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는 네팔 단기 선교에 필요한 물품을 사고,
저녁에는 연주팀들과 식사 교제를 하였습니다.
동역자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선교팀들이 모여 기도하고 준비합니다.
하나씩 잘 준비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오늘 예진이가 옵니다.
일주일을 대구에서 지낼 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예수님을 더 잘 아는 즐거움이 이 어린 영혼에게 가득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나의 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으며
주님의 보혈을 의지합니다.
달고 오묘한 생명의 말씀을 오늘도 먹고 마심으로 은혜 충만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본문 주해)
29~30절 : “다음 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한 분이 오실 터인데, 그분은 나보다 먼저 계시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입니다'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분을 두고 한 말입니다.”(새번역)
요한이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증거한다.
그리스도는 유월절 양이며, 그리스도는 죄를 짊어지고 없애주는 어린양이다. 이는 출애굽의 유월절 어린양(출12:13)과 이사야가 예언한 죽임당한 어린양(사53:7)을 반영한다.
31~34절 : 요한 자신이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일은 그를 이스라엘에 알리려고 한 일이라고 한다.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게 한 분(하나님)이 자기에게 알려주시기를 물로 세례를 베풀다가 누구든지 그 위에 성령이 임함을 보면 그가 성령으로 세례 줄 분임을 알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풀고 있을 때 아무에게도 성령이 임하지 않았는데 오직 예수님이 물로 세례를 받을 때만 성령이 비둘기 형태로 임하면서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린 것이다.
이 내용은 모든 공관복음에 다 기록하고 있다.(마3:16~17, 막1:9~11, 눅3:21~22)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이 사실을 보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한다.
35~39절 :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니, 이 말을 듣고 세례 요한의 두 제자(안드레, 요한)가 예수님을 따라간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묻자, 그들은 대답으로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묻고, 예수님은 또 ‘와서 보라’ 대답하심으로, 이상한 대화를 이어간다.
예수님의 질문은 ‘너희가 나에게 구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나를 따르느냐?’ 하신 것이다.
그리고 두 제자의 대답이 단지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를 물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말씀으로 들었기에 와서 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거처를 묻는 질문, 그리고 ‘와서 보라’ 하신 예수님의 대답은 깊은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이 거하시는 곳이야말로 모든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아들의 거처, 곧 ‘아들이 있는 곳’은 ‘아버지 집’이다. 영생 얻은 자는 이곳에서 아들과 함께 있어 아버지가 독생자에게 주신 영광을 본다.
두 제자가 예수님이 계신 데를 갔고 그날 함께 거하니 열 시쯤 되었다.
40~42절 : 두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시간은 하루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안드레는 확고한 마음으로 육신의 형인 베드로에게 ‘메시아를 만났다’라고 하였다. 이는 스승이었던 세례 요한의 확실한 증거-‘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그가 있는 곳에 거한 후 더욱 확실한 증인이 된 것이다.(그러나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갔다.)
안드레가 데리고 온 시몬(베드로)을 보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 앞으로는 너를 게바라고 부르겠다.”
본문의 ‘장차’를 두고, 지금은 보잘것없는 시몬이지만 나중에 반석 같은 자가 될 것을 생각하여 나중에는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란 말이 아니고, ‘지금부터’ 베드로(반석)라고 부르겠다는 말씀이다.
(나의 묵상)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알아 보지 못했다.
태어나서 결혼하기까지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월을 살았고, 결혼과 동시에 ‘할 수 없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새 가정의 평화로운 출발을 위해 내가 한 결심이었고, 또 무엇이든 종교를 가지면 나쁠 것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보이지도 않았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그때쯤 나의 생각을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내 죄를 대신해서 예수께서 돌아가신 것은 고맙고 감사한 일은 분명한데, 이제는 그만 복이나 많이 부어주시지’ 였다. 사실이 그러했지만 온갖 위선을 떨며 믿음 좋은 척 했다. 물론 종교적 열심으로 뜨겁게 기도하며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나의 탐욕을 이루고자 흘린 애절한 눈물이었을 뿐이었다.
교회는 다녔지만 언제나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생각하고 행했던 자가 어느 날 ‘딱’ 주님의 손에 붙잡히고 만다. 내가 바라고 원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복음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시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눈이 떠졌다.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게 되었다.
더구나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니 모든 성경이 이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한 증거뿐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하찮고도 하찮은 존재인 나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그래서 결국 주님의 거처로 만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나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십자가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나타나 보이심의 사건이 믿어진다.
이제 예수님께서 안드레와 요한에게 질문하신 것처럼 내게도 질문하신다.
“문부원, 무엇을 구하느냐?”
“주님,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기를 구합니다.”
와....! 이것저것 구할 것이 그렇게 많더니......
물론 지금도 살아가면서 불쑥불쑥 솟아나는 땅의 것에 대한 탐심이 없지 않으나, 그때마다 십자가에 그 탐심을 못 박게 하시니 참으로 은혜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 가서는 당연하겠지만,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이 땅에서도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기를 소원하는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리게 된다.
나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도록, 십자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오늘도 찬양한다.
(묵상 기도)
주님,
안드레와 요한과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네요.
저도 만나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날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만을 봅니다.
성경이 온통 예수님만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계신 곳에 함께 머무르게 하시고
제 안에 오셔서 머무시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