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탕헤르에서 배를 타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의 타리파 항에 도착을 한 시간이 열시가 조금 넘은
시간으로 한 시간이 체 걸리지 않는 거리이다.
타리파 항의 모습들
이곳도 오랫적부터 군사적 요충지라서 망루도 보인다.
항구의 입국에 있는 Punta del Santo..구글지도에 이렇게 나와 있다....푼타는 우리나라의 곶이라는 의미인데...
항구의 이런 저런 모습들
등산로 산책코스도 보이고...
로마시대나 중세 시대에 건축된 성벽도 보인다.
오래된 건물들의 흔적도....
지브롤터 해협은 폭이 14㎞ 정도이고 깊이가 300여m가 넘는데 지브롤터 해협은 지중해와 대서양의 물이 드나들
면서 만들어진 물길인 셈이다.
1억5천만 년부터 6천5백만 년 전까지는 현재의 지중해가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테티스라는 바다
로 태평양과 대서양이 연결된 바다였으나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 반도가 연결되면서 거대한 만(灣)이 형성되
었다.
이후 서쪽에서 이베리아반도(스페인)와 아프리카 대륙이 충돌하면서 거대한 만이 형성되면서 만 안에 갇혀 있던
바닷물은 태양열에 의해서 증발이 되기 시작하면서 바닷물이 유입되자 못하면서 테티스해(지중해)는 거대한 소금
호수로 변해가다가 결국은 소금사막으로 수십만 년 동안 있게 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이 유라시아 대륙과 붙으면서 지중해가 호수기 되어 버려서 결국은 소금평원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간빙기(間氷期) 때인 550만 년 전에 빙하가 녹으면서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대서양의 물이 시속
100㎞의 속도로 100년 동안이나 지중해로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소금물로 비중이 높았던 지중해의 물은 대서양으
로 폭포처럼 빠져 나가는 순환활동이 10회 이상 이루어지면서 가면서 바닥을 깎아서 현재의 지브롵터 해협이 만
들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지중해는 바닷물이 증발하는 속도가 대서양보다 높기 때문에 대서양의 물이 유입되고 있다고....
간빙기에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550만 년 전에 지브롤터 해협이 생기게 되었다고...
뭐 이런 것을 다 알 필요는 없지만 가능하다면 알아두어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관광이 아닌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지나가는 곳의 역사와 지리 인문 등등을 알아보아야 하는 것이니...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니 열시 반으로 본래 그라나다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직 버스와 스페인 현지 가이드도
오지 않았다. 해협에서 바람이 분다고 하여 세 시간 정도를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도착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 사이에 터미널 앞에 있는 매점에서 빵과 음료수로 점심을 때운다. 원래대로라면 탕헤르에서 점심을 먹고 배를
탔어야 하는데 바람 때문에 여러 가지 차질이 생기고 만 것이다.
버스는 한 시정도에 도착을 하였는데 가이드는 오지 못하고 그라나다에서 만나게 된다고 한다.
입국절차를 밟기 위해서 세관으로 가는데 비바람이 심하게 분다....이런 날씨면 배가 뜨지 않는다고....
배가 뜨지 못하면 모로코에서 할일 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타리파 항구의 세관
헴버거 비슷한 빵과 콜라로 점심을 때우고...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로 출발하는데 지중해 해안도로를 끼고 달리는데 보이는 풍경들이 모로코에서 보던 풍경들
과는 너무 다르다.
바닷가를 바라보는 언덕에 있는 집들은 별장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풍광이 빼어나다.
그리고 집들도 모로코 쪽에서 본 집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서 이곳이 유럽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모로코와 스페인의 국민소득은 3,107달러(127위)와 31,820달러(31위)로 소득수준이 열배나 차이가 나고 국민총
생산도 1,200억 달러와 1조5천억 달러로 열배 이상 차이가 나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라나다까지 세 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가면서 해변가로 지브롤터와 말라가가 보이는데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이
라면 이곳도 반드시 들러서 가는 곳이다.
타리파에서 그라나다까지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모로코의 페스에서 출발한 시간이 새벽 4시 였으니...열두 시
간을 이동한 셈이다.
타리파를 출발하는데 비가 내린다.
길가에 보이는 아파트..늘 보던 아파트도 오랫만에 봐서리..
별장처럼 생긴 집들이다.
길가의 풍경들
해안가와 어울어진 풍경이 그림 같다....버스차창을 통해서 찍은 사진이어서 어둡게 나왔다.
해변을 끼고 있는 집들... 지브롤터를 보면서 지난다.
우리가 내린 곳은 지브롤터에서 조금 떨어진 타리파(Tarifa)라는 곳인데 지브롤터 해협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인
지브롤터는 지금도 영국의 영토로 스페인과 영국사이에 이곳을 두고 분쟁 중이다.
지브롤터(Gibraltar, 아랍어: جبل الطارق 자발 앗다륵)는 이베리아 반도 남부에 있는 영국의 해외 영토로 면적은 6.8
km이다.
지브롤터...건너편은 스페인이다....구글에서
지브롤터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이 지점을 두고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민족이 쟁탈전을 벌인 격전지였는데, 711년에 이슬람 왕조인 우마이아 왕조의 무장(武將)이었던 타리크 이븐 지
야드가 무어인(아프리카인)을 거느리고 이곳을 점령하였으며, 이를 거점으로 하여 에스파냐로 쳐들어갔다. 로마시
대까지 헤라클레스의 기둥, 칼페산(山) 등의 이름으로 알려졌던 이 지점은 이때부터 타리크의 산, 즉 자발 타리크
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것이 지브롤터라는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여기를 둘러싸고 에스파냐와 이슬람국가 사이에 공방과 쟁탈이 계속되었는데, 1462년 스페인이 이곳을 탈
환하므로 인해서 이슬람의 점령은 끝나게 되고, 1501년에 이사벨 1세가 스페인령으로 병합했다.
그 후로 모든 점령자들이 이곳을 요새로 삼았으며 . 그러나 1704년 스페인의 왕위계승 전쟁에 개입하였던 영국의
조지 루크 경이 지브롤터를 점령했으며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에 의해 이곳을 정식으로 영국에 양도하게 되었
다.
그러나 스페인은 이곳을 재탈환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1830년에 는 영국의 직할 식민
지가 되었다. 그 후 수에즈 운하의 개통으로 지중해가 동부와 아프리카 남부 아시아에 있는 영국 식민지들로 가는
중요한 통로가 되므로 영국에게는 지브롤터의 중요성이 더 커지게 되었다.
그 후로도 스페인은 영국으로부터 지브롤터를 돌려받기 위해서 노력을 하였으나 1967년 영국이 지브롤터에서 주
민투표를 실시하여 식민지 주민들에게 스페인의 통치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를 물었다. 투표 결과 압도적인 표차(1만 2,138 대 44)로 영국을 지지하는 바람에 아직도 영국령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스페인도 지브롤터와 마주 보고 있으며 지브롤터의 타리크 산과 더불어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으로 일컬어
지는 몬테 아초(Monte Hacho)산이 있는 모로코의 세우타 지역을 스페인령으로 두고 있어서 모로코와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 중이니....
해라클레스의 두 기둥이라고 불리는 지브롤터의 타리크 산과 모로코의 세우타에 있는 몬테 아쵸
대륙과 대륙을 가로지르는 해협이 세 군데가 있는데,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사이에 있는 베링해협, 그리고 아시아
와 유럽을 가르는 터키의 보스포러스 해협, 그리고 아프리카와 유럽 사이에 있는 지브롤터 해협이다.
베링해협은 보통사람들은 건너 갈 수 있는 해협이 아니므로 여행객의 입장에서 건너볼 수 있는 해협은 지브롤터
해협과 보스포러스 해협으로 운이 좋게도 두 개의 해협을 다 건너 보게 된다.
지브롤터 해협에 대해서 아무런 상식이 없다면 이곳도 바다의 여느 바다의 한 부분일 뿐이겠지만 이 해협이 어떻
게 만들어진 것까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지브롤터에 발을 디뎌보지 못한 것이다.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들...가는 길도 여앻의 일부이니...
남쪽으로 지중해를 끼고 있는 언덕이니 최상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출발한 지 한 시간 좀 지나서 쉬는 휴게소 주변...이름 모를 노란 꽃들이 산을 뒤덮고 있다.
맞은 편에 보이는 마을들
어느새 하늘도 맑아지고...
기회만 있다면 인증샷을...
다시 이런 경치를 보면서...
그림 같은 동네와
골프장도 보이고...
의미도 없고 금방 잊어버릴 것이지만 이 도시의 이름을 알아보기 위해서 구글지도를 본다.
이쪽은 말라가 라는 쪽인 듯...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들러보는 곳이라고...
이제 해변가가 아닌 내륙으로 들어서서...
보이는 나무들은 올리브 나무들이다....스페인은 올리브 최대 생산국이라고
올리브 나무를 앞으로 질리도록 보게 된다.
산을 전부 올리브 나무로 심어 놓은 곳들이 많다.
또 비가 오고...피곤이 몰려오다가
날이 개면서 피곤이 날아가버린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4시 정도로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는데 숙소가 있는 곳이 그라나다시내와는 좀 떨어져 있
는 곳으로 호텔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주택가 비슷한 곳이고 호텔로 모로코에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고 시설들도 낡았다.
이곳에서 만난 현지가이드가 앞으로 스페인에서의 숙박시설들은 이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한다. 실망이 크지만 유
럽의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니 감수할 수밖에 없다.
모처럼 일찍 호텔에 도착하는 바람에 시간에 여유가 생기는 바람에 각각 팀별로 저녁 식사에 맥주를 곁들이면서
오랜만에 지금까지의 여행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회포를 푼다.
우리도 이번 여행에서 일정이 너무 강행군이고 이런 여행들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걱정들을 많이 했으나 지금까지
컨디션이 좋은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한다.
궁궐처럼 넓은 숙소만 보았었는데... 객실이 좁다.
지금까지 힘든 여행을 잘 지내고 온 것을 자축하면서
처음으로 느긋한 시간을 가진다.
오늘 저녁에 그라나다의 야경과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옵션이 있는데 가려는 사람들이 적어서 옵션
이 진행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쉬운 일이다....
옵션으로 들어 있는 관광은 반드시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데...
그라나다의 구시가지인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보는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인터넷
지붕해를 끼고 그라나다로 가는 길의 풍경들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들이다.
내륙으로 들어가면서 보이는 풍경들...올리브나무들
헤라클레스의 기둥(Pillars of Hercules) - 이베리아 반도
2400년 전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거대하고 경이로운 제국의 심장인 아틀란티스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이 있
는 해협의 서쪽”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지나 더 먼 바다로 나가면
바다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 배는 깊이를 모르는 어둠 속으로 떨어져 죽는다고 믿어 오고 있었다. 천동설이 당
시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삶과 죽음의 관문이 되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땅 가운데 있는 바다, 지중해(地中海)와 경이로운 제국 아틀란티스가 있어 아틀란틱 오션(Atlantic Ocean)이라고
불리우는 대서양을 연결하여 주는 좁은 해협, 지브롤터해협이 있다.
헤라클레싀의 기둥과 헤라클레스
바람둥이 제우스가 외도로 낳은 아들에게 "헤라여신의 영광"이라는 뜻의 헤라클레스(Hercules)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지만 그가 계속되는 암살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12공업(헤라클레스의 12功業 이라고 한다.)을 이루
어야 하는데 그 중에 10번째가 서쪽 땅에 있는 손.발이 6개에 목이 3개인 게리온이라는 괴물이 기르는 소를 잡아
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하여 헤라클레스는 헤스페리데스 동산을 넘어 아틀라스 산맥을 건너가야 했다. 거대한 산을 오르는것이 귀
찮아진 헤라클레스는 괴력으로 산줄기를 없애버렸다.
당시 바다를 막고 있던 아틀라스 산맥이 갈라지며 유럽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나뉘어 지고, 이 틈새로 대서양과
지중해라 불리우던 바다가 서로 만나게 되는 물목, 즉 지브롤터해협이 생긴 것이다. 이때 부서진 산의 한 자락이
스페인 내의 영국령 지브롤터에 우뚝 서있는 바위산 타리크이고, 다른 하나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내에 있는 스
페인령 세우타에 있는 몬테 아쵸(Monte Hacho) 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