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4일(토)
* 시작 기도
(창 4:4-5)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주님...
첫 사람 아담과 같이 그의 아들 가인도 또 하나의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이는 자기가 드린 제물은 반드시 하나님이 받으셔야만 한다는 자기 義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자 그는 심히 분을 내며 하나님이 제물을 받으신 동생 곧 아벨을 쳐죽였습니다.
내 안에 이런 죄성 곧 자기 의로 똘똘 뭉쳐 있는 모습을 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죄인 중에 괴수인 이 종을 은혜로 덮어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이 하루도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1:29-42
제목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되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 나의 묵상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세례를 베푼 요한은 다음 날 예수께서 자기에게로 나아오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보아라, 세상의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내가 예전에 말했던 것처럼 내 뒤에 한 사람이 오실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보다 위대하신 이유는 그분이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 바로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나도 그분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지만 내가 물로 세례를 준 이유는 곧 그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의 위에 머무는 것을 요한이 보고 증언하였다.
실은 요한 자신도 그분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자기를 보내서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하나님이 명하셨다.
그 하나님께서 성령이 내려와서 누구의 머리 위에 머무는 것을 보면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라는 것을 알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자기도 그것을 보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다음 날이 되었다.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는데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그러자 두 제자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은 돌아보시면서 따라오는 그 두 사람을 향하여 ‘너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셨다.
그들은 선생님의 사시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와서 보아라, 하고 말씀하시자 그 두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 갔다.
그들은 예수님이 거처하시는 곳을 보았고 그 날 예수님과 함께 그곳에 거하였는데 그 시각이 오후 4시쯤이었다.
요한의 제자였던 그들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그 둘 중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였다.
안드레가 먼저 자기 형인 시몬을 찾아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이야기를 하고 시몬을 데리고 예수님께 오자 예수님이 그를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이제부터 너를 게바라고 부르겠다’라고 하셨다.
게바는 아람어이며 헬라어로는 베드로라 하고 이는 반석이란 뜻이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그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계시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요한이 물로 세례를 줄 때 하늘로부터 비둘기 같은 성령이 누군가의 머리 위에 머무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을 알라고 하셨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자 비둘기 같은 성령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하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처럼 요한은 창세전부터 말씀(로고스)으로 존재하시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소리(헬, 포네)로서의 사명에 충실하였다.
사람들에게 인기와 명성도 충분히 얻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얼마든지 그리스도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가 되려하지도 않았고 오직 그를 증거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낮아질 뿐이었다.
또한 안드레를 비롯한 요한의 여러 제자가 있었다.
하지만 두 제자와 함께 있을 때 예수님이 그 앞을 지나가시자 그들에게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두 제자는 요한을 떠나 예수님을 따라갔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에 대하여 불만을 표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이뿐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으며 예수님을 좇아간다는 제자의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한다.
하늘에서 주시지 않았다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가 없다.
이제 나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단지 그분 앞에 보냄을 받은 자라는 것을 너희들이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신부를 취하는 이는 신랑이지만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자는 신부의 친구이다.
나는 이 친구가 누리는 기쁨으로 충분하다고 하였다.
거기에다 예수님은 흥해야 하실 분이며 자신은 쇠하여야 할 자라고 한다(요 3:26-30).
왜냐하면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를 그는 알기 때문이다
(요 3: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신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요한도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에 따라 물로 세례를 줌으로써 누가 그리스도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땅에서 하늘로, 아래에서 위로 향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소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자이다.
나도 역시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자였다.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녔지만 내가 아는 예수는 창세전부터 말씀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단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고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알라딘의 램프 속에 사는 요정 지니에 지나지 않았다.
요한의 고백처럼 예수님은 위로부터 오시고 하늘로부터 오셔서 만물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런데 나는 땅에서 난 자 되어 땅에 속하였을 뿐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을 말하였으니 만물 위에 계신 아들을 자꾸만 만물 안에 가두어 두려는 우를 범하였던 것이다.
사도 요한의 공동체는 태초부터 계시는 생명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보았고 귀로 듣는 것처럼 들었으며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히 믿었다
이 생명 곧 생명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을 때 요한의 공동체는 그 생명을 직접 보고 증언 곧 견증(見證)하여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그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는 창세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사람으로 오신 분이다.
그 공동체가 보고 들은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그들과 함께 교제와 사귐을 갖기 위함인데 이 교제와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것이다.
이 안에 하늘의 기쁨이 충만하다.
(요일 1: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만물 위에 계신 생명의 말씀을 아는 자들은 하늘의 기쁨(Joy)으로 충만하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을 알지 못하면서 이를 만물 안에 가두고 자신의 입맛대로 골라먹으려는 이들은 땅의 즐거움(fun)으로 만족할 뿐이다.
나는 이처럼 하늘의 기쁨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자였다.
이런 하늘의 기쁨을 모르기에 나에게 주신 직분 곧 목사와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나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무화과잎으로 사용하였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그로 인하여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무덤의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모른다.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만으로도 기쁨이 충만하였으나 나는 나 스스로 그리스도라는 자리를 꿰차려 하였다.
모든 것의 중심이 내가 되어야 했고 나 중심으로 돌아가야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평안도 기쁨도 아니었다.
잠시는 만족을 줄지 모르지만 이내 목이 마르고 마는 단층의 목마름이었다.
내가 처한 광야라는 무덤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곧 내게서 없어져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나에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여기서 깊은 층의 목마름으로, 영생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말씀을 나의 양식으로 삼는다.
상황해결을 위함이 아니라 더 깊은 주님과의 교제를 위함이다.
거기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하늘의 기쁨이 있음을 알기에 당장 주는 단층의 목마름의 해갈이 아니라 오늘도 오직 위로만 열려 있는 이 광야에서 만물 위에 계신 우리 주님을 만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영혼을 붙드소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서 내가 그리스도가 되려 했던 죄인 중에 괴수가 여기 있습니다.
이런 나의 의를 깨트려주시고 내 안에 오직 주님의 겸손함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했던 그 겸손과 가난한 마음을 주옵소서.
광야에서 우리 주님 오실 길을 곧게 예비하는 자요 말씀을 증거하는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의 기쁨으로 충분합니다.
나를 사용하소서.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 있는 주의 자녀들과 가족들을 붙드시고 날마다 땅에서 살지라도 하늘의 소망을 잃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쁨을 충분히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