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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 고백 -
“........”
덜컹거리는 기차로 인해 창문 밖 풍경들이 좀처럼 아늑한 맛을 뽐내지 못하고 빠르게 지나쳐버린다. 방금 전까지 보았던 바다는 이제 사라진지 오래고 어느새 지독히도 낯익은 도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잿빛 도시들. 감정실린 색깔이라곤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으로 슬기와 승혁은 돌아오고 있었다. 삭막하기만한 기차 안에서 아무도 말을 먼저 꺼내는 이가 없다. 무슨 일이냐며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며 승혁은 이제껏 참았던 물음을 물어봐도 슬기는 돌아가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할뿐 그녀에게선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었다.
“.... 이번에 정차하실 역은 ... ”
어색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슬기는 스피커 속에서 기계적으로 울리는 여자의 목소리에 차창밖으로 고정되었던 눈을 이제야 옮기곤 한치의 미련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승혁은 그녀를... 슬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는데.. 슬기는 기차에 탄 그 후부터 한번도 승혁의 눈과 마주치지 않았다.
“이슬기!!”
“......”
갑자기 냉담해지 그녀의 태도에 그때와 마찬가지로 불안감을 느낀 승혁은 플랫폼을 빠르게 빠져나가려는 슬기를 붙잡는다. 가냘픈 그녀의 손목이 안쓰러워 한순간 애처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기는 꽉-잡은 그의 손을 차갑게 내쳐버린다.
“여기서 끝이예요.”
“뭐?”
“인연이라고 말하기도 우습지만.. 우리 인연은 여기서 끝이라구”
“야! 이슬기!”
“그러니깐..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지나쳐가도, 떠난다는 기적을 시끄럽게 울려대도 승혁의 귀엔 슬기의 목소리가 또렷히 들려왔고 지친 눈빛을 억지로 가려버리는 그녀의 담담한 태도에 승혁의 가슴이 아려왔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그녀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깊게 새겨진 아픔이 있음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안간힘을 쓰며 간신히 서있는 그녀가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 잡아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기대게 해주고 싶다고 바랐다. 그랬기에 승혁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걸지도 모른다.
“난 니가 참 좋다. 좋아해. 이슬기.”
“..!!..”
“그래서.. 미안하지만 떨어지기가 싫다.”
..........
.........
.........
“......”
“......”
저벅저벅.
저벅저벅.
“......”
“......”
저벅저벅.
저벅저벅.
“이제 그만 따라오시죠?”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한 발자국이 멈추자 연이어 또 다른 발자국이 연이어 소리를 멈
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행진이 못마땅한 마냥 슬기는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곤 화난 듯 뒤돌아본다. 하지만 그녀의 기분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홱- 하고 돌아선 슬기의 얼굴을 본 순간 딴청을 부리는 승혁이다.
갑작스러운 승혁의 고백.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일.
좋아해, 같이 있고 싶고, 함께 웃고 싶고, 당신과 행복해 지고 싶다.
저 사람과 함께? 내가?........ 과연 내가 그런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던가?....
나와 얽힌 사람들은 모두 괴로워하는 걸 아는데도?....
심장엔 피가 돌고 냉정한 머리와 반대로 두근거리는 이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무엇이라고 표현하기도 전에 오래전부터 항상 되물어보던 자문의 답은 이미 나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슬기는 진지하게 울려 퍼진 그의 말에 귀를 닫고 자신에게 손을 뻗는 그의 행동에 눈을 닫고 잔잔하게 동요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리려 한다.
“너 웃긴다! 나도 내 갈길 가고 있는 거거든.”
“아- , 그래요? 그럼 먼저 가세요.”
“그래!! 가라하면 못 갈 줄 아냐?!”
싸가지 무진장 없는 여자. 인정머리라곤 눈꼽만치도 없다.
남자가 어렵사리 고백을 했으면 무슨 반응이라도 나와야 할껀데..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그냥 돌아서가버리니..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뻥 뚫린 길가에 먼저 가라며 선 듯 옆으로 길을 내어주는 냉담한 슬기의 태도에 오기가 생겨버린 승혁은 빠른 걸음으로 슬기의 옆을 지나쳐 갔다. 한순간의 변화조차 보이지 않는 그녀, 100 m쯤 갔을까? 왠지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화에 못 이겨 승혁은 자리에서 우뚝 서서 아직까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슬기에게 소리친다.
“이 감정이 메마를 때로 메마른 못된 여자야!!!
너랑 내가 부둥켜안은 게 얼마고 입술을 박은 게 몇 번이며
같은 방에서 잔 게 몇 번 인데!!! 넌 아무렇지도 않았는지는 몰라도 나 최 승혁은 꽤 많이 두근거렸거든!!!! ”
“....... ”
“젠장!!!!! 니가 날 한심하게 보는 것도 알고 나한테 별다른 감정이 없다는 것도 알겠어!! 그래도 .... 무슨 생각하는 건지 언제나 포커메이스에, 어떤 큰 비밀을 껴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강한 척하는 겉모습 뒤로 한없이 약해지는 널!!! 좋아하게 됐다구. 이 자식아!!”
“...!!!....”
“그러니깐... 똑바로 봐라. 외면하지 말란 말이야.”
“....!!!!!!!....”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버리는 남자의 모습에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과 신호를 받고 있던 자동차에 있던 몇몇의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온다. 하지만 그런 관객의 환호 소리엔 신경 따위 쓸 틈이 없었다. 100m의 거리도 긴 마냥 크게 심호흡을 내쉬던 승혁은 성큼성큼 슬기에게로 다시 다가갔다. 흐릿하게 보이던 슬기의 눈 코 입이 점점 정확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녀와의 거리가 1m 쯤 되었을 때 승혁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허공에 무의미하게 놓여있는 그녀의 손을 낚아채곤 그녀의 손바닥 위에 어떤 것을 올려놓는다.
“이제 넌 내 손에 팔목 잡혔다.”
.............
.............
............
길고 긴 회색 빛 복도가 길게 놓여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만의 분위기를 일부러 맞춘 것 마냥 무겁고 어둡긴 마찬가진데도 오늘따라 어쩐지 공기가 한층 더 기분이 나쁘다.
예상하지 못한 어깨의 부상과 함께 로즈를 죽이지 못한 채 살 수 있는 기회마저 주어버린 자신의 배려에 어쩌면 자신의 목숨조차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였다.
아니 사실 어깨의 상처는 별것 아니었고 또한 로즈를 살려 둔 것에 후회조차 없다. 그런 것 따위에 신경을 쓸 자신이 아니라는 걸 리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 보단 계속해서 시려오는 오른쪽 눈의 통증 때문이 더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뭔가 기분 나쁘고 불길한 일이 생길 것 같을 때만 느껴지는 통증을 리후는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 하고 싶었던 것이다. 미스티의 방으로 점점 다가오는 자신의 발걸음이 다소 무겁게만 느껴지는 리후였다.
“미스티에게 가는 건가?”
“....!!.... ”
어둠 속에서 들려온 낮은 중저음에 리후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조명등조차 켜져 있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사내. 반쯤 내리 깔린 푸른 눈으로 자신에게 걸어오는 남자. 그의 주위에서 풍겨 나오는 중압감은 천하의 리후 조차 뒷걸음을 치게 만들만큼 충분했다.
“다쳤군.”
“아.... 별 것 아닙니다.”
“훗. 그래?”
리후 곁으로 점점 다가온 륜은 그녀의 어깨에 빨갛게 물들여져있는 붕대로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나직한 목소리로 잔잔하기 울리는 그의 목소리가 어떤 마력을 숨겼는지는 몰라도 리후는 그 자리에 꼼짝하지 못한 채 마른 침만 삼켰다.
천천히 올라가는 그의 입고리가 아무것도 담겨져 있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을 기다린 것 마냥 모든 걸 꽤뚫어 보는 듯한 푸른 눈으로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그가 내심 불안한 리후다.
“로즈를 만났나?”
“네?”
‘쾅!!!!!!!!!!!’
“으윽!!!!”
로즈라는 이름을 불리는 순간 싸늘하게 변한 그의 목소리가 리후의 귓가에 맴돌기도 전에 순식간에 리후의 목에 가해지는 륜의 손이 굉음과 함께 그녀를 벽면으로 거칠게 몰아부쳤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리후의 목 기도에 힘을 가하는 륜의 손은 그 어떤 살인 무기에 비할 수 있을 까? 점점 조여 오는 륜의 손에 의해 숨쉬기조차 힘든 리후는 쉼 없이 흔들리며 빨갛게 충혈 된 왼쪽 눈으로 륜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죽였나?”
“커억.. 컥!!”
“다시 한번 더 뭍지... 그녀를... 로즈를... 죽였나?”
“으윽!! 컥!! 컥!!”
리후의 왼쪽 눈에 비친 륜의 모습은 평소 어떤 일에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그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억지로 참고 있듯 했다. 온몸의 세포가 곤두설 만큼 무섭고 심장마저 얼어붙어버릴 것 같이 싸늘한 표정의 륜을 리후는 두 번째로 보고 있었다. 륜의 손에 의한 죽음의 공포보다 그의 숨 막힐 듯한 잔인한 눈빛이 항상 평정을 유지하던 리후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고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숨을 내몰아 쉬며 힘겹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의 힘겨운 대답을 들은 륜은 이제야 리후를 옮매어오던 자신의 손을 내려놓았다. 륜의 손이 자신의 목에서 떠나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모자랐던 숨을 거칠게 내몰아쉬는 리후의 흔들리는 왼쪽 눈엔 여전히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살벌한 푸른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륜이 있었다.
“다신 그녀를 건드리지 마라. 미스티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허헉.. 헉...”
“만약 내 여자에게 다시 한번 손을 댄다면.... 그땐..... ”
“하악..하..”
“널 죽.인.다.”
“... !!!!...”
리후의 목에 선명하게 새겨진 자신의 손자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 냥 손을 푸른색 손수건으로 닦아낸 륜은 주저 앉아 있던 리후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곤 그 자리를 떠난다.
조직의 우두머리인 미스티에게 조차 느껴본 적이 없는 공포를 지금 이 순간 륜에게서 느낀 리후는 자신의 시아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륜을 바라본다.
로즈.. 그녀의 존재만으로 냉철한 철 가면을 두른 그를 이만큼 동요시킨다는 것에 리후는 로즈가 미스티보다 더 대단한 존재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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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람의 슬기에 대한 고백 편입니다.
으흐흐흐..
사랑 고백 장면은 암만 적어도 행복해집니다.
아- 나도 사랑하고 싶다.
요즘은 이제 3학년으로 올라가는 시기라 겨울방학에 생각을 좀 많이 했네요.
취직과 공부의 갈림길에서 많이 고심을 한 탓에 소설에 좀 관심을 못뒀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번 편도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륜...멋있어♡ 후훗~ 다음편도 기대되용+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