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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자유롭게 글쓰기 아니! 아무리 수양대군(세조)가 나쁘다고 해도 그렇지, 이런 빌어먹을!ㅡㅡ;
계림공과 수양대군 추천 0 조회 351 13.12.15 14:34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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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2.15 21:14

    첫댓글 그래도 정치는 잘한 편이라고 봅니다. 세종의 치세를 이어간 수준이니.

  • 13.12.16 01:16

    과연 그럴까요. 세종의 통치 철학과 세조의 그것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만.

  • 13.12.16 15:03

    어린단종이 왕을해서 정치가 혼란해지는것보단 세조가 나을거 같습니다

  • 13.12.16 20:14

    그러면 성종은 어떻게 보시는지? 성종은 13세에 즉위했지만 그것 때문에 정치적인 혼란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단종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은 왕 한 명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구조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단종실록은 세조 대에 집권층의 시각에서 기록된 것이기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왕이 어리기 때문에 정치가 혼란했다는 것은 명분 없이 순전히 권력욕 때문에 정변을 일으킨 세조의 변명일 뿐입니다.

  • 13.12.16 16:04

    세조입장에서는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한 것이지만
    무리하게 충신들을 많이 죽이기는 했습니다.

  • 13.12.16 16:04

    히틀러는 자신도 유태인 피가있으면서 유태인들을 포함 수백만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간 인물입니다.

  • 13.12.18 11:05

    시대도 다르고 지역도 다른 정치가의 선악을 비교한다는 것은 별로 가능해 보이지도 않고 큰 의미도 없어 보입니다. 관점에 따라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절차적 정당성'의 관점에 의하면, 수양대군(세조)은 당시 조선에서의 왕위 계승을 위한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채 무력으로 집권한 셈이므로 나쁘다고 볼 수 있는 반면 히틀러는 당시 바이마르 헌법 하의 독일에서 집권하던 절차는 대개 '합법적' 이었으므로 비난의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조금 이상해 보일지라도 관점에 따라서는 이런 평가도 가능은 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비교는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 13.12.18 11:40

    게다가 정책(특히 경제정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세조는 히틀러에게 미치기가 어렵게 됩니다. 히틀러 본인이 경제전문가는 아니지만, 샤흐트(H. Schacht)라는 걸물에게 권한을 주어 거의 파산 수준의 독일을 빠르게 회복시킵니다. (물론 그 덕에 전쟁을 할 능력까지 갖추게 되는 부작용이 생기긴 합니다만...)

    그의 정책은 간단히 말하자면 일종의 관치를 중심으로 하는 '신중상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훗날 등장할 일본이나 우리나라 박통-전통 때의 관치금융, 정부 주도 경제성장은 다 샤흐트의 영향이라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보통 인플레나 디플레 하나만 잘 잡아도 정말 능력있는 경제학자라거나 경제정책가라는 소리 듣게 되

  • 13.12.18 12:00

    는데 샤흐트는 인플레와 디플레를 모두 잡고 상당한 경제성장까지 이끌어 '히틀러의 남자'라는 딱지를 떼고 생각하면 20세기 최고의 경제정책가(특히 중앙은행장)로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20년대에는 보통 인플레도 아니고 교과서에 나올 정도의 살인적인 초 인플레이션(최소 1억배 이상의 물가급등. 1$=330마르크 → 4조2천억마르크...)을 잡고, 30년대에는 관치금융과 수출지원과 수입통제, 사치품 수입 금지 등으로 실업감소와 경제성장을 추동합니다. 케인즈보다 먼저 케인지언 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했다는 소리까지 나왔지요.

    훗날 극악함의 대명사가 된 히틀러에게도 (2차대전 전에는) 이런 정책 성과가 있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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