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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리메이슨 연구모임(프.연.모) 원문보기 글쓴이: Peacemaker
부시는 강경 노선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두 지도자들은 문선명 교주의 정치적 후원이라는 조금은 알려진 공통적 유대를 가지고 있다.
남한에 본거지를 둔 통일교의 설립자인 문선명은 30년 이상 세계적 영향력이라는 거미줄을자아내어 그의 불가사의한 비단 돈줄을 통해 수백 명의 강력한 지도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문선명의 후원을 받는 사람 중에는 미국 대통령 부시 가의 사람들이 있으며, 미국 정보 당국의 보고에 의하면 전 한국 대통령 김대중도 거기에 포함된다.
공개적으로 이야기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문선명과 부시의 검은 관계는 과거에 보도된 적이있으며,
본 글에서 세부적으로 검토하였다.
그러나 냉전 기간 중에 남한에서 집권한 권위주의 정부를 오랫동안 반대해 온 김대중과 문선명의 금전적 연결 관계는 계속 은폐되어 있었다.
1987년에 남한에서의 정치적 발전을 감시하는 중에 미국 정보 당국은 문선명과 김대중의 검은 관계를 우연히 알게 됐다.
그때쯤, 문선명의 통일교는 이미 레이건-부시 행정부와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었는데, 특히보수주의자들의 대의에 자금을 지원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신문이라고 로널드 레이건이 칭찬한 우익의
워싱턴 타임스에 1년에 1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함으로써 긴밀한 유대를맺고 있었다.
그러나 남한에서 그는 고국의 독재자들과의 자신과의 오랫동안의 좋은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집권 민주정의당(DJP)에 대해서 문선명은 야당이었다고 미국 국방부 정보국은1987년 9월 10일자 전신에서 언급한다.
“통일교(UC)는 당시의 민주정의당 정부로부터 받은 얼마간의 냉대를 언짢게 여겼다고 상기의 국방부 정보국 전신은 보고한다.
이와 같은 냉대에 대한 반응으로 문선명은 몇몇 야당 인사들을 은밀히 금전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국방부 정부국은 보고한다.
그 중 한 사람은 문선명의 오랜 친구인 김종필인데, 북한의 현재의 지도자 김정일과 혼돈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종필
1980년대 후반까지, 김종필은 문선명과 오랜 친분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소위 “코리아게이트”라고 하는 돈으로 영향력을 사려는 추문에 대한 1978년 미국 의회의 조사 결과는
김종필이 1960년대에 남한에 KCIA(중앙정보부)를 설립했으며, 일본과 미국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는 문선명의 통일교를 지원했다고 보고한다.
그 의회의 조사 결과는 김종필과 남한의 KCIA가 자금 지원이 잘되는 국제 조직으로 그의교회를 문선명이 확대하는 것을 도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후 그들은 미국 정부 내에서 영향력을 사기 위해 문선명의 조직을 이용했음을 의회 조사 결과 알게 되었다.
김종필은 1970년대 초반에 남한의 국무총리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7년에 김종필은권력에서 물러나 있었으며 남한에서 대통령 출마를 고려하고 있었다.
미 국방부 정보국의 보고 국방부 정보국의 보고에 따르면 김종필은 집권 민주정의당으로부터 문선명이 소외됨으로써이득을 얻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김종필은 KS(남한)의 대통령 출마를 위한 재정적 조직적 지원을 물의를 일으킨 통일교로부터 받고 있음이 보도되었다”고 국방부 정보국은 1987년 9월 10일자 전신에서 보고한다.
그러나 문선명의 조직의 지원은 이 옛 친구 한 사람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국방부 정보국은 문선명이 김대중과 통일민주당의 다른 지도자들의 손에도 돈을 쥐어줌으로써 양다리를 걸쳤음을 알게 되었다.
“사이비 종교가 집권당의 후보를 낙선시킴으로써 차기 남한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얻으려하고 있다.”는 제목으로 국방부 정보국은 1987년 9월 22일자로 보고한다.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통일교(UC)는 남한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야당인 통일민주당(RDP)의 고문 김대중과 통일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김영삼, 그리고 전직 남한의 국무총리 김종필에게 많은 돈을 적극적으로 쏟아 붇고 있으나, 집권당인 민주정의당(DJP)의 후보 노태우만은 배제시키고 있다”고 국방부 정보국은 보고한다.
“통일교는 노태우가 패배하기를 바라며 노태우의 3명의 상대자들에게 많은 정치 자금을 쏟아 부음으로써 그 3명 중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지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나는 국방부 정보국의 이 보고서를 정보 자유법에 의거 요청하여 입수했다.]
결국 대선은 노태우와 김대중 및 김영삼 사이의 경쟁으로 귀결되었다.
노태우
김영삼
1987년 12월 16일에 노태우는 36%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김영삼은 28%를 얻었으며, 김대중은 27%를얻었고, 김종필은 겨우 8%를 얻었다.
신중한 관계 그 선거에서는 실패하였지만, 문선명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후보자들은 그 이후 좋은 결과를얻었다.
김종필은 다시 국무총리가 되어 1998년부터 1999년 초반까지 그 직을 유지했다.
김대중은 1998년에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 평화상도 수상했다. (노벨상은 프리메이슨이 주는 상)
그동안 김대중은 문선명과의 유대를 공개하지 않았다.
문선명 자신을 새로운 메시아라고 생각하는 그 신정주의자와의 친분을 김대중은 신중하게 유지했으며, 공개적으로 두 사람이 접촉하는 일을 전반적으로 피했다.
예외가 되는 일이 1999년 2월 1일에 있었는데, 그때 그들의 추종자들이 “참 부모”라고 하는 문선명과
그의 아내는 서울의 롯데 호텔에서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었다.
문선명의 추종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는데, 김대중이 그 장소에 도착하여 그 기념식에 진지하게 참여했다.
통일교의 내부 회보인 통일교 뉴스에 따르면, 롯데 호텔에서 있었던 일은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의 참 부모님과 함께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보다는 좀 더 알려져 있긴 하지만, 문선명의 미 대통령 부시 가와의 관계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거의 모른다.
1990년대에 문선명의 조직은 부시 가에 직접적으로 연사료를 지불했지만, 그들의 동맹은 부시를 정치적으로 계속 지지한 워싱턴 타임스에 문선명이 많은 돈을 지원함으로써 주로 자라갔다.
1982년에 설립된 이후에, 워싱턴 타임스는 레이건-부시 행정부의 일부 논란이 되는 정책들, 예를 들어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정부 우파 게릴라) 전쟁과 같은 정책들을 충실하게 지지했다.
게릴라 단원들의 마약 밀매가 1985~86년에 처음으로 미국 국민에게 밝혀짐으로써 콘트라작전이 곤경에 빠졌을 때, 워싱턴 타임스는 반격을 주도하여 문제의 첫 번째 증거를 밝힌 언론과 의회의 조사자들을 비판했다.
그와 같은 비판적 공격은 콘트라-마약 혐의는 사실이 아니라는, 즉 십여 개의 콘트라 부대들이 코카인 밀매에 연루되어 있으며 레이건-부시 행정부는 많은 증거들을 은폐했었다는 것을 1998년에 CIA 감찰감이 인정할 때까지 계속된 그와 같은 믿음을 워싱턴의 정가에서 일반적인 통념으로 굳히는 것을 도왔다.
워싱턴 타임스는 또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이란-콘트라 특별 검사
로렌스 월시(Lawrence Walsh)를 공격하는데 앞장섰다.
로렌스 월시
자신의 동맹자들에 대한 이 신문의 보수적인방어는 이란-콘트라 추문과 관련하여 자신은 “그 고리 바깥에” 있었다는 부시의 주장을 오랜 시간 동안 두둔하면서 은폐한 백악관을 월시가 조사하여 나아가는 것을 위협하는데 큰역할을 하였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워싱턴 타임스의 역할에 대한 세부 사항을 보려면 월시의 책 방화벽(Firewall)을 참조하라.]
문선명의 워싱턴 타임스는 전국적인 정치적 운동 기간 중에 특히 큰 영향을 미쳤는데, 부시가의 적들에게 가혹한 그리고 흔히 올바르지 못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1988년에, 조지 H.W. 부시가 대선에 출마하였을 때, 워싱턴 타임스는 민주당 후보인 마이클두카키스(Michael Dukakis) 의 정신 상태에 관한 거짓된 소문을 퍼뜨려서 그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대해
의문을 일으키는 첫 번째의 중요한 단계를 밟았다.
마이클 두카키스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워싱턴 타임스가 너무나 고마워서 1991년에 그 신문의 주필인
웨슬리 프루덴(Wesley Pruden) 을 백악관 비공식 오찬에 초대하였다.
웨슬리 프루덴
부시는 그 오찬의 목적은 “단지 우리가 매일 읽고 있는 워싱턴 타임스가 워싱턴에서 얼마나 소중하게 되었는지를 당신에게 말해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워싱턴 타임스, 1992년 5월 17일자]
부시의 1992년 재선 운동 중에 워싱턴 타임스는 클린턴이 대학 시절 모스크바 여행 중에 KGB의 간첩으로 포섭됨으로써 미국을 배반했을 수 있다는 새로운 거짓 소문을 퍼뜨림으로써 또 다시 돕는 일을 했다.
부정 수단으로 사복을 채우다 조지 H.W. 부시가 1992년에 낙선하자, 워싱턴 타임스는 방어에서 공격으로 바꾸었다.
그 신문은 클린턴 행정부에 공격을 쏟아 붇는 보수파의 주도적인 무기가 되었다.
부시 가가 권좌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문선명은 그들의 호주머니 속에 직접적으로 돈을 넣어주었다.
문선명이 합병한 조직들은 미국과 아시아 및 남미에서 전직 대통령 부시가 연설하는데 돈을 지불했다.
때때로 바버라 부시(Barbara Bush)도 남편과 함께 그런 모임에 나타났다.
바버라 부시(Barbara Bush)
연사료는 수십만 달러에서 많게는 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수치는 1990년대 중반에
전직 통일교 고위층이었던 사람이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연설의 대가로 얼마를문선명의 합병 조직들로부터 받았는지 아버지 부시는 밝히기를 거부했다.
1996년에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연설 중에 이 아버지 부시는 문선명의 조직을 위한 일종의 국제적 로비스트로서의 단순한 연설 차원을 넘어갔다.
당시 문선명은 새로운 신문 티엠포스 델 문도(Tiempos del Mundo)를 발행하려고 계획 중이었으며, 그의 지지자들은 남미의 신문들이 비판적으로 기사를 싣자 당황케 되었다.
남미의신문들은 1970년대의 우익 “암살대” 정부 및 1980년대 볼리비아의 소위 “코카인 쿠데타”정부와
문선명 간의 밀접한 관계를 지적하고 있었다.
문선명의 옹호자들은 마약 밀매 및 기타의 조직범죄 활동이 문선명의 불가사의한 부의 원천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부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문선명의 추종자들은 이와 같은 혐의가 티엠포스 델 문도(Tiempos del Mundo)에 위협이되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문선명은 그의 신뢰성을 입증할 특별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미국의 41대 대통령의 보증을 받는 것이었다.
부시는 1996년 11월 22일에 아르헨티나에 도착하여, 아르헨티나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Carlos Menem) 과 함께 대통령 공관에 머물렀다.
카를로스 메넴
다음날 부시는 그 신문의 발행 만찬에서기조연설을 했다.
“부시가 기조 연사로 참석한 것은 그 만찬의 신망에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었다.”라고 통일교 뉴스는 기술한다. “ 아버지[문선명]와 어머니[문선명의 부인]는 연단에서 겨우 몇 피트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몇 명의 친자식들[문선명의 자녀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부시는 문선명과 그의 언론 기업 정신을 아낌없이 칭찬했다.
“나는 문 교주에게 깍듯이 축하를 드리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남미의 나의 친구들 다수는 워싱턴 타임스에 대해서 모르겠지만, 이 신문은 독자적인 소리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워싱턴 D.C.가 정신이 들도록 하는 신문인 워싱턴 타임스의 운영에 비전을 가진 그분이 방해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워싱턴 타임스의 편집인이 나에게 말했습니다.”라고 부시는 말했다.
부시의 보증은 사실과 일치하지 않았다.
편집인들과 통신원들은 문선명의 공작원들에 의한방해에 불만을 나타내면서 줄줄이 워싱턴 타임스를 떠났다. 그러나 문선명의 추종자들은 부시의 개입이 부정적인 신문 기사의 흐름을 멈추게 하였고 그 날이 원만하게 지나가게 한 것으로 믿고 있다.
'마귀적인' 미국 부시 가가 권좌에서 물러나 있었던 8년 동안 문선명도 점점 더 반 미국적이 되었으며,
종종그의 추종자들에게 미국은 “마귀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을 흡수하고 문선명이 미국의 파멸적인 경향이라고 보았던 개인주의를 없애버리기에 충분한
운동을 구상할 것이라고 맹세 했다.
“프라이버시와 극도의 개인주의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인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라고 문선명은 1996년 8월 4일 그의 추종자들에게 한 연설에서 언급했다. 그런 다음에 그는, “일단 여러분이 전체 미국을 삼켜버리기에 충분히 큰 이 강력한 사랑의 힘을 가지게 되면 여러분 위장 내부에서 불평을 하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소화시킬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0년의 선거 운동 중에, 워싱턴 타임스는 부시 가가 정치적 회복을 하도록 다시 도왔다. 매일매일 그 신문은 조지 W. 부시의 입후보를 후원하면서, 한편으로는 민주당의 엘 고어(Al Gore)를 깎아내리는
기사들을 발행했는데, 심지어 그의 정신 상태에 의문을 제기하기까지 하였다.
엘 고어(Al Gore)
1999년 후반에,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고어가 러브 운하(Love Canal)의 독성 폐기물 정화를 시작하기 위한 예산을 요구한 것으로 잘못 인용함으로써 논란을 일으켰다.
그 두 신문은 고어가 “그 모든 것이 시작되도록 한 것은 바로 나다.”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했지만, 사실 그는 비슷한 테네시의 독성 폐기물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 모든 것이 시작되도록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고어의 신뢰성의 결여로 추정되는 매체의 조소의 파도를 타게 된 그 잘못된 인용문을 가지고
워싱턴 타임스는 그 조소하는 패거리에 열렬히 가담하여 그 신문의 적들의 정신상태에 의문을 일으키는 구태를 재현했다.
워싱턴 타임스의 한 사설은 고어를 “망상적”이라고 규정하면서, “진짜 문제는 고어 씨의 점점 더 기괴해지는 말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기술한다.
그 사설은 계속해서 고어를 “자신과 자신의 업적에 대해서 분명하고도 엄청난 거짓말을 지어낼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작화(作話)를 실제로 믿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정치가”라고 했다.
[워싱턴 타임스,1999년 12월 7일자]
다른 신문들이 그 잘못된 인용문을 바로잡은 후에도, 워싱턴 타임스는 그 잘못된 인용문을계속 사용했다.
1999년 12월 31일자 문선명의 신문은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고어의 바지에 불이 붙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발행했다. 그 칼럼은 그 잘못된 인용문을 반복하면서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엘 고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흔히 신문의 유사한 과장 및 노골적인 오류 위에 구축된 고어의 추정된 거짓말에 대한 매체의 요란한 보도는 2000년 선거 운동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공화당의 여러 전략가들은 고어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널리 퍼진 인식이 고어의 표를 끌어내리고
조지 W. 부시가 백악관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회수 이제, 부시 가가 다시 집권을 함으로써, 문선명의 조직은 어떤 금전적 회수를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자금을 종교적 자선에 쏟아 부으려는 조지 W. 부시의 계획은 비영리 자선 사업을 위해 조직된
문선명의 일선 집단들에게 특히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주의적 텔레비전 전도사인 700클럽 대표 팻 로버트슨 (Pat Robertson) 목사는 부시의 “신앙에 바탕을 둔” 독창력이 어떻게 문선명의 호주머니를 채워줄 것인지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냈던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배도한 거짓목사 팻 로버트슨 (Pat Robertson)
“700 클럽 (Club)”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팻 로버트슨목사는 문선명의 통일교는 “종교적 자선 사업을 위한 정부 교부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의 확대를 위한 계획의 금전적 수혜자”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 포스트, 2000년 2월 22일자]
미국 납세자들의 돈을 받을 가능성 외에도, 문선명은 그의 정치적-종교적-사업적 조직은 확실하게 무해하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으로부터 지속적인 유익도 얻을 것이다.
그의 전 며느리를 포함한 교회 내부자들에 의한 직접적인 진술을 포함한, 문선명 자신의 조작에 의한 돈 세탁이라는 널리 퍼진 증거들이 있다.
그러나 이 증거는 연방 정부의 무관심의블랙홀 속으로 사라지고 있을 뿐이다.
공산 북한과의 문선명의 사업 거래는 1991년 및 최초의 부시 행정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역시 미국의 공식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것에 근거하면, 문선명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오래된 금수 조치를 위반한것으로 보인다.
문은 그와 같은 금수 조치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녹색카드”를 가지고 있는 법적 미국 거류민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미국의 제재 조치를 준수할 것이 요구된다.
정보자유법에 의해서 내가 입수한 또 다른 국방부 정보국의 문서에 따르면 문선명은 수백만 달러를
은밀히 당시의 공산 지도자 김일성을 포함한 북한의 최고위층에 전달했다.
그 돈을 준 1990년대 초중반은 그 북한 공산 정권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쓸 경화를 절실히 필요로 하던 때였다.
역설적이게도, 조지 W. 부시가 현재 북한과의 협상의 진행을 연기하고 있는 주된 이유로서 그리고 미국의 핵무기 “전략 방위 구상(Star Wars)” 보호물 구축에 수백억 달러를 쓰고 있는 주된 이유로서 언급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렇게 증강된 무기들이다.
지난날 정상회담에서 부시와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은 공산 북한과의 대화 중단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부시는 북한 사람들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공격했다.
사람에게는 분명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러나 배후에는 부시 가와 김대중 및 북한의 공산 지도자들을 연결하는 그 오래 된 연결 관계가 있다.
그것은 문선명 교주의 불가사의한 돈에 의한 은밀한 유대이다.
이 글은 문선명 통일교 교주가 불가사의한 자금으로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한국의 김대중을 비롯 정치가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내용과 미국 대통령 부시 가에게 자금을 지원한 내용을 밝히고 있다.
문선명과 김정일은 깊은 컨넥션이 형성되어 있고, 김대중과도 깊은 연관이 되어 있다.
문선명 = 김정일, 문선명 = 김대중, 문선명 = 부쉬, 김정일 = 김대중, 김정일 = 부쉬,
김대중 = 부쉬.
문선명은 6,25 피난시절부터 부산에 있을 때에 일본의 '일루미나이티' 가 도왔으며,
'일루미나이티'는 예수회 산하에 있다.
예수회 수장 검은 교황
2008년 지금 한때 미국 대통령 조오지 부쉬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을 악의 축이라고 말했는데
사실 웃기는 이야기며, 온 세상을 기만하는 말이며, 계획된 연기일 뿐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한
다! 부쉬와 김정일은 같은 편이다!
문선명, 김정일, 부쉬, 엘 고어, 김대중, 모두 같은 편들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은 그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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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이런 사탄의 손아귀에 빠져들지 않을텐데......
대통령이 사이비교주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