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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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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토 댄스광장 ★ 스크랩 교단을 떠나며
쓰리 고 추천 0 조회 329 13.08.30 07:14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교단을 떠나며

고정규

 

 197132, 그날은 내가 의령 부림초등학교로 첫 부임하던 날이었습니다. 쌀쌀한 바람과 함께 추적추적 봄비가 내렸었지요. 42년이 지난 오늘 생각해보면 먼 옛날이야기 같지만 어쩌면 엊그제 같은 일이기도 합니다.

 확고한 교육철학이나 이론이 정립된 것도 아니고 오직 젊음과 설익은 열정 하나로 아이들을 붙들고 씨름하며 시작한 교직생활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42년을 때론 벅찬 감동으로 커가는 아이들을 지켜보기도 하였고 때론 가슴 저미는 아픔으로 부등켜안고 같이 울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시절이 이제 추억의 뒤란에 섰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게 후회라고 했던가요? 이제 와 생각하니 좀 더 뜨거운 사랑으로 보듬어주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지난 42년간 나랑 같이 생활하며 배운 학생들 중에 가끔은 이 고정규를 생각하는 제자라도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을 가져봅니다.

 

  피천득 선생님은 가장 큰 부자는 추억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셨지요? 기계체조를 가르친다고 운동장 바닥에 매트를 깔고 같이 뒹굴던 일, 그리고 체조선수 언니랑 결혼한 일, 두 번이나 학습지도연구대회에서 1등급에 입상하여 전직원 회식을 쏘았던 일, 가는 학교마다 단체여행 때 사회를 도맡아 웃음잔치를 벌렸던 일 등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추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994, 남의 어음에 이서를 잘 못 하여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15년간 봉급을 반밖에 받지 못했던 일, 그 일로 죽음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기도 하였지요. 그때는 공휴일, 방학을 통하여 택시 알바까지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내게 잃은 것뿐만 아니라 얻은 것도 많았습니다. 먼저 겸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양보가 미덕인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살았으니까요.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큰 깨달음 하나를 얻었습니다. 나처럼 부덕한 선생은 관리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승진은 깨끗이 포기하였습니다.

 

 내 교직생활에 또 한 번의 전환점은 2000경남교원댄스스포츠연구회를 만들어 오늘까지 운영해온 것이었습니다. 올해로 14년째 교원댄스스포츠직무연수를 실시하여 연인원 1000여명을 이수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익힌 댄스스포츠로 가는 학교마다 학생들을 지도하여 운동회나 학예회의 단골 메뉴로 오르게 하였으며, 나 스스로도 학생과 학부모 앞에서 시범공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경남교육연수원을 비롯하여 마산, 창녕, 고성교육청 전임강사로 활약하기도 하였으며 진주교육대학에 시간강사로 출강하여 학생들로부터 교수님!’ 소리도 들어 봤습니다.

 또 하나, 2005년에는 영남 KBS 3사가 공동기획한 TV 프로 생생투데이 사람과 세상KBS 2TV 일요일 아침프로 세상의 아침등에 단독으로 출연하기도 하였으며 경남매일, 고성신문 등에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연말 파티나 공연 때에는 창원 성산아트홀, 서면 롯데호텔, 해운대 그랜드호텔, 쌘텀씨티의 영화의 전당까지 춤 하나로 많은 무대에 설 수 있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댄스스포츠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메달도 많이 땄습니다.

 존 메이슨 이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간 길을 따라 가는 사람은 자기 발자국을 남길 수 없다라고 하였는데 나는 오직 나만의 길을 걸어 내 발자국은 확실히 남긴 셈입니다.

오늘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퇴직기념 댄스공연을 학교 체육관에서 하고 KBS1 TV인간극장에 도전하고 싶었는데 불의의 교통사고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복이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오늘 이토록 장황하게 넉두리를 한 것은 우리 후배님들이 이 고정규의 인생역정을 보고 혹시 타산지석이나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교훈이 있을까 해서입니다.

 

 존경하는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

오늘은 왠지 나훈아의 노랫말이 생각나는군요.

 

인연이라는 만남도 있지만 숙명이라는 이별도 있지

우리의 만남이 인연이었다면 그 인연 또 한 번 너였음 좋겠어

어쩌면 우리 언젠가 또 다시 우연을 핑계로 만날지 몰라

 

 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안다고 했던가요? 이제 막상 이 자리에 서고 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정말 좋은 인연 속에서 지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여러분의 가슴 안에서 문득문득 떠올려지며 기억되어질 때 작은 웃음이라도 줄 수 있는, 그런 인연으로 앞으로도 가끔씩은 그리워하며 살기를 희망해봅니다.

 

 오늘 나는 환승역에 내렸습니다. 이제 또 다른 역을 향하여 버스를 갈아타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앞으로 남은 인생 후반전은 천상병 시인이 귀천에서 노래한 것처럼 소풍 온 기분으로 멋지게 즐겨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좀 더 즐길 걸!’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살아가렵니다. 사랑하는 내 반쪽 정갑생과 함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며 문득 그대가 떠올라 미소합니다. 당신이 내 곁에 있어 너무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2013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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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8.30 08:59

    첫댓글 수고 많으셨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댄스 많이하세요.

  • 13.08.30 09:46

    선생님...또 다른 역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십시오.

  • 13.08.30 09:52

    소신과 확신으로 살아온 삶이라면 그 또한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지요? (^0^)~♪

  • 13.08.30 11:28

    지금까지 멋진 삶을 사셨듯이,
    환승역에서도 멋진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건강한 후반전이 되시길 바랍니다.

  • 13.08.30 11:56

    오랜 세월 후진 양성을 위해 헌신한 업적은 수 많은 제자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돼있을겁니다.
    선생님의 헌신, 봉사에 박수를 보내며 제2의 인생도 힘차게 나아가세요.

  • 13.09.22 15:26

    회장님, 아니 선배님,
    벌써 교단을 떠나신다니
    너무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늘 잔잔한 미소와 유머 감각으로
    저희를 편안하고 즐겁게 해 주셨는데~~
    찾아뵙지는 못하더라도 퇴임을 축하드립니다.
    퇴임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남은 생도 여전히 멋지게 폼나게
    살아가시리라 기대합니다.^^

  • 13.08.30 21:22

    저보다는 후배님이시네요,ㅎㅎㅎ
    새로운 인생의 길이 댄스와 함께 즐겁고 보람되시기를요.....ㅎㅎㅎ

  • 13.09.02 07:06

    회장님!! 그 동안 경남 교원 댄스 연합회를 맡으셔서 오늘이 있기까지 애 많이 써셨어요! 회장님이 아니시면 누가 그토록 헌신을 했겠습니까!! 이제 부터는 다른 것 신경 쓰시지 마시고 오직 건강을 위하여, 취미를 위하여, 즐댄하시고 오랫동안 만나 뵙기를 소원합니다.....

  • 13.09.17 12:47

    정말 멋진 삶을 사셧네요. 언제나 정열적이고 활동적이신 선생님 행복하십시오

  • 13.09.22 07:42

    축-구 ㅇㅑ구 농-구 ㅂㅐ구를 뮤_직_과 함.께 즐ㄱㅣㅅ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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