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학의 한국산사 목조각 걸작] 6. 사천왕이 수호하는 경전 보관함
6. 구미 대둔사 대웅전 경장
경장, 불교경전 보관하는 책장
장엄보다 책장의 특성 더 많아
편년 비교 특정 紀年作 보유해
공예·조각·회화적 요소 결합
구미 대둔사 대웅전 경장
경전 보관함-경궤, 경함, 경장, 윤장대
경장(經藏)은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책장, 혹은 함(函)의 일종이다. 고귀한 경전 보관 가구다. 그래서 창호와 잠금 시설을 갖춘다. 조선시대에 유통되는 경전은 대부분 목판이나 금속활자로 찍어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으로 묶은 책 형식이다. 오침안정법은 책의 등 쪽 가장자리에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 실로 꿰매는 동양의 전통 제본 방식이다. 옛 책은 현대의 책처럼 세로로 칸칸이 꽂는 방식이 아닌 반듯이 눕혀서 보관한다. 민화의 책가도, 책거리에서 책을 진열한 모습을 보면 모두 반듯이 눕혀서 진열하고 있다. 경장은 통상 법당의 불단 위 부처님 좌우에 한 쌍이 대칭적으로 놓인다. 기능적으로는 책장이지만 형태를 보면 품격 있게 만든 성보 보관함에 더 가깝다.
한국사찰에서 언어로 새긴 경전은 크게 네 가지 모습을 띤다. 목판, 책, 사경 첩, 두루마리 형식 등의 네 가지다. 목판은 대장각 등에 나무로 층층이, 칸칸이 짠 시렁 진열대에 보관한다. 그 외 책이나 사경 첩, 두루마리 경전은 보관함을 특별히 제작하여 보관했다. 그런 경전 보관 목제 가구들이 경궤(經櫃), 경함(經函), 경장(經藏), 윤장대(輪藏臺) 등이다. 경궤와 경함은 둘 다 경전을 담아두는 상자다. 둘의 차이점이라면 경궤는 라면 박스 모양의 단순한 직육면체 형태인 반면, 경함은 경궤 형태에다 우아하고 고급스런 뚜껑을 마련하고 나전기법 등으로 섬세한 장식을 베푼다. 경장은 경전을 보관하는 격식 갖춘 세로형 책장에 가깝다. 윤장대는 회전식 경전 책장이다. 경함과 경궤가 가로로 눕힌 보관 상자라 한다면, 경장은 세로로 세운 경전 보관상자라 볼 수 있다. 경장을 보다 크게 만들어 회전시설을 더하면 윤장대가 된다. 경전 책 보관가구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경궤: 경전 보관 직육면체 궤짝. 영천 은해사 성보박물관 경궤(법화경 48권 보관), 경주 불국사 대웅전 경궤, 양산 통도사 경궤, 봉화 청량사 경궤(경장經藏) 등
△경함: 경전 보관 함. 13~14세기에 제작된 고려 나전경함. 현존하는 고려 나전경함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 점을 포함하여 총 9점. 일본 도쿄박물관 소장 경함의 뚜껑 윗부분에 나전으로 ‘대방광불화엄경’이라 새긴 명문을 통해 경전 보관함임을 확인하였다.
△경장: 경전 보관 책장. 구미 대둔사 대웅전 경장, 상주 북장사 경장(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위탁보관 중).
△윤장대: 회전식 경장. 예천 용문사 대장전의 윤장대.
이 중 한국에 현존하는 고려 나전경함과 경장, 윤장대는 극히 드물다. 고려 나전경함은 한 점, 경장은 두 쌍, 윤장대는 한 쌍만 있다. 모두 국보급, 보물급 성보다. 나전경함과 윤장대는 두루 고증되고 숭고한 문화유산의 가치로 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경장에 대해서는 관심과 조명이 소홀하다. 불교 목조각에 대한 조명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대둔사 경장과 북장사 경장
경장(經藏)의 고유 명칭은 ‘연화좌대 경장(蓮花座臺 經莊)’이다. 구미 대둔사 경장의 뒷면 명문 기록에 남아있다. 그런데 장엄(莊嚴)의 특성보다는 책장의 특성이 강하므로 ‘경장(經莊)’이 아닌 ‘경장(經藏)’으로 통칭하게 됐다. 경장 조형은 3단으로 구성한다. 좌대, 몸체, 상륜부 세 부분으로 제작하여 끼워 맞춘다. 좌대는 방형의 수미좌 형태다. 수미좌 좌대는 아래위로 삼단 층급을 가진다. 좌대의 방형 사면에는 안상 조형을 새기거나 사자, 모란 등을 새겨 기능 중심의 기단부 조형에 미적 아름다움과 활력을 불어 넣는다. 경장의 몸체는 세로로 긴 사각기둥 모양이다. 전면에 여닫이 창호를 달았다. 창호를 열어 보면 내부는 칸이 없다. 통으로 뚫려있다. 여기에 경전을 차곡차곡 쌓아 보관한다. 창호는 꽃살문처럼 조각한다. 경장 창호는 꽃살문과는 달리 빗살이나 정자살이 없는 통판창호다. 통판에 양각으로 문양을 새겼다. 새긴 문양 위에 진채를 입혔다. 창호 문양의 중심 소재는 연꽃과 모란이다. 하나의 경장에 연꽃을 조각하였다면 다른 하나에는 모란을 새긴다. 경장의 머리 부분인 상륜부는 보관 형식, 또는 궁륭형 보궁 형식으로 제작한다. 성보를 보관하는 성물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경장도 어찌 보면 하나의 궁전이고 법당이다. 경전이 곧 진리 법이니 경장이 법의 집으로서 간략하게 제작한 법당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경장은 두 쌍이 현존한다. 구미 대둔사 경장과 상주 북장사 경장 두 쌍이다. 둘의 조형적 특성을 비교하면 위의 표와 같다.
두 경장을 비교해보면 규모나 조형의 아름다움 측면에서는 북장사 경장이 더욱 웅장하고 힘차며 아름답다. 조형만 놓고 보면 북장사 경장에서 받는 숭고함이 더 크다. 그런데 역사적 가치 측면에서는 대둔사 경장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제작 시기와 제작 장인을 명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대둔사 경장, 불교 목조각 경장의 기년작
대둔사 경장은 대웅전 불단 위 좌우에 한 기씩 놓여 있다. 향좌측에는 연꽃, 국화 등을 넝쿨과 결합시켜 이상화한 보상화문 경장을, 향우측에는 모란꽃을 새긴 경장을 배치했다. 향좌측의 경장 뒷면에서 명문이 발견됐다. 명문에는 “숭정3년 경오오월일 연화좌대경장...인출장인 충원 대유, 태장인 김덕운 양주, 화원 쌍연 유혜(崇禎三年庚午五月日 蓮花座臺經莊 引出匠人忠願大裕 욃匠人金德云兩主 畵? 雙連 裕惠)”라 적고 있다. 이로써 대둔사 경장은 1630년 5월에 화원 쌍연과 유혜가 여러 장인과 협력하여 제작하였음을 확인하게 됐다. 불교 목조각 경장의 고유명사와 양식, 편년을 비교 특정할 수 있는 기준인 기년작(紀年作)을 가지는 귀중한 의의를 지니게 됐다.
대둔사 경장의 크기는 향좌측 보상화문 경장이 가로, 세로, 높이가 63×50×117cm이고, 향우측 모란문 경장은 67×51×119cm 규모에 이른다. 북장사 경장에 비하면 30cm 정도 작다. 예술성에서도 뒤처지는 편이다. 그런데 조형 측면에서 대둔사 경장이 더 주목받는 점이 있다. 목조각 경장에 공예, 조각, 회화 요소가 결집해 있는 점이다. 북장사 경장에는 공예, 조각의 특성은 분명하지만 회화 요소가 없다. 대둔사 경장의 조형 특성에는 목공예에 회화를 결합하고 있는 점이다. 회화는 세 곳에 그렸다. 전면 꽃살문 창호 뒷면과 측면 외부벽면, 그리고 상륜부 판재에 회화를 베풀었다. 상륜부 판재는 가운데가 높고 양 끝은 봉긋봉긋하게 낮아지는 소위 ‘능화형(稜花形)’이다. 능화형 판재에 넝쿨보상화문을 그렸다. 가운데 커다란 연꽃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조화롭게 구성했다. 연꽃과 국화 등 현실의 꽃을 모티프로 하여 관념적 이상화를 추구하고 있다. 중심 색채는 석간주와 초록, 흰색이다. 화면의 갈색 톤이 차분함으로 이끈다. 놀라움을 자아내는 회화는 꽃살문 창호 뒷면의 그림이다. 창호 뒷면에 뜻밖에도 사천왕을 그려뒀다. 좌우 경장에 각각 두 분씩 그려 모셨다. 경장의 창호는 향우측은 오른쪽으로 열리고, 향좌측은 왼쪽으로 열린다. 두 창호를 동시에 열면 네 분의 사천왕이 나툰다. 영산회상 등의 불화에서 보이는 배치와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향우측 경장에는 비파를 든 북방 다문천왕과 칼을 든 동방 지국천왕 두 분을 배치하고, 향좌측 경장에는 용과 여의보주를 움켜쥔 남방 증장천왕과 당, 탑을 든 서방 광목천왕을 배치하였다. 향우측 끝에서부터 차례대로 연결하면 북-동-남-서로 시계방향으로 사방을 도는 구조를 보여준다. 그런 배치는 조선 중기 이후 사천왕 배치의 전형성을 거듭 확인시켜 준다. 경장 속 사천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외호의 물리력을 상징한다, 대둔사 경장은 사천왕이 수호하는 또 하나의 법의 집이다.
사천왕 그림에서 특별히 시선을 끄는 대목은 채색 원리다. 일반적인 진채화와는 달리 선묘화라서 이채롭다. 붉은 색 바탕에 황색 선묘로 그렸다. 황색 안료는 석황으로 파악됐다. 선묘형식의 사천왕도는 마치 포항 보경사 적광전 비로자나후불탱의 하단 좌우에 그린 사천왕 선묘 부분을 옮겨 놓은 것 같다. 섬세하고 신비로우며 고급스런 회화를 목공예 속에서 만난다. 걸작의 모멘텀이다.
▶ 한줄 요약
경장(經藏)은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책장, 혹은 함(函)의 일종이다. 고귀한 경전 보관 가구다. 그래서 창호와 잠금 시설을 갖춘다.
상주 북장사 경장(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위탁보관 중)
구미 대둔사 경장 문 열었을 때 모습
구미 대둔사 경장 창호 뒷면 사천왕도(향우측 경장)
고려 나전경함(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영천 은해사 성보박물관의 경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