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령 얼뜨기 현철이의 독설과 눈물


2014-02-24
소통령 얼뜨기 현철이의 독설
“박근혜·김정은 공통점은 오만과 독선” YS 차남 김현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한양대 특임교수가 23일 박근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공통점을 지적하며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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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 최고의 실세 김현철 구속
1997년 5월 당대 최고의 실세 김현철이 구속됐다. 현직 대통령 아들의 구속은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청와대와 내각은 물론, 검찰과 안기부 수뇌부를 꽉 잡고 있는 ‘소통령’ 앞에서 너나없이 설설 기었다. 김영삼(YS) 대통령 본인도 자신을 빼닮은 차남의 전횡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의 비행을 대통령에게 직보했던 박관용 비서실장마저 청와대를 떠난 이후 현철을 가로막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심재륜 대검 중수부장이 현철을 잡아넣었다. 죄명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알선 수재 및 조세 포탈).
“대통령이 울고 있어요(그러니 봐달라)”라는 민정수석의 애소를 뿌리치며 현철을 구속한 심 부장의 쾌거는 그의 기개와 탁월한 수사력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김현철 구속’은 동시에 ‘구속을 하지 않으려던’ 시도의 아이러니한 부산물이기도 하다.
비뇨기과 의사 박경식씨와 그가 업무용으로 촬영한 비디오테이프가 아니었다면 김현철 구속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YS의 주치의이기도 했던 의사 박경식이, 김현철이 YTN 사장 임명을 운위하는 녹화 테이프를 까발리지 않았다면 ‘심재륜 중수부장’ 자체가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사진 한 컷
한보 금융 부정을 수사하던 검찰은 애초 김현철을 무혐의 처리했다. 26시간에 걸쳐 조사했다지만 실은 시늉만 낸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 사과하는 것으로 한보에 대한 의혹투성이 5조7000억원 특혜 대출을 덮으려고 했다. 그런데 박경식이라는 의사가 김현철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고객으로 병원에 왔던 김현철의 통화 장면 녹화 테이프를 공개한 것이다. 달리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게 됐다. 현철의 국정 농단이 여실히 증명됐고, 민심은 들끓었다. 민란 우려까지 제기되자 검찰은 재수사를 공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인천지검장으로 나간 지 2개월밖에 안 된 심 검사장을 불러들여 사건을 ‘얼버무리라’고 맡긴 것이다. 그런데 심재륜 수사팀은 여론이나 무마하고 치웠으면 하는 윗선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결과적으로는 녹화 테이프 하나가 역사를 바꾼 셈이다.
전말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동영상의 위력은 이처럼 대단했다. 언뜻 소품에 불과한 듯하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메가톤급 폭발력을 갖는다.
‘김현철 게이트’ 5년 뒤 역시 현직 대통령의 아들(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홍걸)이 구속되는 ‘최규선 게이트’의 추동력도 녹취록과 테이프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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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령 얼뜨기 현철이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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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언저리에서]
2004/10/14
“특수1부장입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김현철씨가 자해를 했습니다. 송곳으로 배를 4~5차례 찔렀습니다.”
“저런,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까?”
“예, 인근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수감에 지장 없겠다는 의사 진단에 따라 방금 서울구치소로 입감시켰습니다. 사회적 지위 등을 감안, 긴급체포 뒤 수갑을 채우지 않은 것이 화근이네요.”
9월 11일 토요일 새벽 2시 반. 전날 비교적 일찍 퇴근해 한참 곤히 잠들어 있을 때 난데없이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저를 바짝 긴장시켰습니다. 문민정부 ‘소통령’의 자살 기도라, 충분히 1면 제목으로 뽑힐 만한 뉴스거리였기에 부랴부랴 회사 야근 데스크에게 보고했죠. 하지만 서울시내 중심부에만 배포되는 50판 마감시간도 이미 훌쩍 넘긴 뒤였습니다. “윤전기 기사마저 퇴근한 상태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수화기 너머로 듣곤 맥이 탁 풀리면서 그대로 쓰러져 도로 잠들고 말았습니다.
날이 밝자 서울중앙지법에선 전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현철씨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렸습니다. 검찰이 그에게 적용한 혐의는 조동만 前 한솔그룹 부회장으로부터 2003년 2월부터 12월까지 총 9차례에 걸쳐 20억원의 불법 자금을 건네받아 4·15 총선 준비 등에 썼다는 것. 앞서 회사로 들어가야 할 주식매각대금 1900억여원을 가로챈 혐의(특경가법상 배임 등)로 구속기소된 조 前 부회장을 상대로 이 돈의 사용처를 캐묻던 중 김현철씨의 이름이 나왔답니다. 김현철씨 측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예의 “20억원은 옛날에 빌려준 돈 70억원에 대한 이자”란 항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힘들게 살아왔다”며 엉엉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냉정했고 결국 밤 9시 반쯤 영장이 발부됐습니다. 1997년 특가법상 알선수재 및 조세포탈 등 혐의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구속된지 꼭 7년 4개월만입니다.
검찰은 영장 발부에 일단 안도하면서도 허술한 신병관리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자책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김현철씨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이준보 3차장은 검찰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며 여러 차례 쓴 맛도 겪어본 노련한 검사죠. 특히 올해 초 서울남부지검 차장 재직 시절 그는 각종 비리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던 故 박태영 전남지사의 자살을 지켜봤습니다. 그래선지 이 차장은 이번 김현철씨 자해 소동을 접하며 누구보다 가슴이 뜨끔했다 합니다. 그는 나중에 “(자해 소식을 듣고) 박태영 지사가 갑자기 한강에 뛰어들었던 때가 생각나더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죠. 사실 김현철씨가 일으킨 소동은 해프닝에 가까웠습니다. 검찰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송곳의 손잡이 부분이 아닌 아래 쇠 부분을 잡고서 배를 찌른 것이라 1cm 깊이 상처 2곳, 0.3cm 깊이 3곳이 전부였다는군요. 송곳을 집어들긴 했으나 애초부터 목숨을 끊을 의향은 없었다는 얘기죠.
“93년 7월쯤엔가 안기부 간부로 있던 고교 선배가 불러서 호텔 일식집에 갔더니 현철씨가 있었습니다. (…) 검찰개혁 문제를 꺼내더군요. 한마디로 TK 총장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박종철 총장이 취임한지 다섯 달도 안됐을 때였어요. (…) ‘법과 규정을 무시한 개혁은 안된다’고 거절하다가 자리를 파했는데 두 달 뒤 갑자기 박 총장이 사퇴하더군요.” <경향신문> 법조팀 기자들이 쓴 책 “당신, 검사 맞아?”(1999)에 소개된 한 검사의 증언입니다. 김현철씨가 당시 이미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법률로써 검찰총장에게 보장된 2년 임기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심각한 권력중독증에 걸려 있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죠. 그가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국정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했는지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젠 사업가로 조용히 살아가는가 싶었더니 또 사고를 치고만 김현철씨. 문민정부 ‘소통령’의 추락이 한없이 가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