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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분 하나가 시든다.
왜?
지난해 봄철. 중학교 친구가 성남 분당구 영장산 등산이 끝난 뒤 베낭에서 화목 세 뿌리를 주었다.
화분에 심은 뒤 하나는 시골 가져 갔다. 키 작은 상록수이기에 바깥의 햇볕과 비를 더 쐬고 맞히려고.
늦가을. 혹시 얼어죽을까 싶어서 서울로 도로 가져왔다. 새 잎 열 개쯤이 나와서 은근히 기뻤던 열대성 화목이다.
그런데 눈이 바람에 히끗 날리는 오늘 베란다로 나가서 들여다보았더니만 여러 잎사귀가 말라서 또르르 꼬였다.
아니 왜?
베란다 안이라도 추워서?
모르겠다. 베란다에는 여러 종류의 화목과 화초들이 있는데 혼자만 잎 끝이 말린 채 시드는지 모르겠다.
물기가 부족했나? 하는 걱정으로 물을 잔뜩 부어주고는, 더 온화한 거실 쪽 베란다로 옮겼다.
나는 싫다.
내가 남들보다 허약한 사실이 싫어서 나 아닌 다른 것도 시들거나 죽는 것들은 정말로 속상하다. 약한 것들은 가꾸고 싶지도 않다. 죽이기는 미안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원인을 알아야 하는데도 화초재배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다. 그저 답답만 하다. 식물에 대한 전문지식과 일반적으로 아는 상식은 전혀 별개다. 정작 필요한 전문지식은 부족했다.
화분 속의 흙을 엎어서 실뿌리의 상태를 확인할까? 좁은 아파트 베란다 바닥에는 흙과 지저분한 부식물이 마구 쏟아지기에 화분을 뒤엎는 작업은 마땅하지 않다. 별 수 없다. 죽거나 회생하는 것의 선택은 전적으로 이 나무한테 맡겨야 할 터.
또 이렇게 병약한 화목은 구태여 가꾸고 싶지도 않다. 다른 식물은 괜찮은데 '왜 너만 그렇니?' 물어도 대답할 리도 없겠지.
친구가 준 화목 하나는 이내 죽었다. 잔 잎이 무척이나 많은데도 원뿌리 줄기가 없었고, 실뿌리조차도 거의 없었다. 가느다랗고 많은 바늘형 잎을 지닌 외래종 율마 묘목같기도 했는데 죽여서, 아쉽고, 친구한테도 미안하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는 일은 어렵다. 남측 베란다라고 해도 햇볕이 길게 들지도 않았고, 또 숱한 아파트 건물 틈새로 햇살이 머무는 시간도 짧았다. 베란다는 본질적으로 음광이다. 베란다 옆에 수도꼭지가 있어서 내가 수시로 물을 자주 준 것도 원인이며 이유가 될 것이다. 식물이 잘 자라려면 화분 속에 적합한 거름도 보충해 주어야 하는데도 아파트 안에서 이런 행위는 좀 그랬다. 부식토를 구하는 것도 그렇고. 더우기 나는 화목화초 재배기술이 없다. 그냥 일반상식과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본 농사경험으로 작물을 잠깐 들여다 볼 뿐이지, 정작 어떻게 재배해야만 적절한 것인지는 모른다.
이삼 일 전의 일이다. 찐 고구마 껍질을 벗겨서 화분에 얹혀주었는데도 부식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화분 속에는 음식쓰레기를 분해하는 미생물, 곰팡이나 잡균의 활동이 거의 없는 듯 싶다. 요즘 때늦은 한파가 열흘 가까이 지속된 것도 요인일까.
식재료 부산물이 썩는 냄새를 싫어하는 아내. 내가 몰래 화분 위에 얹여 준 고구마 껍질이 아직도 맨숭맨숭했다. 아무런 미동도 없다. 육안으로도 별로 눈에 띄이지 않았다. 여름철에는 습기 많고, 온도가 높아서 음식물 부산물은 금새 부식하고, 곰팡이 스는 모습이 현저한데도 겨울철에는 생판 다르다.
오늘도 내 방 유리창문을 살짝 열고는 곁에 있는 화분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 가운데 정이 가는 식물이 있다. 2013년 11월 지방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인 농업대학 졸업식 날. 여학우가 나한테만 살짝 준 명월초. 한 포기가 지금은 많이도 번져서 화분 여러 개에서 자란다. 최초로 얻은 삼붕냐와 원포기는 연필 굵기로 굵어졌고, 줄기 속심도 단단해졌고, 증식시키려고 줄기를 잘라낸 흔적이 여기저기에 났다. 어미 모종은 상처투성이다. 잘린 순과 잎의 위에서는 새로운 곁가지가 여러 개씩 나오기에 지금은 이들의 모습이 우산처럼 둥그스런 모습으로 변했다. 그만큼 새 순이 많이 번졌다.
이 화분도, 고구마 겉껍질을 오래 전에 부어주었는데도, 아직껏 곰팡이가 슨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시골 텃밭과는 달리, 도심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이들 음식쓰레기를 분해하는 미생물 균이 거의 없다. 혹시 있더라도 분해력이 아주 적다.
다른 화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 달 전에 밤 속껍질을 벗겨서 화분 위에 수북히 부어주었는데도 부식하는 흔적은 아직껏 없다.
이름 모를 잎사귀가 큰 외국 화초도 있다. 곁순 두어 개가 난 지도 오래이나 성장력이 아주 더디다. 아무래도 겨울철 온도가 낮은 탓으로 여겨진다. 이 곁순은 해동된 뒤에 잘라서, 시골 텃밭에서 키워야겠다. 포기증식한 뒤에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아무런 계획도 없다.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를 모르기에. 꽃이 피는 지도 모르겠고, 그 무성한 잎을 먹거나 발효시키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도해서, 증식이 잘 된다고 해서 마냥 자꾸만 증식시키기에도 그렇다. 이름도 모르는 사철식물, 잎은 늘 퍼렇고 싱싱해서 좋다지만 그 용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조금은 그렇다.
나는 도시 아파트에서만 사는 사람이 아니다.
퇴직한 뒤에 시골로 내려가 산 지도 벌써 만 7년이 넘고, 또 몇 달만 지나면 만 8년째로 접어든다.
내가 이렇게 식물에 관심을 갖는 근거에는 내가 시골생활에 어느 정도껏 적응했다는 뜻이다.
지금은 추운 겨울철. 아파트라서 겨울을 모르고 지낸다. 그런데도 마음은 또 시골에 내려가 있다.
시골 텃밭에서 나무와 풀을 가꾸고 싶기에.
우리나라 자생의 식물은 외래종의 희귀하고 화려한 것보다 키우기 쉽다. 우리 식물은 내가 재배기술이 없어서 어설프게 가꾸어도, 전혀 돌봐주지 않아도 된다. 그들 스스로 크고, 꽃 피고, 열매 맺는다. 손공이 덜 가는 식물이 나한테는 적합하다. 내가 일일히 관심 쏟기에도 그렇고, 온실화원은 고사하고 비닐하우스 하나도 없는 나이기에 더욱 그렇다.
죽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것을 생각한다.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어쩌면 더 어려울 게다.
2.
오후 세 시가 넘었다.
배 고프지 않는데 점심 먹으려고 보온밥통을 열렀더니만 밥 한 덩어리가 스텐레스 식기 반 쯤이 들어 있었다. 뜨근뜨근하니 찬 밥덩어리는 아니다. 밥 꺼낸 뒤 빈 밥통의 전원 코드를 뽑았다.
싱크대 위에 있는 양푼 뚜껑을 여니 미역국이 잔뜩. 식었어도 국자로 떠서 식기에 부었다. 김치도 붓고, 물김치도 붓고, 기름에 튀긴 양파가 조금 있기에 이것도 다 부었다. 스텐 식기가 금새 가득찼다. 누가 보면 영락없는 개밥이나 나한테는 진수성찬. 식탁 위에 신문지로 덮어 둔 반찬 그릇에서 두어 쪽 남은 깍뚜기도 마저 다 먹었다.
'당신 없어도 나 굶지 않고, 먹고 살아 남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밥 식기를 개가 혀로 햝은 것처럼 싹싹 비웠다. 자수통에는 빈 그릇이 눈에 띄었다. 잔뜩 씻었다. 찬물로 씼었더니만 맨손 알손이 무척이나 시려워서 다시 뜻뜻한 물로 휑궜다. 뜨슨하니 살 것 같다. 접시에 밴 튀김 기름도 더 잘 빠지는 것 같고.
나 이렇데도 산다. 어쩌면 안 굶어 죽을 게다.
아침의 일이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아내는 '나 반모임 나가요' 말하고는 서둘러 나갔다. 아침 밥상머리에서 성당모임에 나간다고 말하고는 그대로 휑하고 나갔다.
그런데 말이다. 왜 밥통에는 오로지 밥이, 한 덩어리만 남았느냐고? 혹시? 황혼이혼을 통보하지도 않은 채 그냥 나가서 별거하겠다는 신호탄인가? 나로서는 아직은 판단이 안 선다. 오후 세 시 반이 훌쩍 지나고 네 시가 가까워지는 이 시각. 아내가 오늘 해질녁까지 들어오면 내 예상이 적중했는지 틀렸는 지가 판가름 나겠다.
저녁햇살이 유리창에 살짝 내비친다. 아침에는 눈이 날려서 무척이나 심난했고 걱정도 했다. 날씨마저 추우면 나같은 퇴직자는 그냥 죽음이다. 더군다나 퇴직한 지도 오래 되어 빈털이인 이 싯점에서는 날씨마저 추우면 안된다. 다행히도 저녁 햇살이 서측 유리창에 살짝 드리우니 걱정도 조금씩 풀리었다.
혹시 아내가 저녁 때에도 안 들어온다?
그럼 나는 마냥 굶을 것인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먹을 것이 아직은 조금은 남아 있다. 어제 단호박 주먹만한 거 두 개를 씼어 놨더니만 삶았더라. 맛이 별로인 것 같아서 입을 전혀 대지도 않았기에 이적껏 남아 있었다. 이것으로도 오늘 저녁 끼니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즉 안 굶어 죽고도 살아 남을 수 있는 식량을 확보했다.
마음이 느긋해져서 이렇게 내 방 안에서 pc자판기를 두둘기는 여유까지도 부리는 나. 아직은 살아 있기에. 15년 만의 한파가 지속된다는데도 느긋하다. 더구나 배 든든히 찬밥 한덩어리에 물김치 부어서 먹었으니, 무엇이 걱정되랴.
내가 밥 굶지도 않고,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을 아비 무덤 곁에 묻힌 엄니도 알 게다.
'그래라, 죽지만 말고 살아서, 추운 겨울철을 넘기고는 고향집으로 내려가라'고 진언하실 것 같다.
엄니 돌아가신 지도 11달이 넘었다. 한 달만 더 있으면 첫 기일이다. 첫 제사는 아무래도 서울에서 모셔야 할 게다.
작년 이맘 때 1월 말 쯤의 일이다. 엄니는 서해안 지방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애벌레처럼 살아 있었다. 아무런 기동도 미동도 없이 눈 감고는 숨만 내쉬었다. 하루 30분간 세 차례나 주어진 면회시간마다 엄니의 귀에 대고는 이렇게 말했다.
'엄니 바깥에는 눈이 내려요. 고향집 가는 길목에 있는 산에는 눈이 많이도 내렸네요. 엄니 눈 그치면, 겨울이 나면 고향집으로 가요. 엄니...'
라고 속삭이었다. 엄니는 아무 말도 없었다. 엄니 귀에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그런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저 내 목소리만 들려주었다. 병실 유리창 남쪽의 풍경도 나직나직 들려드렸다.
'음녁설 쇠면, 날씨 풀리면 고향집으로 함께 가요' 속삭이는 나는 정말로 갈 수 있다고 기대했을까? 아니다. 거짓말 했다. 엄니도 다 알 게다. '이놈이 거짓말을 하네. 살아서는 절대로 고향에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니는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다.
아들이 하나뿐인 엄니. 늙은 아들이 그렇게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는데도, 혼내지도 않았다. 병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지도 않고 오로지 누워만 있었다.
지난해 이맘 때까지도 엄니는 살아 있었는데도 올해에는 아니다. 엄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았다. 그러니 내가 굶어 죽지도 않고 더 살아야 할 이유다. 첫 제사를 지내야 하기에. 기일이 이제 한 달 뒤에 있다는 것도 엄니는 알고 있을 게다.
재작년 2월 초.
내가 대상포진으로 갑자기 아팠다. 치료가 안 되기에 다음날 서울로 올라왔다. 시골집 안방 아랫목에 누워 있거나, 쇼파에만 겨우 앉아 있은 엄니를 서울 아파트에 모셨다. 아쉽게도 곧 엄니는 병원 중환실로 입원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저녁밥 떠 드리고는 엄니는 응급실로 실려갔다.
시골집을 전적으로 비워 둔 지도 이제 2년 가까이나 된다. 열흘 남짓 뒤이면 꼬박 2년 째다. 지금쯤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텃밭에 심었던 화목들, 화초들이 많이도 죽었을 테고, 과실나무 묘목도 성목이 되어 제멋대로 자랐을 게다. 가지치기 시기를 놓쳐버려서 과일나무 가지들은 제멋대로 웃자랐을 게다. 빈 집에는 산새들이 날아들어와 울안 여기저기에 똥이나 찍찍 갈겨댔을 것이고, 이웃집의 들고양이도 보금자리 만들어서 새끼를 많이도 쳤을 게다.
빈 집에는 주인이 없을까? 아니다. 주인행세하는 것들이 있다. 이들 동물 이외도 허무한 것들이, 쓸쓸한 것도 주인행세를 했을 게다. 대문칸 틈새로 우체부가 던져 넣은 우편물, 잡지들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썼을 게다. 이런 것들도 빈 집을 지키는 행세를 했을 게다.
3.
어제던가.
막내아들이 물었다. 모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귀에 익은 단어인데도 그게 어디쯤인지 얼핏 생각이 안났다.
'아이 참, 아버지도. 예전에 저를 데리고 가셨잖아요?'
아들을 데리고 간 기억은 없다. 모도? 그거 섬 이름인데.
낡은 여행지도를 꺼냈다. 한참이나 뒤적거린 뒤에서야 인천국제공항 쪽의 섬, 세 개의 섬 가운데 하나다.
맞다. 그런 섬이 있었지. 직장 다닐 때에는 그래도 섬 여행도 다녔구나 하는 기억도 떠올랐다.
퇴직한 뒷날 나 혼자 시골로 내려갔다. 그때까지도 고시랑거리며 살고 있는 엄니 곁으로 내려갔다. 그 뒤로는 내 삶은 많이도 변했다. 시골 촌구석에서만 살았더니만 여행은 중단되었고, 예전 여행다녔던 기억도 지워졌다는 뜻이다.
인천국제공항 입구 길목에 있는 삼목뱃터에서 여객선을 타면, 금방이면 도착했던 섬. 시도, 신도, 모도.
더 멀리 가면 장봉도도 있고.
이제는 기억조차 사라진다. 퇴직한 지도 오래여서.
40여 년 만이던가?
어린 시절, 엄니와 헤어져 객지로 전학갔고,그 뒤로도 서울에서만 직장생활했다. 퇴직해서야 고향에 내려왔니만 억척스런 엄니는 꼬부랑할매로 변했더라. 합죽이 할매로 변했더라.
이제는 그 할매의 모습도, 어둔해진 목소리도 내 기억 속에서 빛바래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늙지 않는 얼굴, 영정 속의 엄니는 이렇게 저렇게 지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세월따라 아예 사라지고, 지워지겠지. 처음서부터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오늘 오후에 송파구 잠실아파트 23층에서 내려다보니 단지 안의 화단은 하얗게 눈이 덮혔다.
아파트 벽 틈새 건너편 인도에는 작은 개미들이 움직이고, 차도에는 풍뎅이들이 바쁘게 달려간다.
엄니 죽은 뒤 내가 거의 1년간 머물던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니 모든 사물들이 작아지고 줄었다. 개미와 풍뎅이처럼.
새 달력을 보니 오늘이 화요일이란다.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2월 말 추운 날. 벌벌 떨면서 엄니를 땅에 묻고는 그참 서울에 올라와 죽은듯이 지냈다.
할일이 적어서 잡글 쓰는 책을 봤더니만 이렇게 잔말이 늘었다.
오늘은 남편한데 잘 공대하는 아내한테 내가 미움받을 짓했다.
천주님이 아내를 잘 데리고 있을 텐데도 말이다.
혹시라도 오늘 해 전 안으로 돌아오면 '내가 잘못했노라'고 빌까?
아니면 그냥 시치미 뚝 뗄까?
'괜찮겠어? 너 안 울려고 이런 공상도 다 하지?' 하고 천주님이 안되었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볼까?
모르겠다. 내가 신자가 아니니 그런 동정도 기대도 안 한다.
그만 쓸까?
왜?
쓸데 없는 짓이니까.
그냥 써 봤어.
이유는 없었어.
2016. 1. 26. 화요일.
첫댓글 우리 삶에 "왜"란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질텐데
삶에 익숙해서일까 그런 의문도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아요...ㅎ
고향, 화분, 엄니등 맘속에 품고있는 여러가지들 모두 행복해 보입니다...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요....ㅎ
동쪽향인 내가 사는 아파트의 옆집은 여러종류의 화분을 너무나 예쁘게 가꾸며 꽃도 피우고 삽목도 하며
봄부터 가을까지 아파트복도를 화려하게 장식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데
난 도대체 화분의 식물들을 키우지를 못하니 난 동향이라 햇볕 부족이라 탓할 수도 없네요..
이런 것도 관심부족과 기술부족이겠지요..
댓글 감사.
식물을 잘 키우는 손이 있어요. 타고난 재능이 있어요.
식물은 관심을 주지 않아야 하는데도 관심을 주면, 예컨대 물 많이 주면요? 식물뿌리가 물속에 잠겨서 질식사.
저도 숱하게 관심 가지니까 제가 조고, 세탁기에 빨래넣으러 가는 아내가 주고... 결국은 질식사.
글 다듬지도 않았는데 댓글 감사.
왜, 댓글 빨리 달았셨나요?
1,베란다의 화분...꽃의 입장에서 보면 작은 화분 하나가 온 우주라고 할 수 있지,그러니까 화분은 클 수록 좋고 화분 안의 환경은 그 꽃의 자생지 흙과 일치하는 게 최적이지, 수생식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물빠짐이 좋은 모래흙과 부엽토가 적당히 섞여 있으면 괜찮다네 . 도시에서는 모두 구입해야 되니 분갈이 해 주기도 번거로운 일이지.
물주기가 중요한데 겨울에는 1주일에 한번 쯤 주어도 되고, 봄여름은 2~3일에 한번 쯤 주면 되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과습하여 대부분의 식물은 뿌리가 썪는다네
그리고 중요한 게 통풍일세,모든 식물도 호흡하고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지..
나도 수없이 죽이면서 말로만 이렇게 쓴다네 ㅎㅎㅎ
2,오후...ㅎ...맨날 개밥으로 끼니를 해결하시나?ㅎㅎ
나도 어느날 "콩나물 김치국"에 밥 한 덩이를 말아 놓고는 개밥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네,
그러나 개를 한번도 길러보지 않았으니 진정한 개밥은 모르지, 남에 집에서 본 개밥은 사료던데...?
아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란 상상은 왜 하시는지 모르겠네,
요즘 드물게 남편에게 존대말을 꼬박꼬박 쓰시는 아내님에게 불경스럽게시리...
"칼국수 사왔는데 드실래요?" 난 이런 말 평생 못 들어 볼 말이구먼 ㅎㅎㅎ
@정희태 3, 죽음...어머니의 죽음...생물학적인 죽음이야 간단한 일일세
호흡과 심장박동이 멈추면 죽음이라 정의하겠지만,나는 말일세
최형의 어머님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인간의 완전한 죽음은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이 다 사라질 때까지는 어쩌면 죽은게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네, 최형이 어머니의 추억을 간직하는 한 손주가 할머니를 그리워 하는 날까지는 죽은 게 아니라는 억지를 쓰고 싶은 것이네
그래서 동양인들은 옛부터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여겼는지도 모르네, 기억으로나마 오래 살아 있고 싶었다고도 할 수 있지 ㅎㅎㅎ <억지라고 웃어 넘기소 ㅎ>
@정희태 아무래도 흙 탓일 게여. 시골 텃밭에서 삽으로 푹푹 퍼서 화분에 꾹꾹 담고는...
서울 올라와서는 그냥 물만 자주 부어대니 식물뿌리가 숨 막혀서 죽어가는 현상일 것 같아. 식물은 관심 가지면 오히려 더 부대끼는 법인데...
아니 정형네 사모님은 군대식으로 '밥 먹어"'이렇게 명령하는 거여? 에그 안 되었다. 새로 바꿀 수도 없고.
아니면 그냥 문 '똑똑' 두들이면 정형이 알아서 식탁으로 가는 거? 별 수 있어? 다 늙어서 꼬리 내린지 오래고. 추운 날 바깥으로 내몰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
혹시? 야외로 사진 찍으러 나가는 이유가? 저런저런... 그럼 안 되는데... 벌써... 안 되는데..
식물재배 지식에 감사.
@정희태 가족관계는 내가사라질때까지
우리들의가숨속에서사라지지
않을거라생각합니다,
생존해있을때까지잊혀지지않을것입니다 위글의엄니!
많이기억하고그리워하세요
저는힘들고어려울때마다엄마아버지
부르고또부르고한답니다
개밥?
예전 시골에서 내 엄니가 이쁜이(개)를 10년 간 키울 때에는 개 밥 끓여서 주었어. 냄비에 이것 저것 넣고서 끓였어. 당신은 찬밥 먹어도. 그 개 늙어서 죽었을 때 엄니 많이도 울더라. 내가 앞밭 감나무 밑에 묻었지.
개도 개 나름. 개 사료? 그 딱딱하고 똥그란 거? 그런 것은 없었어. 예전에는 개밥 없으면 당신이 먹던 밥 덜어주었지.
예전 사람들은 정이 있었어. 소 돼지 닭 염소 개를 먹어도 다 정성들였지.
소? 소죽은 새벽과 저녁 때에 쒀. 불 2시간 때야 돼. 나는 그렇게 소를 키웠는데.. 하루 네 시간씩. 소는 식구였지.
엄니의 개. 나는 정 떼는 게 싫어서 이제는 개 안 먹여. 안 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