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15가지 성품 (4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https://youtu.be/bRgHtSv2Aw4?si=zUgEdLVn7Q_Rilcw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15가지 성품 (4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말 씀: 고린도전서13:4~7
부 르 심:요한일서 3:18~19
교 독 문:85번, 요한일서 4장
찬 송:23(23), 430(456),563(411)
기 도:1)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이루게 하옵소서
2)예수님의 사랑하심의 은혜를 받게 하옵소서
3)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주는 것이 복이 되게 하옵소서
4)하나님의 사랑으로 두려움을 물리쳐 주옵소서
5)예수한국 복음통일, 반국가세력 척결, 성령충만, 회개의 부흥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장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15가지 성품 중 일곱 번째는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입니다.
1.사랑은 오래참고
2.사랑은 온유하며
3.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4.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5.교만하지 아니하며
6.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7.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8.성내지 아니하며
9.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10.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11.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2.모든 것을 참으며
13.모든 것을 믿으며
14.모든 것을 바라며
15.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란
원어적인 뜻은 “자기 자신을 추구하지 않는다”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주의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끓임없이 애쓰고 추구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입니다.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15가지 품성 중
일곱 번째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의 말씀으로
그 중에 제일의 사랑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사랑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긴다.
1> 사랑의 계명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립보서2:3)”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르치심의 계명은
첫 번째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십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
이 두 계명 외에 “자기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없는 것입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의 깊은 뜻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씀이 되어야겠습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품성을 가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 나의 모습은 자기를 돋보이게 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오히려 남을 업신여깁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서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김으로
전도하는 감동이 있게 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2>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사랑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 세상의 소금과빛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산상설교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2>-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먼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사랑의 실천으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가르치심에 세상의 소금의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태복음5:13)“
소금은 물에 녹아야 맛을 냅니다.
소금은 모양 그대로 있으면 맛을 낼 수 없습니다.
소금이 모양 그대로 있는 것은 아무 맛을 낼 수 없는 자기의 모양을 나타냅니다.
자기 모양 그대로 있지 않고 자기 모양이 물에 녹을 때 비로서 맛이 납니다.
소금이 자기의 모양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뻣뻣한 배추를 물에 녹아 절이면 맛있는 김치가 될 수 있습니다.
소금은 물에 녹아 또한 방부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소금은 썩어질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이 부패한 사회를 막고 방부제 역할을 하여
남을 낫게 여기는 사랑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5:14)“
예수께서 나보다 낫게 여기는 사랑으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6일간의 창조에서 첫날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빛으로 세상에 비추는 것은
우리의 옳은 행실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5:16)”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사랑으로 세상의 빛이 됩시다.
빛의 자녀로 빛을 발하다가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겠습니다.
하늘의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요한계시록19:7~8)”
2.자기를 위한 바리새인의 기도와 회개하는 세리의 기도
: 누가복음18:9~14
잘못된 기도에는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이기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자는 이기적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자의 기도에는 남을 멸시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에는 율법만 있고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자의 기도에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있습니다.
1>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바리새인의 기도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누가복음18:11~12)”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에게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자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란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입니다.
바리새인은 자기를 의롭다 하여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성숙한 기도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기도로 중보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는 성품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기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도가 됩시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가 없습니다.
주기도문에는 “내가” 아닌 “우리”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불쌍히 여겨달라고 회개하는 세리의 기도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습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누가복음18:13)”
세리의 기도는 서서 따로 기도하는 것이 없습니다.
바리새인은 남들이 보는데 서서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여 경건의 모양을 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세리는 자기를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바래새인의 기도는 자신이 얼마나 영적으로 결핍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신의 기도에 대단히 만족합니다.
자신을 의롭다 여기므로 회개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가 없었습니다.
세리의 기도는 진정으로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기도였습니다.
속에서 나오는 기도의 특징은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의 유익을 구하여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사람을 멸시하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세리의 기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합니다.
자기의 유익보다 자기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회개하는 기도가 되어
가슴을 치며 부르짖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는 고백으로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18:14)”
3.부자 청년 기업가와 부자 세리장 삭개오
1> 이름 없는 부자와 이름 있는 부자
부자들이라고 다 지옥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들 중에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여 사랑이 없는 부자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변화된 모습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부자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부자 청년 기업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는
성품을 가지게 된 삭개오 이야기가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부자의 이름이 있는 부자가 있고 부자의 이름이 없는 부자가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부자들을 부자 청년, 한 부자라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치않은 구원하심이 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계21:27)”
2>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큰 부자 청년 (누가복음18:18~30)
어떤 큰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18:18)”
예수님은 큰 부자 청년의 질문에
십계명의 제 5계명부터 제9계명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눅18:20)”
예수님은 제 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의도적 빠뜨리시고 청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부자 청년 기업가는 자신있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청년이 한 가지 부족한 제 십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눅18:22)”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큰 부자 청년이라면
예수께서 청년의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나를 좇으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자기의 것을 버리고 좇은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큰 부자 청년에게 13번째 예수님의 제자가 될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입니다.
그러나 큰 부자 청년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재물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 심히 근심하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눅18:23)”
큰 부자 청년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를 할 수 없었습니다.
“나를 좇으라”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기회를 주어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탐심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가지 부족한 것이라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라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합니다.
3> 주는 것이 복이 있는 부자 삭개오(누가복음19:1~10)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거기를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부자였습니다.
세리장이 삭개오가 부자가 된 것은 불의하여 토색으로 부자가 된 것입니다.
토색이란 돈이나 물건 따위를 억지로 달라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하였습니다.
삭개오는 부자이지만 불의함으로 재물을 모았기 때문에 언제나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겉으로는 부자인데 그 마음은 사막 같고 공허하였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자 하였으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기어이 예수님을 보고자 하여 두리번 거리니 뽕나무가 보였습니다.
삭개오는 달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예수께서 지나가게 되시어 뽕나무에 이르러 멈추시더니
우러러 보시고 삭개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누가복음19:5)”
예수께서 큰 부자 청년에게 영생하는 방법으로
한 가지 부족한 것을 가르쳐 줘도 변화가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자 삭개오는 예수님의 말씀에 즉시 긍정적으로 반응하였습니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된 성품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의 자기의 유익을 구하던 욕심을 버렸습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합니다.
삭개오가 주는 것이 복이 되는 말을 예수님에게 말하였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하는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누가복음19:8)”
큰 부자 청년 기업가는 자기의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자 삭개오는 자기의 모든 부족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 채울 수 있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습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사도행전20:35)”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품성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의 말씀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https://blog.naver.com/sano153/224151200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