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知와 알 智의 사이에는 생사가 있다.>
말(言)처럼 대인관계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또 있을까? 같은 말이라도 하는 사람
에 따라 상황에 따라 주고받는 영향이 천차만별이지 않는가. 보약이 되는 말에서 죽음에
이르는 말까지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말'이다. 그리고 상호 교환되는 말의
질(質)과 무게와 양(量)에 따라 말의 창구인 입의 소유자, 즉 사람의 인격이 보여지고 인생
이 결정지어 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있는 입에서 나오는 '말'에 대한 우리 조상
들의 철학은 각설이 타령에 해학적이면서도 매우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얼 시구시구 들어간다
저 얼 시구시구 들어간다
한번 들으면 저절로 입에 붙는 각설이 타령의 후렴 부분이다. 새봄 장터에서 작년에 왔던
각설이들이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다시 만난 얼굴들과 떠들썩하게 신고식을 하던 그 타령과
몸짓에는 동냥질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위의 후렴구에는 얼마간의 경고와 협박이 담겨있
다.
言(언) 矢口矢口(시구시구) 들어간다
저 言(언) 矢口矢口(시구시구) 들어간다
시구(矢口)는 화살 矢, 입 口이다. 그러니 후렴구의 내용인즉 이 말(言)이 입에 화살이 되
어 들어가면 저의 말(言)이 화살이 되어 되돌아가리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밥빌어 먹
는 가락에 담긴 입단속 말단속이지만, 독설로 다른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파면 결국 그 말은
독화살이 되어 내 가슴에 되박힐 것이니 세치 혀를 잘 간수하라는 뜻이리라.
그러면 어떤 말이 화살이 되는 것일까? 矢와 口로 이루어진 한자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알 知와 알 智의 사이에 독(毒)과 약(藥)이 있다. 지식(知
識)과 지혜(智慧)의 뜻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ː지식(知識): 흑이다, 백이다를 구분짓는 식견, 교과서식의 알음알이
ː지혜(智慧): 미혹을 끊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힘, 살면서 체득한 슬기
지식과 지혜 사이에는 입시 지옥과 인성 함양만큼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여기에서 지식과
지혜의 사전적 의미나 그 쓰임의 차이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언제나 하는
'말'에 상처나 파괴가 아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작은 노력임을 밝혀두고 싶다.) 지(知)자의
구조를 보면 矢(화살 시)와 口(입 구)로 이루어져 있다. 시구(矢口)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나는 알고 있다'는 분별의식이 화살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가슴을 뚫기도 하고 자신에게 되
박히기도 하는 것이다. 矢와 口로 구성된 知는 얕은 알음알이로 자칫 잘못하면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기는 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글자인 智(지혜로울 지, 알 지)
자는 知(알 지)와 日(날 일)이 만나 '지혜'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知가 표피만 훏은 지식이
라면 智는 그러한 지식이 세월(日,날)에 녹아들면서 체득한 슬기로움을 의미하며 화합(和合)
을 일궈낼 줄 아는 어설픈 분별심과는 확연히 다른 힘이며,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깨달음
으로 가는 바탕일 것이다. 많은 말 중에서 지(智)로써 하는 말은 어우러짐의 꽃을 피우겠지
만 지(知)에 그친 말을 잘못 뱉으면 독을 품게 되리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우리들이 잘 알
고 있는 글자와 각설이 타령으로 '말'에 대한 짧은 생각을 정리 해 보았다. 모두가 각자의
가치관으로 꿋꿋하게 살아가는 세상이다. 주관과 주장이 뚜렷한 만큼 타인에 대한 배려가
희미해져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말'의 힘을 긍정적으로 살려내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
다. 知(지)와 智(지) 사이에 생(生)과 사(死)가 있음을 새기며 말을 하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