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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와 있을 때에는 항상 그 백비서 스타일을 고수했다. 심지어 그와 일을 마치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에도 그녀는 그 스타일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부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먹을 만 해?”
“맛있습니다. 사장님은 별로세요?”
“뭐.. 괜찮네.”
두 사람은 다시 조용히 식사를 했다.
“어떤 음식 좋아하나?”
“가리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혐오식품만 아니면요.”
“영양탕?”
“네.”
“그렇게 따지면 지금 당신이 먹고 소가 눈은 제일 예뻐~.”
그녀가 피식 웃었다.
“고기를 어려서부터 자주 먹어본 편이 아니라 맛은 잘 모릅니다. 영양탕은 먹어 본 적이 없기도 하고, 대신 먹을 수 있는 삼계탕이 있으니까요. 굳이 거기까지 체험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음.. 그럴 수 있지. 다른 건?”
“옥수수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왜?”
“점심대신 먹었거든요.”
“응? 점심 대신 왜 옥수수를.. 장난해? 무슨 6.25냐고~.”
“빚이 많았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응. 너무 먹어서 싫은 거야?”
“네. 하지만 또 눈앞에 있으면 한 개 정도는 먹습니다.”
“음.. 유진아.”
“네?”
“하나 만 해. 하나만. 지금은 난 사장 아니고, 당신은 백비서 아니야.”
“네.. 하지만 조금 전까지 했던 말투를 바로 바꾸긴 힘든 것 같아요.”
“뭐 굳이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어. 이랬다저랬다 하는 당신 보는 것도 썩 나쁘지 않으니까. 기분 나빠서 한 말은 아니란 소리야.”
“네..”
그녀가 다시 음식을 포크로 찍어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불편해?”
“갑자기 편할 수는 없죠.”
“소화제 먹어야 할 정도로?”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뭘 죄송해? 내가 당신 만나고 싶어서 만든 계약서고,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사인한 것 뿐이잖아. 내가 사장이라는 권력으로 당신을 지금 여기에 붙잡아 놓은 거지.”
“편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싫지는 않습니다. 요즘처럼 일을 열심히 해 주신다면 식사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 이상은 안 된다고 미리 선을 긋는 건가?”
그녀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조금 숙였다.
“오늘은 당신 집에 갈 생각이야.”
“네?”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든든히 먹어 두라고.”
그녀가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떨리는 손으로 물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며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에 잠겼다.
‘나.. 진짜 변태인가..? 뭘 저런 모습을 보고 좋아하고 있어..’
그가 한 숨을 내쉬자 그녀는 더욱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자꾸 번지는 미소를 막을 수 없었다.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유진은 어떤 핑계로 그를 못 들어오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만만치 않은 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차를 멈추고 차에서 내렸지만
그녀는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조수석으로 와서 문을 열어주자 그녀는 마른 침을 삼키며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집으로 올라가면서 그는 떨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너무 겁을 주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미안함이 들었다.
“사장님.. 집이 지저분한데요.”
“상관없어.”
“먹을 것도 없고, 욕실 청소도 안 했고..”
“상관없다고.”
“제가 몸이.. 별로 안 좋아서..”
“그럼 당신은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녀는 그의 말의 의미를 깨닫고 몸에 열기가 확 올랐다.
“문 열어.”
“네..”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자 그가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왔을 때와 별로 차이는 없었다. 그가 소파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쭈뼛대며 걸음을 옮겨 등을 벽에 붙이고 있었다.
“마실 거 드릴까요?”
“배불러.”
“그럼 과일이라도..”
“차도 못 마시겠다는 사람한데 과일을 먹으라는 건가?”
“죄송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그가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이 올라오자 그녀는 가방을 잡은 두 손에 힘을 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먼저 씻어야 하지 않을까요?”
“필요 없어.”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고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그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안경을 벗겼다.
잘 접은 안경을 옆 서랍장 위에 내려놓고, 다시 손을 뻗어 머리핀을 풀었다. 머리핀도 서랍장 위에
내려놓은 후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 풀어주었다. 그녀의 목이 움츠러들자 그가 피식 웃었다.
“고개 들어 봐봐.”
“사장님..”
“얼른.”
그녀가 몇 차례 시도 끝에 고개를 조금 들었다. 그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고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가 키스를 할 거라고 생각한 그녀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멀어지자 그녀는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모습을 안 보여주는 이유는.. 내가 이 모습을 보면 짐승처럼 달려들 것 같아서.. 인가?”
“네?”
“만약 백비서 스타일이어도 달려들고 싶은 걸 참고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건데?”
그녀의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 그가 피식 웃었다.
“뭐.. 개인적으로 백비서 스타일에서 지금 이 모습으로 변하게 하는 과정이 꽤 짜릿하기는 하지만.. 아무데서나 짐승이 되지는 않아. 당신이 싫다고 하면 안 해. 그러니 조금은 긴장을 풀고 계약을 이행하면 좋겠는데.”
“...”
“대답은?”
“네, 사장님..”
“내일은 쉬도록 해. 난 일이 있어. 아.. 그건 당신도 알지? 당신이 내 비서인 게 이럴 때 편하네. 그럼 잘 자.”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소화제를 서랍장 위에 내려놓고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살짝 만진 후 그녀의 집을 나갔다. 긴장이 풀린 그녀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 뭐야..”
그녀는 두 손을 들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부근에 올리고 심호흡을 했다.
차에 오른 성준이 즐거운 듯 흥얼거렸다.
“아~. 오늘도 즐거웠다..”
그가 차를 출발시키며 미소를 지었다.
긴 창턱에 무릎을 세워 앉은 유진은 그가 주고 간 소화제를 마신 후 발 앞에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정말 어쩌자는 거냐고..”
그녀는 다신 숨을 길게 내쉬며 병뚜껑을 검지로 살짝 툭 튕겼다.
밤 새 제대로 잠을 못 잔 유진의 집에 찾아온 신아를 바라보았다.
“신아야~.”
그녀가 신아를 안자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잠시 후 신아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농담이지..?”
“진짜야.”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좋을 이유 있겠어? 불쌍해서 그러는 건데..”
“그러게 그런 서류를 왜 만들어서 주냐? 그리고 무슨 설명을 그렇게 다 해 주고..”
“그러게 말이다~.”
한숨 섞인 말투로 유진이 말하며 무릎 위에 턱을 올렸다.
“키스는 했어?”
“안 했어.”
그랬다가 그녀는 찬식의 식당에서 그의 입맞춤을 했던 것이 떠오르자 얼굴을 붉혔다.
“했구만~. 벌써 키스까지 간 거야?”
“뽀뽀.. 짧게..”
“자자고 하면 잘 거야? 그럴 수 있겠어?”
유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계약에 있어. 내가 싫다고 하면 안 한다고 했고. 요즘 일 열심히 하고 있거든. 겨우 식사하는 정도야. 주말인데도 워낙 바쁜 사람이고. 이렇게 3개월 있다가 그만 두면 될 것 같아.”
“3개월 계약에 네가 남자 만나면 6개월로 연장? 장난하냐? 서른일곱 먹은 남자와 서른 살 먹은 여자가 소꿉놀이도 아니고.”
“나도 이유는 모르겠어. 만나고 싶대. 신경도 쓰인다고 하고..”
“정말 널 좋아하는 거 아닌가?”
유진이 피식 웃었다.
“말이 돼? 그냥 나 같은 여자는 만나 본 적이 없나부지..”
“그 새끼.. 이게 다 그 십색 볼펜같은 자식 때문이라고. 그걸 말이라고 해? 아.. 땅 속으로 꺼져버렸으면 좋겠다.”
“어째 표현의 수위가 너무 높다? 정욱씨랑 무슨 일 있었어?”
“좋은 일 하나, 안 좋은 일 여러 개..”
“응?”
신아가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유진이 눈을 크게 뜨고 봉투를 받았다.
“결혼해? 야~. 축하해~.”
“나도 축하받고 싶었어.”
“왜..”
“결혼 준비가 왜 이렇게 힘드냐? 난 필요하다고 하고, 정욱씨는 안 필요하다고 하고..
그러면서 TV는 얼마나 큰 걸 고르는 줄 아냐? 그래. 그 정도 사줄 수 있는 능력은 되니까..
그런데 이번엔 예비시어머님이 예단을 말씀하시는데..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결혼은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은 집에서 알콩달콩하게 사는 줄 알았지. 요즘 같은 시대에 의사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나는 노냐? 심지어 내가 더 많이 벌거든?”
유진이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서 싸웠어?”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정욱씨가 내 편을 들어주더라. 원래 효자 타입은 아니었거든. 머리는 좋은 것 같아. 오히려 정욱씨와 시아버지가 화를 내시니까 시어머니랑 내가 눈치 보고 있는 중이야. 그것도 짜증나고.. 하아~. 넌 결혼하지 마라.”
“웃겨.. 너는 하면서 난 왜 하지 말래?”
“하고는 싶고?”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이 모든 일이 조금 희미해졌을 때.. 지금 이대로의 나도 좋다고 하는 남자를 만나면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전에 남자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으이구.. 쯧. 나도 확 엎어버리고 너랑 여행이나 갈까?”
“됐어~. 대화로 풀어 봐. 넌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자이니까.. 잘 할 수 있어.”
“모르겄다~. 그래서.. 오늘은 안 만나?”
“오늘 집안 모임 있어.”
“무슨 모임?”
“그냥 큰회장님이 마련하신 점심 식사 자리라고 알고 갔지만.. 사실은 사장 맞선 자리야.”
“뭐? 사장도 알고 나간 거야?”
“아니. 알면 나갔겠어? 사장만 모르고 다 알고 있는 자리야.”
“너.. 괜찮겠어?”
“안 괜찮을 건 뭐 있어? 큰회장님께서 직접 전화하셔서 함구하라고 명령하신 일인데. 비서로서 할 일을 한 거야.”
“계약상으로 걸리는 건 없고?”
“사실은.. 있어.”
“뭔데?”
유진이 씨익 웃었다.
‘이 여자가 진짜..’
성준이 턱에 힘을 주고 고개를 조금 돌려 숨을 내쉬었다. 시선을 올리자 엄한 표정의 할아버지가 그를 바라보고 계셨다.
“어쩐 일로 이런 곳에서 점심을 사 주시나 했더니만..”
그가 조그맣게 중얼거리자 아버지도 그를 엄하게 바라보셨다.
“백비서도 알고 있는 일이죠?”
아버지가 그의 질문에 대답을 안 하시고 고개를 돌리셨다.
“쯧..”
그가 혀를 차며 자신과 맞선을 보기 위해 앉아 있는 여자와 그의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맞선이 아니라 상견례 자리 같은데요?”
“할아버지가 주선한 자리야. 예의를 치켜.”
그가 한 숨을 내쉬었다. 여자가 얼굴이 낯이 익었다. 그는 그 여자를 어디에서 봤는지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기억이 나자 그가 한 쪽 입 꼬리를 올렸다가 내렸다. 지금은 정숙한 여인처럼 앉아 조신하게
귀 뒤로 머리를 넘기며 입을 가리고 웃고 있지만 지난 번 호텔 바에서 그에게 혼자 왔냐고 물어본 그 여자였다.
귀찮아서 칵테일 한 잔 사주고 나왔던 것이 떠오르자 그는 그녀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른들이 가시고 단 둘이 남자 성준이 다리를 꼬고 몸을 뒤로 기대었다.
“새로 공사중인 리조트는 언제쯤 완공 되나요?”
“내년 봄에나 완벽하게 시작될 것 같습니다.”
“아.. 너무 기대가 되요. 요즘 일을 무척 열심히 하신다고 들었어요. 소문과는 조금 다르신 분이신 것 같아요.”
그녀가 수줍게 웃자 성준이 인상을 찡그렸다.
“대단하십니다.”
그녀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뭘.. 말씀이세요?”
“우리 만났잖아. 뭘 처음 만난 것처럼 내숭을 떨고 그러시나?”
“네?”
“아.. 호텔 바에서 나한테 작업 걸었던 건 어른들께는 비밀로 해 드릴게.”
그녀의 턱이 가볍게 떨렸다.
“나랑 결혼 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온 것 같지는 않고.. 뭐.. 하룻밤 놀고 싶어서 나왔나? 그런데 이걸 어쩌지?
내가.. 나이가 들었는지 허리가.. 그래서 내가 밤에 여자를 만나는 것에 급하게 흥미를 잃었거든.
뭐 놀만큼 놀았고 내 허리는.. 소중하니까. 그러니 다른 사람 알아봐요.”
“결혼은 제 생각이 아니었어요. 부모님들이 결정하신 일이라고요.”
“우리가 싫다고 하면 억지로야 시키시겠습니까?”
“전 싫지 않아요. 궁금해요. 소문으로만 듣던 민성준이라는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말했다.
“상상만 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멍멍이 같은 놈이니까. 운 좋은 줄 알아.”
그가 피식 웃고는 호텔을 나갔다. 차에 오른 그가 차를 출발시켰다.
신아가 정욱의 전화를 받고 나가자 유진은 스니커즈에 반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슈퍼에 내려가 아이
스크림을 사서 검은 봉지를 손에 들고 한 개를 껍질을 벗겨 입에 물고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 앞에 그의 차가 멈추자 그녀
가 몸을 돌렸다.
“뭐야.. 왜 이렇게 빨리 끝났어..?”
그녀는 슬금슬금 커피숍 코너로 걸음을 옮겨 몸을 숨겼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그가 어디에 있는지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헉!”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성준의 싸늘한 얼굴이 바로 옆에 있자 숨을 멈추었다가 아이스크림에 사래에 들려 콜록거리기 시작했다.
“어.. 콜록. 콜록..”
그녀가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기침을 하자 그가 인상을 찡그리고 커피숍에 들어가 물병을 사들고 나와 뚜껑을 열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바보야? 뭘 그렇게 티나게 숨어.”
그녀가 물을 삼키고 사래가 멈추자 고개를 숙였다.
“잘못한 건 알지?”
“네..”
“그럼 들어 와.”
그가 그녀의 집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녀가 한 숨을 내쉬었다.
“그래.. 싫다고 하면 돼.. 싫다고 하면..”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집에 들어오자 그녀가 검은 비닐봉지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드실래요?”
“그래.”
그가 하나를 골라 껍질을 벗겼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검은 봉지 째로 둘둘 말아 냉동실에 던지듯 넣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약은 없었던 거예요.”
그가 주방으로 들어가는 벽에 몸을 숨기고 얼굴만 내밀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뭔 소리야~.”
“여자 만났잖아요. 그러니까 없던 일이 되는 거죠.”
그가 혀로 입안을 쓸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린 6개월 동안 만나야 해. 하루에 당신이 만나는 남자들 수만 세도.. 평생 만나야 할지도 모르지.”
“그거랑 다르잖아요. 저는 일 때문에 만난 거죠. 선을 본 것도 아닌데..”
“그래.. 선.. 왜 말 안 해 줬어? 우린 만나는 사이잖아. 정말 내가 다른 여자랑 잠이라도 잤으면 좋겠어?”
“큰회장님이 직접 전화로 명령하신 거예요. 어떻게 말씀 드려요..”
“쯧.. 아는 여자였어.”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사이는 아니고.. 조금 심난한 일이 있어서 혼자 바에서 칵테일 마시고 있는데 말을 걸어왔었어. 뭐.. 예의상 칵테일 한 잔 사주고 난 계산하고 나왔다고.”
“무슨 심난한 일이었는데 혼자 바에 가셨어요?”
“뭐.. 그런 일이 있었어.”
그가 아이스크림 남은 것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말했다.
“나 물 좀. 입이 달달하니까 기분이 이상해.”
“네.”
그녀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머그잔에 따라 쟁반에 올려 그에게 가져가 그 앞에 내려놓았다. 그가 피식 웃었다.
“음.. 직업병이구나.”
“에? 아.. 네..”
그녀가 쟁반을 들고 서 있자 그가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톡톡 쳤다. 그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그가 물을 마시고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영화 보러 갈까?”
“그러실래요?”
“보고 싶은 영화 있어?”
“잘 모르겠어요. 요즘 무슨 영화를 하는지.”
그가 핸드폰을 꺼내 영화관에 들어갔다.
“이건 어때?”
그녀가 핸드폰을 보기 위해 몸을 기울였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그의 팔에 닿았다. 그가 고개를 조금 기울여 그녀의 머리에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음.. 무서울까요? 공포영화는 싫은데..”
그녀가 고개를 들며 말하자 그가 몸을 제자리로 하며 팔짱을 끼웠다.
“글세. 그렇게 안 무서울 것 같은데? 판타지 아닐까?”
“좋아요.”
“준비 해.”
“네.”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쟁반을 주방에 놓고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러다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잠그고 양치질을 했다. 세수와 머리 감기를 하고 밖으로 나온 그녀는 헤어드라이어기를 꺼내며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는 예매를 하는지 검색을 하는지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차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안 될까요?”
“오래 걸려?”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리는데요..”
“알았어.”
그가 집을 나가자 그녀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옷장을 연 그녀는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정말 데이트 하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영화관 정말 오랜만에 가는 거란 말이야.. 데이트다운 데이트도 오랜만이고..”
사장 비서실로 내려가기 전에도 민혁과는 거의 레스토랑 커피숍 그녀의 집 앞에서 가벼운 입맞춤까지가
코스처럼 진행이 되었다. 그나마 사장 비서실에 가고 나서는 거의 만나지 못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이번 여름휴가에 입으려고 샀던 원피스를 꺼냈다. 입어보지도 못한 원피스를 바라보며 그녀가 한 숨을 내쉬었다.
차 안에 있던 성준은 문이 열리자 고개를 돌려 차에 오르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몇 살이야?”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상해요?”
그가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아니야. 어울려. 출발하지.”
“네.”
그녀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고개를 숙였다. 긴 머리를 풀어 내린 그녀는 기본화장에 립글로스를 발랐다. 신아에게 선물로 받은 스와로브스키 백조모양 귀걸이를 했고, 푸른색 원피스에 흰색 가디건을 걸치고 작은 핸드백을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너무 꾸몄나..?’
그녀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시선을 옮겨 그를 살폈다. 그는 그녀의 차림도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그렇겠지.. 더 고급진 옷차림을 한 여자를 늘 보아왔을 테고, 나보다 훨씬 더 예쁘고, 몸매도 좋은 여자들도 많이 만났을텐데 뭐가 관심이 가겠어..’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그 녀석을 만날 때 했을 법한 그녀의 차림새를 보니 살짝 짜증도 났다.
푸른 원피스와 대조적으로 그녀의 하얀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그 자식은 눈이 안 좋았던 건가?’
머리를 풀어 내리고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더욱 어려보이고, 더욱 청순해 보였다.
이런 그녀를 그 자식보다 먼저 만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녀는 어제의 자신의 말을 믿은 모양인지
지금은 조금 안심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다행이면서도 그에게는 불행이었다. 그는 지금이라도 당장
원피스의 어깨 끈을 내리고 그녀의 하얀 어깨에 입을 맞추어 붉은 자국을 남기고 싶은
욕망과 싸우고 있었다.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데이트 하는 용도인 건가?”
“네?”
“그 자식 만나러 갈 때 입었던 옷이냐고.”
“여름휴가 때 샀었어요.”
그의 미간에 주름이 더욱 깊어졌지만 그녀는 고개를 조금 숙이며 말하느라 그의 표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국 입지 못했지만요.”
그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녀가 눈을 흘기듯 그를 바라보았다.
“이유는.. 아시잖아요.”
“아.. 응..”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네..”
“영화는 얼마 만에 보는 건가?”
“오랜만에 보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본 게 뭔데?”
“마지막으로 본 게..”
그녀가 조용히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저씨> 요.”
“응? 그 영화 엄청 오래되지 않았나?”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네요. 신아랑 신아 남자친구랑 셋이 보러 간 게 끝이었어요.”
“그 자식이랑은..”
“갈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
“네.”
그녀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에 대한 질문을 하는 그가 얄미워 고개를 돌렸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영화관에 도착한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랜만에 온 영화관에 두근거리고 있었다.
“뭐 먹으면서 볼래?”
“물이요. 다른 건 집중이 안 되거든요.”
“그래.”
“사장님은요?”
“나도 물.”
“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몸을 돌리자 그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네?”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같이 가자고..”
“아.. 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팔위에 올리며 물었다.
“싫어?”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가자고.”
“네.”
그들은 걸음을 옮겨 물을 사려고 함께 걸었다. 영화관 안에 들어온 그들은 둘만 앉을 수 있는 좋은 자리에 앉았다.
“우와.. 돈이 좋긴 좋구나..”
“그럼~.”
“아.. 죄송합니다.”
그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저씨>를 봤을 때보다 달라진 것 같아?”
“그런 것 같아요. 정확하게 뭐가 달라진 줄은 모르겠지만요.”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래.”
“네..”
잠시 후 영화가 시작하자 두 사람은 영화에 폭 빠져들었다. 환상적인 <미녀와 야수> 라는 영화를 보고 나온 유진이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었어?”
“네. 프랑스 영화라서 머리가 아플 줄 알았는데.. 너무 환상적이었어요. 사장님은요?”
“나도.. 괜찮았어.”
그녀가 화장실에 들어가고 그는 조금 더 걷자 남자들이 애인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곳이 보였다.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도 그들 사이에 섰다. 안에 들어간 유진은 화장실 안이 붐비자
입술을 깨물었다. 줄이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자 그녀는 몸을 돌려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가 팔짱을 끼고 있다가 그녀를 보고 눈썹을 조금 올렸다.
“벌써 나왔어?”
“못 갔어요.”
그녀는 창피함에 얼굴을 붉히며 걸음을 옮겼다.
“참을 수 있어?”
“있어요.”
그녀는 그와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이 싫어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종종 뛰어 갔다.
“그렇게 뛰면 더 참기 힘들텐데.”
그녀는 “못 살아..” 라고 말하며 조금 더 빠르게 뛰었다. 그가 웃으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가까운 호텔에 들려 화장실을 다녀오고 그들이 그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그가 와인을 마시며 식사를 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음에 들어?”
“네. 맛있어요.”
“아무거나 다 맛있대.”
그녀가 피식 웃자 그도 미소를 지었다.
“다음 주에 제주도 내려가야 해.”
“아. 알고 있습니다. **그룹 창립파티를 새로 리모델링 한 호텔에서 하신다고요.”
“당신이랑 동반으로 같이 갈 생각이야.”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좋은 생각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그 동안은 우열이랑 둘이 갔었어. 그런데 그 자식은 와이프랑 간대잖아. 혼자는 심심해.”
“그 분들이랑 지내십시오.”
“제주도라서 싫어?”
그녀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고개를 숙였다.
“같이 가자. 평생 제주도에는 안 갈 건가?”
“나중에요..”
“알았어.”
그녀는 와인 잔을 들어 고개를 돌리고 한 모금 마셨다. 그는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타로 와인이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으로 시선이 향하자 고개를 돌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젠장..’
그가 화가 난 듯한 얼굴을 하자 유진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회사 일로 가는 건데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는 건 아닌가..?’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집 앞에 차가 멈추었을 때 그녀는 결심한 듯 심호흡을 하고 그에게 말했다.
“대신 그날 갔다가 그날 오는 겁니다.”
“응?”
“제주도요.”
“그래..”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지만 기분은 여전히 나아보이지 않았다.
“죄송해요. 제주도가 싫은 게 아니라.. 그 호텔이었거든요.”
그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짜?”
“네. 그 때도 일부는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뭐 그런 데를 데리고 갔대?”
그가 화를 내자 그녀는 기분이 우울해졌다. 그녀가 그런 대접밖에 받지 못했다는 현실이 더욱 아프게 찌르는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그랬던 건데.. 회사 일로 가는 거라면 사장님 옆에 있겠습니다.”
“역시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네.”
그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가지 마.”
이젠 그녀도 슬슬 짜증이 나려고 했다.
“왜 그러세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간다고요.”
“가지 말라고~. 그 호텔인 줄 알았으면 가자고 말도 안 꺼냈어.”
“모르셨잖아요. 그리고 일이라면 가도 된다고요. 그 방에만 안 들어가면 돼요.”
“됐다고.”
“왜 화를 내세요?”
그가 턱에 힘을 주고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오늘 기분 좋았거든요.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서 좋은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그런데 왜 자꾸 그 사람.. 얘기 하고 싶지 않아요.”
“아직도 사랑하나?”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싫어져요. 그런 남자한테 그런 대접을 받고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좋아하고만 있었던 제가 바보 같고.. 싫다구요.”
그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 오늘 내가 짜증을 낸 이유는.. 말하면 도망갈 것 같아서..”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맞더라도.. 오늘은 해야겠다.”
“뭘요?”
그녀는 그의 눈동자가 정열적으로 반짝이자 몸을 뒤로 기대며 두 팔로 가슴 앞에서 X자로 교차해서 양쪽 어깨를 감쌌다.
“안 돼요..”
“그거 아니야.”
“네? 아니에요?”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팔을 내려 가방을 잡았다.
“그래. 싫어지면.. 싫다고 말 해.”
그의 얼굴이 다가오자 그녀가 물었다.
“그럼 멈춰줄 수 있어요?”
그가 멈추지 않고 다가오자 그녀가 눈을 감았다. 그가 그녀 입술 바로 위에서 대답했다.
“몰라..”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댔다. 가방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안전벨트를 풀고 그녀에게 조금 더 다가가 입맞춤에서 키스로 옮아갔다. 부드럽게 열린
그녀의 입술에 부드러운 키스를 하자 그녀의 목에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그녀의 신음소리에
그의 이성의 끈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녀의 손이 올라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서 손으로 천천히 내려와 그녀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웠다. 그녀의 가디건 안으로 들어간
그의 손이 원피스 어깨 끈을 만지작거렸다. 천천히 그녀의 가슴으로 손이 향하던 그의 손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기 전에 멈추었다. 그가 입술을 떼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도 스르륵 눈을 뜨고 몽롱한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싫다고 안 해..”
“네?”
그녀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치 꿈속을 걷듯 몽롱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하마터면 멈출 수 없을 뻔 했다고..”
그가 그녀의 입술에 쪽! 하고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그녀의 옷을 제자리로 올려주었다. 그가 몸을 제자리로 가자 그녀는 그제야 레드 썬! 한 것처럼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두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감쌌다.
‘미쳤어..’
그가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으로 다가와 문을 열었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려 고개를 숙였다.
“조심해서 가세요.”
그녀가 종종 뛰듯 집으로 들어가자 그가 피식 웃었다.
“여고생이야? 키스 한 번에 뭘..”
그러다 차 지붕 위에 올린 그의 손의 관절이 하얗게 변한 것을 보고는 혀를 찼다.
“그러는 너는.. 청소년이냐? 뭘 이 정도에.. 에잇..”
그가 문을 닫고 다시 운전석에 올랐다. 차 안에 그녀의 짙은 향기가 남아 있자 그는 어지러웠다.
“큰일 날 뻔했다..”
그가 머리를 뒤에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숨을 길게 내쉬었다.
집에 들어온 그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키스는 그 때 보았던 것보다 훨씬 뜨겁고,
그녀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여자처럼 자신의 목에서도 신음소리가 나왔다는 것을 깨닫자
그녀는 소파로 비틀비틀 걸어가 털썩 엎드려 쿠션에 얼굴을 묻고 비명을 질렀다.
“창피해.. 죽을 것 같다.. 아~~~.”
월요일에 출근을 한 유진은 그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몰라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며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만 듣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에 그녀가 탕비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이 열리자 큰 회장님이 서 계셨다.
“큰 회장님.”
그녀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녀를 지나쳐 걸음을 옮기시자 그녀가 걸음을 옮겨 사장실 문을 열었다.
“아직 안 왔나?”
“네. 아직 시간이 조금 있습니다, 큰 회장님.”
“감싸주는 게야?”
“아닙니다. 유자차 곧 준비해 오겠습니다.”
“앉아 봐.”
“네.”
그녀가 소파에 앉았다.
“성준이 말이야.. 사귀는 여자 있나?”
“네?”
그녀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있어?”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들의 비밀계약 연애놀음이 발각이 되면 그녀는 남은 2개월은 고사하고 지금 당장 짐을 싸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 백비서가 거기까진 모르겠지. 일을 갑자기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서 말이야.
엊그제 선 본 아가씨한테도 퇴자를 또 놓은 모양인데.. 그 쪽에서는 마음에 들은 모양이거든.
요즘 정신을 차린 것 같으니까 그쪽 어른들도 마음에 들어 하고.
나나 애비도 그 처자가 마음에 들기도 하거든. 참해서 내조 잘 할 것 같아.”
“네..”
“오늘 출근하면 물어 봐. 이번 주 제주도에 동반으로 가면 어떨지.”
“네, 큰 회장님.”
“그리고 백비서가 따라가서 둘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나한테 알려줘.”
“네..”
“얼마 안 남았다고?”
“네, 큰 회장님.”
“여행도 다녀오고, 하고 싶은 것도 해 보고.. 그래도 돌아오고 싶으면 와.”
그녀가 시선을 들어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자네 믿음직스러워서 마음에 들어.”
“감사합니다.. 큰 회장님.”
할아버지가 일어나시자 그녀도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럼 수고해.”
“조심히 가십시오.”
할아버지가 내려가시고 그녀는 멍하니 서 있었다. 일로서 칭찬을 받았을 뿐이었고, 그의 여인이 된다면
이건 정말 큰 일이 될 터였다. 그리고 제주도에 그가 다른 여자와 함께 가야 하는 것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
그것도 난감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그녀가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그가 내렸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다, 사장님.”
“응. 회사라서 그러는 건가?”
그가 지나가며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사장실로 향했다.
“커피 마시자.”
“네.”
그녀가 탕비실로 들어가 커피를 잔에 담아 사장실로 들어갔다.
“왜 한 잔이야? 같이 마시자는 소리였어.”
“저는 나중에 마시겠습니다.”
“같이 마시자고.”
“여긴 회사입니다, 사장님.”
“쯧.. 알았어. 이따 저녁에 퇴근하면서 당신 집 옆 커피숍에서 마시자고. 아. 나 아래층에서 할아버지 만났어. 왜 오셨는지 알아?”
“사장님.”
“응?”
“이번 주 주말 제주도 창립파티 말입니다.”
“응.”
“맞선 보신 그 분과 함께 가시면 어떠시겠습니까?”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그래?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싫어. 내가 그 여자랑 왜.. 진짜.. 내가 알았다고 대답할 줄 알았어?”
“그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뭐?”
“사장님은 사장님이시니까요. 생각해 보시고 대답해 주십시오.”
그녀가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하자 그가 일어나 그녀를 돌려 세웠다.
“안 가. 그 여자랑 가야 한다면 안 간다고. 가게 된다면 당신이랑 갈 거야.”
“사장님.”
“당신이랑 간다고. 다른 여자 싫어. 관심도 없다고. 싫은 여자랑 내가 1분 1초라도 같이 있는 거 봤어?”
“사장님.”
“나랑 간다고 해. 그 건물 근처로는 안 데리고 갈 테니까 가서 인사만 하고 둘이 다른 곳에서 놀다고 올라오자. 응?”
“저도 갑니다.”
“그렇지? 그런데 어감이 조금 이상한데?”
“저도.. 같이 갑니다.”
그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녀의 손목을 잡고 사장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하자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왜 이러세요. 사장님!”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녀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인사드리자. 내가 만나는 사람 있다고. 그게 당신이라고.”
“미.. 미쳤어요?”
그녀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틀린 말 아니잖아. 우린 지금 사귀는 중이니까.”
“하지만 2달 후면 헤어질 사이죠. 이런 사이를 뭐라고 설명하실 건데요? 석달 동안 사귀고 있으니까
다른 여자 만날 생각 없습니다. 앞으로 두 달 동안은 여자 만나라고 하지 마십시오라고요?
저와는 2달 후면 끝나요. 미래를 생각하셔야죠. 참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내 말 못 들었어? 호텔 바에서 나한테 작업 걸었던 여자라니까? 참하긴 뭘 참해!”
“사장님도 많은 분들 만나셨잖아요. 그러니 그건 거절 사유가 안 됩니다. 만나보시고 대화도 해 보시고.. 성격이나 다른 것이 마음에 안 든다면 모를까..”
그가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그래서.. 당신이 보는 앞에서 데이트라도 하라는 건가? 그래?”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보는 앞에서 키스해야 하나? 섹스도?”
“보고 있을 이유 없습니다. 잘 만나신다면 그걸로 제 일은 끝이니까요.”
“어제는 토요일 밤에 당신이 놀랐을까봐 만나고 싶어도 참았어. 정말 나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어? 2달만 채우고 끝내고 싶을 정도로? 그래?”
거짓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때 그녀가 그에게 보인 반응은 거짓말로 넘길 수 있는 선을 넘어가고 말았다.
“키스 한 번입니다.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좋은.. 추억? 난 남은 두 달 안에 당신을 안을 거야. 그것도 좋은 추억으로 생각할 건가? 그래?”
“제가 싫다고 하면 안 하실 거니까요. 그건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 좋아. 나 도전 좋아해. 그러자. 할아버지한테 전화 드려. 그렇게 하겠다고. 대신 당신도 가는 거야. 나와 그 여자와 당
신.. 그 호텔에서 1박하고 오는 거야.”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오늘은 일하기 싫어졌어. 시간 되면 알아서 퇴근해.”
“사장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가 올라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문이 닫히자 유진은 눈을 감고 한 숨을 내쉬었다.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큰 회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네, 큰 회장님. 그렇게 하시겠답니다. 네..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녀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째.. 지난 8개월보다 남은 2달이 더 힘들 것 같다..”
그녀는 책상에 엎드려 한 숨을 내쉬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준이 씩씩거리며 건물을 나왔다.
“장난해?”
그가 턱에 힘을 주고 김실장을 바라보았다.
“키. 차 키 달라고.”
“여기 있습니다.”
“퇴근 해.”
“네? 네.. 사장님.”
그가 차에 올라 차를 출발시키자 김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진은 그에게 끌려갈 때 잡혔던 손목을 바라보았다.
“멍 들었네.. 이렇게 세게 잡으면 어떻게 하십니까..? 이 나쁜.. 사장님아..”
그녀가 한 숨을 내쉬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7.06 19:37
감사합니다. . ^^
아... 이 아저씨....
여전히 귀엽잖아~~~ ㅎㅎㅎㅎ
갑자기 유진양이 불쌍해 지는 것 같은 이 느낌은..;;; ㅋㅋ
잘 읽었어용 :)
감사합니다..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7.12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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