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제국의 출현과 유럽의 페스트 공포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지대에서 서식하는 설치류들이 언제부터 페스트균을 갖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설치류가 분명히 선페스트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1921년에서 1924년에 걸쳐
실시된 국제전염성 역학조사단의 활동을 통해 규명되었다.
1347년 이전의 약 5세기 반 동안 유럽대륙에서는 페스트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1347년 이후 페스트가 유행한 사실은, 1347년 직전에 페스트가 유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일이 생겼음을 알려준다. 13세기 후반에 몽고 기병대는 운남성과 미얀마를 침공했고(서기 1252∼1253년
이후), 또한 그 침략이전부터 야생 설치류가 페스트균을 가지고 있었던 지역에도 쳐들어갔다. 13세기, 몽고의 침략자들은 선페스트 감염을 막기 위한 전통적인 금기나 습관을 지키지 않았을 것이다.
기마병은 빨리 이동할 수 있으므로 페스트는 19∼20세기에 그 전파가
용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13세기에도 재빨리 확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식량이나 전리품을 실은 말안장에 숨어든 감염된 쥐나 벼룩은 신속한 몽고군의 이동을 따라 이 병의 전파에 장애가 되었던 바다나 강도 쉽게 건넜으리라. 정확한 시점은 알 수가 없지만 몽고군이 운남성과 미얀마를 침략한 1252년 이후 그들은 페스트균을 그들의 고향인 초원지대에 살던 설치류에 전파한 것으로 보인다.
14세기 중반에 이르자 드디어 페스트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페스트는 1346년 크리미아 반도의 교역의 중심지였던 카파(Caffa)시를 공격한 몽고제국의 한 군주가 이끄는 군대에서 처음 발생했는데, 그 결과 몽고군은 포위를 풀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페스트는 카파 시내에 침입했고, 이어서 배편을 통해 지중해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이내 유럽의 북쪽과 서쪽으로도 확산되었다.
1346∼1350년의 최초의 페스트 유행은 무서운 충격을
안겨 주었다.
사망자수는 지역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났다. 일부 작은 지역공동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지만, 밀라노처럼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곳도 있었다. 페스트의 전염은 벼룩을 통해 , 환자의 기침이나 재채기,
혹은 균이 포함된 작은 점액 비말이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서 감염되면 치사율이 더욱 높았다.
전체적으로 1350년까지 4년에 걸쳐 페스트 때문에 죽은 유럽 전역의 사망자는 전 인구의 1/3 정도일 것으로 추산된다. 페스트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이나 이들이 품어왔던 미래의 희망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는 인류의 의식전환은 물론, 사회·문명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구조조정을 가져왔다.
개벽은 현실이다.
"천리는 때가 있고 인사는 기회가 있다"
개벽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