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본투표를 앞두고 대한민국은 대단한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이 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한 내란세력을 척결하고 내란동조세력의 힘을 제거해서 나라를 정상 궤도로 되돌릴 것이냐 아니면 붕괴된 나라를 이어갈 것인가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는 말입니다. 나라의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은 국회나 사법부 그리고 언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나라 사법부는 그 최윗선부터 정치에 간여하고 대통령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선택하려 한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비상계엄을 일으켜 파면당한 내란수괴 피고인을 아주 편하게 석방시켜 그 내란수괴 피고인은 지금도 한강공원에 맛집에 가고싶은데 다 가고 지인들에게 수시로 연락해 지령을 내리는 상황입니다. 내란수괴 피고인은 공공연하게 대중집회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내리고 있는 정말 세계역사상 유래가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모두 재판부의 판단에 의해 이뤄진 것임은 명확합니다. 그러니 무슨 권력에 대한 견제가 이뤄지겠습니까.
유일하게 지금 국회 다수를 차지하는 더불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있어 아직 나라가 이 정도로 유지한다고 보입니다. 감시기능을 최대과제 그리고 존재가치로 삼아야 할 언론들은 개껌에 만족하고 개껌먹는 재미에 빠져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인인 국민을 향해 짖거나 주인인 국민을 물어죽일 태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이 일시적으로 권력을 맡긴 바지 사장에게 세뇌당하고 그들에게 충성하며 자신의 영원한 주인인 국민을 철저히 외면하는 모습입니다.
개들과 언론의 함수관계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오래전 손석희 앵커가 언급한 언론과 개의 함수관계가 인구에 회자됩니다. "언론은 언론학자들 사이에서 흔히 개에 비유되곤 한다. 그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워치독(watch dog)과 랩독(lap dog)이다. 워치독은 감시견을 의미한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언론의 역할이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반면 랩독은 말 그대로 무릎위의 개로 권력의 애완견 같은 언론을 뜻한다. 주인의 무릎위에 올라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달콤한 간식을 받아먹는 그 안락함에 취해버린 언론을 말한다. 랩독은 결코 권력구조에 비판적일 수가 없다. 다만 거기에 동화되고 기생할 뿐이다."
개들은 오래전 늑대로부터 진화되어 왔습니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인간의 거주지 근처에 배회하는 늑대가운데 성질이 상대적으로 유순하거나 인간이 주는 음식을 즐기는 그런 부류의 늑대를 데려다 키운 것이 바로 지금의 개아닙니까. 그래서 인간들은 개들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게 하기위해 길을 들입니다. 먹이를 이용해 주인에게 충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개들이 집에서 달아나지 않도록 하기위해 분리불안이라는 공포를 심어줍니다. 집을 나가면 그야말로 개고생한다는 개념을 심어주는 것이죠. 그러면 개들은 일시적으로 집을 나가도 곧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길들여진 개들은 주인 섬기를 하늘처럼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지키라고 둔 개들 즉 언론인들은 그렇게 하면 당연히 안됩니다. 물론 주인을 섬기고 주인의 명에 따르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제대로 된 개가 되는 것입니다. 주인은 바로 국민입니다. 국민들이 일상생활에 바빠서 자신들이 임시로 위탁한 바지 사장 권력을 감시할 여유가 없으니 언론이란 조직을 만든 것입니다. 그 언론조직이 뽑아서 운영하는 것이 바로 언론인 그러니까 기자들입니다. 그 기자들의 주인은 언론조직이 아닙니다. 물론 월급은 그 언론조직으로부터 받지만 그 언론조직이 생존가능한 것은 그런 언론 매체를 구독하는 독자와 그런 방송을 보고 듣는 시청자들입니다. 독자들이 돈을 내고 시청자들이 수신료를 내니까 방송기자 신문기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론인들은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들에게 유익한 정보와 권력을 감시하라고 준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기자들은 자신을 고용해준 그 언론조직이 자신들의 주인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주인인 국민이 아니라 그 대행을 하고 있는 언론사 사주나 사장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제대로 된 정보와 권력 감시기능을 원하지만 특정 언론사에 매어있는 기자들은 그 매체의 사주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작성하고 사주나 사장의 입맛에 맞게 세상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국민들은 실망하고 낙담하고 그래서 그들을 기자쓰레기 즉 기레기라로 부르는 것입니다.
기자들은 권력자의 무릎에 앉아 그가 던져주는 개껌에 만족해서는 정말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완견 내지 권력의 나팔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진보정권때는 진보정권 입맛에 맞는 보도에 충실하다가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태도를 180도 바꿔 보수적 색채의 보도로 일관하는 것이 지금 이 한국 언론의 현주소입니다. 비록 개껌이 부족하고 배가 고파도 호랑이가 풀을 뜯어 먹지 않듯 스스로 판단하고 의무로 느끼는 워치독 즉 감시견 기능을 수행해야 합니다. 개껌 먹는 맛에 심취해서 감시견 기능을 하지 못하면 그것은 그야말로 애완견에 불과합니다. 실질적 주인인 국민을 향해 마구 짖거나 물어뜯으려고 발버둥치는 무식하고 뇌의 기능을 상실한 개들처럼 말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언론사와 기자들이 몇이나 될까요. 사법부 욕할 것도 없습니다. 판사중에 룸사롱에서 유흥접대 의혹을 받는 것이나 일시적 주인이 던져주는 개껌에 심취해 세상 돌아가는 것에 침묵하는 개들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개돼지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개돼지들도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습니다. 개들도 한때 늑대시절 야성을 잃지않고 생존했고 지금도 야생에서 늑대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돼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멧돼지들은 지금도 야생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생존전략을 세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시적 주인이 주는 개껌이나 사료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개돼지와는 달라도 매우 다르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나라 대한민국은 매우 힘든 상황속에 놓여 있습니다. 국민들 대다수가 하루 하루 힘든 상황속에 버거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라를 맡겼더니 말도 안되는 비상계엄이라는 것을 터뜨리지 않나, 국민들이 뽑은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리지 않나, 그런 내란세력들을 아주 요상한 논리로 석방시키지 않나, 그런 내란세력에 동조해 상식과 정의를 땅에 무참히 버리고 뭉개지 않나, 제대로 자신의 역할과 의무 그리고 책무를 행하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된 것이 한국의 현주소입니다. 그런 상황을 지적하고 문제점을 보도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어 제시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 사명이자 존재의 의미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 제대로 그런 의무와 사명을 수행하는 언론들이 몇이나 됩니까. 참으로 통탄스럽고 개탄스럽습니다.언론이 내세우는 기계적 중립은 그야말로 기레기들의 자기변명 내지는 권력에 아부하기 위한 편법입니다. 음주운전 차량 가해자와 큰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공평한 기계적 중립이라며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셈입니다. 내란세력과 그들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보는 국민들을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것이 그 말도 안되는 기계적 중립입니다. 양비론 양시론을 내세워 교묘하게 여론을 조장하는 것이 기레기들의 특기입니다. 댓글 공작 세력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한술 더 뜨는 조직이 바로 인터넷 포털입니다. 인터넷 포털을 언론이라고 칭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기능을 일부 담당합니다. 기레기들이 마구 써갈기는 것들을 인터넷 포털들이 중요뉴스로 다루고 진작 중차대한 뉴스는 메인기사에 올리지도 않거나 잠시 올렸다 아래로 처박아버리는 처사를 일삼고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를 지켜야 할 감시견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싸구려 개껌에 현혹돼 세상의 부조리와 문제를 눈감고 있는 것 아닙니까. 자신들의 주인들은 힘들고 피곤하고 하루하루 견디기가 버거운데 감시견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냥 개껌 먹고 자면 다행이지만 주인을 물려고 혈안이 되어 있거나 주인의 생명을 노리는 짓거리를 하는 것 아닙니까.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토사구팽이 있지만 이번 대선이후 이 나라의 언론 개들은 상당수 팽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언론개혁이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정말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언론개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절실합니다. 국민들 즉 이나라 주인들이 권리를 주장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인으로 대접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키우는 개들에게 주인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 투표장에 나가길 앙망합니다. 그런 권리를 행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개돼지 신세가 될 수 있습니다. 개돼지는 자신이 자초한 면이 많습니다. 스스로 개껌과 사료먹는 것에 충실하면 개돼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번 대선은 국민 스스로 개돼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대단한 국민적 행사가 될 것입니다. 주인의 자리를 확인하고 그런 권리를 만끽하는 그런 대선 투표가 되길 바랍니다. 투표장에 나가야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25년 6월 1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