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 *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빅토르 프랑클이 한 말이다. 유대인인 그는 제2차 세게대전 때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아침마다 가스실에서 처형당할 뻔한 고통을 겪었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을 신조로 삼아. '의미요법'[로고테라피]이라는 자신만의 지론持論을 세웠다.
"인간의 모든 고통에는 의미가 있다.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 고통은 그 의미를 깨닫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고통이 있다면 그 고통보다 나른대로의 의미가 있으므로 그 의미를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또한 아우슈비츠에거 자기 자신의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이 고통은 나치의 만행을 인류에게 증언하지 위해서다.
그는 자신의 고통의 의미를 이렇게 발견하고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노력했다. 가스실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항상 허리를 꼿꼿이 세웠으며,점호 전에 사금파리로 손끝을 찔러 피를 얼굴에 바르기도 했다. 얼굴에 피를 발라 화색이 도는 듯하다는 것은 아직 노동력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행이 그는 그러한 노력 덕분에 끝까지 살아남아 92세까지 생존했다. 생존하는 동안 정신과 의사로서 나치의 만행을 증언하는 책《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발간했다. 그 책은 세계 19개국 언어로 번역 되었으며 우리나라도 번역돼 스테디셀러로서 자리 매김을 했다.
나는 "칠십 평생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고통스럽나?"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라"는 빅터 프랭클의 말을 늘 떠올렸다.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맞아, 나에게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시를 쓸수 없었다, 고통은 나로 하여금 시를 쓸 수 있게 해주는 그 무엇이다!"
이 발견은 나를 크게 위안해주었다. 그동안 부정하고 원망했더 내 인생의 고통에 대해 어는 정도 이해할 수 있었고 다소나마 감사할 수 있었다. 누구든 고통 없는 삶은 없다. 고통은 생명이다. 살아 있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어떻게 참고 견디며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만 남아 있을 뿐, 고통은 그 의미를 찾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어린 자식을 잃고 비탄에 잠긴 젊은 부부에게 한 현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지금 당신들이 겪고 있는 일은 마치 끓는 물 속에 던져진 것과 같습니다. 만일 당신이 계란이라면 끓는 물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차차 아무 반응도 하지 않게 되겠지요, 하지만 당신들이 감자라면 끓는 물 속에서 더욱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지면서 탄력이 생기겠지요, 당신들은 어느 쪽이고 싶습니까?
고통은 이렇게 선택적일 수 있다. 고통 앞에 어떠한 태도를 지닐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바로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나 자신의 선택에 의해 고통이 계란처럼 굳어버릴 수도, 잘 익은 감자처럼 부드러워질 수도 있다.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도 나 자신의 선택에 의해 고통의 의미를 찾았을 때 성립될 수 있는 말이다.
향수 원료인 용연향은 원래 고래의 상처에서 발생된 부산물이다. 수컷 향유고래가 대왕오징어 등을 섭취하다가 내장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토해내면 역한 냄새가 난다. 그렇지만 그 배설물은 10년 이상 바다를 떠돌면서 염분에 씻기고 햇볕에 바짝 말라 아주 귀한 향수의 원료가 된다. 처음엔 상처의 똥이었지만 오랜 세월 인고의 시간을 견딤으로써 고통의 향기를 지니게 된 것이다.아마 고래의 똥은 자신이 왜 험한 바다를 떠 도는지 그 고통의 의미를 알았을 것이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