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테드 요크 - 티퍼레리까지 멀디 먼 여정 칼 닐슨 - 교향곡 4번 '불멸' 제 4 악장 ※ - 해당 후기는 모바일에서 보기에 최적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데스크탑내지 랩탑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게임 후기 -[캐나다]- 게임 후기 -[영국]- 명제 : "국왕 폐하의 의지로, 대영제국은 승리했습니다." - 이 이상에 보이는 명제를 누지르시면 현재 창이 해당 글로 전환합니다.- 세계대전 이전의 서구 사회 여성의 역할은 대개 주부나 일정 직업에 국한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영제국을 예시로, 세계대전 전까지 인구 통계에서 이천사백만 여성 성인 인구 중 약 백칠십만명이 가정에 머물렀고 팔십만명이 섬유 제조 업체에서 종사했습니다. 이외 육십만명이 의류 사업 종사자로써 각지에 근무했고, 50만명이 자영업자였으며 26만명이 지역공무원 및 국가 공무원(교사 포함)으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대영제국의 직물 및 의류 사업의 종사자는 특히 남성 노동자보다 여성 노동자 채용 비율이 높아 이러한 사업을 여성 노동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또 소수 여성계층이 방대한 직업 진로를 관리하는데 반해서 대 다수의 여성이 여전히 가사 노동이나 여성 노동에 주로 배속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1914년 이전에는 몇 안되는 국가(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부 스칸디나비아 권 국가)에만 여성 참정권이 부여되, 이들이 자국 내에서 터무니 없이 작지만 정치 과정에 약간이나마 개입할 수 있었습니다. 수백만의 인명이 전쟁에 소집되며 이에 불가피하면서 잔혹하게도 사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게 되면서, 각 행정시의 정책이 전원과 농장 위주로 인력을 배치하게 되자, 산업 전반에서 나타난 극심한 노동력 부족이 대두되었습니다. 정국이 이렇게 흘러가자 양차 대전 간에 여성이 불가피하게 작업전선에 요구되면서 채용되기 시작되자, 기존의 성비간의 전통 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렸습니다. 대영 제국 내부에선 이를 노동희석의 과정이라고 인식하면서, 노조에 의한 전문 기술 분야와 조선 산업 분야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독일 제국의 신무기 개발 기획안의 총 담당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교수이고, 2월 17일 태평양 제도의 한 섬에서 핵 폐기물 폭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협상국 첩보국에서 확인했다. 이에 협상국 통합 사령부는 유럽 전선의 확장을 앞당기기로 결단했다. 상륙 거점을 삼을 곳은 많았지만, 주요 거점으로 삼기에는 모자란 지역이 다수였으며 독일 침공의 보루로 작용할 지역을 선정하는데 고충을 겪었다. 이날 협상국 통합 사령부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최근 내전이 종결된 스페인 왕국의 전면 침공을 결정하였다. 준비된 연합 공군 전투 비행단의 숫자만 120개가 넘었다. 하지만 독일 제국이 보유한 직속 전투 비행단은 이의 5할을 상회하고 있으며, 제국령에 속한 국가의 공군 전력을 합치면 협상국 공군 전력의 2배를 훨씬 상회한다. 결정적으로 제공권을 장악할 전투기 사단의 숫자가 턱없이 모자랐다. 운좋게 타격 기회를 잡아도 이들을 보호할 호위 체계가 없다면 자살 임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기계화&차량화 사단의 전력 차는 1:3이었다. 차량의 성능은 협상국이 유리했지만, 주력 전차 한대가 3대의 구세대 전차를 상대할 순 없는법이다. 유일하게 압도 가능한 전력은 미국과 남부맹방의 압도적인 보병 사단과 대영제국과 자치령의 특수전 병과 뿐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전선 유지는 가능하지만, 이를 돌파 가능한 전력이 턱없이 모자른 것이다. 그나마 육군 전력비는 600만대 478만으로 약 1.5배차로 협상국이 유리했다. 단지, 중앙 유럽과의 전쟁 개전 시에 감당할 전역이 너무 넓었다. 다양한 전역으로 보낼 갖가지 보금품 전달에 대한 문제로 골치를 겪을 확률이 늘어난다는 소리다. 이 전쟁에서 변수는 그 뿐만이 아니다. 독일 황제 빌헬름 3세가 식민지에 자치권을 불어넣으면서, 시간이 경과될수록 나타날 잠재적인 전력 증가 또한 고려해야 했다. 어찌됬든 통합 사령부는 늦어도 47년 중순까지 지중해와 프랑스 지역의 공세를 위한 안전 지역을 마련하겠다고 호언했다. 1945년 6월 12일 오전 10:00시. 협상국 사절단이 카를파가 다스리는 스페인 왕국에 선전 포고 문을 전달했다. 프란시스 사비에르 데 부르본 파르메 왕의 대변인 마누엘 호세 팔 콘데는 구 제국주의 세력의 국권 침탈을, 독일 제국이 좌시할 리 없다며 중앙 유럽에 군사 동맹과 즉각적인 원조를 호소했다. 이러한 정치적 오판은 독일 당국에 의해 안타깝게도 무시되었는다. 그 이유로 소비에트 러시아의 태동으로 동부의 긴장이 확대되기 시작한데다, 전 후 전시경제를 통해 중앙 유럽의 내수 경제가 간신히 부활했지만, 그로 인한 수많은 사상자의 인력 공백과 복구처리 사업으로 인해 개입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본다. 2 주일이 지난 후 스페인 북부 지역을 향한 협상국 비행단의 전략 폭격을 시작으로, 스페인 전역을 향한 맹렬하고도 다양한 폭격이 되었다. 실질적인 상륙작전은 없지만 프랑스 왕국이 스페인 령 아프리카 식민지로 진주하고 있고, 타 협상국 병력이 속속 대영제국의 본토로 집결하고 있었다. '샤 레자 팔레비 국왕이 1945년 12월 15일 늦은 오후에 델리 술탄과의 군사적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투르케스탄의 전면 공세는 날을 거듭할 수록 치열해지고 있으며, 원정군 사령관 클로드 오킨렉 원수는 인도 제국군과 인도로 파병된 대영제국 군이 페르시아 군과 군사적인 공조를 거쳐 유목민 무리를 격퇴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협상국 통합 사령부의 공세는 생각보다 미적지근 했다. 스페인 전역이 초토화 된지 근 8개월 만인 1946년 2월 13일 15:00시에 시작된 가짜 상륙전을 시점으로 작전명 '술 축제'를 개시했다. 스페인 왕국군이 북부에 주력하는 동안 협상국 군대는 허술해진 남부 안달루시야 일대와 바르셀로나로 진주하기 시작했다. 연합군은 2월 24일에 마드리드까지 진격했으며, 3월 6일에는 빌바오와 오비에도 일대로 전면적인 공중 강습이 실시 되었다. 상륙 전개가 빨라 지리했던 전쟁이 일찍 끝날 것 같았지만, 유류 소모가 생각보다 심각했던 관계로 중부지역을 위주로 9월 중순까지 대치했다. 대치 중에도 영국 본토와 북아프리카에서 출격한 전술/전략 전투 항공대가 스페인 중부를 집중 타격하였다. 이런 끔찍한 참상을 겪고 있음에도 스페인 정부 측은 결사항전을 외치며 헛된 희망을 꿈꾸었는데, 10월 14일 경 프란시스 사비에르 데 부르봉-파르마 왕과 그의 왕실 수행원이 포루투갈 공화국으로 비밀리에 망명길을 나서다 연합국 정찰대에 체포되자 곧 좌절됐다. 사족이지만 제공권과 제해권 확보에 성공했음에도 실질적인 상륙 거점을 마련하는데 1년 반이나 소모했다. 인명 손실을 우려해 진격 날짜를 늦춘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하루에도 수천 통의 석유와 수만 톤의 군수 물자가 소모된 것은 비효율의 극치였으며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승리한 전쟁이었지만 협상국 군대에 많은 상처를 남긴 전쟁이었다고 본다. 1946년 4월 12일, 알폰소 13세의 삼남이자 바르셀로나의 백작인 후안이 스페인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죽은 아스투리아스 대공과 세고비아 공작을 대신할 계승자인 후안 3세는 젊은 나이에 결혼한 것으로 유명세를 탔으며, 즉위식 당일에도 정략 결혼으로 인해 한동안 구설수에 올랐다. 하지만 행복하고도 피곤한 여정을 시작할 그에게 다가올 참혹한 앞날을 그 누구도 예상친 못했다. 스페인 반도에서 진격이 정체된지 2년 4개월 만에 새 전략을 대입할 기회가 생겼다. 통합 사령부 측은 그간 독일이 증강한 다수의 기갑 군단때문에 각개격파 당할까봐 다소 걱정했지만, 예정대로 알베르 프랑수아 르브랭 내각과 협조해 프랑스 해방의 여명이 다가왔다고 장담했다. 1948년 8월 13일 이른 새벽 협상국 연합군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보르도 지방과 랑그독 지방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선전 포고문이 제대로 도달하기도 전에 시작된 기습 공격이라 약 2주 만에 서 북부로는 푸아투와 리무쟁 지역으로 치고 올라갔고 동 북부로는 오르 베뉴와 랭그독 지방을 점령하고 부르고뉴-로네-마르세유 시를 목표로 진주하고 있었다. 8월 15일, 영국 남 동부 근해에서 대규모 해전이 발발했다. 독일 제국 해군이 자랑하던 대양 해군이 도버와 노르위치 일대의 군사 항구 시설을 타격하려다, 독일 북해 함대의 절반이 단 몇 시간만에 물고기 밥으로 변했다. 이 날 긴급 출격한 왕립해군 기동 항모 전단과 왕립 전술 공군 비행 사령부에 의해 상당 수의 독일 해군이 고철덩어리로 변모하는 굴욕을 맞이했다. 물론 신형 항모였던 일러스트리어스 호가 독일 급강하 폭격기의 타격에 수장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비록 구형함이지만, 수만의 숙련 수병들이 동시에 가라 앉은 것이라 독일 해군 사령부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제국의 함대는 여전히 건재했으며, 압도적인 제공권 우세력 때문에 대외 타격이 쉬웠던 기존 상황과 달라 기동 항모 전단이 북해와 지중해 일대를 함부로 다닐 수 없었다. 한편 왕립 전략/전술 사령부는 자살 공격에 가까운 폭격 작전을 수행 중에 있었기에 재향 군인들에게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분명 요격기와 전투기 성능의 차는 대영제국과 협상국 공군이 독일 공군보다 압도적이었지만, 전술 폭격기가 누비고 다니는 모든 하늘을 누비지는 못했다. 어느 정도 '과장하자면', 떨어뜨리는 폭탄보다 격추되어 추락하는 비행기의 수가 더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추가로 독일제국이 실전배치한 핵무기는 보이지 않았기에, 제국 지휘 참모부는 소형 전술 핵탄두 세발을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었다.
프랑스 왕국 외 오스트랄라시아 연방과 인도제국이 각지에 흩어진 독일령 식민지를 차례차례 합병하고 있다. 각 국의 식민지 주장권은 둘째 치더라도 독일 내의 식민지는 이미 독립의 결실을 겪어보았기에 기존처럼 종속을 쉽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10월이 다가올 무렵, 독일 제국 해군은 사실상 무력화 되었으며 직속 공군의 수는 약 2/3 가량 줄어들었다. 전략 공군 사령부의 미사일 공격과 더불어 육군과의 협조를 통한 기습적인 강습의 결과이다. 이와 함께 꾸준한 폭격을 통해 적의 기갑 전투단과 지원 보병 군단을 위주로 독일 육군을 지속적으로 폭격한 결과 중앙 유럽 사단의 실질적 손실이 120 사단이 넘는다는 것도 아군을 고무 시킬만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유럽 전선에서 공세는 연전 연패를 거듭해 빌바오와 팜플로나 지역에서 3개 군 규모의 연합군이 독일 기갑 전투단에 돌파 당한 이후로 스페인 북부를 완전히 장악 당했으며, 피레네 산맥과 스페인 중부에서 천천히 패퇴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숨막히는 격전이 지속되는 통에 대영제국 유럽 원정군의 사단 총원은 절반을 채 못넘기는 것이 사실이며, 이 공백을 미합중국 연방군과 남부 맹방군 그리고 자치령 군대가 도맡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독일군이 세비야와 마드리드로 진군하고 우에스카와 바르셀로나 주요 방어선이 위태로워 사 실상 유럽 원정군의 궤멸이 임박했다는 것을 체감한 통합 사령부는 전략 공군 사령부에 '특별한 주문을 걸었다. 곧 영국 남부의 공군 기지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한편, 한동안 공화당이 득세하던 미국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민주당 출신의 알빈 윌리엄 바클레이 후보가 맥아더 전 대통령의 후원을 받고 있던 태프트 후보를 패배시키고 대통령이 당선한 것이다. 그동안 협상국 통합 사령부와 함께 국제 정세에 긴밀히 공조한 기존 대통령과 달리 바클레이 대통령은 미 국내 안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즉, 전쟁을 후원하는 친 협상국 지도자 중 한명이 줄어듬과 동시에 서구 유럽 해방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한 노력을 수포로 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루트비히 반 베토벤 - 1번 교향곡 C장조 3악장 11월 26일 오전 7시, 통합 사령부는 스페인 전역에서 전술 목적의 핵탄두 사용을 했다. 첫 핵 탑재 탄도 미사일이 27일 오전 10에 팜플로나 지방에 투하되었다. 2월 11일 18:00시, 우에스카 주변 격전 중이던 사라고사에 추가적인 핵탄두가 투하되었고, 같은 날 23:00시, 바르셀로나 시 바로 옆 지방 제로나에 마지막 탄두가 투하되었다. 이 시점에서부터 이루어진 반격 공세인 '크리스마스' 작전에 대한 상세한 보고는 기밀로 붙여졌다. 이 참상에 대한 내용은 아마 50년이 지나서야 풀릴 것이다. 1년을 경과해 1949년 11월 1일 대영 제국군과 협상국이 프랑스 전역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이제 독일과의 평화 조약에 대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으며, 조약에 대한 쟁점은 협상국 식민지에 대한 반환과 나폴레옹 3세 주도의 프랑스 제국의 부활이었다. 제군들, 마침내 세계 대전이 끝났다. 구 세계대전(Weltkreig)의 상처에서 벗어나 구 체제를 부활 시켰으며, 대영제국과 그 구성원에게 새로운 여명이 열리는 것이다! 신은 왕을 보호하신다! 베라 린 - 우린 재회할꺼에요 - 끗 - 심정을 대변하는 짤 |
첫댓글 프랑스 대체 나폴레옹 어찌뜨는건지
아마 1936년 6월 20쯤에 정부 교체 이벤트가 뜰겁니다.
어째서 더 지옥된세계..ㅌㅌ
아.. 안돼...... 내 독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