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에게 공양 올려 정진 독려… 미풍으로 정착]
스님들에게 공양을 베푸는 것은 더없이 큰 공덕에 속한다.
이 공양이 발전하여 최근에는 결제철 선방 대중공양이라는 독특한 풍습이 생겨났다.
스님들에 대한 대중공양은 전통적으로는 안거 해제 때 베푸는 것이지만 최근에는 결
제 중에 많이 찾는다. 스님들이 선방에 정진중인 스님들을 위해 대중공양을 베푸는
독특한 공양 풍습도 생겨났다. 메뉴도 다양해져 피자 빵 자장면 카레 등을 대접하기
도 한다. 이 모두 복전(福田)이라고 불리는 수행자들을 공양하는 공덕이 한량없기 때
문에 생겨난 아름다운 풍속이다.
대중공양은 또 이 단어의 원래 의미도 변화시켰다. 대중공양(大衆供養)은 말 그대로
대중들이 함께 공양을 먹는 것을 말한다. 사찰에서 보통 “오늘은 대중공양하겠습니
다.”라고 말하면 이는 사중의 어른스님부터 행자까지 함께 모여 공양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중공양은 ‘선방’이라는 단어와 붙어 결제 철 정진하는 스님들에
게 공양을 바치는 것을 뜻한다.
대중공양의 유래는 부처님 당시부터 재가신도들이 비구들에게 공양을 바친 데서
유래한다. 부처님의 성도 직전 우유를 넣고 끓인 죽을 공양했던 ‘수자타의 공양’과
부처님을 열반에 이르게 한 금속세공인 ‘춘다의 마지막 공양’에 이르기 까지 부처님
과 제자들은 재가자들이 바치는 공양으로 의식주를 해결했다.
부처님의 10대 명호 중 응공(應供)이란 존칭은 ‘응당이 공양 받을 분’이란 뜻이며 아
라한을 복전(福田, punna-khetta)이라고 하는 것도 아라한이 신자로부터 공양을 받
으면 그 과보로 복(福)을 준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즉 부처님이나 수행자에게 공양을
베풀면 큰 공덕을 받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사분율〉 등 율장이나 〈아함경〉등
초기 경전을 보면 부처님이 재가신자로부터 공양을 받는 자리에서 법문을 설하는 장
면이 자주 나온다. 대중공양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수행
자의 생활이 굶주림의 연속이었음을 말해준다.
수행자는 하루 한 끼 밖에 먹지 못하며, 그나마 일곱 집을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면
굶어야 했다. 3개월 안거에 들어가면 먹는 사정은 더 나빠졌다. 하루 안에 돌아오지
못하는 먼 곳으로는 나갈 수가 없었다. 해제날 수행자들에게 갖은 음식을 베풀면 지
옥 아귀 중생도 구제하는 큰 공덕이 된다고 한 이유도 그 같은 까닭인지도 모른다.
대중공양은 처음에는 재가신도의 집에서 청을 받아가던 형태에서 승원이 생기면서
신도들이 음식을 장만해서 찾아오는 방식으로 바뀐다.
재가자는 공양물을 올리고 수행자는 법을 베푼다.
〈사분율〉에는 거의 전 부분에 걸쳐 공양 장면이 나온다. 사실 계율의 대부분이 밥
약 옷 등 공양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분율〉 제13권에서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공양을 베풀고 공덕을 묻는 재가신도에게 이렇게 말한다.
“공양을 베푼 것은 복이 매우 많다. 이는 하늘에 나는 원인이다. 비구들이 너에게 한
덩어리의 밥만을 먹더라도 그 복덕이 한량 없느리라.”
〈사분율〉 제49권 ‘비구니의 특수한 위의에 관한 법’ 편에는 대중공양을 받았을
때 비구 비구니들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에 관해 자세하게 나온다. 부처님께
서 한 이 말씀은 지금까지 대중공양에 관한 전범(典範)이 되어 스님들의 계율로 자리
잡았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 신도의 집에 공양청을 받거든 대중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라. 시주가 와서
밥먹을 때가 되었다고 사뢰거든 상좌가 앞에서 가되, 코끼리의 걸음으로 가라.
차례에 따라 앉으라.
법답지 않게 앉은 이나, 몸을 잘 덮지 않은 이가 있거든 손가락을 튕겨서 깨우쳐 주
거라.
아직 오지 않은 이가 있거든 옆자리에다 앉을 곳을 남겨두라.
밥을 얻지 못한 이가 있으면 찾아주거나 밥을 덜어주라.
밥을 먹고 난 뒤 말없이 떠나지 말고 시주 자를 위해 축원을 해야 한다.
축원을 할 때는 혼자서 하되 다른 사람은 끝날 때 까지 떠나지 말라.
만일 시주가 법을 듣고자 하면 시주의 법을 찬탄하고 과거 부모나 조상을 듣고자 하
면 그들을 찬탄하라.
시주 자를 위해 보시를 찬탄하고 불법승을 찬탄하라.”
〈사분율〉의 비구니에 관한 계율에 근거해서 편찬한 〈비구니경〉에서도 “비구니
가 신도의 공양을 마치고 방에 돌아와서는 고요히 큰 덕을 닦되, 여섯 가지 바라밀
(波羅密)을 배워야 한다. 서로 함께 가르침을 거두면서 욕정의 모습을 끊어 없애어
더러움에 물듦 없이 뜻을 고요한데 두어야 한다. 결박됨이 없이 뜻을 이와 같이 조촐
히 하면 속히 도를 얻을 수 있나니라.”라고 했다. 〈사미율의〉 지인가(至人家) 편에
서도 “주인이 밥을 차렸거든 비록 법회가 아니더라도 의식을 빼지 말라”고 했다.
그만큼 재가신도로부터 공양을 받을 때는 수행자의 위의를 갖추도록 했다.
이처럼 공양을 베풀고 받는 것은 불교의 가장 중요한 의식중 하나일 정도로 부처님
당시부터 계율이 엄격했다. 이러한 전통은 그 뒤에도 계속 이어진다. 비구들은 공양
을 받는 대신 부처님 법을 설했다. 대중공양이 중국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반승(飯僧)
이라는 의식을 낳았다, 〈반승〉은 재가신도가 비구들을 초청해 공양을 베풀고 스님
들로부터 법을 듣는 전통적 방식을 국가 차원으로 확장한 것이다.
중국에서 이를 처음으로 실시한 황제인 양무제는 누구나 자유롭게 동참할 수 있는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열어 스님들을 공양했다. 무차대회는 법을 설하고 왕은 참가
한 대중들에게 공양을 베푸는 방식으로 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말기부터
왕은 스님들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스님들은 백고좌를 열어 불경을 강설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이것이 고려 시대에 들어서는 최대 10만 명에서 적게는 1만명의 스님에게
공양하는 대규모 반승재로 발전한다. 공양의 주체 자는 왕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모
두 142회의 반승이 열렸는데 고려 왕실 재정 파탄의 원인으로 작용할 정도로 그 규
모가 엄청났다. 대규모 반승도 있었지만 특별한 스님만 초청해서 베푸는 의식도 많
았다. 조선을 세운 태조가 대표적인데 그는 왕사인 무학대사를 위해 11차례의 반승
을 열었다고 한다. 반승 제도는 조선 태조를 끝으로 국가나 왕실 차원에서는 사라졌
지만 개인적으로 공양을 베푸는 것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불교의 수행 가풍을 되살리기 위해 나섰던 해방 후의 봉암사 결사에서 개
인 공양을 대중공양으로 전환하는 결정을 한다. 이로 미뤄 그 당시에도 인연 있
는 스님들에게 공양이 베풀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세워진 전통은 지금은 전국의
모든 선원이 불문율처럼 지키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스님들에게 베푸는 음식의 종
류가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짐한 밥상이 주 메뉴였지만 근래에 들어 빵 피자 자장면 카레
등 군것질 종류가 많이 늘어났다. 피자는 특히 비구니 스님들에게는 인기 최고 품목
이다. 신도 들 중에서도 스님들에 대한 대중공양 원을 세우거나 아예 단체를 결성해
서 정기적으로 공양을 베푸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경북의 한 산채요리 연구가는 평생 1천 번 대중공양 원을 세워 지금도 전국의 선원
을 찾아다니고 있다. 전북의 한 제과점 주인은 강원 스님들을 위한 빵 공양을 베풀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이름을 대면 알만한 신도들이 모여 결제중인 스
님들을 위한 대중공양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대중공양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스님을 위한 스님들의 공양’이다. 선방에서 결제
중인 스님들을 결제에 들어가지 않은 스님들이 찾아 공양을 베푸는 이 관습은 한국
불교에만 그것도 최근 들어 생긴 독특한 풍습이다. 스님과 스님 간에 공양물이 건네
지는 경우는 비구니 스님들이 비구스님들을 위해 쑥떡 등 간식을 내놓는 풍습이 있
다. 솜씨가 좋은 비구니 스님들이 음식을 만들면서 인근의 비구스님들을 위해 더 준
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선방)대중공양은 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대개 결제에
들어간 도반을 챙기는 식이다.
굳이 인연이 없어도 선방 스님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찾기도 한다. 재가자들과 달
리 스님들은 금전을 내놓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선방은 몇 년 전 이렇게 모
인 돈을 함께 모아 해제비로 지급하는 결의를 했다. 스님들 사이에 일어나는 선방 대
중공양이 지금처럼 보편화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주지 등 행정직에 있는 스님들이 업무상 선방을 찾기 힘든 상황이 되다보니 선방스
님들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대중공양 형식을 빌린 것으로 보인다. 스님들 사이에서도
아직 대중공양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가 되지 않은 듯하다. 선승들에 대한 위상을
올리고 예우하는 차원에서 더 권장해야한다는 입장과 스님들 간에 위화감과 ‘빈익
빈 부익부’를 조장한다는 비판적 입장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대중공사를
통해 문제점은 보완하고 좋은 점은 더 살리는 방향으로 정리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평가가 많다. (출처-연화세계에서 다시 펌/신문에난 자료로 추측함)
첫댓글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양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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