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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 입문
폴 발레리 지음, 김동의 옮김
레오나르도의 데생과 문장에서 보이는 다이내믹한 정신의 운동에 매혹된 저자는 그 메커니즘을 해명하고자 그의 방법을 다시 구축하려고 시도했다. 저자의 미학과 사고의 원점이 되는 레오나르도에 관한 글들과 후기에 쓴 짧은 글이 추가됐으며 여백의 주석도 눈여겨봐야 한다.
책소개
‘창조’의 수수께끼에 다가서는 압도적인 사변의 힘!
폴 발레리의 미학과 사고의 원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영감을 주는 존재로서 발레리의 마음에서 평생 떠나지 않는 예술가였다. 레오나르도의 데생과 문장에서 보이는 다이내믹한 정신의 운동에 매혹된 발레리는 그 메커니즘을 해명하기 위해 레오나르도의 방법을 다시 구축하려고 시도한다.
천재의 '초상'을 그리려고 전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발레리는 과학과 예술을 둘러싼 인식의 극한에서 펼쳐지는 긴장감 넘치는 '정신의 드라마'를 겪게 되고 그를 통해 최고의 지성의 작용에서는 과학과 예술은 별개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발레리의 미학과 사고의 원점이 되는 세 개의 다빈치에 관한 글에다 후기에 쓴 짧은 두 편의 글을 추가한 이 책은 그의 다빈치론의 완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천재의 초상을 그린다
정신활동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 예외적인 활동을 한 인간의 초상을 어떻게 하면 그릴 수 있을 것인가. 정신이 갖는 모든 능력이 충분히 발달해 있으면서 도저히 한 인간이 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종다양의 업적을 내놓은 인물이 있다고 한다면 이 모든 것을 한 인물을 하나의 통일된 인격으로 상상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최초의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천재만의 것으로 보이는 능력이, 비록 ‘맹아적 상태’일망정, 우리 자신에게도 존재한다는 관점이다. 이 생각에는 몽테뉴 이래의 모랄리스트의 전통이 숨쉬고 있다. “인간은 누구라도 자신 안에 인간 본성을 완전한 형태로 갖추고 있다.”(『에세이』 제3권 2장) 감히 다가가기 어렵게 보이는 고대의 영웅들도 그 위대함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그 ‘맹아’에서 시작된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 비해 그 발달의 정도가 다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을 그처럼 높은 곳에 도달하게 한 원동력을 확인하고 그 원동력의 맹아가 자신에게도 약간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경탄할만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몽테뉴는 말하고 있다. (『에세이』 제2권 32장) 몽테뉴는 이처럼 경탄의 염을 자아내는 인물에 대해 자신 안에 있는 ‘맹아’의 감각을 근거로 판단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개인의 현재의 감각을 단서로 해서 보다 보편적인 모습으로 실현된 정신의 힘을 명백히 하려는 이 모랄리스트의 전통에 비해 발레리가 그리는 초상은 ‘방법’에 대한 강한 의식이 있다는 점이 그 특색이 되고 있다. “어떠한 예상치 못한 발견에도 반드시 포함되어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의지가 이 작품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발레리는 어떤 탐구를 행한 인간은 반드시 어떤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확신을 피력하고 있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 내부에는 반드시 무언가 방법이 창출되고 성장해간다는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 경이적 업적을 올린 사람을 단순히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이 어떻게 해서 그러한 업적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하나의 방법의식의 실천으로서 명확히 기술하려고 한 것이다.
*인격의 개별성을 넘어 보편성으로
그 방법이란 것은 당장은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발레리는 이러한 가설의 구축이라는 것이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실증적 연구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 쪽이 발레리에게는 매력적인 것으로 비친다. 이 방법은 “의심스러운 에피소드의 연속, 수집품의 목록에 붙인 주석, 연보 같은 것에 비하면 더 호감이 간다. 이런 고증학적 박식에 의존하면 순수한 가설이려고 하는 이 에세이의 의도는 왜곡될 것이다.” (본서 14 페이지)
방법에 대한 의식이 깊어지면 질수록 개인은 인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잃어간다고 발레리는 생각했다. 일반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방법은 개인에게서 특수성, 개별적 생애라고 하는 것을 빼앗아버린다. “탁월한 인간은 결코 독창적인 인간은 아니다. 그 개성은 그저 평범함에 지나지 않는다.”(“노트와 여담”, 본서 95 페이지) 출발점에서 개인적인 ‘맹아’의 감촉이 있다고 해도 최고도로 실현된 정신에게는 인격을 능가하는 힘이 감추어져있다는 것이다. 방법의식으로까지 높아진 정신이라는 것이 정치적, 역사적인 문맥에 있어 커다란 위험을 품은 생각이라는 것이 “방법의 제패”, “정신의 위기” 등의 일련의 문명론에서 논해지게 되지만 그것은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여기서는 특수한 여러 조건을 넘어서 보편성에 도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질문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방법에는 과학상의 발견과 예술작품의 창작 사이에 구별을 두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정신의 조작을 그것이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생성과정에서 포착하면 거기에는 과학과 예술이라는 명칭으로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한, 모든 생산 활동에 공통된 요소가 끌어낼 수 있다고 발레리는 생각한다. 그 결과가 예술작품이 되는 것인지, 과학적인 정리定理가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유동적이고 미해결이고 또 순간마다에 좌우되는”(본서 16페이지) 상태에서야말로 ‘방법’은 최대한의 효율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 사고방식은 그 자체로 지식의 전문화?세분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의 인간이라고 하면 젊었을 때 특수한 전문분야에 들어가 거기에 닫히게 되면 뛰어난 인물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본서 55 페이지) 그것은 정신의 활동을 결과에서만 보려고 하고 정신이 행하는 조작을 그 생성과정에서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과학과 예술처럼 어떤 종류의 연구 상호간에 커다란 거리가 상정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들 연구의 기원이 된 정신도 서로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통설이 되었다.” (15-16 페이지)
*정신의 극한에 이른다는 것
“한 사람의 인간을 상상해보려고 한다”(이 책 12 페이지) “다빈치 방법 입문”의 이 말은 이상의 의미에서 볼 때 23세의 발레리가 저 높은 곳에 내건 ‘야심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상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진 엄밀한 작업을 축적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방법을 명확히 하면서, 학문적 지식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정신의 작동을 해명하고, 전문화된 분야의 구분을 넘어서려고 하는 것, 그것을 통해 보통의 인간에게는 ‘맹아상태’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능력이 어떻게 예외적인 형태로 발전했는가를 극한까지 탐구하는 것. 상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르네상스의 화가에 대해 몽상을 기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의 극한의 모습을 체현한 화가가 어떻게 세계를 포착하고 표현했는가를 해명하는 것으로 정신의 궁극적인 가능성을 명백히 하는 것이야말로 상상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상상하는 것은 하나의 기하학적인 장, 인간정신의 모든 산출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적인 장소를 명백히 하는 것이다. 발레리에게 있어 “이 정신은 기하학적인 장”인 것이다. “모든 것이 거기서 일어났을 것인 중심적 비전”은 당시의 발레리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기하학으로서 그 구석까지 의식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가능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궁극적인 장소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특수한 능력을 임의의 정신적인 조작으로 바꾸어버릴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다빈치의 말인 “완고한 엄격함Hostinato rigore”을 밀고나감에 의해 보편성을 얻는 것은 정신이 자신의 특이성을 잃고 임의의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발레리는 거기에서 지금 하나의 말해지지 않은 드라마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反작품 혹은 ‘진행 중인 작품(워크 인 프로그레스)’
이 책은 그 특이한 편집으로도 주목을 끈다. “노트와 여담”(1919), “레오나르도 다 빈치 방법 입문”(1894), “레오나르도와 철학자들”(1929) 등 개별적으로 발표한 세 개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1931년 사지테르 출판사에서 낼 때 발레리는 자신이 직접 본문 좌우의 여백에 주석을 써넣었다. 예전에 쓴 글에 대해 본인이 직접 코멘트를 달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사지테르 판은 발레리 자신의 손글씨를 그대로 사진복사해서 출판한 것이다. 그 이후 이 책은 새롭게 출간될 때마다 이처럼 발레리 자신의 코멘트가 함께 편집된 상태로 나오게 되었다.
발레리는 흔히 하는 대로 예전에 쓴 글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예전 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을 밝히는 것을 택한 것인데 이것은 어떤 텍스트를 하나의 완결된 것으로 보기를 꺼려하는 발레리의 입장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인 <카이에>가 그러한 것처럼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쓰는 것은 발레리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이 카이에는 나의 악습이다. 이것은 또한 반反작품이고 반 완결이다. ‘사유’에 관계되는 한에서 작품은 위조이다. 왜냐하면 작품은 임시적인 것, 반복할 수가 없는 것, 순간적인 것, 순수와 불순, 무질서와 질서의 혼합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카이에> 20권, 678)
물론 발레리가 반反작품이라는 원칙을 항상 따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품으로 발표된 텍스트를 조탁하는 대신에(실제로는 판이 바뀔 때 수정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서문을 쓰거나(“노트와 여담”) 다른 형식으로 변주하거나(“레오나르도와 철학자들”) 그리고 텍스트와 다시 대치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거나(사지테르 판의 본인의 주석) 하는 식으로 처음의 형태에서 점점 변화하는 작품은 발레리의 텍스트 중에서도 아주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자신의 예전 글에 대해 주석을 단 것은 작품으로서 완결되어 있다는 겉모습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며 텍스트 자체가 일종의 생성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은이 | 폴 발레리 (Paul Vale'ry)
프랑스의 시인·사상가·평론가. 장시 「바다의 묘지」의 무대가 된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항구 세트에서 태어났다. 몽펠리에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급우인 피에르 루이스의 소개로 앙드레 지드와 사귀며, 말라르메와도 교류하게 되었다. 이후 두 편의 중요한 산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법에 관한 서설(Introduction a la methode de Leonard de Vinci)」(1895), 「테스트 씨와의 저녁(La soiree avec monsieur Teste)」(1896)을 통해 깊이 있는 사고와 필력을 보여주었으나, 1897년에서 1917년까지 20년 동안 시를 떠나서 아바스 통신사 등에서 한직이 주는 여가를 이용해 수학과 추상적인 규율들에 대한 사색에 몰두하였다. 이 긴 침묵은 장시 「젊은 파르크(La Jeune Parque)」(1917)의 발표로 비로소 깨진다. 청년기의 시 작품들은 『옛시 앨범(Album de vers anciens)』(1920)을 이루게 되고, 「바다의 묘지」, 「나르시스 단장」등을 담은 장년기의 시들이 시집 『매혹(Charmes)』(1922)을 낳게 된다. 이들 작품은 상징시의 한 정점이자 프랑스 시의 한 궁극으로 인정되어 발레리를 일약 대시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 후 시는 쓰지 않고, 산문과 평론으로 계속 이름을 떨쳐 마침내 20세기 전반기의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의 지식인이 되었다. 1925년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며, 1937년부터 생애를 마칠 때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시학 강의를 하였다. 다른 주요 작품으로 평론집 『바리에테』, 산문 『영혼과 무용』, 『외팔리노스』, 『나무에 관한 대화』, 시극 『나의 파우스트』 등이 있다.
옮긴이 | 김동의
미국 스와스모어 컬리지를 졸업했고 뉴욕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번역 및 출판기획 일을 하고 있다.
목차
1.
-레오나르도 다 빈치 방법 입문
-노트와 여담
-레오나르도와 철학자들
2.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고
역주
폴 발레리 연보
옮긴이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