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구속사 강해
언약의 표징으로서의 할례
사라의 몸종이던 하갈이 아브라함의 첩으로 이스마엘을 잉태하고 그 주인인 사라를 멸시한 사건은, 결국 사라의 학대를 이기지 못한 하갈이 아브라함의 집을 떠남으로서 사라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 이 싸움의 발단은, 아브라함에게서 아들이 태어나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의 성취로 생각한 사라가 자기는 아들을 잉태할 수 없음을 알고 대신 하갈에게서 아들을 얻고자 한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라는 언약이 성취될 것을 바라보고 조급하게 그 증표를 구한 것이지만, 이를 기화로 아브라함의 첩이 된 하갈은 인간적인 우월감에 빠져 사라를 멸시한 것이다. 이에 아브라함은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열망이나 계획에 따라 세워질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하갈의 지위를 박탈하고 사라의 몸종으로 귀속시켰던 것이다(창 16:6).
이 사건을 통하여 사라가 생각한 인간적인 방법으로 태어난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유업을 받을 수 없음이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아브라함과 사라 역시 이 사실을 깨닫고 언약의 성취로서 태어날 아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결정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사라는 아들을 잉태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어떤 신비한 방법으로 아들을 주실는지 알 수 없었고, 아브라함 역시 사라에게서 자손을 얻을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하여 인정하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방법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와 같이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들만을 기다리며 13여 년이 흘러가게 되었다.
1. 하나님의 약속과 할례 제도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가 되어 아들을 생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확실해질 즈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창 17:1-2)고 선언하셨다. 여기에 계시된 ‘전능한 하나님’(ידשׁ לא)이라는 성호는 매우 의미심장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이 ‘엘 샤다이’(ידשׁ לא)란 성호는 구약에서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온 우주의 지배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계시하신 후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절)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마치 명령형으로 보이지만 히브리어가 가지고 있는 매우 독특한 표현으로서, ‘네 스스로 네 자신을 완전하게 가꾸어 나가거라’는 강력한 권유형이다. 즉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 앞에 있는 아브라함이 조금도 굴하지 않고 모든 계획을 완전하게 성취해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배려가 담겨있는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친히 이루실 것이라는 의지를 표현하신 것이고, 따라서 아브라함은 조금도 모자람 없이 자기가 이루어야 할 계획을 완수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최대의 관심이었던 아들을 얻는 일이 성취될 때가 이르렀음을 하나님은 계시해 주신 것이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자기가 이루고자 하였던 모든 계획을 성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아브라함의 계획이 성취될 것을 확약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고 하심으로서 아브라함에게 후손이 태어나야 할 것을 새롭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창 17:3-8).
이 언약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언약들의 총결산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매우 특이하게 나타나는 것은 그동안 아브라함이 그렇게 기다렸던 아브라함의 후손이 마치 현장에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언약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언약을 성취할 것이라는 표시로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신다. 따라서 이 할례는 하나님께서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8)는 약속의 성취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할례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언약이 완성될 것을 상징하는 하나님 편에서의 증표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아브라함이 할례에 참여한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아브라함에게서 태어날 후손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소망하는 신앙의 표시이다.
2. 할례 제도를 세우신 하나님의 본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신 본의를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다 깨달은 것은 아니다. 처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는(창 12:1-3), 그 당시의 시대적 정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시기 원하신다는 역사적 요청으로 받아들였다. 그 인식을 바탕으로 아브라함은 알지 못하는 땅을 향하여 길을 떠날 수 있었다.
가나안에 들어온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땅을 유업으로 주실 것이라는 확약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아내 사라를 바로에게 빼앗길 뻔한 사건, 조카 롯이 소돔을 선택하여 아브라함에게서 분리된 사건, 멜기세덱의 축복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한 사건 등을 통하여 점차 가나안으로 자기를 인도하신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언약의 본의가 무엇인가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또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은 자기의 몸에서 날 아들, 곧 아브라함의 씨(후사)를 통하여 그 언약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매우 구체적인 약속을 접하게 된다. 그 내용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 내려가 사백 년 동안 살다가 돌아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이후부터는 그 후손의 탄생에 대하여 관점이 모아지기 시작한다. 그 결과 나타난 사건이,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와 그녀의 몸종인 하갈과의 사이에 아브라함의 아들을 생산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이 사건이 있고 13년이 지난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다시 찾아오신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신 내용이 “너와 네 후손(씨)에게” 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는 것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이 언약을 하나님께서 성취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자기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신실하심을 충분히 보아왔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이루실 것을 선언하고 언약에 참여된 백성의 표지로서 모든 아브라함의 식구들이 할례를 받도록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할례를 제정하게 된 경위이다. 이때부터 할례를 동반한 이 약속 곧,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8)는 언약은,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되새기게 하는 매우 특징적인 언약의 예표가 되었다.
3. 언약의 성취를 예표하는 할례 제도
아브라함과 맺은 이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매우 중시하는 것은 그 ‘후손’이었다. 이미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한 아들을 낳게 할 것이며, 그 아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언약을 유업으로 받는 그 후손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심으로서(창 17:19) 그동안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을 후손의 자리에 대한 싸움이 최종 마무리된다.
하나님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창 17:21)고 하심으로서, 하나님이 직접 이삭과 새롭게 언약식을 체결하겠다고 선언하신다. 이 약속대로 1년 뒤에 이삭이 출생하였고, 태어난 지 8일 만에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할례를 행하였다(창 21:4). 그러므로 이삭이 태어나고 할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친히 언약을 성취해 나가시는 분이심을 역사 속에서 증거한 사건이다.
이런 점에서 이삭이 할례를 받은 것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아브라함의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큰 민족이 되게 하고, 그에게서 열왕이 나올 것이며,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라는 예표였다. 따라서 이 약속의 성취 여부는 그것을 성취할 ‘후손’의 출생에 달려 있었다. 사실상 그 약속은 이삭이 출생함으로서 성취된 것이다.
반면에 이삭의 할례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할 유일한 후손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 언약을 이루실 것이라는 주권적 의지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이삭의 할례는 ①아브라함 언약의 계승자로서 유일한 ‘후손’임을 증거하며 ②이삭을 통해 언약을 필히 성취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며, ③하나님은 육신의 자녀가 아닌 영적인 자녀인 이삭의 하나님이심을 상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