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사에서 관음보살 신앙의 본향이자 관동팔경의 하나로 불교신자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유서 깊은 사찰인 낙산사(洛山寺)가 강원 양양과 고성일대를 덮친 산불로 인하여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전소되었다고 합니다. 정부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할 당시처럼 복구를 계획하고 있지만, 녹아내린 동종과 숯이 되어 버린 목조건물들을 다시 복원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아무쪼록 예전모습으로 다시 재건되기를 기원합니다. |
- 위치 :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오봉산 |
- 소개 : |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해변에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갖춘 사찰로서, 한국 3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하나이다. 낙산은 산스크리트 보타락가(補陀洛伽)의 준말로서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르는 곳이다. 671년 의상(義湘)이 창건하였고, 고려 초기에 산불로 소실되었으나 관음보살과 정취보살을 모신 불전만은 화재를 면하였다. 그 뒤 몽골의 침략으로 전소되었다. 전소된 뒤 몇 차례 중창·중건되었다가 6·25 때 다시 전소된 것을 1953년 일부 복구하였고, 76년 원철(成徹)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원통보전·종각·일주문·천왕문·선실·승당·객실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낙산사동종(보물 제479호)·낙산사칠층석탑(보물 제499호)·낙산사홍예문(강원도유형문화재 제33호)·낙산사원장(洛山寺垣檣;강원도유형문화재 제34호)·양양낙산사사리탑(강원도유형문화재 제75호) 등이 있다. |
- 특징 : |
석가모니불이 아닌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어 본전을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원통보전이라고 함 786년 처음 화재로 소실된 이래 한국전쟁 때까지 산불 등으로 9차례의 화재를 만난 비운의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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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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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년(신라 문무왕11) : 786년(원성왕2) : 858년(헌안왕2) : 10세기 중엽 :
1197년(고려 명종27) : 13세기 초 : 1254년(고종41) :
1258년(고종45) : 1399년(조선 정종1) : 1403년(태종3) :
1404년(태종4) : 1466년(세조12) : 1467년(세조13) : 1468년(세조14) :
1471년(성종2) :
1489년(성종20) : 1592년(선조25) : 1619년(광해군11) : 1631년(인조9) : 1643년(인조21) : 1683년(숙종9) :
1692년(숙종18) : 1694년(숙종20) : 1697년(숙종23) : 1737년(영조13) : 1752년(영조28) : 1777년(정조1) : 1797년(정조21) : 1854년(철종5) :
1866년(고종3) : 1869년(고종6) : 1870년(고종7) : 1888년(고종25) : 1893년(고종30) :
1895년(고종32) : 1905년 : 1908년 : 1911년 :
1912년 :
1913년 : 1918년 : 1924년 : 1925년 :
1928년 : 1930년 : 1932년 :
1937년 : 1939년 : 1950년 : 1953년 : 1959년 : 1963년 : 1968년 : 1971년 :
1972년 : 1974년 : 1975년 : 1976년 : 1977년 : 1982년 : 1983년 : 1984년 : 1984년 : 1988년 : 1988년06월22일 : 1991년 : 1993년 :
1995년 : 1996년 : 1999년 : 1999년 : 2000년 : 2001년 : 2003년 03월 : 2003년 02월03월 : |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함. 화재로 인하여 사찰 대부분이 불에 탐. 범일스님이 중창함. 이 때 세 칸의 불전과 정취보살상을 짓고 봉안함. 범일스님의 중창 이후 100여 년이 지났을 때 들불이 일어나 이 곳까지 번져오므로써 사찰 대부분이 불에 탐. 그러나 관음보살상과 정취보살상을 봉안한 불전은 화재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함. 유자량(庾資諒)이 관음굴에서 기도하다가 파랑새〔靑鳥〕의 영험을 겸험함. 이규보(李奎報)가 관음보살상을 보수하고 복장 유물을 다시 봉안함. 몽고군의 침입으로 관음상과 정취보살상, 그리고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양주성(襄州城)으로 옮김. 양주성마저 함락되자 두 보주를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다시 꺼내어 감창고(監倉庫)에 간직함. 감창고에 있던 두 보주를 어부(御府)로 옮겨 보관함. 태조 이성계가 행차하여 능엄법회를 개최함. 태종이 선공소감(繕工少監) 김계란(金桂欄)을 보내어 재이(災異)를 없애기 위한 도량을 개최함. 왕실에서 내신을 보내어 기청법회(祈晴法會)를 개최함. 세조대왕이 행차함. 세종대왕이 행차하여 헌향하고 사찰 중건을 지시함. 학열(學悅)스님이 중창함. 현재 경내에 남아 있는 칠층석탑, 홍예문, 원통보전 담장 등은 이 무렵 조성된 것임. 선학(仙學)스님이 중수함. 이때 용선전, 영산전, 어제루, 승당 등을 보수하고 단청도 새로 입혔다고 함. 산불로 인하여 관음전이 불에 탐. 임진왜란으로 사찰 대부분의 당우가 불에 탐. 관음굴을 중건함. 화재가 발행하여 사찰이 불에 탐. 종밀(宗密), 학조(學祖)스님 등 36인이 중창함. 도원(道源), 대주(大珠)스님 등 25인이 중수함. 관음굴의 불상을 개금할 때 공중에서 한 개의 명주(明珠)가 내려 왔다고 함. 석겸(釋謙)스님이 이것을 봉안하기 위해 탑을 조성함. 공중사리탑(空中舍利塔)을 조성함. 공중사리비(空中舍利碑)를 건립함. 정수(精粹)스님이 인월암(印月庵)을 창건함. 석겸스님 등이 사적판(寺蹟板)을 새김. 덕린(德麟)스님이 홍련암을 중수함. 화재로 인하여 원통보전을 제외한 전 당우가 불에 탐. 혜민(慧旻)스님이 홍련암을 중수함 경봉(鏡峰)·염진(念眞)·긍념(肯念)등의 스님이 화주가 되어 원통보전과 용선전을 중수함. 어실각(御室閣)을 중수함. 화봉(華峰)스님이「낙산사원통보전어실각수보기(洛山寺圓通寶殿御室閣修補記)」를 지음. 큰 비로 인하여 홍련암이 무너짐. 의연(義演)스님이 홍령암을 중건함. 최병복(崔秉復)이 「홍련암중건기」를 지음. 선학(仙鶴)스님이 빈일루(賓日樓)를 중건함. 선학, 인파(仁坡)등의 스님이 영산전을 중수함. 일봉(日峰)스님이 「오봉산낙산사영산전중수불사단호기」를 지음. 승당이 불에 타자 선학스님이 중건함. 경은(敬隱)스님이 선당, 후각(後閣)등의 일부 당우를 새로 지음. 관음굴이 무너짐. 흥운(興雲)·청호(晴湖) 두 스님이 관음굴을 중건함. 보룡스님이 「낙산사관음굴상량문」과 「낙산사관음굴중창기」를 지음. 일제의 30본말사법에 의해 건봉사의 말사가 됨. 해성(海星)스님이 빈일루를 중건함. 김동규(金東圭)가「낙산사빈일루중수기(洛山寺賓日樓重修記)」를 지음. 백월(白月)스님이 「영세불망기」를 지음. 주지 응호(應湖)스님이 법전과 요사를 수리함. 주지 규현(奎鉉)스님이 도량 전체를 수리함. 만옹(晩翁)스님이 의상대에 정자를 새로 지음. 만해(萬海)스님이 「의상대기(義湘臺記)」를 지음. 만해스님이 건봉사(乾鳳寺)의 본말사 사적을 편찬하면서 낙산사의 사적도 함께 정리함. 화재가 발생하여 사찰 일부가 불에 탐. 주지 만옹스님이 중검함. 박한영스님이 「낙산사중건상량문」을 지음. 1936년의 폭풍우로 무너졌던 의상대 정자를 새로 지음. 박한영스님이 「낙산사의상대육각정중건기」를 지음. 한국전쟁 때 사찰 내 전체 당우가 불에 탐. 이형근 장군이 원통보전과 종각등을 새로지으면서 중창함. 7층석탑도 이 때 중수하였슴. 원통보전 내부의 신중탱화를 조성하여 봉안함. 홍예문 위의 누각을 새로 지음. 「낙산사동종」이 보물 제479호, 「낙산사칠층석탑」이 보물 제499호로 각각 지정됨. 「낙산홍예문」·「낙산사담장」·「낙산사」등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34·35호로 각각 지정됨. 원철(圓徹)스님이 중창을 시작함. 「의상대」가 강원도유형문화재 제 48호로 지정됨. 의상대를 중건함. 홍련암을 중창하면서 내부에 탱화와 제석천룡탱화를 함께 조성함. 홍예문을 중건함. 원철주지스님이 해수관음전을 짓고 동양최대해수관세음보살을 봉안함. 「양양낙산사사리탑」이 강원도유형문화재 제 75호로 지정됨. 진철주지스님께서 고향실.무설전.무이당을 해체 복원 중창함. 진철주지스님게서 양양시내에 포교당 및 유치원을 개원함. 「낙산사홍련암」이 강원도문화재자료 제 36호로 지정됨. 혜승주지스님이 범종각을 짓고 범종을 주조함. 전통사찰로 등록. 보산주지스님 일주문 건립. 오현, 지흥, 마근 스님의 원력으로 보타전, 보타루, 해우당을 건립하고 1500불 32응신 7관음상을 봉안함. 마근주지스님께서 의상대를 해체 복원함. 마근주지스님게서 심검당을 신축함. 지홍주지스님께서 창고를 철거하고 근행당을 건립. 지홍주지스님께서 홍련암을 해체 복원함. 지홍주지스님께서 의상기념관 다래헌을 건립. 지홍주지스님께서 의상교육관을 건립하고 원통보전 기와 번와와 단청을 함. 설웅주지스님께서 낙산유스호텔을 인수 증.개축함. 원통보전에 봉안된 건칠 관세음보살좌상이 보물 제 1362호로 지정. | |
출처 : 사찰문화연구원, 낙산사 (http://www.naksansa.or.kr/), NHN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