 어제 저녁 식사자리에서 오늘의 산행을 생각해 시간을 오래 끌진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2차를 했지만 그 또한 밤 12시에 끝을 냈으니 그런 대로 잠은 잔 셈이다.
아침은 노들강의 도움을 받아 떡국을 준비했다. 어쨌든 해장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대충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최종일 동문이 전화를 받는다. 어제 우리를 데려다준 기사가 아침에 일찍 오지 못한다고 해 놓고선 8시 15분인데 도착했다는 통보를 해왔다. 우리는 대충 8시 30분쯤 출발을 예상했다. 그때부터 갑자기 부산해졌다. 이남기 회장님과 정구선 동문은 언론학회 일정에 맞춰 ‘사려니 숲길’ 걷기에 나서야 한다. 따라서 산행은 모두 12명이 하게 되었다. 이 선배가 출발하신 다음에 우리는 15인승 버스를 타고 영실로 향했다. 알은 따로 차를 가지고 아브몰과 함께 먼저 출발하면서 행동식을 구입하기로 했다. 버스에 탄 일행은 모두 10명이다. 한라산 중산간 도로를 달리면서 시원한 바람을 만끽한다. 날씨는 청명하게 개어 시야도 넓다. 오늘의 산행에 다들 나름의 의미를 붙일 수 있으리라. 나는 지난 5월 3일 아침에 좀 늦게 왔다가 결국 영실 주차장에 접근도 하지 못하고 돌아간 경험이 있었기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영실에 도착할수록 차가 늘어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줄을 따라 기어가는 듯하지는 않다. 우리 차는 버스여서 위쪽 주차장까지는 갈 수가 없다. 일단 차에서 내려 택시를 탈까 하고 움직이니 택시는 한 대당 7000원이다. 걸어서 가면 2.5km이니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 산에 올라가기도 전에 기운을 다 뺄 수도 있다. 몇 년 전 돈내코로 올라와 등반이 통제된 영실 코스를 아무도 만나지 않고 내려온 기억을 되살리곤 했는데 요즘은 영실 코스에서는 백록담 정상 등반을 할 수 없다. 휴식년이 시행되고 있는데 내년에나 풀릴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알이 올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알의 차로 우리가 위쪽 등산로 입구까지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미 주차장이 가득 차서 일행을 위에 데려다주는 것은 괜찮은데 정작 알이 차를 가지고 올라올 수가 없다. 결국 수고스럽게 알은 업무를 마친 뒤 혼자서 뚜벅이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1차로 알이 데려다준 덕에 임병수· 최승호 선배, 아브몰과 함께 먼저 출발을 하기로 했다. 영실의 고도(1280m)를 알려주는 표지석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발을 내디딘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전화가 울린다. 아톰이 공항에서 내렸다는 연락이다. 아톰은 어리목에서 출발하여 도중에 알과 만나 차량의 열쇠를 건네받은 다음 내려가서 식당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산에서는 전화가 통하지 않을 것을 걱정했으나 다행히 어렵지 않게 전화는 잘 통하고 소리도 잘 들린다. 오늘의 일정은 영실 탐방로 입구에서 출발해 대체로 5.8km의 구간을 걷는다. 현재 한라산 탐방로는 모두 5곳이다.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곳은 성판악 탐방로와 관음사 탐방로 두 곳뿐이다. 우리는 영실에서 출발해 병풍바위와 윗세 오름을 거쳐 남벽 분기점까지 갔다가 어리목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대략 4시간 정도를 예상하는 코스다. 정상까지는 대체로 9시간, 10시간이 걸리는 코스여서 좀 길다. 하지만 최승호 선배는 큰 산인데 10시간 정도는 걸어야 하지 않느냐며 아쉬워했지만(?) 다들 편안한 산행을 목표로 했기에 무리하지 않고 진행하기로 한다. 영실 코스는 그다지 힘들진 않지만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가는 길이 그래도 꽤 가파르다. 특히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상당히 숨이 가쁘기도 하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영실 기암 표지판이 우리를 맞는다. 삼각형 모양의 바위가 신록의 푸름으로 물들어선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그 위에는 오백나한으로 불리는 조그만 바위들이 뾰족뾰족 튀어나와 자신들의 존재 드러내기에 한창이다. 무엇보다 이날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파란 하늘은 커다란 화폭인 양 모든 바위와 나무를 다 받아들여 맘껏 자태를 뽐내게 해 주었다. 또 그렇게 덥지도 않고 바람이 적당히 불어 걷는 동안 땀이 나려 하면 즉시 식혀 주었다. 게다가 길목에 피어 있는 철쭉과 털진달래의 화사한 색조는 화산 지형의 거무튀튀한 색상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서로 사진을 찍느라 바쁘게 움직이면서 1시간 남짓 걸어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선 다들 컵라면을 먹는다. 도착하니 이미 줄이 길다. 먼저 도착한 임, 최 선배와 줄을 섰다. 한 사람에 2개씩 살 수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리니 우리 일행이 하나둘 올라온다. 줄을 선 최 선배가 주인에게 사정을 해서 모두 12개의 라면을 받아들고 양갱도 12개를 함께 사서 나왔다. 나는 임 선배가 라면을 두 개 들고 오는 것을 받아주다가 넘어져 한 개를 쏟아버렸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지만 중인환시(衆人環視)리에 머리 하얀 할머니가 잠시 스타일을 구긴 셈이다. 조금 있으니 알도 나타나 합류를 하고 다들 윗세오름 쪽 남벽 분기점을 향해 나섰다. 남벽 분기점은 백록담의 남쪽 바깥을 일컫는다. 과거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이뤄진 지형은 그야말로 오묘해서 사람의 눈길을 잡아끈다. 뭉툭한 바위 사이를 뭔가가 훑어 내려 길을 낸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중간 중간 바위들이 날카로운 윤곽을 가지고 있어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듯한 느낌도 준다. 우리는 계속 걸어 방애오름샘까지 간다. 이곳은 우리가 흔히 보는 한라산의 정경을 대표하는 사진을 찍는 곳 중 하나다. 남벽의 거친 면과 함께 우뚝 솟은 백록담 아래 활짝 핀 분홍빛 철쭉의 향연. 선경의 한 자락을 보는 듯하다. 그곳에서 쉽게 떠나지 못하고 서로 사진을 찍고 찍어주기에 바쁘다. 알은 아톰이 오면 더 있다 가겠다며 우리더러 먼저 가라고 한다. 우리는 윗세오름 대피소를 향해 다시 돌아가다가 중간에 아톰을 만났다. 알이 기다린다며 보내고 우리는 가는 길을 재촉했다. 대피소에 오니 강만석(산바람), 조진영 동문이 기다리고 있다가 합류한다. 대피소에서 방애오름 샘까지는 오지 않고 그냥 쉬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제부터 하산이다. 그런데 어리목 코스는 계속 계단으로 이어지고 올라올 때보다 가파른 코스여서 살짝 걱정이 된다. 지팡이가 없어서 무릎이 아플 것 같아서다. 제주에 처음 내려올 때 스틱을 수하물로 부쳐야 한다기에 귀찮아서 가져오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기내 반입이 되니 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다들 지팡이를 손쉽게 가지고 올 수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길은 계속 내리막길이고 올라올 때보다 경사도 심하다. 그러다 보니 무릎이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예정 시간을 넘기지 않고 하산을 하니 오후 3시가 되기 전이다. 기사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3시 30분. 당연히 버스는 아직 오질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어리목 탐방 안내소에 앉아 다들 휴대폰 삼매경이다. 알과 아톰은 따로 차로 움직이고 모두 11명이 버스에 타고 서귀포 네거리식당으로 가서 갈치조림과 갈칫국을 먹기로 했다. 네거리식당은 항상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이어서 자리가 있을지 걱정을 했더니 다행히 버스 기사가 말하기를 자기가 제주도 파워블로거이므로 식당 주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다. 거의 20년을 다닌 단골이라고 한다. 그러나 도착을 했더니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 없이 자리가 넉넉하게 비어 있었다. 무사히 산행을 마친 일행은 이제 본격적으로 알코올과 만남의 행사를 가졌다. 그 끝은……%^&*.
뱀발 1: 5월 19, 20일 한국언론학회 학회가 마침 제주 국제대학에서 열렸습니다. 그 덕분에 이남기 회장님을 비롯해 산악회 회원인 규갑, 재철도 공식 제주도 나들이가 가능했습니다. 그 결과 확대 산악회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최승호 선배는 산악회 동참 의사를 밝혀 오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시간을 내 주었습니다. 제주 만남에 동참한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19일 저녁은 강정포구 횟집에서 모두 15명이 참석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한라산 산행에는 모두 13명이 함께했습니다.
뱀발 2: 손님맞이에 소홀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리며 괜히 돈을 걷게 한 미안함도 전합니다. 성의로 여겨 그냥 고맙게 받았습니다. 꾸벅!!!
참석자(존칭 생략): 이남기(68학번), 임병수· 최승호(70학번), 장덕수·남인복(75학번), 이희용·강만석·조진영(80학번), 최규갑·김종원(81학번), 임병선(82학번), 이준호·김재철·최종일(85학번), 정구선(86학번)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감히 평할 처지는 아니지만 더하거나 뺄 것 없고 흠 잡을 데 없는 천의무봉의 글솜씨인 듯합니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인데 아득한 추억으로 느껴집니다.
쓰느라고 고생하셨네요. 덕분에 전 머체왓숲길 에 집중해 쓸 수 있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몇 년 전, 윗세오름에서 영실로 내려오면서 1미터 이상 쌓인 눈이 절경이었는데....철쭉과 털진달래 핀 코스도 언젠가 한 번 걸어봐야겠어요. 산행기 즐독했습니다.^^
회장님의 신속한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이번 제주여행에서 여러모로 회장님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루 더 있다 월요일에 올라온 3박4일파의 별전 산행기는 알대장님이 준비하고 계신다니 기대됩니다.
먼저 올라가신 분들이 후회할만한 - 머체왓숲길, 사려니숲길, 한림의 바닷가, 만선식당의 고등어회... - 얘기거리가 무지 많거든요.
산행기를 참 자세하게 쓰셨네요. 덕분에 저도 머릿속으로나마 산행 코스를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 초대해서 뒤치다꺼리하고 산행까지 하느라 몸살이나 나지 않으셨을지 걱정됩니다. 함께 하지 못해서 회장님과 회원 분들께 죄송하고, 부러웠습니다.
역쉬.~~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즈넉한 회장님 댁이 또 그리워집니다..9월까지 계실 거라고 생각하니, 한번 더 가고 싶네요..그래도 되나요..ㅎㅎ
이제사 댓글 올립니다. 눈팅만 하다가~~ 잘 읽었습니다. 손님 치르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서울 올라오시기 전에 제주에서 한 번 뵈올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