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0일 (토)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복음 묵상 (요한 12,24-26) (이근상 신부)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 27)
그를 섬기겠다는 삶의 선택이 그의 삶으로 우릴 이끄는 모양이다. 섬긴다, 디아코네오는 재있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디아, 완전히+코니스, 먼지의 합성인데, 먼지를 풀풀 날리며 바삐 움직이는 적극적으로 시중드는 이들, 이를테면 노예의 삶을 의미한 모양이다. 봉사도 그냥 봉사가 아니라 아주 적극적 봉사. 따라서 이 섬김은 섬김의 내용이나 그 절적 완성도보다 그 봉사의 태도, 마음의 방향, 섬기는 자와 섬김받는 자의 관계가 훨씬 중요할 것이다.
재미있는건 그 섬김이 길이 아니라는 점. 섬김은 이야기의 시작일뿐. 섬김고픈 갸륵한 마음조차 아직 길이 아니다. 섬기려는 자는 예수의 삶을 따라서 살아야 섬김이 된다는 것. 내내 세상을 섬긴 자를 섬기는 법이란 그가 섬기는 자들을 섬기는 것.
그러면 아버지의 존중을 받으리라 약속하셨다. 밋밋하게 들리지만 이 때 존중받는다, 티마오는 의미는 그 가치를 크게 평가받는다는 뜻이다. 이 천년전 그 문화에서 인간관계의 가장 고귀한 칭송이다. 하느님에게 칭송받으리란 말씀. 큰 악속이다. 한갖 인간이 하느님께 받을 포상이 아니다.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주는 행위인데, 하느님이 인간에게? 이는 과장인가? 우리 신앙은 이 약속이 우리게 다가오는만큼. 절실한 만큼.
그의 존중을 받는 이는 그의 법정에 서지 않는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29ux8YNAJmtg28Qaud5DNjLgYRJDqq2HSZBbhSwzreZmbLSinzNNFNyGHy13YtDX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