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부처님의 몽환의 세계.

인간석가.-다카하시 신지   제 1 장 출가와 성도   14. 몽환의 세계   깨달음의 올바른 법칙을 찾아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파니샤드, 베다 안에서 이것을 찾아낼 수는 없다. 바라문이 생활의 수단으로 타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정법도 생활 속에 동화해 버리면 학자, 사로몬, 사마나 등의 지(知)가 가미되어 일반 중생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고타마는 세 살 때부터 바라문의 베다와 우파니샤드를 배웠다. 그 학문은 그런대로 체계는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체계는 어디까지나 지식이었지 살아 있는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더욱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가르치는 선생의 사생활이었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행동은 달랐다. 실생활을 떠난 구원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단(祭壇)을 만들고 바후라망이나 인드라를 모신다. 기도야말로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사제자(司祭者)를 통해야만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육체고행과 유행(遊行)에 몰두하고 있는 바라문들은 마음속에 집을 짓고 있는 온갖 업(業)과 실생활에 나타나는 인연과 인과(因果)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무관심하였다. 아포로키디 수바라(觀自在菩薩)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과 실천의 길밖에 없다는 것을 고타마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여러 가지 집착심이 고통과 마를 불러들이고 있음을 알았으며, 모든 생활 행위를 중도(中道)로서 바로잡고 있었다. 신불(神佛)의 빛을 바란다면 우선 마음의 구름을 벗겨야 한다, 반성의 첫 째 밤에 파피아스 마라(惡魔)가 미녀로 둔갑해 보인 것도 따져보면 고타마의 마음 한 구석에 아직도 정욕에 파문이 일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참선은 여러 가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 반가부좌(半跏趺坐), 혹은 꼬리뼈에 방석을 고이는 방법 등 피로하지 않는 방법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참선의 근본은 무엇보다도 먼저 반성에 있다. 반성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자신의 몸에 어울리는 편안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라고 단정지을 만한 편안한 자세는 원래 필요 없다. 다리가 긴 사람. 짧은 사람, 몸이 살찐 사람. 마른 사람, 여러 모양인데 이것을 한 가지 틀 속에 맞추려는 짓은 아무래도 무리다. 다리가 마비되어 저리기도 하고 숨이 가빠지기도 하여 참선 그 자체에 마음을 빼앗기기 쉽다. 참선의 형식은 주로 요가에서 건너와서 오늘날의 선종에 이어진 것 같다. 고타마는 오랫동안 참선을 가까이하고 있었으나 형식에는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있었다. 굳이 취한다면 반가부좌의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다. 참선 중에 개미나 벌레에 물리는 수가 더러 있었다. 이를테면 야외에서의 참선이기 때문에 이러한 독충(毒蟲)에 언제 물릴지 몰랐다. 물리기만 하면 피부가 부어올랐고 자칫 잘못하면 목숨까지 잃는 수도 있었다. 그래서 참선할 때는 약초에서 짜낸 즙액을 피부에 바르고 몸을 보호했다. 그런데 이 즙액이 아주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기분이 역겹다. 낮에는 탁발과 목욕을 하였으므로 참선은 대개 야간에 한정되어 있었다. 독충보다는 무서운 것이 독사(毒蛇)였다. 독사에 물려 희생된 수행자가 많았다. 고타마는 아직 그러한 변은 한번도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심은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큰 지렁이에서 뽑은 액체를 대나무 통 속에 늘 보관해 두고 있었다. 만일 독사에 물렸을 경우에는 그 독이 퍼지기 전에 물린 부위를 끈으로 묶고 상처를 지렁이 액체에 담가야 한다. 몇 분 지나면 독이 분해되고 목숨을 건질 수 있다. 독사는 주로 사암(砂岩)이 많은 바위산에 서식하는데 우루벨라의 수도장은 바위도 없고 땅도 비교적 건조하여 잡초가 적었기 때문에 독사에 대한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고타마는 다시 반성의 명상에 잠겼다. 20대의 상념과 행위에 대한 반성이었다. 이 연대에는 이웃 나라와의 싸움이 잦았다. 대군을 거느린 전면 전쟁이라기보다는 적정을 살피는 정찰적인 게릴라전이 많았으며 영토 문제의 시비 분쟁도 잦았다. 시비 분쟁이 먼 곳에서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카필라 성은 늘 긴장감에 쌓여 있었다. 무장한 무사들이 성 안팎을 지키고 있었으며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는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고타마는 자주 싸움터를 보러갔다. 무사들의 시체가 도처에 흩어져 있었으며 아군이건, 적군이건, 처참한 꼴이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장정들이 무참한 시체로 나둥그러져 있다. 목이 달아난 자. 팔이 없는 자. 가슴에 창이 꽂힌 채 서로 얽혀 숨이 끊어진 자. 처참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무장한 군인들의 행군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보기에도 힘이 솟고, 늠름하여 믿음직스럽다. 여자와 아이들은 군인들의 행군에 열광하여 무운과 승리의 만세를 불러댔다. 하지만 전쟁은 낭만은 아니다. 행군과 전쟁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달랐으며 싸움터에는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가 큰 입을 벌리고 있었다. 고타마는 카필라 성과 싸움터를 왕래하는 동안 전쟁의 모순과 어리석음을 뼈아프게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카필라 성의 식사당번이 스파이에게 독살당하거나 무사의 목이 잠자는 사이에 달아나는 사건들이 속출하고 있는 현실을 방관하고 있을 수만 없는 일이었다. 카필라 성내를 순찰할 때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차렷 자세로 맞이해주었으며 안내를 부탁하면 기꺼이 앞장섰다. 그들은 명령을 내리면 언제라도 싸움터로 달려 갔다. 죽음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지만 병사들은 싸우기 위해서 존재하는 목숨이었다. 명령과 군법이 그들의 생활을 묶어놓고 있었다. 병사들의 인생은 죽기 위한 것인가. 살기위한 것인가. 긴장과 방일(放逸)사이를 그들의 인생은 왕래하고 있는 것인가. 고타마는 병사들을 대할 때마다 인생의 어려움, 인생의 모순에 부닥쳐 마음이 어두워졌다. 긴장의 연속가운데서도 밤이 되면 곧잘 춤과 노래판이 벌어져 성이 들썩거렸다. 술판에는 여인들의 교성도 낭자했다. 이윽고 흥분과 정욕의 불길이 타올라 주정과 향락이 카필라의 밤을 물들였다. 물론 보초병은 금주였다. 근무가 끝날 때까지 그들에겐 자유가 없었다. 고타마는 술을 못한 탓에 술꾼들의 기분을 몰랐다. 비록 고뇌를 술로써 한동안은 달랠 수 있을지 모르나 깨고 나면 다시 긴장은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술은 일시적인 도피처일까. 아니면 술맛의 즐거움 때문일까. 전쟁과 쾌락이 교차하는 가운데 고타마의 이 시대는 출가의 문제가 심각한 고민거리로 대두되던 시기였다. 사계절에 맞추어 별장이 있었지만 고타마의 마음의 평안은 거기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의 평안은 아욕이나 도피에서는 얻을 수 없다. 한편 폭력이나 권력으로 육체적인 제약은 가할 수 있어도 그 사람의 마음까지는 지배할 수 없다. 마음과 마음의 소통은 모든 허식을 버린 공감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아욕과 번뇌의 와중에서 마음의 소통과 평안을 구한다는 것은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영원히 헛수고만 되풀이할 뿐이다. 출가와 현실, 욕망과 회의. 전쟁과 평화, 이런 문제들이 고타마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고타마는 틈만 나면 고독을 즐겼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피했으며 조용한 가운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혼자 있으면 마음은 한없이 자유롭게 넓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어느날 오후 지하실에서 명상에 잠기고 있었다. 그러자 어느새 자신이 중생들 앞에서 설법을 하고 있었다. 청중들은 열심히 듣고 있다. 설법이 중간쯤 이르렀을 때, 청중들의 마음속이 손바닥처럼 환하게 들여다 보였다. 청중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하며 무엇을 이해하였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병든 노인에게 빛을 넣으니 그 노인은 금방 소생하여 인생의 즐거움을 되찾는다. 길을 걸어가니 하늘과 땅이 포개어지고 만물이 법륜(法輪)속에 어우러지며 그 법륜 속을 자유자재로 유영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이러한 상상은 일부러 원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출가에 대한 생각을 하기만 하면 어느새 자신은 현실의 담장을 넘어 몽환(夢幻)의 세계를 날고 있는 것이었다. 현실의 자신으로 돌아와 참으로 신기한 상상몽이 있구나 싶은데 그 환상은 현실의 일처럼 생생하게 친근감을 가지고 다가서는 것이었다. 여태껏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반성을 하고 있으니 20대 전반에는 이러한 일이 자주 있었다는 것이 기억에 되살아났다. 꿈에는 두 가지가 있다. 수면 중의 꿈과 상상의 꿈이 곧 그것이다. 수면 중의 꿈은 적나라한 자신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고 상상의 꿈은 대개 자의적(恣意的)인 것이다. 그러므로 상상의 꿈을 현실에 맞추려고 하면 이따금 문제가 발생하는 것같다. 고타마의 꿈은 이 두 가지 중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고타마가 명상 중에 본 꿈같은 영상은 머지않아 깨달음으로서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자신의 필연적인 미래도였다. 금생에서 이루어놓지 않으면 안 될 그의 운명, 의무, 책임의 필름이었다. 따라서 수면 중의 꿈이나 상상의 꿈과는 전혀 다른, 보다 적극적인 뜻이 담긴 꿈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고타마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명상 중에 가끔 그러한 꿈같은 영상이 보여도 ‘참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하고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현실적 친근감도 있었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 꿈같던 영상도 잊어버렸다. 그러나 중도(中道)를 알고 팔정도(八正道)를 밝힌 지금에 와서 보니 20대 전반의 그러한 신기한 꿈이 전혀 우연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라고 잠재의식에서 솟아오른 바로 자신의 사명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반성의 사나흘이 지나갔다. 이 무렵이 되니 마음속에 쌓였던 무거운 짐이 내려지고 몸도 마음도 글자 그대로 가벼워졌다. 마음의 짐이란 다름 아닌 집착(執着)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집착에서 성큼성큼 해방되어 갔다.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도 해야지. 하는 삶에 대한 집착, 노후와 질병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어린이 같은 공포심은 나이와 함께 사람의 마음속에 집을 짓게 마련이지만 그러한 집착의 짐을 반성을 통해서 벗어던지고 나니 참으로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은 둥글고 크게 확대되어 부동(不動)의 정기가 한없이 흘러들었다. 닷새째 밤을 맞이했다. 20대 후반은 부모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보모에겐 미안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출가의 결심은 굳을대로 굳어 있었다. 이따금 부왕은 맛셀 대신, 코스타니야, 삼촌인 수구로다나, 도로다나, 암드리다나 등과 의논했다. 어떻게 하면 고타마의 출가를 막을 수 있을까 하고,,, 부왕의 마음속에 그땐 이미 고인이 된 선인(仙人)아시타의 예언이 크게 확대되어 되살아났다. 아쇼다라는 누구보다도 고타마의 의중을 잘 헤아렸음인지 그를 만류하는 것을 체념한 것 같았다. 아쇼다라는 데바다바 성주(城主)의 딸이었으며 프라자파티와는 고모, 질녀간의 사이였다. 고타마의 출가에 대해서 다른 측실처럼 감정적이 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출가를 포기해 줄 것을 갈망했었다.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점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과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하지만 출가는 깨달음으로 이어지며 그 깨달음은 홀로 자신의 구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어른이 될 라후라며 많은 사람에게 안심입명의 기쁨을 줄 수 있다는 확신에서 결행된 것이었다. 출가하기 몇 개월 전부터 수행장을 어디로 잡을까 암암리에 궁리했다. 마가다, 스바스테, 산치, 바라나시 등이 머리위에 올랐었다. 종교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배워서 알고 있는 터였으므로 남은 문제는 몸소 부딪혀 체험해 보는 길 뿐이었다. 그래서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찬다카를 위협하여 출성(出城)을 결행하였으며, 출성 당시의 혼자서 처음 겪던 일들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몇 번인가 좌절할 뻔도 했었다. 지금 지난날의 사건들을 하나하나 되돌아보니 감회가 무량했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드러내어 그 배경에 숨은 마음의 움직임을 정법에 비추어 흑백을 가려나갔다. 구도(求道)와 해탈(解脫)은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의문이 없는 구도란 있을 수 없다. 의문은 탐구심을 불러일으키고 탐구심은 마침내 해답이라는 결론을 얻어 낼 수 있다. 보통은 중도라는 척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구도의 방향을 잘못 잡기가 쉽다. 그러나 팔정도라는 대자연의 척도가 발견된 이상 의문과 이해의 교량 역할은 용이하다. 하지만 그 중도의 척도를 사용해서 자기자신이 과연 얼마만큼 엄밀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자신의 마음을 살펴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의 때를 얼마만큼 씻어낼 수 있는가가 문제다. 마음에 그늘이 지고 있는 이상 생로병사의 집착은 끊을 수 없다. 해탈이란 곧 집착에서 떠난 마음인 것이다.     인간석가.-다카하시신지.-저 (주: 의문이란 어떤 경우에나 생기는데 문제는 풀 수 없는 것이라 하여,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 다카하시 신지님의 모든 저서를 보면, 밑바탕에 흐르는 일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상이, 풀수 없는 의문은 없다는 것이 보이는 듯 합니다. 다만, 독화살의 비유에서의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육신을 지닌 인간으로서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과, 필요없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인간으로서 꼭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