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 오대산 국립공원 상원사/적멸보궁/월정사 탐방 안내
1. 국립공원 오대산(五臺山) 상원사(上院寺)[반월당네거리에서 313km, 3시간 40분],
소재지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상원사는 705년(신라 성덕왕4년) 신라의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이라는 신라의 두 왕자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창건되었는데, 옛이름은 진여원(眞如院)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724년(성덕왕 23년) 신라자장(慈藏)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성지로서 그 이름을 빛냈다. 지금은 현존 유물 중 가장 오래된 동종(국보 제36호)이 있는 종각만 남고 오늘날 건물은 1947년에 금강산에 있는 마하연 건물을 본떠 지은 것이지만, 이름 높은 범종이나 석등은 이미 그때 마련된 것들이다.
문수신앙의 중심지이며,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 아래의 중대의 적멸보궁을 참배하러 오는 납자 승려들의 경유지일 뿐만 아니라 전국 선승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오대산을 일명 청량산이라 청량선원이라고도 하는 이 선원에는 석가소상을 비롯해서 문수보살, 문수동자 그 외의 소형 동자상 등 3구의 동자상이 있다.
이 상원사에 세조에 얽힌 일화가 있다.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는 괴질에 걸렸는데, 병을 고치고자 월정사에 들러 참배하고 이곳 상원사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계곡에서 세조는 종기를 다른 이들이 못보도록 혼자 떨어져 씻고 있었는데, 동자승 하나가 가까운 숲에서 놀고 있었다. 세조는 그를 불러 등을 씻어달라고 부탁하며 “어디 가서 임금의 몸을 씻어주었다는 말은 하지 마라” 하고 말했다. 그러자 동자가 “임금께서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보았다는 말은 마세요.”라고 하고는 금방 사라졌다. 놀란 세조가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오래 자신을괴롭히던 종기가 씻은 듯이 나은 것이다. 감격한 세조는 화공을 불러 기억을 더듬어 동자로 나타난 문수보살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고, 그것을 표본으로 하여 나무를 조각하였다.
이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을 상원사의 법당인 청량선원에 모셨다. 다음 해에 그곳을 다시 찾은 세조는 다시 한 번 기적을 경험했다. 상원사 불전으로 올라가 예불을 드리려는 세조의 옷소매를 고양이가 나타나 물고 못 들어가게 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세조가 밖으로 나와 법당 안을 샅샅이 뒤지게 하자, 탁자 밑에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이 숨어 있었다. 고양이 때문에 목숨을 건진 세조는 상원사에 ‘고양이의 밭’이라는 뜻의 묘전(猫田)을 내렸다. 세조는 한양 인근 여러 곳에 묘전을 두어 고양이를 키웠는데, 봉은사에도 묘전 50경을 내려 고양이를 키우는 비용에 쓰게 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을 겪은 세조는 그 뒤에 상원사를 다시 일으키고 소원을 비는 원찰로 삼았다.
※ 상원사에서 출발하여 적멸보궁을 오르려면 등행로 중간에 중대사자암을 거치게 됩니다. 하산길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들르도록 합시다.
◎ 중대사자암(中臺獅子庵)[상원사에서 1.1km, 차로 2분]-적멸보궁(寂滅寶宮) 수호도량이며 조선 태종 1400년 11월 중창되었으며 이후 왕실의 내원당으로 명종 대에 승영사찰로 보호되기 시작하였고 1644년부터 1646년 사이에 중수되었다. 이후에는 왕실보호로 사세를 유지하고 건물을 보수해 나갔으며, 1878(고종 15)년 개건되어 요사채로 사용되던 향각이 낡아1999년 퇴우 정념스님이 제불, 보살님께 발원하고 오대상징의 5층으로 향각을 신축하여 2006년 8월에 완공되고 건축불사가 마무리 되었다. ☆ 오대五臺-중대사자암/동대관음암/남대지장암/서대염불암/북대미륵암
2. 오대산 적멸보궁(寂滅寶宮)[상원사에서 등산로 1.5km, 50분 소요]
오대산 적멸보궁의 소재는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산1번지이고 시도유형문화재28호이다. 상원사와 적멸보궁간 거리는 1.4km인데 가파른 등산길로 오름길 40분 정도 걸린다. 오르다 보면 한강의 시원(始源)인 우통수(용안수)를 만나고 우통수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주변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주변 경관을 감상하면서 가다보면 금방 적멸보궁에 도착한다. 예부터 산을 숭배한 우리 민족은 강원도 오대산에 문수보살이 거주한다고 믿었다. 특히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정골사리, 가사를 받아 이곳을 오대산이라 명명하고 진신사리를 봉안하게 되었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지었는데, 고려 충렬왕 33년(1307)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지었고, 이후도 화재로 인해 여러 차례 다시 지었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전각으로,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불단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월정사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자장보살이 당나라에 가서 문수보살의 계시를 받고 돌아와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이다. 5대 적멸보궁은 경상남도의 통도사, 오대산의 월정사, 설악산의 봉정암, 영월의 법흥사 그리고 정선의 정암사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1층 건물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두 짝의 판자로 만든 문을 달았고, 양쪽 칸에는 아래에는 판자로 만든 벽을 대고 위에는 띠살창을 하고 있어 특이하다.
3.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상원사에서 8.9km, 16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지었다. 고려 충렬왕 33년(1307)에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지었고, 이후에도 화재로 인해 여러 차례 다시 지었다. 비로봉 아래 부처님 정골사리(頂骨舍利)를 봉안하고, 2년 뒤 선덕여왕 14년(645)에 창건하였다고 적혀있으며, 이후 부침을 거듭하다 조선말엽에 이르러 완전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하며서 6.25 동란 때 전소(全燒)되었던 것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심 법당인 적광전(寂光殿)은 일반적으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셨는데,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셔 놓았으며, 정전(적광전) 앞에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은 예나 지금이나 여여(如如)하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예경을 드리는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8호)’은 새로 조성하여 모셔 놓았다.
팔각구층석탑은 하층기단에 안상(眼象)과 연화문(蓮花紋)이 새겨져 있고, 각층마다 상승비례감이 있어 수려(秀麗)하고 균형미(均衡美)가 뛰어나다. 또 각층의 지붕돌 모서리에는 풍경이 달려있어 특이하고,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 보륜까지는 석재(石材)이며, 그 이상은 금동으로 장식하여 매우 화려하다.
석조보살좌상은 새로 조성하여 고졸(古拙)한 멋을 느끼지 못하겠으며, 팔각구층석탑과 예스러움이 퍽이나 대조된다. 이와 비슷한 양식을 동해안 일대에서 가끔 볼수 있다는데, 한송사터 석조보살좌상, 신복사터 석불좌상 과 흡사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합니다.
이 밖에도 심검당(尋劍堂), 삼성각, 대강당, 승가학원, 범종각, 용금루(湧金樓), 요사 등 많은 전각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천왕문(天王門) 밖을 걸어 나오면 금강교(金剛橋) 밑으로 흐르는 오대천(五臺川)에 피안(彼岸)의 세계가 활짝 열리는 기분이 될 것입니다.
4. 이효석(李孝石) 생가, 문학관[월정사에서 37km, 38분], 평창군 봉평면 장동리.
가산(可山) 이효석문학관은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544-3번지 효석문화마을 생가 진입로변 야산 2만5천829㎡의 부지에 연건평 893.56㎡ 규모로 완공되어 운영중이다. 이효석문학관은 문학관과 부속시설 등 건물 2동으로 문학관에는 이효석 선생의 생애와 작품활동, 문학작품, 육필원고, 초간본 책을 비롯해 작품이 발표된 잡지와 신문 등을 전시했다. 또 다양한 영상물 시청과 문예행사를 볼수 있는 문학교실과 이효석선생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준비하고 연구하는 학예연구실을 갖췄다. 이밖에 메밀자료관을 설치, 메밀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수 있는 공간과 1930년대 봉평장터를 재현한 모형등이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