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E클래스의 5세대(W213. 10세대라는 관점도 있음)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 공개됐다. 아직 판매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지만, 최근의 벤츠의 디자인 변화 경향을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17년에 등장했던 5세대 E 클래스는 곡면을 대거 채용한 차체 형태와 뒤로 갈수록 낮게 떨어지는 이미지의 캐릭터 라인, 이른바 드로핑 라인(dropping line)을 가지는 차체 형태로 나왔었다. 그 전에 2009년형으로 나왔던 W212 E클래스가 직선적이면서 볼륨감이 적은 디자인이었던 것에서 크게 바뀌어 나온 것이었다.
2009년에 나온 4세대 W212 모델의 차체 디자인이 다소 평면적이고 볼륨이 적어 빈약해 보였던 터라 2017년에 등장한 5세대 모델의 볼륨감 있는 차체는 퍽이나 다행스럽게 어필 됐었다.
그렇지만 E클래스와 C 클래스가 서로 너무 닮아 있어서 한 눈에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신형 E 클래스의 C-필러가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매우 가늘게 보이기도 해서, 벤츠의 중형 승용차로서의 존재감을 심어주지 못했었다.
이번 페이스 리프트 이전의 5세대 E-클래스는 전장 4,925mm와 전폭 1,850mm, 전고 1,450mm에 휠 베이스 2,940mm로, 적은 크기가 아니었지만, 더 작은 C클래스와 헷갈리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곡면을 가진 차체는 길이를 중심으로 하는 치수에서 약간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치수보다 짧아 보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페이스 리프트 모델의 치수는 기존의 치수에서 크게 변경되지 않는 것이 통례이므로 기본적인 스펙은 거의 동일할 것이다.
E클래스 페이스 리프트 디자인은 리프레시(refresh)의 의미가 큰데, 이는 그만큼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감각이 달라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메이커 내부의 디자인 콘셉트 전략의 변화도 보여준다.
페이스 리프트 된 E클래스의 앞모습은 변화를 가장 명확히 보여준다. 바뀌기 전의 앞 모습은 라디에이터 그릴이 위가 넓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역 사다리꼴 형태였지만, 페이스 리프트 모델은 위쪽을 약간 좁혀서 마치 육각형처럼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헤드램프의 형태도 바뀌었는데, 전체 램프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안쪽으로 오면서 좁아지는 형태가 됐다.
그런데 이렇게 안쪽으로 오면서 좁아지는 형태는 테일램프에서도 동일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의 테일 램프의 형태 비례가 가로 세로의 비율이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것이었던 데에 비해 페이스 리프트 된 모습은 슬림 한 이미지이다. 그리고 트렁크 리드에까지도 연결된 램프 렌즈가 적용돼 있다.
물론 이전의 테일 램프 디자인은 상급의 S클래스와 같은 것이었지만, 이는 아래 급의 C클래스에도 적용된 것이어서 전체적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는 유지할 수 있었지만, 차종 별로 구분되는 이미지를 가지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바뀌어서 E클래스의 구분은 확연하게 됐지만, 내년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S클래스의 풀 모델 체인지 모델이 다시 슬림형 테일 램프로 나온다면 다시 차별화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디자인 아이덴티티 문제는 정답이 없는 것이기는 하다. 브랜드 중심으로 가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전략은 필연적으로 차종 간의 구분은 모호해 질 개연성을 가지게 되지만, 이전의 벤츠 모델들을 보면 브랜드 전체적인 통일성을 가지는 듯 하면서도 각 클래스 별로 확연히 구분되는 시기가 있었다.
가령 1990년대의 벤츠는 S, E, C클래스가 혼동될 일이 절대 없는 디자인이면서 오히려 S클래스는 존재감과 첨단의 기술을 암시하는 디자인을 보여줬었고, E클래스는 개성 있으면서 젊은 엘리트를 상징하는 둥근 헤드 램프를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디자인이었다.
그야말로 각 클래스 별로 전형적인 벤츠의 모습들이었다. 그렇게 클래스 별로 상당히 다른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산만함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각각의 클래스의 소비자들의 성향에 따른 적절한 변화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벤츠는 물론 차량의 유형이 완전히 다른 경우, 예를 들어 SUV와 2도어 쿠페 등에서는 어느 정도의 차이점을 보여주지만, 상당히 유사한 인상이다.
S, E, C 등으로 구분되는 세단들은 약간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같은 디자인에서 대, 중, 소 정도의 구분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디테일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지는 못한다.
앞으로 시간이 다시 지나서 지금 모델들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질 때가 되면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 등장했던 각 클래스 별 개성을 한껏 강조했던 벤츠의 디자인과 같은 개성적 디자인의 부흥을 보게 되기를 바래 본다.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획일성(劃一性, uniformity)보다는 통일성(統一性, unity)가 필요하다. 즉 다양성 속에 은연중에 나타나는 통일성(unity in variety)이 바로 진정한 브랜드 중심의 통일성을 가진 아이덴티티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