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65]이런 전각篆刻작품은 어떤지요?
그(국보급 전각예술가)가 만든 최신 작품 2점을 감상하면서, 이런 것이 바로 예술藝術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해설하는 것을 바로 눈 앞에서 들으면서 이런 작품은 그가 아니었다면 만들기 어렵겠다싶어 살풋 감동했다. 솔직히 말하면, 돌판에 새겨진 사자성어 한문을 읽을 수도 없고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했다.
먼저 ‘총욕불경寵辱不驚’을 보자. 寵은 괴다, 사랑하다, 은총할 때의 총자이고, 辱은 모욕이나 수치를 의미하는 욕자이다. 驚은 놀랄 경. 총욕불경은 누군가에게 총애을 받거나 모욕을 당해도 ‘1도’ 놀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단서조항은 이해와 득실을 마음에 두지 않으면 그렇다는 건데, 도인道人이 아닌 이상 우리 같은 보통사람이 이해와 득실을 마음에 두지 않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랴. 당서唐書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하는데, 금문전서(대전大篆) 글자도 참 희안하게 생겼다. 어렵다.
다음 작품은 더욱 ‘가관’이다. ‘난득호도難得糊塗’ 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검색을 해보니, 중국의 정판교(1693-1765)라는 위인이 썼으며 중국 가정에서 가훈家訓으로 애용되는 사자성어라고 한다. ‘난득’은 얻기 어렵다는 뜻이고 ‘호도’는 어리숙하다, 어리석다의 뜻으로 ‘일부러 바보인 척하기가 어렵다’로 풀이되겠다. 우리말 ‘호도하다’는 풀을 발라 감추거나 흐지부지 덮어버리는 일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어리석다로 해석한다. 살다 보면 어느 때에는 바보처럼 처신해야 하는 때가 있다는, 중국인들의 일종의 처세술이라 하겠다. 정판교는 시서화에 아주 능한 문인으로, 특히 난초와 대나무를 잘 그렸다한다. 그가 이 사자성어를 써놓고 설명을 덧붙였다. “총명하기는 쉽지 않다. 어리숙하기 또한 어렵다. 하물며 총명한 사람이 어리숙해지기는 더 어려운 법이다. 때로는 하나를 버리고 한 걸음 물러나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려는 것이지, 나중에 복을 받으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전각가가 친절하게도 정판교가 덧붙인 설명의 원문을 새겨놓았다. <聰明難 糊塗難/由聰明而轉入糊塗 更難/放一著 退一步 當下心安/非圖後來福報也>. ‘一著(한 생각)’을 놓아버리고 ‘一步(한 걸음)’ 물러나는 것은 ‘當下(어떤 일을 당한 그때나 그 자리)’ 마음이 편안해지려는 것 때문이지 ‘後來(훗날)’에 ‘福報(복으로 돌아올 것)’를 ‘非圖(꾀하는 게 아니다)’하는 것이 아니다. 참 어렵지만, 어쩐지 뭔가 있는 듯, 멋있는 듯한 문구같다. 난득호도의 대구對句(비슷한 어조나 어세를 가진 것으로 짝을 맞춘 시의 글귀)로 잘 쓰이는 말이 ‘喫虧是福끽휴시복’이라고 한다. 끽휴는 손해를 본다는 뜻으로, 난득호도보다 더 어려운 사자성어이다. <정판교의 바보경>(한정은 번역, 2011년 파라북스 펴냄)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목차만 봐도 무척 흥미롭다. 명철보신明哲保身의 경전인 <채근담菜根譚>도 있지만, 중국인들은 평생 그렇게 처세處世를 할 일이 많았는지 정판교가 일일이 알려주고 있으니, 그것 또한 희한한 일이다.
아무튼, 전각예술인의 작품 2점으로 배운 사자성어로 지식이 또 하나 늘었지만, 이 어려운 작품을 책상 머리맡이나 서재의 벽에 걸어놓으면 머리가 심란해져 어지러울 것만 같다. 하하.
이런 어려운 경구警句를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아도 좋겠으나, 나의 평생 좌우명은 누가 뭐래도 <일일청한一日淸閑 일일선一日仙>이다. 고1때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 이 문구를 배웠으니, 아주 오래된 좌우명인 것을. 오늘 하루 동안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한가롭게 지내면 오늘 하루만큼은 신선이 된다는 뜻이니, 내가 날마다(日日)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한가롭게 지낸다면 날마다 신선이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내일도 '일일선日日仙'이고자 하는데, 그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