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16:9]
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나의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실과, 너의 농작물에 떠드는 소리가 일어남이니라...."
내가...나의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 본문의 주제는 선지자의 눈물이다. 선지자는 십마의 포도나무가 황폐케 된 것을 슬퍼하는 야셀의 울음에 자신의 눈물을 섞는다. 그의 눈물은 쉬임없이 흘러 헤스본과 엘르알레를 적신다. 이 눈물은 물론 모압의 참상에 대한 선지자의 인간적 동정심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범죄한 백성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간접적으로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하다. '엘르알레'에 대하여는 15:4 주석을 참조하라. 너의 농작물에 떠드는 소리가 일어남이니라 - '떠드는 소리' 원래 포도짜는 농부들이 포도즙을 밟을 때 내지르는 즐겁고 유쾌한 소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은 비옥한 들판이 침략군의 장화에 의해 짓밟히는 소리이다. 마땅히 흘러야 할 포도즙 대신에 선지자의 '눈물'이, 마땅히 들려야 할 수확의 환호소리 대신에 포도원이 유린되는 소리가 들린다.
[사 16:10]"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그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 롤린슨에 의하면, '틀'은 포도원 가까이에 있다. 이는 바위를 파서 만드는데, 상하(上下) 둘로 나누어 위에서 흐르는 것을 아래에서 받도록 하였다. 포도를 따면 먼저 윗틀에 부어 발로 밟고 그것을 아랫틀로 내려오게 한다. 이때 밟는 사람은 대략 7명이며 맨발로 밟는다고 한다. 이들은 포도를 밟을 때 '포도의 노래'를 불렀다.
내가 그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 포도를 수확할 때 부르는 기쁨의 노래를 그치게 하는 이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입에 불과한 것이다.
[사 16:11]"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 같이 소리를 발하며 나의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나의 마음이...그러하도다 - '마음'과 '창자'는 몸의 내장, 심장, 창자를 가리킨다. 이로 보건대, 선지자의 눈물은 그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솟구치는 것이 분명하다. '소리를 발하며'(예헤무)는 직역하면, '격렬하게 떨리며', '요동하며'이다. 모압에서 이루어질 가공할 심판을 생각할 때 선지자의 창자는 마치 하프 줄이 떨림같이 고통으로 뒤틀린다는 것이다. '길하레셋'은 '길헤레스'(렘 48:31)와 같은 곳이다.
[사 16:12]"모압 사람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찌라도 무효하리로다..."
그 산당에서...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 재난의 순간에 모압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모스 신이 있는 산당에 나아가 몸이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기도하는 것뿐이다. '피곤하도록 봉사하며'는 직역하면 '모습을 드러낼 때, 기진 맥진할 때'이다. 이는 그들이 섬기는 신으로부터 응답을 얻어내기 위하여 제몸을 학대하는 이방 종교의 예배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 '니르아 닐르아'는 유음 현상이다. 그럴지라도 그들의 모든 노력은 결국 헛된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무효하리로다'(로 유칼)는 '할 수 없을 것이다'이니, 즉 그들이 성전에서 큰소리로 부르짖을지라도 그 응답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 16:13]"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어니와....."
전에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어니와 - 선지자가 제시했던 모압에 대한 경고는 이미 오래 전에 그에게 주어졌던 말씀이다. 여기에 새로운 예언이 첨가되어 계시의 결론 부분을 형성한다.
[사 16:14]: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품군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찌라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소용이 없이 되리라 하시도다..."
품군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 3년이라는 시기는 예언의 확실성을 기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이 시간은 결코 늦춰지거나 연기될 수 없으니, 왜냐하면 그것이 '품군의 정한 해' 곧 고용 기간이 끝나 품꾼들이 정한 삯을 받기로 되어 있는 그날에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품꾼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 시간이 지체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 이처럼 모압의 파멸을 확정한 하나님의 시간표는 한치의 착오나 어김도 없을 것이다. 한편 이 '삼년'이라는 기간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듯하며, 다만 본절의 사건은 B.C.734년의 디글랏 빌레셀의 침공 사건 혹은 B.C.718년경의 사르곤 2세의 아라비아 북서쪽 부족민들에 대한 정벌 원정과 연관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모압의 영화와...
소용이 없이 되리라 하시도다 - 3년이 지나기 전에 모압의 영화는 '능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즉, 그때에 모압의 많은 무리가 끊어져 무시할 만한 극소수만 남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압의 운명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교만으로 시작해서 수치로 마감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