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요리를 시작했나
“공사장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일자리가 귀하던 때라
열심히 해야만 한다 생각했다.
10~12시간씩 설거지를 했다.
고무장갑에 물이 들어오고 겨울엔 손이
얼기도 했지만 손이 다 부르틀 때까지 참았다.
그렇게 1년 정도 일하다 보니
공사현장에 계시던 한 분의 눈에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 직책이 좀 높으신 분이 오셔서
너는 꿈이 뭐냐고 물어보셨다.
그때 요리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감사하게도 그분이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주셨다.
그렇게 21살 때 요리를 시작했다.”
-초반에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
“워커힐 중식레스토랑 금룡에 들어갔다.
한국인보다 중국분이 더 많았다.
언어나 문화의 차이 때문에 소통이 힘들었다.
중식은 센 불과 큰 도구들을 사용하다 보니
주방이 시끄럽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퇴근할 때 시간을 내어 따로 중국어 공부를 했다.
식자재, 숫자, 시간 등을 위주로 익히고
간단한 의사소통도 연습했다.”
-최연소 조리장을 달 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
“보통 호텔 레스토랑에선
40중후반쯤은 돼야 헤드셰프가 될 수 있다.
38살 때 헤드셰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성실함이라 생각한다.
뭐든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출근할 때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9시 출근이지만 3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
조리도구나 불판 등을 미리 세팅해뒀다.
일이 끝나고도 남은 것들을 정리하고
6시 퇴근이지만 보통 9시에 퇴근했다.
퇴근하고 나서 오늘 배웠던 것들
레시피를 적고 복습했다.
음식 맛을 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식재료라고 생각했기에 식재료도 따로 공부했다.
날마다 식재료를 정해서 그에 관한 내용들로
A4 한 페이지씩 채웠다.
그렇게 8년 정도를
하루에 3~4시간 자면서 노력했다.
성실하게 하니까 주변에서 알아주더라.
전통 관동식 중국요리를 배우고 싶었는데
당시 조리장으로 계시던 라현당 셰프님이
좋게 보고 도움을 주셨다.
일이 끝나고 셰프님을 찾아가 공부한
중국어로 대화를 하며 요리를 배웠다.”
-지금은 다른 목표하는 바가 있는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제대로 가르쳐보고 싶다.
지금은 ‘힐링셰프’를 통해
관련 활동을 하는 중이다.
힐링셰프는 2014년 만들었다.
처음엔 나를 포함해 세 명이었는데
지금은 50명 정도 셰프들이 가입했고
인터넷 커뮤니티의 회원 수는 2만명 정도다.
힐링셰프는 다양한 다이닝 행사를 한다.
식재료를 공부하기도 하고
사찰음식을 배우러 가기도 한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덜어주고자
셰프 콘서트를 만들어 학생들과 얘기를 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이런 활동들을 계속할 예정이다.
또 중식의 다양한 면을 알리고 싶다.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올리브TV에서 붉은 짜장면 레시피를
공개한 적 있다.
붉은 짜장면은 짬뽕과 짜장의 중간 맛을
내보고 싶어 만든 음식이다. 반응이 좋았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5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런 새로운 것을 포함한 중식을 알리고 싶다.”
-힐링셰프 활동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셰프들 스케줄상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고
월요일에 쉬기 때문에
보통 일요일 9시 이후에 행사를 진행한다.
그 행사에 어려 보이는 학생이
꾸준히 나와서 눈에 띄었다.
물어봤더니 부산에서 온 18살 고등학생이더라.
행사에 참여하고 밤이나 새벽차를 타고
내려가서 등교를 한다고 했다.
요리를 공부하고 싶어 그렇게 서울까지 와서
꾸준히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학생들끼리 커뮤니티도 만들어서
공부할 정도로 열심히했다.
특임교수로 서울호텔관광직업전문학교에서
수업을 하는데 그 학생이 입학했고
이번에 졸업한다. 나를 따라 진학한 것이다.
성장 과정을 보면서
흐뭇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첫댓글 성실함으로 무장하고
오직 노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남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마음으로...
모든 해답은 자기 마음속에 있답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희망을 심고 가꾸어 키워야 하지요~
설거지도 아주 잘하는 사람이 있고,
대충대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