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살 산행 초보, 2박 3일 지리산 종주 성공하다
화대종주! 전남 구례 화엄사 에서 경남 산청 대원사까지 지리산을 가로지르는 46킬로미터 정통 종주 구간이다. 대전 지역 교사들로 구성된 '참메' 회원 10명이 서대전역에 집결하여 1월15일 0시 47분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구례역에 하차하여 화엄사를 지나 연기암을 시작으로 노고단 , 연하천, 장터목, 천왕봉, 대원사에 이르기까지 2박3일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
첫날, 일행은 새벽 식사를 마치고 04시 50분에 연기암을 출발하여 1박 예정지인 연하천 대피소로 향했다. 오르막이 심해 땅이 코에 닿을 정도라는 코재를 지나며 순탄치 않을 불안감에 젖기도 했으나, 발걸음을 옮길수록 해내야 한다는 다짐이 견고해지면서 수많은 이정표를 지나쳤다.
올라가려면 내려가야 했고, 내려가려면 올라가야 했다. 쉬운 길, 어려운 길이 있어야 산일 것이다. 우리는 지리산에 안겼고, 지리산은 우리를 품었다. 처음부터 유평마을까지 40여 킬로미터가 눈길이었다. 나이 50개를 먹으며 가장 긴 눈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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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연하천 대피소까지 눈꽃이 설국을 만들었다.
| | 연기암을 지나 노고단에서 연하천 대피소에 이르기까지 전후좌우 위 아래가 온통 눈꽃이었다. 폭설로 전날까지 입산통제였던 터라 나무마다 빚어낸 눈꽃은 탄성과 함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오늘의 산악대장은 권성환(51·남대전고교 국어) 교사. 그는 1991년에 알프스 그랑드죠라스(4208미터)를 등정했고, 1997년에는 히말라야 낭가바르밧(8125미터)에 오른 산악 전문가다. 그는 이틀 동안 맨 뒤에서 대원들을 받쳐줬다. 그는 언제나 웃고 친절하다. 그러나 산행 정도에 어긋날 경우 뱀사골 호랑이가 된다. 산은 변화무쌍하고 경박한 사람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는다는 게 평소 지론이다.
이틀 동안 선두에 선 사람은 박종근(48·서대전여고 국어) 교사다. 그는 지리산 종주를 15회 이상 경험한 등반 베테랑이다. 일주일 전, 산행 초짜 필자를 위해 덕유산 9시간 모의고사를 치러준 은인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김치찌개는 삼삼하고 담백한 맛이 나는 '박종근표 김치찌개'로 회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월18일 새벽, 네팔 에베레스트 도전을 앞두고도 이번 산행에 동참했다. 2주 후 건강한 모습으로 재회를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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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위- (좌) 이권춘, (우) 홍길동 , 아래-(좌) 박종근, (우) 김병휘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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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위-(좌) 송치수, (우) 양찬모, 아래-(좌) 김중태, (우) 이성재 교사
| | 송치수(44·청란여고 역사), 양찬모(40·충남여고 국사), 이성재(38·대전대성고 영어). 김중태(38·대전대성고 한문) 교사는 우리끼리 용어로 짐꾼 역할을 했다. 쌀, 라면, 어묵, 식수, 김치, 생명수(소주), 버너, 코펠 등 10명분 식재료와 필수품을 배낭 가득 짊어지고 군소리 한 마디 없이 임무를 수행했다. 그 고마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랴!
이틀째 장터목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한 홍길동(가명 57·대전 S여고 수학) 교사는 대원 중 가장 고참이다. 그는 발걸음이 워낙 빨라 작살 맞은 뱀장어로 비유된다. 가정사로 혼자 하산하던 날 장터목에서 백무동까지 3시간 거리를 1시간 30분 만에 주파한 가명 그대로 축지법을 쓰는 듯한 홍길동이다. 그는 고참답게 항상 잔소리가 많다. 그 잔소리가 삶의 지혜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그는 산행 중 요소요소에서 질곡의 역사 해설도 들려줬다. 나는 가끔 묵념을 해야만 했다.
큰 덩치만큼 숟가락도 엄청 컸던 이권춘(51·대전송촌고 국어) 교사는 이번 산행 중 끼니마다 대추 서너 개를 간식으로 내줬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그가 끓인 된장찌개를 잊을 수 없다. 모든 맛이 부인으로부터 왔다며 애처가 모습을 보인다.
송치수의 장모님표 김치, 권성환의 삼색 떡국, 만두라면과 누룽지, 멸치볶음, 깍두기, 잘 지어진 밥이 어우러져 우리는 단 한 끼도 거르지 않았다. 식사 때마다 나는 얄밉게도 숟가락과 젓가락만 챙겼다. 종주팀의 희생과 배려 속에 사진사로서 호강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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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안구를 정화케 하는 눈꽃, 가슴에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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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연하천 대피소 인근에 이르자 눈꽃이 절정이다.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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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형제봉 능선에서 바라본 일출 직전 빛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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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연하천 대피소까지 설경과 눈꽃, 연하천 별들의 축제, 둘쨋날 형제봉 능선에서 바라본 해돋이 붉은 빛, 대성골 운해, 장터목 해넘이, 장터목에서 바라본 밤하늘 별들, 셋째날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 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 봄날처럼 따사한 날씨 등 지리산은 2박3일 내내 엄마 품이 되어 우리를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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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세석 대피소 담장 아래 앉아 햇살에 몸을 녹이고 있는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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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바로 저 곳이 지리산을 대표하는 천왕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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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 천왕봉 해돋이! 많은 분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촬영 후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를 다했다. 신의 눈이다!
| | 50세를 맞이하며 가장 많이 걸었다. 가장 긴 눈길을 보고 걸었다. 가장 오랫동안 세수를 하지 않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산장 대피소에서 잠을 잤다.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다. 가장 맛난 음식을 먹었다. 가장 멋진 조직력을 경험했다. 사흘 동안 가장 많은 탄성을 질렀고, 감탄사를 연발했고, 감동에 젖었다. 내가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겸손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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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우측 화살표가 노고단, 좌측 화살표가 천왕봉이다. 많이 걸었다.
| | 등반 후 하루가 지난 현재 입술 주변에 심한 물집이 돋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왼쪽 무릎에 통증이 왔지만 씻은 듯이 나았다. 다리 근육에 알이 배어 뻐근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힘이 솟는다. 양쪽 엄지 발가락에 난 물집쯤이야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살면서 내가 한 일 중에 잘한 일 몇 가지를 뽑으라면 그 가운데 하나는 단연코 지리산 종주라고 말할 수 있다.
교사로서 또 하나의 수업 자료가 생겼다.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에게 산이 주는 가르침을 전하고 싶다. 살면서 과정이나 결과의 가치를 산으로 말할 수 있어서 좋다. 사진으로 글쓰기교육을 할 수 있으니 모든 것이 소중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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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함께 한 배낭들. 피붙이요, 살붙이였다. 고생했다, 배낭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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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대원사를 지나 진주로 가는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다함께 종주를 기념하는 동동주를 마셨다. 나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지리산 종주! 뜻을 같이 하는 동료가 있었기에 탈없이 해낼 수 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말씀! "감사합니다!!!!"
| | 등반을 마친 후 다음 날, 등반 대장 권성환 교사는 '참메' 동아리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이번 산행에서는 지리산이 너무나 많은 아량과 혜택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내리던 폭설도 그쳐 주었고, 매서운 바람도 보내지 않았고, 연일 계속된 강추위도 누그러뜨려 주었습니다. 이러한 혜택 덕분에 그리 큰 고생 없이 종주를 마쳤습니다. 이에 대해 무척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그렇다고 우리 종주대원들이 지리산 동계종주 별 거 아니구나 하는 안일한 마음은 가지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이 오만할 때 자연은 얼마나 냉정한가를 우리는 많이 목도하고 있습니다. 겨울산은 언제 그 매서운 발톱을 우리에게 내밀지 모릅니다.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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