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음악책에 나온 거장들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다.
글/사진:이종원
음악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슈트라우스, 브람스 등 거장들이 활동했던 도시 빈은 보고 느끼고 감동할 것이 너무나 많은 도시였다.
빈은 십자군 원정때 주요 길목이 되는 요지로 동서의 문물 창고였으며, 유럽 대부분을 장악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힘을 볼 수 있는 역사도시이기도 하다. 음악, 역사, 미술의 도시를 1박 2일의 짧은 시간에 둘러본다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였다. 벨베데레 궁전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키스>를 봤어야 했고, 세계 3대 미술관인 미술사 박물관에서 라파엘로와 루벤스를 만났어야 했다. 마리아테레지아 동상 바로 열 자연사 박물관에 빌렌도르프 비너스 상 원본이 있는줄 나중에 알았다. 저녁에는 사롱 음악회에도 한번 들러야 하고 일요일이라면 빈소년합창단의 공연을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일정을 짤 때 빈에 너무 시간을 적게 할애한 것이 후회가 된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최소한 2박은 해서 한나절 자유시간을 주고 원하는 것을 마음껏 즐겼으면 한다.
새로운 것을 보았다는 기쁨보다 중요한 것을 놓친 것이 더 많아 안타깝기만 한 도시 빈, 주마간산으로 보았던 풍경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아침 일찍 부다페스트를 출발해 점심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도착했다. 차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에 꼭 들여야겠다고 결심해본다.
제체시온. 일명 '황금양배추'로 황금세공 돔이 이채롭다. 19세기 후반 혁신적인 젊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기 위한 공간으로 크림트의 대작 <베토벤 플리즈> 벽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카를성당은 18세기 초반 페스트가 빈에서 물러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카를 6세가 바로크양식으로 지은 성당이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을 본따 만들었다고 하는데 원기둥에는 성인들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성당 앞에 연못이 있어 물에 비친 모습이 인도의 타지마할을 닮았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먼발치에서 보는 걸로 만족.
파아커로 호프부르크 왕궁 일대를 둘러볼 수 있다.
마리아테리지아 광장
유럽대륙을 호령했던 마리아 테레지아. 음악, 건축, 문화, 예술 등 빈의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 아래 대신들
빈 자연사박물관 미술사 박물관과 쌍둥이 건물로 보석, 박제 화석 등 표본이 전시되어 있으며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미술조각품인 빌렌도르프 비너스상을 볼 수 있다. 2만 5천년전 구석기시대 유물로 크기는 11cm로 가슴, 배, 둔부 성기를 과장하게 조각했으며 출산과 풍요을 기원하고 어 출산의 비너스라고 불린다. 공룡화석은 물론 매머드까지 볼 수 있다.
빈자연박물관 옥상의 석물
꼭대기에는 자유의 남신상이, 뉴욕 맨해턴에 있는 여신상이 옷을 벗었다고 보면 된다.
월계관과 천사
미술사박물관 파리 루브르와 러시아의 에르미타주박물관과 더불어 3대 미술관 중에 하나로 1층에 이집트, 고대 그리스, 로마를 시작으로 유럽회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미술관, 17세기 중엽부터 왕가가 수집한 명작들을 소장하고 있다. 그리스 조각품,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회화 등 왕실의 도자기 , 은세공품등을 전시하고 있다.
라파엘로의 <초원의 마돈나>, 루벤스의 <모피를 걸친 여인>, 뒤러의 <성 삼위일체의 경배>, 브뢰겔 컬렉션 등을 모아두었고 바닥과 벽의 대리석과 천장화가 좋아 내부 건물도 화려하게 꾸며졌다. 돔형 천장아래 카페도 있다고 한다.
마리아테레지아와 자유의 남신상
거리의 예술가, 모차르트
호프부르크 왕궁 입구
호프부르크 신왕궁 신왕궁은 합스부르크가의 마지막 건물이다. 회랑이 길게 를어서 있는데 오스트리아를 빛낸 위인들의 석상이 서있다. 푸른색 지붕이 에곤 쉴러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레오폴트관이고 그 뒷편에 구왕궁이 있다.
가운데 합스부르크가의 상징인 두 개의 머리르 가진 독수리상이 꼭대기에 자리한다.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 황제가 기거했던 곳으로, 신왕궁은 합스부르크가에 한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1918년 왕가의 종말을 맞게 된다.
그 앞은 영웅광장으로 오이겐 장군과 칼 장군의 동상이 마주하고 있다. 신왕궁 오른쪽 뒷편에 왕궁정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높은 음자리표를 한 화단에 모차르트 동상이 서 있다고 하는데 놓치고 말았다.
오이겐장군의 동상.
두 발과 꼬리로 말을 받치고 있다.
신왕궁에는 국립도서관, 악기 박물관, 민속박물관, 무기박물관이 들어가 있는데 1938년 건물 2층 테라스에서 히틀러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병을 선포한다. 이 영웅광장 앞에 30만의 인파고 모여들었다고 한다.
사자상
나폴레옹 전투에서 대승을 이끈 칼장군 동상. 두 발로 이 거대한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불가사의란다. 수학과 물리의 대가가 만든 작품
모놀식구들과 함께
두발로 저 무거운 것을 지탱하는지
시민정원
튜립이 한창
부르크극장 오페라 극장이었던 곳으로 1741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창설한 궁정무대로 요제프 2세가 궁정국민극장이란 명칭을 내리고 스스로 총 감독을 겸했다고 한다.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외부 장식이 화려하며 정면은 곡선을 그리며 튀어 나왔다.
프란츠 요제프 2세 석상
파아커 타고 왕궁 한바퀴
구시가 링을 한 바퀴돌 수 있는 트램
부르크 극장 건너편에는 시청사. 19세기 네오고딕양식으로 하얀 대리석 건물로 탑의 높이 107m, 양쪽 탑은 61m, 광장앞은 콘서트장으로 유명하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장터가 열린다고 한다.
꼭대기에 손에 창을 쥔 기사상이 서 있다. 기사상은 높이 3.4m, 무게만 2톤이 나간다고 하는데 저 꼭대기에 어떻게 올렸고 바라에 영향을 받지 않는지 궁금하다.
옆에서 본 시청사
가로등이 UFO처럼 보인다. 건물에 줄을 고정시켰다. 가로등 기둥이 없어 보행하는데 좋다.
쉰부른 궁전
원래는 황제의 수렵용 궁전이었다가 합스부르크 왕비인 마리아테레지아가 여름 별장으로 다시 개축한 궁전이다. 그녀가 이 궁전을 너무나 좋아했기에 거의 이곳에서 국사를 보고 대신들을 이곳에 머물게 했다고 한다.
바로크양식의 3층 대궁전으로 방이 1441개나 되며, 내부 장식은 로코코양식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아무래도 앙숙 관계인 프랑스가 베르사이유 궁전이 만들어 그에 자극 받아 만든 궁전이 아닐까 싶다.
나폴레옹에 의해 빈이 점령당했을때 나풀레옹군의 사령부로 사용되었고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방이 남아 있다. 요세프 1세도 이 궁전에 체류했으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가 연합군에 점령당했을 때 연합국의 회담장소로 쓰였고, 1961년에는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과 흐루시초프의 회담장소로 동서 냉전을 허문 현장이다.
전체적으로 황금색을 띄고 있어 은은한 분위기다. 구스타프 크림트의 그림에도 황금색이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쉰부른 궁전을 보면서 영감을 얻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출입이 허용된 45개의 방만 둘러보았는데 워낙 넓어 다리가 아플 정도다. 복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방문을 통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값 비싼 호두목재를 사용한 방, 유난히 작은 침대가 있는 침실, 마리아 테레지아의 거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방, 도자기방 ,나전칠기방, 특히 거울의 방은 6살 난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곳으로 마리 앙투와네트에게 어린 모차르트가 청혼을 했던 일화가 전해진다. 중앙에 계단에서 바라본 정원풍경이 볼 만하다.
궁전 정문 입구의 양쪽은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궁전 뒤로는 거대한 프랑스식 정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 진다. 정원끝은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한 개선문인 글로리에테가 있다. 신전풍의 건물로 거기서 내려다본 궁전의 모습과 비엔나 시내 경치가 볼 만하다. 우측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과 온실이 있으며 빌딩 높이의 조경수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정원 끝자락에 넵튠분수가 조성되어 있으며 뒷편 글로리에테까지는 지그재그 길로 변화를 주었다. 로마 유적이나 오벨리스크를 인공적으로 조성해 천년제국 로마를 꿈꾸고 있었다.
정원에서 바라본 쉰부른 궁전
언덕에서 내려다본 쉰부른 궁전
글로리에테는 유럽의 강대국 오스트리아의 힘을 느끼기에 충분. 20m 높이의 도리아식 기둥과 열주그리고 개선문이 펼쳐져 이다. 현존하는 개선문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다. 비엔나의 전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로 내부는 현재 카페로 이용
승리의 신 조각상이 섬세하다.
사방으로 뻗은 정원
시간만 있으면 풀밭에 누워 낮잠을 잤을 텐데
클림트의 키스 모델이 바로 여기에 있었네
신화에 나온 석조물
벽처럼 생긴 정원수
궁전 정원
꽃터널
반가워요 LG
칼렌베르크 언덕 484m높이의 산으로 . 이곳 전망대에 서면 도나우 강과 비엔나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빈을 코앞에 두고 이곳에서 오스만투르크군이 대패를 당하고 쫒겨 나는데 그를 기념해 성당ㅇ을 세웠다.
도나우강. 서쪽 부다페스트로 흘러간다.
소비에스키 성당. 당시 폴란드의 왕이면서 오스트리아, 폴란드 연합군에 참가한 소비에스키가 투르크와의 전쟁의 승리를 기념해 지은 성당. 그래서인지 폴란드 출신인 요한 바오로 2세 석물이 입구에 모셔졌다. 폴란드인이 운영하고 있다.
호이리게 원래 자체 소유의 포도농장에서 새로 담근 술을 마시는 술집으로, 요즈음은 요리까지 먹을 수 있는 와인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빈의 북쪽구릉지대에 질좋은 포도가 많이 생산된다. 그러나 부유한 상인들이 모두 매입해 버려 농민들이 마실수 없게 되자 불만을 느낀 농민들이 당시 황제 요세프 2세에게 포도주 판매권을 달라고 요청해 농민들에게 자기 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포도주를 집에 팔거나 마시게 허락했다.
빈의 북쪽 하일리겐슈타트, 그린칭 등에 운치있는 호이리게 레스토랑이 많다.
포도즙 짜는 기계
레스토랑에 포도나무가 자란다.
운치있는 볼프 레스토랑
큼직한 컵에 와인을 마신다.
와인과 함께 한 맛난 저녁식사
집시공연이 이어진다.
어찌나 흥겨운지~
오스트리아 빈의 밤은 깊어간다.
메르퀴르 그랜드호텔 비더바이어 빈
건물의 길이 만큼 호텔 이름도 무진장 길다. 긴 골목은 과거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입구는 협소하지만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하다. 시내에서 가깝고 고풍스런 분위기가 일품. 새벽 골목을 걷는 맛이 그만이다.
따뜻한 색조로 편안한 분위기
투명 유리창으로 아래 레스토랑에서의 아침식사가 기억에 남는다. 담쟁이 넝쿨이 있는 정원에는 꽃이 활짝
아침은 든든하게 먹었더니 배가 나왔네
역시 시내 한복판에 있어 새벽 산책하기 좋다.
비행접시 가로등
시립공원은 1862년 빈의 첫 공원으로 영국식 정원으로 꾸며졌다. 숲은 도심속에 허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꽃이 많아 새벽 산책코스로 그만이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황금빛 요한슈트라우스상.
뒷 건물이 콘체르트 하우스. 빈 교향악단의 본거지다.
빈의 명물 초컬릿. 가격이 제법 비싸다.
역시 비행접시처럼 보이는 가로등 개인 집에다 못을 박아도 할 수 없다. 나라가 하는 일이니까. 1857년 프란츠 요제프가 관료들을 설득해 만든 거리다. 만약 성벽으로 가로 막혔다면 빈은 얼마나 삭막했을까? 주변 녹지와 오페라 하우스, 박물관. 신왕궁, 국회의사당. 시청, 빈 대학. 시립공원, 왕궁정원 등이 그때 만들어졌다.
시내 한복판에 만들어 놓은 자전거길이 부럽다. 인도는 훨씬 넓다.
고풍스런 골목
현대식 건물도 예술적으로.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한 집. 4층 건물증 2층에 모차르트가 살았다고 한다. 30살 모차르트는 16살 베토벤을 만났고, 하이든과도 교류를 했다고 하니 동시대를 살아간 거장의 만남을 상상해보면 좋을 듯
모차르트하우스
그 옆은 기념품가게
슈테판 성당 1147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했다가 1359년 합스부르크왕가가 에전성당을 헐어 버리고 고딕양식으로 개축하였다. 800년의 역사를 가진 대성당으로 입구에서 주제단까지 길이가 107m, 높이는 39m로 빈의 상징적 건물이다.
카톨릭 최초의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를 기리는 성당으로 독일어는 슈테판, 이태리어는 스테파노, 영어는 스티브다.
모차르트와 슈페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뤄진 곳으로 지하에는 합스부르크가의 귀족들과 역대 황제들의 내장을 묻어둔 카타콤베가 자리잡고 있다. 빈 시민들은 새해를 이곳에서 맞는데 투르크군이 남기고 간 180개의 대포를 녹여 만든 종소리에 신년을 맞는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양식. 저걸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공력이 들어가는데 끔찍하다.
모자이크 지붕이 화려한데 합스부르크가의 상징인 쌍두독수리가 그려져 있다. 25만개 채색기와를 이용했다고 한다.
'빈의 혼'으로 불릴 정도로 높이 137m에 달하는 첨탑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1359년에 공사를 시작해 1433년에 완공되었다. 독일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손꼽히는데 탑신은 사각형이지만 수많은 첨탑은 8각형이다.
첨탑의 끝
배수구는 동물의 입
외부 벽화
낡은 십자가상
고통의 예수. 성당 외부 벽에 조성되어 있다.
북탑.
25만개에 달하는 모자이크 지붕
타타콤 입구 페스트로 죽은 사람들의 유골 2천구와 황제유해 중에서 심장등 내장을 담은 항아리와 백골을 모시고 있다.
성당 뒷면
북탑은 올라갈 수 있다.
정문 입구
내부 기둥
초기 고딕양식. 기둥에는 화려한 조각이
치통의 그리스도상. 일그러진 표정이 마치 어금니 충치를 앓는 사람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비너노이슈테터 제단으로 성모마리아와 예수의 생애가 그려져 있다. 접으면 예수의 수난이 묘 사
주제단은 바로크식 양식. 왼쪽에 프리드리히 3세 황제의 묘가 있다.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십자가 모양이다.
천정에 매달린 십자가
안톤 필그림의 설교단. 1513년에 제작된 것으로 그리스어 성경을 라틴어를 번역한 성 히에로무스와 <참회록>을 쓴 성 아우구스투스 등 교부철학자들의 조각. 실물처럼 섬세하게 조각했다. 이 계단 위에 설교단이 있다.
설교단을 만든 알톤 필그림은 창밖으로 자신의 얼굴을 내밀고 있다.
노천카페에서 주문한 멜랑쥐 커피와 슈테판 성당
빨간차가 나오는 곳이 케른트너 거리. 그라벨과 함께 가장 번화한 거리로 명품점이 몰려 있는 곳.
왼쪽 건물이 한스홀라인. 평면벽에 네모 창인 것에 반한 건물로 건축 당시 슈테판 대성당과 주변 고풍스런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은 건물. 하긴 뜬금없이 현대식 건물이 서 있으니 어울리지 않는다.
슈테판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면 로마식 건물이 보인다.
벨베데레 궁전 하궁과 상궁사이에 바로크정원. 여인의 얼굴과 사자의 몸통을 하고 있는 스핑크스는 지혜와 힘의 상징이란다. 올림푸스 산을 지키는 스핑크스라고 하니까 오이겐공은 스스로 신이 된 셈이다.
벨베데레 궁전은 오이겐공의 별장으로 라틴어로 '아름다운 경치(bel)' '전망대(vedere)'라는 뜻 이름. 상궁과 하궁으로 이뤄져 있는데 아래는 저택용, 상궁은 축제나 연회를 여는데 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국립갤러리와 바로크 예술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714년 프랑스 국왕 루리 14세에게 승리를 거둔 후 두 개의 궁을 짓도록 했는데 오늘날 벨베데레 궁이다. 오이겐 왕이 사망한 후 합스부르크 왕가는 이곳에 미술품을 수집해 두었다.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페르디나드 황태자가 1914년까지 이곳에 거주했다.
초록지붕은 비엔나가 터키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터키군 천막처럼 보이는데 오이겐 왕자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상징물이란 얘기도 있다.
2층 붉은 대리석홀은 1955년 5월에는 미, 소, 영, 불 4국의 외무장관들이 10년간의 신탁통치를 마치고 오스트리아의 완전한 자유와 독립을 선언한 곳이다.
상궁에 19~20세기 회회가 전시되어 있는데 빈 분리파 회화의 거장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와 유디트를 전시하고 있다. 빈 분리파 세체시온를 결성한 클림트는 황금빛의 마술사 답게 금박을 많이 사용하는데 치마는 일본의 기모노를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키스, 유디트, 인생 등 여성을 묘사한 작품이 많다.
1907년에 그려진 <키스>는 카페의 벽에 걸리는 1순위 작품으로 남녀가 포옹하는 모습을 너무나 황홀하게 그렸다. 그 큰 그림의 원본을 만나는 자체만으로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간이 의자가 놓여 있어 원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밖에도 에곤쉴레, 오스카 코코슈카의 작품이 걸려 있다. 28세에 요절한 에곤쉴레는 어둡고 고통스런 작품을 많이 그렸다. 홉스부르크왕궁에 있는 레오폴트 미술관에 가면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겠다. 독창적이고 관능적이 작품을 많이 그렸다. 누드화 등 여성을 소재로 한 그림이 많다.표현주의자의 대표 코코슈카의 대표작 <바람의 신부>도 볼 수 있다.
뒷편에 보이는 것이 하궁. 하궁은 바로크 미술관. 정원은 양쪽으로 대칭. 분수, 동물원 온실까지 갖추고 있다. 프랑스식정원.
벨베데레 궁전 입장권
바로크 정문 사자, 바보이공국 문장을 호위하고 있다.
음악책을 장식한 음악가를 모신 중앙묘지 역대 대통령과 영화배우 등 총 240만m2에 35만기의 묘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음악가의 묘가 가장 유명하다. 가운데 모차르트의 가묘, 오른쪽에 베토벤, 왼쪽에 슈베르트가 누워 있다.
모차르트는 시신을 찾지 못해 가묘만 만들었다. 1784년부터 1988년까지 살았떤 빈의 집에서 <피가로의 결혼>울 작곡했으며 이곳에는 그의 편지와 악보가 전시되어 있다.
베토벤의 묘. 독일의 빈에서 태어났지만 빈의 사교계에서 환영받으며 유명해졌다. 괴팍한 성격 때문에 평생 독신이었던 베토벤. 유품 중에 연애편지 3통이 발견되었는데 수취인이 기재되지 않아 영화 '불멸의 연인'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하일리겜슈타트 유서의 집 등 빈 숲에 그의 흔적들이 많다. 운명 교향곡을 이곳에서 들어보면 어떨까
슈베르트의 묘,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곡을 빠르게 써내려갔다. 작곡에 대한 열정은 대단한데 눈을 뜨자마자 작곡하기 위해 안경을 쓰고 잤다고 한다. 여느 작곡가와 마찬가지로 죽고 나서 인정을 받았는데 아베마리아란 노래를 들으면 딱 분위기에 맞는다. 베토벤이 세상을 뜨자 관을 장지까지 직접 운구했으며 1년뒤 베토벤의 옆에 묻히게 된다.
브람스의묘 . 브람스는 고전을 굳건히 지킨 음악가로 알려져 있는데 43세에 첫 번째 교행곡을 썼을 정도로 신중하다. 일생을 빈에서 살았는데 고전주의 요세프 하이든을 무척이나 흠모했다. 고전주의 형식에 충실했던 그는 모차르트처럼 천재성이 없다면 차라라 하이든처럼 순수한 사람이 낫다고 주장했다. 하이든 주제의 의한 변주곡을 쎴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왈츠의 왕. 요한슈트라우스. 전 세계인을 춤추게 만들었지만 정작 본인은 몸치라고 한다 .
카이젤 수염이 트레이드 마크
요한슈트라우스와 브람스는 죽어서 이웃
웬지 이곳에서 사진 한방 박으면 노래방에서 점수가 잘 날올 것 같애
점심은 도나우강 옆에 스트란트 카페에서
저렇게 큰 것이 1인분. 맛있게 구어진 감자와 상픔 산 소스를 찍어 먹는다. 맥주 안주로 최고
아이고 이때가 그립다.
나슈마르크트, 빈 재래시장 옆에 우리네 청계천과 비슷한 길이 있다. 시내 한복판에 하천과 그옆에 철로가 놓여 있다.
한국식당에 있는 벽화인데 하나같이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오스트리아 현지사람이 그렸다고하는데 서양인의 눈에는 이렇게 보이나보다. |
첫댓글 사진만 보면 뭐하나~~ 하는 분도 있겠지만.....
대장의 사진과 글은 독특하며 유익하고 즐겁습니다.
차근차근 올려지는 여행후기를 보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행은 '대장님'처럼 해야겠구나..... 가진 전 준비와 다녀와 후기로 실제 여행기간 보다 앞 뒤로 길게 길게 늘여야 여행의 진맛을 아는 것이라고....
감사합니다. *^^*
센스쟁이 호밀밭님이랑 함께 하려면 퇴직하길 기다려야는데............참새 모가지 빠져요. ㅎㅎ
모놀 여행이 좋은 점은 바로 그것이죠.
여행지 공지가 뜨면 서너달은 족히 즐기는 전희.
현지에서의 본희.
다녀와서도 이렇게 식을 줄 모르는 후희!!
대장님의 여행후기가 점 점 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더 더 더 훌륭해지네요.
여행지에서는 정신 없이 다니느라 4~5일차 부터는 성당 이름도 헷갈리고 그랬는데
이렇게 차분히 보니까 공부가 제대로 되네요. 고맙습니다.
잘들 다녀오셨나요? 넘 부럽네요 저도 2002년도에 다녀왔는데 대장님 말씀처럼 주마관산격으로 갔다와서 도통 기억이 없네요
기회가 되면 저도 다시 한번 가보고 싶네요
언제 가보나...요한슈트라우스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인데..
하나하나가 작품입니다. 아름다운 곳 다녀오셨군요.
사진으로 나마 대리만족과 근사한 여행 기분을 내보며 이렇게 배려해 주기위해 애쓰는 대장님께!! 감사!! 글구 아는것도 많으셔~~
마치 제가 함께 동행하는듯 합니다 자세한 여행기 감사 드립니다
하나하나 꼬집고 매만져 두루두루 놓칠세라 꼼꼼한 흔적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감격스러움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정말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네요 세월이 약일까요??
음악과 사진과 설명이 ...세박자가 그리 잘 맞는지~~~역시 대장님..짱입니다요^^*
잘 보았습니다~ 사진이 예술입니당~~
정말 빈의 일정은 아쉽고 아쉽습니다...게다가 음악가의 묘지마저 빼먹으려했으니...클날뻔 했어요...ㅎㅎ
구경 한번 자~알 했습니다. 대장님의 열정이 사진마다 묻어나네요^^
역시 대장님과의 여행은 특별한 무엇이 있습니다. 일찍 퇴직하여 언제 합류해보나 했는데 치열한 경쟁으로 행동이 굼떠서 기회가 오지 않네요. 언젠가 오길 기대하며,,,
사진 너무 좋았어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