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신문 사회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기본 나쁘게 쳐다봤다며 길 가던 사람에게 주먹을 휘두른 행동대원, 영세 싱인을 위협해
돈을 빼앗은 조직원 등등, 양은이파와 칠성파, 시라소니파 등 이름만 들어도 섬뜩한 폭력조직 얘기다.
1990년 노태우 정권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해 2월 검찰은 폭력배 소탕 작전에 다시 나섰다.
홍보는 요란했지만 조폭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저긍로 216개 파 5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못 잡는 게 아니고 안 잡는 것 아니냐는 원성도 들린다.
일본에서도 폭력조직은 큰 골칫거리다.
지난달 25일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가 고베에서 100주년 기념식을 열렀다.
6대 두목인 시노다 겐이치(72)의 생일잔치도 겸했다.
전국 7-여 명의 직계 부두목과 조직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경찰은 바짝 긴장했다.
1915년 야마구치 하루요시가 고베항 노무자 30여 명과 함께 결성한 동네 폭력단이 조직원 1만6000명을
거느린 암흑계 공룡이 된다.
마약 밀매와 매춘은 물론 연예기획사, 부동산 투자 등 돈이 되는 각종 사업에 손을 대고 있다.
불우 이웃을 돕거나 지진과 태풍 피해 현장에서 구호에 나서는 등 이미지 관리까지 한다.
그런데 밤의 황제 시노다의 마음이 요즘 편치 않다.
지난달 8일 아이치현 식당 주인으로부터 3220만 엔(약 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10년 넘게 그의 조직원들이 다른 야쿠자로부터 보호해 준다며 빼앗아 간 돈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은 거다.
위자료까지 물어줘야 할 형편이다.
돈도 돈이지만 체면을 크게 구겼다.
2013년 7월 나고야 식당 여주인읩 ㅗ호비 반환 소송 이후 두 번쨰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한 가지.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못하는 한국 피해자들과 달리
야쿠자 두목에게 당당히 소송을 거는 일본인들의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2008년 4월 일본 국회는 폭력단 대책법을 개정했다.
야쿠자 조직원이 위력을 과시하며 돈을 빼앗은 경우 해당 조직원은 물론
두목에게도 배상 책임을 물리는 조항을 신설했다.
손해배상을 청구를 방해하거나 보복할 경우엔 더욱 강력하게 처벌한다.
도쿄를 비롯한 전국 자치단체들은 식당이나 호텔이 야쿠자에게 행사장을 빌려주지 못하도록
조례를 만들었다.
폭력배와 함께 골프를 치거나 여행을 가도 안 된다.
조례를 계속 위반하면 '폭력단 밀접교제자'로 분류해 이름과 회사명을 인터넷에 공개한다.
일본 경찰은 조직원들이 黑歷史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고용센터 등 12개 기관과 함께 취업도 지원한다.
교도소에선 4개월 과정의 '이탈 지도'가 이뤄진다.
폭력단으로 되돌아가거나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한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04년 말 8만7000명에 이르던 일본 내 먀쿠자는 2013년 말 5만8600명으로
줄었다.
일시적인 전쟁 선포나 소탕 작전이 능사가 아니란 걸 보여준다. 이정학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