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학의 한국산사 목조각 걸작] 8. 입체감 극대화한 ‘관상장엄’ 목각탱
8. 문경 대승사 대웅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불화와 조각 결합한 후불탱
대승사, 한국 목각탱 ‘범본’
현존 목각탱 등 最古, 最大
부석사에서 조성 대승사로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목각탱의 전형을 보여주는 기준작
후불탱화 중엔 대단히 인상적인 형식이 있다. 나무로 조각한 목각탱이 그것이다. 목각탱은 나무로 조각한 후불탱화를 의미한다. 불화와 조각이 결합한 형식으로 ‘탱화의 조각화’라 하겠다. 두꺼운 나무 판재들에 밑그림을 그려서 투조나 고부조, 환조로 조각한 후 조형에 금박을 입혀 완성한다. ‘판탱’, ‘후불목탱’이라고도 부르는 목각탱은 흔치 않다.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의를 가진 현존하는 목각탱은 10점 정도다. 그 중 국보, 보물로 지정된 것은 여섯 점으로서 다음 표와 같다.
위 여섯 점의 목각탱은 동일한 장면을 표현한다. 아미타여래의 극락회상 설법 장면을 담고 있다. 그래서 여섯 점 목각탱에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라는 정식 명칭이 뒤따른다. 탱화의 조각화라는 독특한 형식의 목각탱은 17세기 후반에 영주, 상주, 예천 등 경북 북부지역에서 발생하고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목각탱은 불교장엄의 보편 양식은 아니다. 제작시기와 지역성이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지역 집중성은 제작기획자와 조각승의 지역 유파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 희귀한 10점의 목각탱 중에서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한국산사 목각탱의 시원이자 범본으로 꼽힌다. 범본(範本)은 조형의 전형을 보여주는 기준작을 말한다,
부석사와 대승사 목각탱 소유권 분쟁대승사 목각탱은 현존하는 목각탱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인 강희14년(1675년)에 제작됐다. 목각탱 하부 나무틀과 아미타불 뒷부분에 화기와 조성기가 남아 있다. 화기는 붉은 바탕에 검은 묵서로 기록해뒀다. 기록에 따르면 대승사 목각탱은 1675년에 태백산 부석사에서 조성했다. 증명비구는 종현 스님이었다. 부석사 목각탱은 동치8년(1869년)에 문경 대승사로 이안됐다. 화기에서 아쉬운 점은 조각승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화기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대승사 목각탱은 원래 부석사 소유라는 사실이다. 1862년 대승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법당과 승방 등을 소실했다. 새로 법당을 지었지만 불상을 모실 형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모색한 방안이 부석사에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을 이운해 오는 것이었다. 목각탱은 원래 부석사 금색전에 모셨다. 금색전이 낡아 허물어져 무량수전 한 쪽에 옮겨 방치 수준으로 내버려둔 모양이다. 19세기 후반 부석사는 폐찰 위기에 있었다. 1869년에 부석사 목각탱을 대승사로 이운해왔다. 그때부터 목각탱의 소유를 두고 두 절간의 소송이 시작됐다. 대승사에는 소송과 관련한 1869년에서 1876년 사이 11건의 문서 기록이 남아있다. 그 중 4점은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관계문서’로 분류해 보물로 지정됐다. 소유권 소송은 대승사에서 부석사 조사당 보수비용 250냥을 부담하는 것으로 상호 합의하여 분쟁의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대승사 목각탱은 누가 제작하였을까? 화기에 나오는 증명법사 종현 스님이 주목된다. 또 목각탱의 조형을 살펴봐야 한다. 대승사 목각탱은 크기가 347×279cm에 이르는 대작이다. 판재 두께도 근 30cm에 이른다. 입체감이 대단하다. 현존하는 목각탱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크다. 그래서 국보로 지정했다.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대승사 목각탱과 매우 유사하다. 규모를 줄인 축소판에 가깝다. 남장사 보광전 목각탱과 서울 경국사 목각탱에도 대승사 목각탱의 조형양식이 엿보인다. 이 조형들의 제작에 소영당 신경(제작기획), 종현(증명), 단응과 탁밀(조각승)의 인연이 얽히고설킨다. 특히 예천 용문사 목각탱 화기의 화원질에서는 단응과 탁밀 두 조각승을 첫머리에 올려두고 있다. 대승사 목각탱을 제작한 수화승 역시 단응과 탁밀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관계문서.
.문경 대승사 대웅전 목각탱 하단부 보병.
광대무변의 우주세계관을 구현한 목각탱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상중하 3단으로 구성했다. 판재는 모두 10매를 사용했다. 화면의 중심인 중단에 세로로 판재 7장을 사용하고, 상단과 하단에 가로 판재를 각각 2장, 1장씩 엮어 화면을 만들었다. 화면 가장자리엔 액자처럼 각재로 사각형 테두리를 둘렀다. 삼단의 구성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단: 대연화와 천개, 제1 비바시불과 타방불, 비천. △중단: 중앙의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팔대보살, 사천왕 등 12분씩(총 25분). 내용은 아미타여래설법상. △하단: 보병과 구품연화좌. 내용은 구품왕생. △틀: 주역의 64괘 중 12괘와 화기, 범어 ‘옴’, 卍자 등.
상단은 오색찬란하다. 아미타불께서 놓으신 오채의 광명에 타방불이 내왕하고, 주악비천과 가무비천이 환희의 분위기를 북돋운다. 상단 중앙 천개엔 과거칠불 중 제1불이신 비바시불을 금빛 찬란한 연화좌에 모셨다. 석가모니불은 과거에 출현하신 칠불 중 일곱 번째 부처님이시다. 그분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을 ‘칠불통게’라 이른다.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행하며,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누누이 가르치셨다. 과거칠불과 타방불의 출현은 법의 시공을 초월한 광대무변을 상징한다.
중단은 불보살과 성중, 호위신중이 결집한 아미타여래설법 장면을 표현했다. 중단엔 총 25분이 결집했다. 수미좌에 앉아 설법하시는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짝 맞춰 12분씩 배치했다. 팔대보살, 사천왕, 대범천과 제석천, 가섭·아난존자 등의 제자, 일광천자·월광천자, 난타용왕·발난타용왕까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구도로 질서정연하게 배치하였다. 조각상마다 붉은색 바탕에 금니로 존명을 빠짐없이 새겨둬서 범본 목각탱의 위상으로 손색이 없다. 중단 조형 중에서 부처께서 앉아 계신 수미대좌는 특별한 시선을 끈다. 가운데가 잘룩한 수미대좌는 받침과 연꽃의 층층을 이룬다. 팔각과 원, 타원, 연꽃 등으로 중중의 구조를 이룬다. 그 중 4개의 층위에 도교적 색채가 강한 지(地)와 방(方), 륜(輪), 시(時)의 세계를 펼쳤다. 수미대좌의 제일 아랫단에는 지(地) 세계를, 그 위엔 방(方) 세계, 다시 그 위엔 수륜, 화륜, 지륜 등 륜(輪) 세계를, 제일 위 단에는 오시, 사시, 진시 등 시(時) 세계를 조영했다. 시간과 방위, 세계의 구성이 망라된 우주적 동양세계관을 보여준다. 조형에 불교 수미산 세계관과 유교 세계관이 복합적으로 통합돼 있다. 이 조형은 목각탱의 틀에 새긴 64괘 중에서 12개의 괘를 표현한 것과 긴밀히 연결된다. 12괘는 ‘12소식괘(消息卦)’다. 12소식괘는 〈주역〉에서 음양의 조화를 통해 시간이 순환하는 우주의 시간 흐름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 상징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이 시공의 양변을 초월한 광명변조의 빛임을 일깨운다. 그런 상징적 뜻은 광배문양에 집약돼 있다. 광배는 육각수문, 넝쿨연화문, 붉은 화염문으로 구성했다. 아미타여래의 48대원과 상통하는 진리와 자비의 본원력로 해석된다. 그 본원력에 의해 시공을 초월하여 오색의 빛은 무한히 확산한다.
목각탱의 하단은 극락정토에 있는 구품연지 세계다. 중심에 보병이 자리한다. 보병에는 극락정토의 감로수인 팔공덕수가 가득하다. 보병에서 연꽃이 좌우로 뻗어나간다. 연꽃은 중앙에 하나, 좌우에 네 송이씩 모두 아홉 송이다. 아홉 송이 연꽃은 쌓은 공덕에 따라 하품하생에서부터 상품상생까지 구품왕생하는 자리다. 목각탱 조형에 극락회상도와 구품왕생도가 통합돼 있다.
이제야 조형의 큰 그림이 보인다. 대승사 목각탱 틀에는 없지만 용문사 목각탱에는 좌우 양변의 틀에 네 구절을 새겨두고 있다. 사실 대승사 목각탱 틀에도 똑같은 네 구절이 있었다. 1956년 화재로 틀의 원형을 소실했다. 1905년에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에는 같은 구절이 보인다. 특히 세 구절은 조형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틀에 적어 둔 구절이 조형을 해석할 수 있는 열쇠다. ‘대수미지중미진찰토(大須彌之中微塵刹土: 대우주 속의 무수한 불국토)’, ‘당극락지계보지구품(當極樂之界寶池九品: 여긴 극락정토의 칠보로 장식한 구품연지)’, ‘삼종존용우성승지위 귀의(三種尊容又聖僧之位 歸依: 아미타삼존과 여러 성스러운 성중들께 귀의합니다)’ 대승사 목각탱 속 수수께끼 같은 지, 방, 륜, 시를 새긴 수미대좌와 12개의 주역의 괘, 상단의 과거칠불은 ‘대우주 속의 무수한 미진찰토’ 구절과 연결되고, 목각탱 하단의 보병과 아홉 송이 연꽃은 ‘극락정토에 칠보로 장식한 구품연지’ 구절과 연결된다. 아미타여래 삼존과 성중, 호위신중들은 ‘귀의’ 구절에 상응한다. 틀에 새긴 구절들은 목각탱에 담은 교의 내용을 설명해주고 있다. 왜 저렇게 나무로 조각한 독특한 후불목탱을 만들었을까? 시각의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그렇다. 목각탱은 극락정토를 실감하게 하는 관상과 염불수행의 방편장엄으로 탄생한 것임에 분명하다. 조형의 입체감은 사실감의 깊이와 비례한다. 목각탱은 구품왕생 연화좌와 우리를 극락정토로 이끌어주실 분을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방편반야가 빛나는 감동적인 목조각이다.
▶ 한줄 요약
불화와 조각이 결합한 목각탱은 극락정토를 실감하게 하는 관상과 염불수행의 방편장엄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