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수요일 맑음
날씨도 좋다. 남아공의 날씨는 아프리카 같지 않고 유럽이나 우리나라 초가을 같은 기분이다. 아침 7시에 숙소에서 제공해주는 식사를 한다. 간단한 차림에 뷔페식이다. 별로 특이한 것은 없지만 차림이 깔끔하고 청결하다. 우유와 과일, 콘푸러스트 잼과 치즈에 빵으로 식사를 했다.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고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교통편이 문제다 걷기에는 좀 멀고 택시를 잡자니 주변이 주택가라 어려울 것 같다. 어제 슈퍼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타는 법을 알아두었지만 교통카드 전용이라 현금은 받지 않는 단다. 교통카드를 사는 것이 문제다. 저렴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인 툭툭이를 주인이 추천해 준다. 이곳에도 툭툭이가 있단다. 주인이 툭툭이를 불러준다. 파크 스테이션까지 70R(7000원)에 가기로 했다.
어려움 없이 툭툭이를 타고 파크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파크 스테이션 안에는 식당을 비롯한 편의 시설이 많다. 짐 맡기는 곳을 찾았다. 큰 것은 20R, 작은 것은 10R에 맡겼다. 짐 맡기는 곳도 옆 사업장과 경쟁을 하고 있어 직원이 서로 손님을 부르며 영업을 하고 있다. 이제 시내 구경하기로 한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볼거리를 찾아가기로 했다. 가이드북에는 1번부터 10번까지 적혀있다. 지도에 표시해 두고 가면서 보고 오면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언덕이 있는 요새로 방향을 잡고 만델라 다리에서 끝내기로 했다.
요하네스버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와 공업의 중심지이자 금광업의 중심지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최대 도시이며, 전에는 수도였다. 동시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요하네스버그는 보통 란트라고 불리는 비트바테르스란트(Witwatersrand)('급류의 봉우리'를 의미하는 아프리카어)의 남쪽 경사면 해발 1,740m 지점에 있다. 란트는 트란스발 고원으로 둘러싸여 있는 동서로 뻗은 산마루의 분수령으로 바위가 많은 지역이다. 요하네스버그의 명칭의 유래는 1856년 금광 발견 시 측량을 위해 파견된 요하네스 마이어와 요한 리시크의 이름과 독일어로 "마을"을 의미하는 "burg"를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이 지역의 기후는 비가 적고 증발이 심한 아열대성 건조기후이며, 평균기온은 7월에 10℃, 12월에 20℃이며 연강우량은 760㎜이다. 요하네스버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상업 중심지로 금광회사의 본사가 대부분 이곳에 있다. 도시 남부와 남서부에 금광이 있으며, 많은 중공업체를 비롯해 국내외 은행, 회사, 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 등의 본점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구가 가장 조밀한 지역이다.
과거에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인종차별정책)에 따라 유색 인종은 서부와 남서부의 특정 지역에만 거주했다. 유색인종 거주구역으로는 소웨토 외에도 컬러드인(흑인과 백인의 혼혈) 거주구역인 코로네이션빌, 웨스트베리와 아시아인(일본인·중국인·인도인) 거주구역인 레나시아 등이 있었다. 엘로프와 커미셔너 거리 주변이 행정 및 상업 중심지이며, 건축물은 주로 케이프와 유럽(영국, 네덜란드, 문예부흥시대의 이탈리아)·미국의 건축유형을 따랐다. 문화시설로 요하네스버그 미술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와 군대사 및 의학·고고학에 관련된 자료 등을 소장하고 있는 여러 박물관 등이 있다. 시민회관에서는 요하네스버그에서 공연되는 오페라·발레·음악·연극 등 각종 문화행사가 치러진다.
대중교통을 위해 광범위한 고속도로망이 갖추어져 있으며, 교외 및 기타 지역에서는 버스와 정기통근용 기차를 이용한다. 요하네스버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의 주요도시를 잇는 도로의 교차지이며, 거대한 철도역은 전국 철도체계의 심장부이다. OR 탐보 국제공항이 22㎞ 북동쪽에 있다. 1990년대,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는 것으로 거주지 이동 제한이 철폐되었기 때문에 직장을 찾아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옮겨왔지만, 대부분 일자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일부 실업자들에 의한 범죄가 많이 발생하여 도시의 치안이 극도로 악화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는 건조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600만 그루의 나무가 있는 세계 최대의 인공림(비상업적인)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수목은 도시의 북쪽에 광산을 위해 19세기에 심은 것이다.
배낭을 맡기고 파크스테이션을 나섰다. 도로는 바둑판 모양으로 잘 만들어져 있다. 거리에 서자마자. 난장판으로 열리고 있는 거리의 시장이다. 쓰레기들이 거리에 뒹굴고 있다. 흑인들이 보따리를 풀어 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주로 옷 종류다. 거리 시장이라기보다 피난민이 몰려있는 느낌이다. 백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모두 흑인들이다. 분위기도 삭막하다. 겁이 난다. 발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부지런히 걸었다. 고전 스타일의 성 메리교회가 무질서한 도시를 지키고 있다. 킹 조지 스트리트까지 나와서야 거리가 조금 한산해졌다. 우리는 Constitution Hill로 간다. 도시가 평평하지 않고 약간 경사져 있다.
Constitution Hill은 이 도시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중의 하나다. 이름이 이상하다. 헌법 언덕이라, 헌법 제판소가 있어서 그렇게 이름 되었나 보다. 여행자들은 이 오래된 요새의 성채에서 다양한 볼거리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는 요새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에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처음은 백인종을 위한 교도소로 사용되었는데 나중에는 흑인들을 가두고 고문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1906년에는 마하트마 간디가 투옥되었었고 와 만델라가 여기에 수감된 적이 있다. 요하네스버그의 로벤 섬이라고도 불린다. 4호 감방으로 악명 높았던 요새 감옥이다. 나중에는 여성 감옥도 추가되었다. 지금도 여성용 감옥이 요새 옆에 세워져 있다. 건물이 현대식이라 감옥 같지 않다.
1964년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관하고 있다. 우리는 이곳이 감옥 이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냥 방문했던 것이다. 입구 정면에는 남아공의 국기가 2개 세워져 있다. 흰색으로 소작하게 칠해져 있다. 오전이라 사람도 별로 없다. 건물 구석에 만들어진 찻집에서 아가씨가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다. 계단을 통해 성채 오르니 주변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까마귀보다 큰 부리가 뾰족하고 긴 새 들이 서너 마리 놀고 있다.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성채다. 동서남북 사면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한 바퀴 돌고 내려왔다. 온 시가지가 전부 내려다보인다. 반대편 입구로 나간다. 광장에는 시티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여기가 종점이란다. 교복을 입은 백인 학생들이 둥그렇게 모여 설명을 듣고 있다.
광장에 섰다. 조각상이 2개 있다. 사람이 끄는 마차상과 비틀어진 인간들의 군상이 만들어져 있다. 옆에는 헌법 재판소가 있다. 박물관이다. 입구에서 볼 수 있는 SOS로 씌어 진 헌사, 남아공의 공식 언어 11개로 씌어져 있다. 1994년 인종차별제도 폐지 전까지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벽에 쓰거나, 긁거나, 파낸 글씨들을 바탕으로 제작한 전용서체 ‘Son of Sam’은 가스 워커(남아공의 그래픽 디자이너)의 아프리카에 대한 심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원래 이름은 ‘Son of Sam’(now son of hope)으로 남아공 헌법재판소에만 찾아볼 수 있는 SOS( Son of Sam)는 남아공의 어두운 과거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아픔을 극복하고 지금은 모든 인종이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의 상징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 서체를 위해서 많은 정치범과 인권 운동가들이 수감되었다가 어디론가 살져버린 교도소의 고문실, 독방 등에 일일이 들어가서 벽에 씌어 진 글을 사진으로 담은 것이다. 무려 3000장을 넘게 찍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70년대 미국의 악명 높은 연쇄 살인자 데이비드 버코위츠의 별명인 Son of Sam이라는 글씨가 독방 한쪽에 새겨져 있는 걸 봤다고 한다. 나중에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밑에 now son of hope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희망으로 살리라’ 이런 뜻인 것 같다. 헌법재판소 앞에는 이 SOS를 볼 수 있다. 지금은 ‘무지개 나라’로 알려지고 싶어 하는 심정과 어울리게 총천연색으로 11개의 공식 언어가 이 SOS를 디자인 해 놓았다.
이 광장에는 요하네스버그를 여행 할 수 있는 시티 버스가 출발하는 장소로 시티투어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2011년 12월 10일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불타고 있다. 고개를 들면, 가까이에 타워가 눈에 들어온다. 260m 높이의 텔코 타워다. 이 타워가 세워져 있는 힐브로우(HILLBROW) 주변은 정부에서 지정한 백인과 흑인이 나란히 살 수 있었던 회색지대였다. 오늘날에는 폭력범죄와 무법지대로 알려져 있고 흑인 밀집 지역으로 전문가이드도 피하는 장소다. 우리는 언덕을 내려온다. 요하네스버그 미술관 방향으로 걸어 내려온다. 거리의 미용사와 노점상들이 많이 보인다. 모두 흑인이다.
언덕을 걸어서 내려온다. 공원이 나타난다. Joubert Park다. 분수대에는 물이 없다. 1906년에 만들어진 공원으로 보어전쟁의 영웅 Joubert 사령관의 이름을 다서 이름지었다. 요하네스버그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열린 공간이다. 최근 남아공에서 주버트 공원 프로젝트(JPP)’라는 이름으로 이 오랜 공원을 새 단장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주변의 문화적 사회적 분위기를 한층 북돋아주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요하네스버그의 지역 예술가, 건축가, 디자이너들은 물론이고 네덜란드의 공공 예술 단체 카스코란트가 합류했다. 초청된 네덜란드 아티스트들은 6주 동안 머물며 이곳에 자신의 노하우를 심어놓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벤치 디자인이 유명하다. 기존 펜스에 안과 밖을 소통할 수 있는 벤치를 설치한 것이다. 기존 펜스를 이용해서 만들었기에 다로 다리가 없는 의자들이다. 공원에는 할 일이 없는 흑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별로 분위기가 좋지 않다.
공원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미술관은 문이 닫혀있다. 유럽과 남아공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아프리카적인 색체가 느껴지는 그림과 조각품들이 많다고 한다. 여러 가지 조각품들이 미술과 옆에 방치되어 있다. 건물은 중후한 느낌을 준다. 한 바퀴 돌아 미술관 대문으로 나왔다.
직선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거리에는 상점들이 소박하게 이어지고 도로위에는 가판대가 설치되어 있다. Top of Africa라는 건물을 향해 걸어간다. 요하네스버그의 랜드마크다. 칼튼 센터에 있는 223m의 50층짜리 건물이다. 꼭대기에는 아프리카의 정상이라는 이름의 전망대가 있다. 요하네스버그 시내를 사방으로 내려다 볼 수 있다. 심심하고 단순해 보이는 건물이다.
만델라 탐보 법률 사무소로 간다. 넬슨 만델라로 알려진 그의 풀 네임은 '넬슨 롤리흘라흘라 만델라'이다.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아프리카이름인 '롤리흘라흘라(Rolihlahla)'는 아프리카어로 '말썽꾸러기'라는 뜻을 지녔다. 만델라는 그의 '롤리흘라흘라'라는 이름처럼 파란만장한 생을 살게 된다. 1918년 남아프리카 음타타에서 태어난 그는 1940년 대학에서 인종분리정책에 반대하는 학생회 활동을 하다가 퇴학을 당한다. 이후, 요하네스버그로 활동의 근거지를 옮겨 그를 평생 정치적으로 후원하게 되는 스승이자 친구 '월터 시술루'와 '올리버 탐보'를 만나게 된다. 이들과 함께 법학도의 길을 걷게 되면서 본격적인 '롤리흘라흘라'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1944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내에 청년동맹을 설립하여 흑인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만델라. 그는 1952년 '만델라와 탐보의 법률사무소'를 개업하면서 남아프리카의 냉엄한 정치적 현실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
만델라가 법률사무소를 개업할 당시의 남아프리카는 기차는 물론이고, 화장실, 수도 시설, 심지어는 해수욕장의 모래사장까지도 백인과 유색인의 사용을 엄격하게 구분할 정도로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가 극단적이던 시대였다. 간디의 영향으로 '비폭력'을 기반으로 한 투쟁 노선을 따르고 있던 만델라는 1960년 '샤프빌 대학살' 사건을 경험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샤프빌 대학살은 1960년 3월 21일, 인종분리주의 정책에 반대하고자 시위하던 아프리카인들이 백인 경찰에게 무차별 사격을 당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만델라는 이 사건을 겪으면서 '비폭력'이라는 간디의 수단으로는 남아프리카의 백인 위정자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결국, 그는 온건한 투쟁 노선을 버리고 '남아프리카 만델라'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인터넷에서) 우리는 이 법률 사무소를 찾지 못했다. 당시 낡은 건물에 있는 작은 사무소를 무슨 재주로 찾는단 말인가? 고급스러운 건물에만 눈을 돌리고 있었다. 총장의 집, 1950년대 만델라와 탐보의 집, 남아공의 첫 흑인 법률사무소는 사진에서 겨우 찾아봤다. 왼쪽 창문 꼭대기에 아직도 당시의 사무소 표시가 남아있다.
법률사무소는 못 찾고 백인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 대법원 건물만 발견했다. 헤매다가 시티 홀 도서관 건물을 찾아간다. 이 광장에는 화염병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는 피켓을 든 아주머니 동상이 만들어져 있다. 피켓에는 ‘Democracy is Dialogue’ 라고 씌어 있다. 시청사는 도서관과 연결되어 있다. 주변은 깨끗한 거리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다. 작은 광장에는 에전에 사용하던 마차와 기중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반대편에는 우체국 건물이 있다. Rissik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이 길로 북으로 올라가면 파크 스테이션이 나온다.
월트 시슬루와 그의 아내 알버티나 시술르의 동상을 만났다. 이들 부부는 인권운동가로 탐보와 만델라와 함께 비폭력 저항, 파업, 보이코트 그리고 행진 등의 캠페인을 펼쳤고 그 과정에서 월트 시슬루는 경찰에 체포되어 로빈 섬에 종신형을 선고받고 갇히게 되었다. 1989년 10월 26일 감옥살이를 끝내고 석방되었다. 1991년 6월 ANC(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부회장을 맡기도 하며 인권 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의 아내도 인권운동가로 남편과 함께 길을 걸었고 5자녀를 낳아 잘 키웠으며, 죽기까지 ‘흑인의 어머니’라고 불리며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투쟁한 사람이었다. 동상의 무릎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앉을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
다이아몬드 빌딩이 보인다. 이 빌딩은 특이한 형태와 반짝이는 특징 때문에 다이아몬드 빌딩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빌딩 전체가 유리 거울로 둘러싸여 있다. 술공장을 만났다. 전통있는 맥주 공장이다. 전시관도 있다. World of Beer이다. SAB(The South African Breweries)라는 약자로 표시되었다. 1895년에 세워진 맥주공장이란다.
서쪽으로 더 걸어가 Mary Fitzgerald Square로 간다. 뉴타운 지구(Newtown Precinct)는 과거 브릭필즈(Brickfields)로 불리던 곳으로 페스트를 박멸하기 위해 100년 전에 소방대가 말 그대로 완전 소실시켜 버렸다. 오늘날 문화와 창작의 열기가 넘치는 안전한 장소로 변모한 뉴타운에서는 아프리카뮤지엄 (Museum Africa)과 마켓시에터(Market Theatre), 뮤직센터(Music Centre), 국립디자인예술센터(National Design and Craft Centre), 월드오브비어(World of Beer), 노동자박물관(Worker’s Museum), 키피스 재즈클럽(Kippies Jazz Club) 등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 짐마차들의 정류장으로 사용됐던 메리 피츠제럴드 광장(Mary Fitzgerald Square)에는 콘서트 무대와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섰고 영화 페스티벌, 전시회 등이 열리고 있습니다. 메리 피츠제럴드 광장을 이렇게 변모 시킨 것은 정부와 민간이 동반자 관계를 맺고 진행하는 블루아이큐(Blue IQ)의 주요 프로젝트 덕이란다. 양철지붕으로 길게 느껴지는 아프리카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입장료는 무료다. 안으로 들어가니 만델라의 젊은 시절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옛날에 사용하던 마차도 보이고 전통가옥도 있다. 2층에는 옛날부터 사용하던 카메라들이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다. 간디의 사진도 보인다. 간디 홀이라는 건물 사진이 있다.
마지막으로 만델라 다리를 향해 걸었다. 철길 위로 세워진 다리는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새로 만들어진 다리인데 그 아래는 오래된 기차 화물칸들이 엄청 줄 세워져 있는데 거대한 고물상 같은 느낌이다. 움직이는 기차는 보이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 다시 파크 스테이션으로 왔다. 오후 1시다. 슈퍼에 들어가 콜라를 샀다. 치킨 집에 들어가 치킨 6조각을 주문해서 콜라와 함께 먹는다. 할 일이 없어서 터미널 2층으로 올라가 한적한 장소 바닥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치안 유지 경찰이 많이 보인다.
오후 3시에 출발하는 시티프리워킹 투어를 신청했다. 6명이 참석했다. 착해 보이는 여자 청년 가이드가 우리를 안내했다. 1번 코스와 2번 코스가 있는데 1번은 칼튼 센터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고 2번은 파크 스테이션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다. 오후에는 2번 코스 밖에 없단다. No work, No money ! 라는 말도 보았다. South Point 라는 예쁘게 색칠한 건물도 만났다. 거리를 걷다가 벽화로 가득 그려진 골목길도 지나간다. Wits Art Museum 빌딩도 지나간다. 흑인 여자 교통 경찰관이 힘들게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Jorissen Place 66번지 건물도 인상적이다. Thuso House 건물도 만났다. 언덕에 공원이 있다. Theatre Park이다. 둥그런 국립극장 건물이 오후 햇빛에 반사된다. 금광노동자 3명이 만들어져 있다. 침례교회 건물이 그 밑에 이어진다. 팁으로 10란드를 주고 끝이 났다. 무료가 아니라 팁을 주는 분위기다. 버스를 타려고 기다린다. 6시 30분에 버스를 탄다. 날이 어두워진다. 도시는 빈 건물이 많다. 남아공에는 수도가 3개 있다. 프리토리아(행정수도), 케이프타운(입법수도), 블룸폰테인(사법수도) 우리 차는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에 잠시 멈추더니 또 달려간다. 국경에 도착했다. 캄캄한 밤이라 주변은 잘 모르겠다. 출국은 간편하다. 짐바브웨 입국 스티커 30$을 지불했다. 이제 짐바브웨로 간다. 밤새 달려간다. 휴게소 화장실에 잠시 멈춘다. 내일 아침이면 짐바브웨를 달리고 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