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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설교
사도행전 3:11-26
지난 3장 1-10에 나오는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은
1) 하나님의 나라의 임하심/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이 이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로 변했다는 것이지요.
2) 제9시 기도시간 사건은 앉은뱅이를 처음 본 것이 아니였는데 이 때 기적이 일어난 것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을 때, 생명이 들어갔을 때 가치가 살아나게 된 것을 알게 됩니다.
왜 이 사건을 사도행전의 서두 부분에 기록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시던 일이 이제 교회에 옮기셨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하시던 일이 이제 교회에 ,성도에게 이양되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
마4:23-24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
예수님은 30년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록은 없고 처음에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시고 시험을 받으시고 그리고 나서
마4:23처럼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병자를 고쳐주시고 약한 것을 고쳐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여기에 교회의 책임과 성도의 책임이 있는 거예요
사도행전도 똑 같은 방식으로 배열이 전개됩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니 그 전할 때 기적일 일어납니다 바로 여기서 말하고자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기적을 일으키는 일 특히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복음전파와 함께 등장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사망과 죄악의 종된 자들이었는데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면 먼저는 우리를 붙잡고 있는 주인을 쳐서 항복시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듣고 감동해서 거기에 동의하고 내가 항복해서 온 것이 아니고 우리를 붙잡고 있는 힘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좋은 예가 출애굽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 ㄹ자유케 하기 위해 그들의 동의를 얻어낸게 아니라 이스라엘을 붙들고 있는 애굽이라는 나라를 하나님이 깨뜨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것이지요. 이게 구원입니다.
죄와 사망의 노예처러 살던 우리
저주와 심판아래 있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우하여 우리를 붙잡고 잇는 사단의 무리를 쳐 물리치시고 우리를 꺼낸 것이지요
복음은 그런 의미로 이러게 기적이라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해서 골로새서 1:13 구원에 대하여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
구원에 대하여 우리의 동의나 결심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닌 제 3자끼리의 문제가 해결 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금 베드로와 요한이 서서 “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 애기 한데도 바로 이런 권세가 이앙된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교회가, 신자가 이런 권새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고 구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낫게할수 있다는 권세가 아니라
신령한 의미에서 교회와 성도가 흑암에 처한 자들에게 빛으로 비추고 생명으로 비추어서 저들을 붙들고 있는 흑암을 쫓아내고 눈멀고 귀먼자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해 낼수 있는 일을 하며 그런 권리 그런 특권, 그런 사명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은과 금으로 나타지는게 아니라 내가 품고 있는 것(나사렛 예수)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세상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우리의 존재와 책임과 특권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3장의 기적이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은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이후 더 큰 소동이 일어났다고 기록합니다.
성경은 항상 기적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사복음서의 일관된 패턴입니다. 성경의 기적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가끔 놓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리는 겁니다.
무슨 사건이 등장하면 무슨 착각을 하느냐하면 기독교신앙은 이 사건의 해답을 전부 주기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착각해 버립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누가 무슨 병고치는 은사가 있다고 하면 그 소문 듣고 전국 방방 곡곡에서 모여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치유되기를 소원합니다. 치유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우리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나중이고 엉뚱한 곳에 시선을 고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돈 벌이를 하는 일이 비일 비재합니다
성경은 반드시 어떤 기적이 나오면 동시에 말씀이 나옵니다.
앉은뱅이 사건 이후 다음에 베드로의 설교
여러분 기독교는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것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초월주의 신비주의가 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3:11절 봅시다
“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
여기 솔로논 행각이란 성전이 있다면 그 성전을 주변으로 행랑체 같은 곳입니다
이 장소는 일찍이 예수님께서도 자주 말씀하시던 곳이기도 합니다
12절 봅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
여기 베드로의 기적이 있습니다.
그 기적이 일어나서 청중이 놀라워 합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는 이 능력이 내게 있어서 된게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누구의 믿음에 의해서 앉은 뱅이가 일아났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앉은 뱅이의 신앙도 아니고 베드로와ㅣ 요한의 신앙도 아닙니다.
13절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조상의 하나님이 그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병자가 고침 받았다는 자체가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역사를 주장하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과 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설교자의 자세를 발견하게 됩니다.
설교자는 자기의 권능과 말주변과 언변이나 설득으로 기적이 일어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에 불과하며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안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왜 이 일을 놀랍게 여기는가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이 걷게된게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 재주로 된게 아니다
청지기 인식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맡은자 일 뿐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런 청지기 인식이 없으면 문제가 되지요
<궁금한 이야기 Y>
신목사라는 사람이 나왔어요. 평택 시온은혜기도원 원장 신현옥 목사라고 한 여인에 대한 사건입니다
지난 3월 13일 방송한 SBS <궁금한 이야기Y> 제작진은 어릴 적 교통사고를 당해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김 여인을 만났다. 2011년 여름, 증세가 심해진 아들을 치료할 방법을 찾던 김 여인은 경기도의 한 교회 목사를 만나게 됐다.
목사 신 씨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특별한 영적능력으로 김 씨의 아들을 치료해주겠다며 "아들이 병을 앓는 것은 마귀에 씌었기 때문이고 이를 쫓는 건 공짜로는 안 된다"며 김 여인에게 큰돈을 요구했다.
김 씨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1년 동안 기도원 생활을 하며 대출까지 받아 신 목사에게 현금 총 7100만 원을 건넸다. 더 이상 헌금 낼 돈이 없자 자신의 명의로 신용카드까지 만들어 신 목사에게 건넸다.
그러나 교회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던 날, 김 씨의 아들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발작을 일으키고 쓰러졌다. 신목사가 고쳐주겠다던 뇌전증은 전혀 차도가 없었던 것.
김 씨는 신목사를 사기죄로 고소했고 법원은 1, 2심에서 김 여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교회 측은 오히려 그녀가 신 목사와 교회에 대해 명예 훼손을 한 것이라며 상고를 신청하고 신 목사는 "스스로 낸 헌금을 사기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궁금한 이야기 Y> 취재 결과 신 목사에게 돈을 갈취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은 한둘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이처럼 엉둥한 짓을 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구요 이것에 현혹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11장에
예루살렘 입성시 가서 나귀를 끌고 오너라 말씀하시면서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주재권, 만물의 주인이시다)
행3:13 보십시다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
여기에 유명한 인물이 나오는데 바로 유대인의 조상이 나오지요
아브라함, 이삭,야곱
이들은 성경의 중요한 구속사적인 인물이 등장합니다.
왜 이런 인물들은 여기서 언급했을까요 성경의 역사의 실제인물입입니다
이말은 베드로의 설교의 주제는 : 예수그리스도 역사성을 말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역사성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성입니다. 베드로는 기독교의 역사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 역사성이 중요하느냐?
기독교는 감상주의 감성주의가 아닙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경우 이런 쪽으로 기독교를 몰아갑니까?
기독교는 역사가 중요합니다. 펙트(fact,사실)
기독교의 주체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역사를 소개한 게 사복음서이고 사도행전입니다
물론 기독교도 초월이 있고 신비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초월주의(신이나 자연과의 교류,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 등을 주장),
신비주의(하나님의 초월적 존재를 내 영적인 체험에 의해 직접적으로 체험하려고 하는 것)에 빠지면 안되요
여러분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잘 변합니까? 아침 저녁으로 변해요. 기분에 다라 달라집니다.
그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기독교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이예요
기독교 진리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오늘날 청소년 문화가 메스컴 문화가 얼마나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습니까?
자동차 파는 데 상품 설명하고 기능설명하면되는데 왜 여자가 자동차 옆에서 벗고 나와요?
그것은 전부다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예요
기독교는 감성이 아니예요
기독교느 사실에 바탕을 두고있구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습니까?
그래요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어요 ㅡ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것ㄹ 못믿으면 자꾸 감정에 몰입합니다 감성에 터치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수단을 동반시켜요 조작하고 해서 은혜받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요.
여러분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감성과 감정에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본문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누구시냐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한ㄴ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해서 기독교는 역사성이예요
그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나옵니다.
16절
“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
여기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는 표현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뜻입니다
19절 봅시다
“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
여기서 무엇을 강조하나요?
회개입니다
여러분 “ 내가 잘못했어요 ” 이 말은 물로 회개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회개의 의미는
내가 가는데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알고 멈춤 이것도 좋은데
진짜 회개는 그 길을 돌이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예요
회개의 표현을 잘 묘사한 곳이 바로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회개는 집나간 아들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감 입니다
언제 낭비가 찿아왔어요? 아버지를 떠나고서 찿아왔어요
하나씩 하나씩 잘라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어디까지 갔는가하면 돼지 먹는 쥐염열매를 먹으면서 아버지 집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지요 그리고 그가 주려 죽을 지경에 이르자 돌아갑니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미리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매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가 아직도 먼데 아들인지 알아봅니다. 그리고 달려가 그를 얼싸 안고 옷 입혀주고 잔치 벌여주고 신발 신기고 가락지 끼우고 이것은 아버지의 상속자의 의미가 있지요
아버지 집에 있을 때 아버지 것이 모두 자기 것인줄 몰랐어요
하지만 이제 아버지 집에 돌아갈 때 아버지 집에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돌아갈 때 완전한 자가 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면 탕자입니다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기다리고 계시는데 우리는 지금 당장 안준다고 불평합니다. 그리고 엉뚱한 짓 합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행3;20-25보세요
(행 3: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행 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눅1:70
(행 3: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신18:15
(행 3: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행 3: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행 3: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약속의 내용이 뭡니까?
아브함만 축복한 내용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삼아 모든 민족으로 그 씨를 통하여 구원얻게하리라는 약속을 주셨는데
그 약속을 이루시어 그 씨인 에수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피흘리시고 부활케하사 이제 바로 그 약속을 하시고 그렇게 세상을 이끄시고 계신이가 그렇게 결론을 내고 말 것이기 때문에 먼저 너희에게 보내사 그 악함에서 돌이켜 회개하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회개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가 오셨다
그것이 사실인 것을 믿는 다면 새하늘과 새땅을 만드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지 않느냐?
봐라 예수 믿는 믿음이 ㄴ머희가 보던 이 앉은 뱅이를 성하게 했느니라 이엇을 증거삼아라
사함과 해함이 없는 나라가 온다. 하나님이 이 역사를 끌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라를 세우실 것이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 그 자리에 있으려면 너희는 먼저 그 악함을 버리고 회개해야 한다 이것이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26절 보세요
“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
하나님이 자녀를 향한 궁국적인 초점은 복주심입니다
현재 기독교에서 복의 개념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복 하면 깜짝 놀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복주시려 “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복은 세상의 부귀나 영화의 목적으로 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복을 받은 자입니다.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령의 조명아래 복을 하나씩 찿아가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롬 8: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
우리는 이미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은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준이 거기에 이르지 못하니까 이 게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거예요.
이미 주셨는데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그 가치가 하나씩 들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복은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것이고
복받은 자를 훈련시키심이 있습니다(반복적인 것을 통해 신앙의 레벨 업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