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05월 망해암 경유 삼양농원 ( 좋은집 앞개울)
사진제공: 임구광권사 소유자 : 문화영
안양 1928~1970 년도 *안양역전앞 이야기* 출판 공개예정
전재준 회장, 한 도시의 양심을 남기다
— 안양이 기억해야 할 기업윤리의 기준-
안양·군포·의왕 지역은 한때 대한민국 제지 산업의 중심지였다.
한국제지, 쌍용제지, 범신제지, 대왕제지 등 수많은 제지 공장에서
S1지, 화장지, 포장지, 신문지가 쏟아져 나왔다.
산업은 성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감당되지 못한 환경과 노동의 그늘이 존재했다.
수암천 병목안, 삼양농원 인근 하천에는
하수도로 분류된 폐지 섬유 찌꺼기, 이른바 ‘물종이’가 개천을 뒤덮었다.
물에 젖어 고착된 종이 덩어리는 마르며 굳어졌고, 안양역전앞 주민들은
연탄 이전 시절에는 일부 가정에서 땔감으로 사용될 만큼 열악한 환경의 산물이 되었다.
환경 보호라는 개념도, 노동자의 인간적 대우라는 인식도
아직 제도화되지 못했던 시대였다.
필자가 안양역전 앞 현대툴파크(구 현대공업사)에서
기계·부품 거래를 이어오며 이 산업의 현장을 지켜본 이유는,
이 모든 시간과 풍경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안양시가
고(故) 전재준 회장의 기부 뜻을 기리는
‘기부의 날’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은
단순한 미담을 넘어 다시 생각해 볼 가치 있는 사건이다.
삼덕제지는 대한민국 산업사의 한복판에 서 있던 기업이었다.
1956년 10월 17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안양 공장을 직접 시찰할 만큼
국가적 기대를 받은 대표적 제지 기업이었다.
백상지와 포장용지, 신문지를 생산하며
평택·천안·함안으로 공장을 확장했고,
수백 명의 근로자가 일하던 현장은
안양 시민들에게 자부심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삼덕제지를 다시 불러내는 이유는
산업적 성공 때문만은 아니다.
이 기업을 일으킨 전재준 회장이 남긴 마지막 선택 때문이다.
한국제지와 비교되는 이유이기에
공장 폐쇄 이후, 피난민 이셨던 그는 흔히 선택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땅을 개발하거나, 자산을 극대화하거나,
개인의 부로 전환하는 대신 전혀 다른 결정을 내렸다.
2006년 3월 11일,
83세의 노구로 안양시청을 직접 찾은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땅은 내 개인의 노력만으로 번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와 시민의 땀이 스며든 땅이니,
다시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는 시가로 수천억 원에 달하던 공장 부지를
아무 조건 없이 안양시에 기증했다.
이 결정은 단순한 재산 이전이 아니었다.
도시에 대한 신뢰의 이전이었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 이전이었다.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말은 흔하다.
그러나 그 말이 실제의 땅과 시간,
도시의 미래라는 실체로 증명되는 경우는 드물다.
전재준 회장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기업윤리의 기준을 남긴 인물이었다.
그는 기업인이기 이전에,
도시의 미래를 먼저 내어준 시민이었다.
필자가 이 인물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개인적 인연 때문만도 아니다.
필자의 부친 역시 일정 시절 초지부에 근무했고,
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문순재 권사가 집안의 형님이었으며,
고향 친구 한대덕의 큰아버지 또한 삼덕제지에서 일했다.
이 도시는 수많은 개인의 삶과 노동,
그리고 그 책임을 감당한 한 기업인의 선택으로 이어져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분명한 공헌을 남긴 인물의
탄생 100주년조차 제대로 기념하지 못한 현실은
안양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도시는 개발로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존경과 기억이 사라진 도시는
결코 성숙해질 수 없다.
공헌을 기억하지 않는 사회에서
다음 기부와 다음 헌신을 기대할 수는 없다.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가치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 안양시와 관계기관,
그리고 지역의 문화·경제 단체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역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사람을
과연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전재준 회장을 기리는 일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안양이라는 도시의 품격과 윤리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며,
다음 세대에게
“이 도시는 무엇을 존중하는가”를 묻는 일이다.
이 질문에 철저한 반성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 침묵 자체가 안양시의 얼굴로 남을 것이다.
안양시민
안양문화원이사
문화영 글
~안양역전앞 이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