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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7일(화)
* 시작 기도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님...
입으로 주여 주여를 백 날 외친다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다만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뜻은 다름 아니라 아들을 믿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요 6:40).
그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 이전에 이 땅에서부터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주님과 가지는 교제와 사귐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주여 주여를 전심으로 외친다 한들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사오니 참된 영생의 의미를 알고 여기서부터 더 깊이 우리 주님과의 사귐이 있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하루도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주님과 더 깊은 교제로 들어가게 하소서.
불구자일지라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게 하시고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2:13-25
제목 :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46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3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 나의 묵상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첫 번째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런데 성전 안에서 온갖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 아닌가?
소와 양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 돈을 바꿔주는 환전상들이 성전을 시장 바닥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성전에서 다 내쫓으셨다.
그리고 환전상들의 돈을 다 쏟고 상을 엎으셨으며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에게 그 물건들을 다 가져가라고 하시면서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고 엄히 명하셨다.
예수님의 이런 행동을 본 제자들은 시편에 나온 말씀 곧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였다.
또한 유대인들은 예수께 말하기를 당신이 이런 일을 행하니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가 이 성전을 헐어라. 그러면 내가 3일 만에 다시 일으킬 것이다.”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아니, 이 성전은 짓기 시작한지 46년이나 지났고 지금도 여전히 공사중인데 네가 3일 동안에 짓겠다고?”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
이 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 역시 이를 깨닫지 못하였다.
하지만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은 이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그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계셨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 어느 누구의 증언도 필요 없으셨다.
13-17절까지는 공생애를 시작할 무렵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건물로 지은 성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요(요 2:21), 또한 나 자신(고전 6:19-20)과 개인이 모인 공동체(고전 3:16-17)가 성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일명 헤롯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것은 사람들에게 성전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기 위함이다.
이는 성전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눈에 보이는 건물성전도 정결해야 한다면, 진짜 성전인 나 자신과 공동체 성전의 정결함은 강조 또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 것이다.
아버지의 집을 장사치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는 말씀은 비단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런데 오늘 예수를 믿는 성전인 우리들은 과연 성전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보전 하고 있는가?
과연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처럼 주의 성전을 위한 열정이 그 자신 예수님을 삼켜버린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열정이 있는가?
이 말씀은 다윗이 쓴 시편 69:9절 말씀을 사도 요한이 인용한 것이다.
(시 69:9a)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이 말씀은 다윗이 자신의 가까운 형제들로부터 핍박을 받으며 버림을 받은 이유를 설명하는 구절이다.
다윗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자신을 삼켰기 때문에 자신에게 고난이 임했다고 토로한다.
여기서 말하는 ‘주의 집’이란 일차적으로는 성소 혹은 성전으로 볼 수 있다.
다윗 당시에는 건물 성전이 없었기 때문에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란 언약궤를 다윗성의 장막에 안치한 일이나 또는 성전을 짓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각종 재료를 모은 일 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의 집’을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거룩하게 하려는 다윗의 열심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분노 가운데 정화하시는 사건은 아버지 집의 상징인 건물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차원을 넘어 참 성전인 나와 공동체 성전을 정화시키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나나 공동체 성전이 여전히 죄와 허물로 더러워지자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의 성전을 위한 열심이 예수님 자신을 삼켜버리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전을 참되게 하기 위해서 당신이 죽음에 삼켜지신 예수님의 열정이었다.
이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표적을 요구하자,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신다.
그러면 예수님 자신이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시겠단다.
이 말에 유대인들은 콧방귀를 뀐다.
이 성전은 헤롯 성전으로서 지금까지 46동안 짓고 있고 아직도 진행중이다.
(참고로 헤롯성전은 BC 19년에 짓기 시작하여 AD63년에 완공하였다. 그리고 신축 건물이 아니라 스룹바벨 성전인 제2성전을 더 크고 웅장하게 리모델링 한 것이다.)
그런데 네가 이 성전을 3일 만에 짓겠다고? 흥!
이렇게 예수님을 비아냥거렸던 이들은 여전히 건물 성전에 집착할 뿐 진짜 성전, 곧 참 성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신앙의 중심은 항상 성전과 율법이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건물 성전은 그들의 신앙의 중심이었으므로 그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참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3일 동안에 다시 일으키겠다는 것은 곧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나와 믿음의 공동체가 참 성전으로서의 의무를 다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가 온갖 죄와 허물로 죽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완전한 성전 되신 주님께서 성전 된 우리를 다시 정화시키고 정결케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그 귀한 피를 흘리시고 무덤에 장사되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심은 나와 믿음의 공동체 역시 그 주님의 무덤에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도 나를 새 생명으로 다시 살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왜냐하면 나는 새 생명 곧 부활의 생명은 죽었다가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 얻을 생명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처럼 성경에 무지하고 영생에 무지한 무지렁이에 지나지 않았다.
죽음 이후에 있을 부활, 그것은 진리이다.
그러나 그 진리는 미래적인 것만 아니라 카이로스 곧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지금 현재로 영원을 살아가는 자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 땅에서의 삶 따로, 죽음 이후의 천국의 삶 따로, 그렇게 생각했기에 늘 이 땅에서 먹는 것이 썩을 양식이며 죄의 세력에 사주를 받아 나를 죄로 이끄는 옛 사람에 끌려 다니기만 했던 것이다.
내가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도 이런 일은 지속되었다.
그것은 내가 주님의 무덤과 연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주님께서는 완전히 광야의 무덤에 몰아 넣으셨다.
그리고 철저하게 나 자신을 깨트리게 하셨다.
나의 이중적인 모습, 나의 의(義)와 교만,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자기주장의지, 거짓과 음란과 정욕 그리고 탐욕과 같은 무법한 우상숭배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오늘도 말씀에 근거하여 이 더럽고 추한 나의 죄성들을 깨트리고 무너뜨리고 부서뜨려서 오직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는다.
그리고 이제 이런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모든 것들은 지나간 때로 족한 줄 알아 내 안에 있는 완악함을 양날 선 성령의 검 곧 주의 말씀으로 도려내 심령이 가난한 자로 세워간다.
이제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사는 자 되어, 오늘은 앞이 보이지 않는 무덤이라 할지라도, 그 무덤이 주님의 무덤으로 연합할 때 주께서는 사막에 강을 내시고 광야에 길을 만드시는 주님이심을 믿는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심판이 항상 옳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런 나에게 베푸실 주님의 인자와 자비는 내가 감히 상상하지 못할 놀라운 것이다.
이는 바로 오늘이 영생의 날이요 주의 날임을 믿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 비록 영생에 무지하여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내 뜻과 내 생각대로 살아왔던 자임을 고백합니다.
이제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살았던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한 줄 알고 오직 주님의 뜻인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나이다.
내가 있는 이 자리가 광야의 무덤이지만, 나만 홀로 있는 무덤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무덤과 연합되었사오니 그 안에 주님이 주시는 생명이 있나이다.
오늘도 그 새 생명으로 행하게 하시고 넉넉히 이 무덤을 견디게 하소서.
주의 심판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광야에 길을 내며, 사막에 강을 내신다 하셨습니다.
하여 무조건 나만 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어떠한 상황이 닥칠지라도 위로 열려있는 그 길을 여실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주님의 발치에 앉아 홀로 주님의 말씀을 얻어먹사오니 나로 하여금 내 영이 말씀으로 부요케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