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송기인 선생님을 뵈었다.
기훈이가 연락해 병관이까지 같이 만나자고 했다.
난 매실농원에서 매실주를 사 부지런히 봉선동에 간다.
걸어 온 기훈이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고 난 차를 그냥 주차장 가운데 세워두고 들어간다.
선생님이 오시고 불편한 몸으로 버스를 갈아타고 온 병관이는 7시가 넘어서 온다.
기훈이가 비싼 안주를 시킨다.
선생님이 옛 이야기도 들으며 술을 마신다.
두뇌도 좋으시고 의지가 강하신 분이다.
나에겐 처음으로 광주의 학원도 보내주셨고, 집안 형편을 봐
교대진학을 권하셨다.
3학년 때 같은 방에서 지내기도 한 난 제자로서 엉터리다.
노래방까지 가서 노래도 부르고 놀다 기훈이가 잔을 던져 나온다.
선생님과 병관이가 택시를 타고 가고 내차로 대리를 불러 기훈이를
내려주고 돌아온다. 매실주는 그대로 있다.
취한 몸은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아침을 먹고 사기 몇 줄을 읽어도 몸이 무거워 또 눕는다.
점심을 먹고 바보는 조직에서 웍샵을 한다고 나가며
나더러 책 읽으며 쉬라한다.
게으름을 피우다가 아무래도 술 깨려면 산이 좋을 듯해 산행준비를 한다.
준비랄 것도 없지만 가끔 빗방울이 떨어져 우산을 배낭 옆에 끼운다.
3시 반이 되어 나가 45번과 9번을 타고 증심사 주차장에 내리니 4시 25분이 지난다.
증심교 넘지 않고 바람재로 오른다.
산책하는 사람이 더러 있고 비옷을 입고 하산하는 산객도 있다.
작은 물이 맑게 소리를 내며 흐른다.
길가마지 하얀 꽃이 가는 가지에 피었다.
현호색도 색깔을 달리하며 피어났다.
제비꽃도 보이고 산괴불주머니같은 곷도 본다.
산자고는 꽃잎을 모으고 있다.
가끔 나무 사이로 구름에 갇힌 흰 해가 보여 일몰을 볼거라는 기대가 된다.
샘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오른다.
외지에서 온 듯한 남녀산객이 내려온다.
전화기로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오르니 증심교에서 바람재까지 50분이 다 걸린다.
동화사터쪽으로 바로 오른다.
전망대 오르는 길에 고운 새소리가 나더니 날지 않고 내 앞을 걸어간다.
사진을 찍어보나 잡아내지 못한다.
땀을 흘리며 올라 온 몸은 이제 힘을 낼 만도 하지만 여전히 힘들다.
동화사터 위에 이르자 정산 쪽엔 눈이 하얗다.
발 아래에도 녹지 않은 눈이 남아있다.
사양 능선에서 돌아 본 시내는 흐리고 서쪽 하늘에도 구름이 가득하다.
일몰은 글렀다. 저쪽 만연산 쪽에서 하얀 구름이 하늘로 머리를 풀고 있다.
송신소 앞을 걷는다. 겉옷 벗은 팔이 춥다.
한 사나이가 전화를 하며 걸어와 전화를 하며 내 곁을 지난다.
난 아무 말 않으니 좋다?
중봉에서 눈 쌓인 길 건너를 보고 용추봉으로 내려온다.
그러고 보니 두시간여를 걸으며 물도 마시지 않았다.
용추봉의 바위를 찍고 내려오며 옷을 껴 입고 물 한모금을 마신다.
제주에서 사 온 얇은 초코렛 몇 개를 까 먹는다.
소주 생각이 난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잠깐 쉰다.
소나무를 찍고 내려온다.
시내엔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중머리재로 내려오니 7시다. 흐린 날 탓인지 어두어지기 시작한다.
한 사나이가 아마 것도 없이 후적후적 숨 가뿌게 올라오고 있다.
난 바위를 밟으며 반 달리듯 내려온다.
당산나무 위 화장실 주변엔 가로등이 환하다.
시내의 불빛과 가로등 빛을 받아 환한 당산나무를 찍고 내려온다.
식당가에 불이 켜져 있고 몇 손님이 앉아 있다.
중머리제 식당에 가 국밥을 먹을까 하다가 참고 바로 오는 9번을 탄다.
학동시장에 내려 45번을 기다리는에 얼른 오지 않는다.
옆 김밥집에 들러 5천원짜리 김치찌개를 주문한다.
세명의 일꾼들이 식사를 하다가 일어나 주방으로 간다.
소주가 있느냐고 물으니 없댄다.
다시 나갈 수도 없어 맵고 시큼한 김치찌개를 먹고 나온다.
한참 후에 온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옛 도청앞 민주광장엔 집히를 마친 사람들이 흩어지고 있다.
웍샵을 마치고 돌아오는 바보의 차를 집앞에서 만나 같이 온다.
저녁이 부족했는지 바보가 가져 온 흑임자죽 등을 달라해 더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