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고 놀 사람 여기 붙어라
차수희
시드니의 연말연시는 한여름에 놓여 있다. 성탄절을 시작으로 연초까지 대부분의 사무실이 휴무에 들어가니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호주에는 많은 사람이 1년을 열심히 지내고 나서 긴 휴가를 떠난다. 여름 방학은 길고 딱히 찾아갈 친척도 마땅치 않은 우리 이민자들은 이때 한국을 방문하기도 한다. 휴가철인데도 여느 때처럼 집에 머물게 된 나는 조용한 시드니를 외롭게 지키고 있는 셈이 되었다. 자주 가던 카페에선 읽으려고 가져간 ’위대한 개츠비’마저도 내 적막함을 달래주지 못했다. 주인공이 대저택에서 자주 호화 파티를 여는 장면에선 아예 책을 덮고 말았으니. 커피 잔을 들어 올리며 무심코 쳐다본 창밖 너머로 전깃줄에 홀로 앉아 있는 새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어린 시절 같이 놀 친구를 찾지 못했던 때가 떠올랐다.
‘나하고 놀 사람 여기 붙어라.’를 외치며 검지를 치켜들고 골목을 돌고 돌아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면, 소꿉친구 영경이는 이제는 숫제 일일이 집 문을 두드린다. 숙제를 안하고 나가 노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도 직접 문을 두드리고 부를 때는 엄마도 약간 너그러워진다. ‘조금만 놀고 오너라.’하면 이때다 싶어 삐그덕 한옥 대문 빗장을 재빨리 열고 뛰쳐나간다. 삼선교 굴다리 밑에 사는 거지들이 깡통을 두드리며 ‘밥 좀 주세요. 네?’ 하며 대문 앞에서 동냥할 땐 무서워 잘 잠겨 있나 확인하던 두툼한 나무빗장이다. 이렇게 집집이 방문하여 겨우 모인 조무래기 몇 명은 우선 돈암동에서 을지로를 오가는 전찻길 위에 못을 올려놓는 장난부터 시작한다. 인도에 쪼그리고 앉아 어느 쪽으로 전차가 지나갈지 고개를 양쪽으로 분주히 돌려대며 내기를 한다. 드디어 삼선교에서 떠난 전차가 우리 앞을 향해 오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누워 있는 못이 제자리를 잘 지켜주기를 숨도 멈춘 채 주시하다가 급브레이크가 불가능한 전차가 언덕 내리막길을 땡땡땡 지나가면 제일 용감한 사람이 일어선다. 가끔 지나가는 새나라 택시를 피해 전찻길로 뛰어가 납작하게 눌려진 못을 호호 불며 집어와 대단한 일을 해낸 양 으쓱대면 우리는 빙 둘러서서 또 하나의 소득에 뿌듯해하며 곧 다음 놀이로 들어간다.
마당이 넓은 미자네 집으로 몰려가 둥그렇게 바닥에 둘러앉아 ‘많은 공기놀이’를 한다. 깨진 기왓장을 다듬어 만든 수많은 공깃돌. 그 중 하나를 위로 던지고 떨어지는 사이 손바닥으로 집어 모으는 놀이로 한참을 깔깔대다가 시들해지면 혜화동 성당으로 달려간다. 긴 계단에 서서 ‘옆으로 가는 용~사.’ 하며 눈 감은 친구 몰래 움직이는 놀이를 하다가 운이 좋게 결혼식이 있는 날이면 말랑말랑한 찹쌀떡을 얻어먹을 수 있다. 손님인 양 줄을 서서 받아들고는 냅다 뛰어 도망가서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앉아 허겁지겁 먹는 서로의 얼굴엔 하얀 가루가 잔뜩 묻어 있어 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그리고는 해가 어스름해지고 앞이 안 보일 때까지 우리는 숨고 찾고 뛰어다니며 숨바꼭질을 한다. 엄마들의 불호령으로 친구들이 하나씩 집으로 간 줄도 모르고 안전하게 숨어 있다가 살그머니 나왔는데 아는 얼굴이 하나도 안 보일 때의 그 막막함이란!
작년 한국 나들이 때 ‘나하고 놀 사람 여기 붙어라.’를 제일 많이 외쳐대던 영경이를 만났다.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만난 그녀를 놓칠세라 그의 둘째손가락을 꽉 잡은 나는 45년은 족히 넘었을 세월을 단박에 거슬러 올라갔다. 폭포수처럼 옛 추억들을 쏟아내다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파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혜화동로터리로 자리를 옮겼다. 동양서림과 혜화우체국이 여전히 우리를 반겨주었다. 하지만 그 서점 앞에서 자주 마주쳤던, 헝클어진 머리에 긴 코트를 입은 아저씨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분은 장욱진 화백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엔 화가는 그렇게 괴상하니 술에 취한 듯 다녀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 옆 우체국 앞에선 멋쟁이 신사를 여러 번 보곤 했었는데, 빵떡모자가 어울리는 조병화 시인이었다. 호주로 돌아온 나는 이민 후 모인 책들 사이에서 빛바랜 장욱진 화백의 산문집 ‘江가의 아틀리에’를 꺼내 펼쳐보았다. 자신의 그림을 팔지 않았던 장 화백은 부인으로 하여금 조그만 책사(冊舍)를 꾸며 장사의 길을 택하게 하였다고 쓰여 있다. 그 부인이 처음 시작한 동양서림은 혜화동 로터리에서 동네 꼬마들이 노는 모습을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
‘여기 붙어라.’ 해서 모인 아이들끼리 세상을 다 얻은 듯 노는 동안 학림다방에서는 화가와 작가들이 자리를 같이하곤 했는데, 지금의 우리 나이였던 것이다. 내가 중년이 되고 보니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일은 소꿉친구 검지에 붙었을 때만큼이나 신 나는 일이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여러 모임에서 어린 시절 놀이를 대신하곤 한다. 문학회 월례모임을 시작으로 새로운 한 해를 열면서 생각해 본다. 삶이란 이렇게 모여 노는 놀이의 연속이라고.([시드니 문학] 2011 제7집)
∣작법 해설∣
창작문예수필 운동은 곧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운동>이다. 지난 1세기 수필문학은 현대문학 이론과 전혀 관계가 없는 홍매라는 사람의 ‘붓 가는 대로’를 개념으로 삼아 온 글쓰기였다. ‘붓 가는 대로’ 쓰면 된다고 주장하며 글을 써 왔으니 처음부터 수필이 신변잡기가 되어 온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따라서 기존의 수필은 처음부터 문학비평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현재 시중에서 행하고 있는 수필비평은 거의 전부가 창작론적 근거가 없는 문학이론적 국적불명의 비평이다. 문학작품에 대한 비평의 절대 조건은 창작론에 근거한 비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계에서 말하는 문학이란 <창작 ・ 창작적>으로 만든 작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운동이란 이제부터라도 시, 소설, 희곡, 동화처럼 수필도 창작론에 근거한 문학을 하자는 운동이다.
이 작품에서 비평자가 첫 번째로 발견한 창작적인 요소는 제목 정하기에 있다. 「나하고 놀 사람 여기 붙어라」는 어린 시절 놀이 할 때의 구호다. 그 말을 작품의 제목으로 삼을 수 있는 발상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작가에게 창작적인 마음의 작용이 있었다는 뜻이다. 두 번째로 발견한 창작적인 요소는 서두문단에서 전개문단으로 이야기를 넘겨주는 연결고리 기법이다. “순간 어린 시절 같이 놀 친구를 찾지 못했던 때가 떠올랐다.” 거의 모든 수필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연결고리 기법이다. 작품을 다 읽고 난 독자는 이 작품이 제목이 암시해 주고 있는 대로 어린 시절 놀이를 소재로 삼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작품의 주제는 어른이 된 후의 삶도 「나하고 놀 사람 여기 붙어라」의 어린 시절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인생에 대한 해석이다.
형상화에 필요한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도 똑 떨어지게 형상화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러나 이만큼 형상화 조건들을 갖추어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변잡기 일색인 수필문단에서는 눈이 띄게 빛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