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복령 가는 길...
백두대간 백복령을 가기 위하여 중부고속도로 호법분기점을 넘어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쇠돌이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지체와 서행의 연속이다.
난생 처음가는 영동고속도로인데...
활짝 웃는 얼굴로 반겨주지 않구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행렬로 반겨주는구나...
자주 가지 못하는 백두대간길이기에
대관령까지 갈려구 마음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건만..
사랑하는 백두대간은 쉬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닭목령까지 진행을 하고 하산을 하여야 겠다.
진부 분기점을 지나 국도를 따라 임계면에 도착하니 늦은 4시다.
백봉령까지 가는데 20분정도 걸리니까..
산행은 4시 30분쯤 되어서 시작될 것 같다.
임계에서 10여분 올라가니 백복령 휴게소가 나온다.
저녁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휴게소에 들러 만두 1인분을 서서 배낭에 넣고
다시 출발을 한다.
꼬불 꼬불한 고갯길을 다시 10여분 올라가니 표지석도 선명한 백복령이다.
고개 마루에는 '아리랑의 고향 정선입니다'라고 쓰여진 큰 표지석이 서 있다.
백복령 들머리에 쇠돌이를 주차시킨 다음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닭목령을 목표로 출발...^^
⊙ 자병산의 아픔...
배낭을 메고 양손에 스틱을 잡고 들머리를 바라보며 '오늘도 백두대간 무사종주를 기원하며" 두손 모아 간절히 기도를 한 다음 나무 울타리를 넘어 바람결에 휘날리는 표지기를 따라 들머리에 들어 서자 마자 반겨주는 것은 '수시폭파'라고 적힌 몇 개의 팻말이다. 경고성 팻말은 숲속의 늦은 오후를 더욱 음산하게 만든다.
자연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발길로 앞으로 나아 가자 자병산 석회석 광산 구역의 발파위험을 알리는 경고판이 또 나타난다.
백복령에서 석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여기서 좌회전을 하란다. 무시무시한 경고를 무시하고 자병산으로 향한다. 잘려나간 나무 밑둥 너머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자병산의 흉물스런 모습이 드러난다.
봉우리는 이미 잘려져 산의 모습은 없어 지고 골짜기 아래 부분까지도 파헤쳐져 더 이상 아름다운 산의 모습은 아니다.
차마 얼굴을 들고 바라보지 못하겠다. 인간의 자기 중심적인 개발 논리에 밀려 반신불수가 된 백두대간이다.
지도에는 자병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앞으로는 '자병산터, 인간의 우쭐함 때문에 없어짐' 이라고 표시해야 할 것 같다. 자병산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사라진 자병산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 생계령 가는길...
아픈 가슴을 추스르며 차례로 번호가 매겨진 철탑을 따라 걷는다. 이 길은 사라진 자병산을 통과하는 옛 대간길 대신 새로 생겨난 대간길이리라.
눈 여겨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이 지역이 지리학상으로 임계카르스트 지형이란다. 석회암지역이 비에 의해서 용식되어 땅이 함몰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이 곳 말로 '쇠곳'이라 한단다.
이번 구간종주는 닭목령까지 가야하는 긴 구간인지라 점점 저물어가는 짧은 가을 햇님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걷는다.
중간 중간에 나타나는 임도에는 발톱이 두 개인 동물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이어지고 있다. 백복령을 출발한지 1시간 20분만에 생계령(640m)에 도착한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자연 발생적인 고갯마루인 생계령에도 아직까지 뚜렷하게 길이 나 있다. 산림청에서 세운 이정표에는 백복령 5.6Km, 석병산 6.25Km라고 적혀 있다.
하늘을 가리는 숲속의 길을 벗어 나 잠시 전망이 트이는 산마루에 올라 선다. 막혔던 숨이 터지는 기분이다.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스러져 가는 나뭇등걸에 걸터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날은 점점 어두어져 랜턴 불빛을 의지하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데...
갑자기 바람부는 소리가 나뭇 가지를 헤치며 매섭게 들리기 시작한다.
야간 산행으로 삽답령까지 진행할려고 하였는데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을 헤치며 진행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 가을 밤 산마루에 앉아...
가을 밤 산마루에 앉아..
길 잃어
외로운 사랑
산기슭 옹달샘 앞에
옷깃을 여미었네
지나간 추억
아린 기억의 수면위로
쓸쓸히
가랑잎은 떨어져 내리고
꿈 찾아 헤매던
눈썹 같은 초승달
바람 이는 산마루 기웃거리며
밤 이슥도록,
등불 하나 밝히고
떠난 님 하염없이 기다려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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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칠만한 적당한 곳을 찾아서 빠르게 걸어가는데 전방에 평평한 곳이 나타난다.
오늘은 여기서 머물기로 하고 배낭을 내려놓고 부리나케 텐트를 친 후 침낭안으로 들어가 누워 있는데, 나뭇 가지를 때리는 매서운 바람소리는 요란하기만 하고 텐트는 바람결에 휘날려 펄럭펄럭거린다.
바람 소리에 잠 못 이루는 초보 대간꾼의 밤은 깊어만 가는데...
텐트 옆으로 획 지나가는 섬찍한 발자국 소리에 스틱을 잡은 손목에
힘이 잔뜩 들어만 가고,
외롭게 나 홀로 떠 있는 초승달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쉬고 않아 시계를 자꾸만 처다 보지만 시간은 이다지도 가지 않는지, 자정은 가고 세벽은 언제나 오려나...
⊙ 석병산의 대간꿈...
기나긴 밤을 새하얗케 지새우고 차가운 세벽 공기를 마시며 배낭과 텐트를 정리하고 석병산을 향해 랜턴을 켜고 출발을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슬이 하나도 없어 진행하기가 훨씬 편하다.
900.2m봉을 넘어서자 헬기장이 있는 908m봉이 나타난다. 멀리서 봐도 마치 돌로 만든 병풍을 둘러 놓은 듯 하다. 이른 아침에 보는 석병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을 황홀케 하고 석병산의 유래를 알 것만 같다.
고병이재를 지나고 헬기장을 2개를 넘어서니 두리봉과 석병산 갈림길에 다다른다.
갈림길에서 석병산은 5분 거리에 있다고 적혀 있지만 금방 나온다.
석병산(1,055.3m) 정상은 작은 바위 봉우리로 되어 있고 조그만 표지석이 외롭게 서 있다.
바람부는 석병산 정상에 서서 넋을 잃고 백두대간의 연봉들을 바라다 본다. 마치 천군만마가 열병이라도 하듯 대간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도열해 있는 듯 하다.
삽당령에서 올라 오셨다는 산악회 대간팀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석병산 내리막 길을 잰 걸음으로 떠난다.
아마도 석병산(石屛山)은 자줏빛 병풍을 둘러세워 놓은 듯한 자병산(紫屛山)과 더불어 아름다운 백두대간을 보다 더 아름답게 하였으리라!
그래서 없어진 자병산의 모습이 더욱 궁금하고 그립다.
⊙ 가짜 두리봉을 지나니 삽당령일세....
북진하던 대간 마루금은 석병산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두리봉을 깃점으로 또다시 남서진한다. 석병산을 떠나 20여분 만에 두리봉(1,033m)라고 적힌 이정표가 갑자기 나타난다. 석병산까지는 1.5Km라고 적혀 있는데 지도와 다르다. 이 두리봉은 가짜 두리봉이다.
가짜 두리봉에서 25분 정도를 걸으면 펑퍼짐한 봉우리가 나오는데 여기가 진짜 두리봉이다. 대간 길은 두리봉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산림청의 두리봉 이정표는 엉뚱한 곳에 세워 놓은 것이다.
엷게 퍼진 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볕이 나와 숲속 깊숙이 비춰 준다. 조릿대라 불리기도 하는 산죽길을 따라 마냥 걷는다. 삽당령으로 가는 길은 숲속의 오솔길처럼 매우 이쁜 길이라 걷기가 편안하다. 지금까지는 즐거운 산행길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임도에 내려서니 계곡 사이로 시원한 물이 흐르고 있다.
흐르는 계곡물에 주저않아 머리를 감고 늦은 세수를 한다.
임도를 지나 평평한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눈 앞에 삽당령이 나타난다.
삽당령 고갯마루에는 표지석과 이정표가 큼지막하게 각각 서 있고 고갯마루를 넘나드는 차량들은 쌩쌩 잘도 넘어 간다. 삽당령 주막에 앉아 할머니에게 동동주 한잔을 달라고 하니 잔으로 팔지 않고 병 채로 판단다. 강원도 옥수수로 만든 시원한 동동주 한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동동주 한 병을 사서 전병을 안주 삼아 몆잔을 맛 있게 마시고, 남은 동동주를 허리춤에 차고 닭목재를 향해 출발을 한다.
⊙ 닭목령을 향하여...
삽당령 주막에서 산 동동주를 허리춤에 차고 오늘의 목적지 닭목령을 향해 길을 떠난다. 몸은 다소 지쳤지만 산길은 걸을 만하다. 1시간 정도 가니 대용수동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곧장 시야가 탁 뜨인 방화선 작업지가 나온다.
방화선은 사계 청소 하듯 깨끗하게 벌목되어 있지만 곳곳에 큰 소나무들이 남아 있고 길 따라 억새 풀들이 이리저리 파도를 치듯 바람 따라 움직인다.
방화선 너머로 석두봉에서 화란봉으로 이어 지는 대간 능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시야가 딱 트인 방화선에 철퍼덕 주저않아 동동주 한잔 마시고 전병 하나로 입가심을 하니 천하일미가 따로 없다.
지금까지 참으로 많이 걸어왔고 이제 꿈꾸는 백두대간도 이젠 몇 구간 남지 않은 것 같다. 진부령에 다가갈 수록 집에서 점점 멀어져만 간다.
한 번 올 때마다 마음에 욕심이 생겨 다소 무리라 싶을 정도로 걷고 잠을 자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다.
오늘도 역시 산에서 야영을 하고 또 걸어 석두봉을 지난다.
소기동 갈림길을 지나 정말 힘들게 힘들게 화란봉(1,069.1m) 정상을 향해 오른다.
화란봉 이정표에 누가 조그맣게 매직 펜으로 적어 놓았다. 조금만 참자고....
그 말이 무척 위안이 된다. 누군가가 여기까지 힘들게 와서는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한마디 적어 놓았으리라. 오늘의 목적지가 눈앞에 있는데 조금만 참고 가자.
화란봉의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 오니 닭목이 마을의 넓은 밭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햇볕에 쨍쨍 내리쬐는 발목 구간을 지나니 큰 소나무 길이 이내 나타나고 바로 닭목령에 내려 선다. 오늘의 힘든 대간 길을 마감한다.
1박2일을 씻지 않았기 때문인지 몸에서 땀 냄새가 지독하다.
물을 찾아 씻기 위해 마을쪽으로 300m 쯤 내려가니 조그만한 개울이 나온다.
개울에 주저 않아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수건에 물을 뭍혀 땀을 씻어내고 상의를 벗어 빨아 입으니 땀 냄새가 조금 가신듯 하다.
다시 닭목령으로 돌아와 주저 않아 30여분 기다리니 강릉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마을에서 오고 있다.
쇠돌이 만나기 위하여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우고 강릉으로 향해 출발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