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잠만자고출근
(움짤은 본문 속 내용과 1도 관계없음)
“소루 공주 먹으면
새 몸 얻어 사람이 될 수 있나니,
희란국 요물들
공주를 두고 싸웠더라
그중에서도 가장 추한 요괴가
몰려든 모든 귀물을 집어삼키었는데
배가 가득 차 공주는 먹을 수 없었더라
요괴는 결국
공주의 눈만을 빼앗고
멀리 달아났다”
“귀신 공주가 다 뭐란 말이야. 목숨 걸고 싸웠는데…. 왕의 약속 하나만을 믿고서 개처럼 전장을 굴렀다! 그 대가가 고작…!”
울분을 토해 내고 있는 이 사내의 이름은 자현.
높은 신분의 귀족은 아니나 그래도 뼈대 있는 무가의 장남이자 희란국 제일의 장수라 일컬어지는 자였다.
또한 구국의 영웅이라 칭송받는 인물이기도 했다.
“나에게 주기로 했다. 적장 이휼의 목을 베어 오면 가란 공주를 내게 주기로 약조했단 말이다!”
너무도 억울하고 분하여 자현은 피를 토하듯 외치었다. 그는 삼 년 전 궁궐에서 왕의 막내딸 가란을 보고 한눈에 반하여 왕에게 청혼을 넣었다.
그러나 이 귀한 금지옥엽을 내어 줄 수 없다 하는 모욕만 당하고 내쫓겼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청혼을 넣길 몇 차례.
네가 그리도 가란 공주 얻기를 원한다면 적국 자환의 명장(名將) 이휼의 목을 가져오라. 그리하면 나라를 구한 영웅, 부마가 되기에 적합하니 공주를 내어 주겠다 그리 약조하였다.
그 약속 하나만 믿고 전쟁터로 나간 자현.
긴 전쟁이 끝나고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와 약조한 대로 공주를 내어 주십쇼 하고 청하였더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통지가 내려왔다.
바로 희란국 온 백성이 다 아는 귀신 공주, 소루를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내 이 모욕은 결코 참지 않을 것이다. 결코!”
“…저를 따라오십시오. 가실 곳이 있습니다.”
소루는 일순 넋이 나갔다. 사람의 목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이 아니라 지척에서 제게 걸어 오는 말소리가 얼마 만이던가.
‘…혹, 왕께서 드디어 나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나.’
그 생각에 마음 깊숙이 안도감이 들었다.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삶. 숨 쉬는 일이 얼마나 버겁고 번거로웠던가. 이제 곧 끝이 난다 생각하니 마치 기나긴 노역을 마친 것처럼 속이 다 후련하다.
왕실의 위엄을 드러내는 높고 웅장한 연회장 상단에 발이 드리워지고, 그 뒤로 왕족들의 그림자가 어렴풋 비쳤다.
“어서 식을 시작하라.”
왕의 앞에 고개를 조아리는 소녀를 바라보며 하나같이 맥 빠진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온갖 흉흉한 소문과 달리 귀신 공주는 그저 평범해 뵈는 소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온전히 드러난 그 얼굴을 보고 모두가 숨을 들이켰다.
초점이 없는 흐릿한 두 눈은 마치 색을 잃은 듯, 희미한 잿빛을 띠고 있었다.
귀신에게 눈을 빼앗겼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이것이 내 신부인가, 하고 자현은 제 앞에 선 소녀를 빤히 살폈다. 가란 공주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소녀의 수수한 용모에, 안 그래도 불쾌한 기분이 더 가라앉는다. 애초 귀신 공주가 천하절색일지도 모른다는 비령의 흰소리를 귀담아들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처럼 덜 자란 계집이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나를 보낼건가.”
“정녕 나를 보낼 것이냐.”
“부탁이다 나를 곁에 머무르게 해 다오.”
“내가 너를 원하여 아내로 맞이한 줄 아느냐?
너를 보면 울화가 치민다.
너를 곁에 두고, 어리석게 속아 귀신 공주와 혼례 한 자현이라 세상이 조롱하는 것을 참으라고?
귀신 공주도 여자라고 버리지 말라 애원을 하는 것이 그저 우습군.
여태까지처럼 죽은 듯이 살아라.”
“나도 안다.
네가 나를 원치 않았다는 것을.
아내로 취급하지 않아도 좋다.
곁에만 있게 해 다오.”
“너는 불 같은 이다. 네 기운은 꼭 태양과 같다. 네가 호령하자 귀신들이 모두 달아났어. 어떤 요물도 네게 대항하지 못한다. 네 주변만, 네 주변만 하염없이 밝아서… 그들은 가까이 오지도 못할 거야.”
“나는 내 여종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세 살배기 아들을 잃고 통곡하는 것을 들었다.
내 곁에서 속살거리던 요물이 그 어린것을 집어삼키며 말하였다.
너를 대신하여 이것을 먹는다, 그리 말하였다.”
“나는 내 식사를 나르던 어린 종이 발치에서 엎드려 목 놓아 우는 소리를 들었다.
제발 살려 달라, 그만하여 달라 비는 것을 들었다.
그 계집 머리에 올라앉아 웃고 있던 요물이 말하기를 소루 공주 대신이라 하였다.
내 대신이라고… 내 대신이라고 하였다.
그 종은 바짝 말라 정말로 죽어 버렸다.”
“헤아릴 수가 없다.
내 업을 다 헤아릴 수가 없어.
네 말이 맞다.
나는 우환거리이며 근심거리이다.
죽은 듯이… 죽은 듯이 살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나는 더 이상 아무도 해치고 싶지 않다.
네 곁에서라면 그것이 가능해.
네 곁에서라면 나도… 나도, 사람처럼 살 수가 있다.”
“…너에게도 내가 도움이 되었느냐.”
“…되었다.”
“그, 그렇구나.”
“...고맙다.”
바보 같으니라고. 저는 뭣 하나 손해 보지 않으려고, 뭣 하나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괄대받고 이용당하는 처지에 어찌하여 웃는 것인가.
저 얼굴이 거슬리고 싫다.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이로운 것이 되어 보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 보았어.”
“내 덧없는 소원들을… 네가 모두 이루어 주는구나.”
“너에게는, 싫고 모욕적인 혼사였을 테지만… 내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고맙다, 자현. 고마워….”
그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들척거리며 가슴속에서 시커먼 게 몽글몽글 솟아오른다. 배 속까지 끈적끈적해진 기분이었다. 그 정체 모를 충동이 식도를 타고 올라올 것 같아 그는 목을 움켜쥐었다.
꺼림칙한 계집. 꺼림칙한 계집. 꺼림칙한 계집….
그 말만 쉴 새 없이 되뇌었다.
너같이 괴상한 여자, 나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리도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녀는 달빛을 받으며 으슥한 골목 담벼락에 기대서 있는 이를 발견하고는 황홀한 낯을 하였다.
백자 같은 피부, 훤칠한 키와 늘씬한 몸매…. 머리칼은 또 어떤가. 궁궐에 납품되는 비단도 저 폭포수와 같은 검푸른 머리카락에는 비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윤기 흐르는 까만 머리채 사이로 드러난 우아한 목줄기는 또 어떻고.
“저를 불러 주시다니… 꿈만 같습니다.”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사모하는 마음이란 게 이리도 깊고 뜨겁다는 사실을, 천녀(賤女)는 생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공자님을 사모하고 또 사모합니다.”
“그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인가?”
“날 사랑한다면… 내게 입을 맞추어 봐라.”
“역시…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
“공자… 님?”
거칠다. 이리 격정적인 이였나. 너무나도 거칠….
‘…어?’
얌전히 몸을 내어 주던 련은 우악스러운 통증에 눈을 부릅떴다.
가슴을 찢고 살 속으로 파고드는 손.
“아, 아….”
어째서인지 비명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련은 멍하니 사내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형형히 빛나는 그 눈.
마치 달과 같은 황금색 눈동자.
사내가 더 깊이 들어온다. 몸을 찢고, 더 깊이, 더 깊이....
“빛이 닿지 않는
깊고
깊은
계곡에
공주가 있다
——
어둠 속에서 공주가 미소를 지으나
그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해 질 녘의 찰나뿐
심연 속에서
공주가 웃는다“
<책소개>
소루 공주 먹으면 새 몸 얻어 사람이 될 수 있나니, 희란국 요물들 공주를 두고 싸웠더라 희란국에는 요괴들이 사는 깊은 계곡이 있다.
그 아득한 골짜기로부터 들려오는 기묘한 노랫말의 주인공, 소루 공주.
기이하고 불길한 태생으로 왕실 사당에 유폐된 채 홀로 지내던 그녀는 어느 날, 영웅 자현과 혼례를 치르게 된다.
희란국의 왕 가륜은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오면 자신의 귀애하는 딸 가란 공주를 내어 주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자현을 천덕꾸러기 신세인 소루와 결혼시킨다.
그에 화풀이하듯 아내를 괄대하는 자현. 하지만 그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소루는 남편을 사모하게 되고, 한편, 도성에는 가슴이 뚫린 채 죽은 참혹한 시체가 연이어 발견되는데…….
희란국 연가 - 김수지
전 플랫폼에서 구입 가능 (아마도...)
⬇️
시리즈 독점으로 전환됨
원작 소설이 시리즈 독점으로 전환되면서
네이버, 시리즈 독점으로 웹툰 연재도 시작됨
상수리 나무 아래 작가님이 쓰신 작품이야
리디북스 공모전 당선작!
희란국 연가 읽고 과몰입 오타쿠되서 처음으로 이런 글 써봤는데 흥미돋일지 모르겠네😭
나중에 생각해보니 부끄러워서 지워버릴지도 몰라..
최대한 스포 안되는 선으로 썼는데 내용이 뚝뚝 끊기는 부분이 있을까봐 걱정이야
피폐하고 고어한 부분도 있으니 궁금한 여시들은 참고해!!
위의 요소들 괜찮은 여시들은 필력+스토리텔링 미쳤으니까
요한은 티테를 사랑한다
잠자는 바다
페르세포네를 위하여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
누가 도로시를 죽였을까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절벽에 뜬 달
사마귀가 친구에게
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악역의 엔딩은 죽음뿐
문제 시, 울면서 수정할까.. 삭제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