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공화국 (Macedonians)
처음의 마케도니아는 1371∼1912년에 오스만 제국이 지배한 보다 큰 마케도니아 지역의 일부였다. 마케도니아의 이 부분은 1913년 세르비아에 할양되었으며, 1919년에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 결성될 때 그 나라의 일부가 되었다(그 후 유고슬라비아로 개명). 유고슬라비아가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1년에 추축국들에 의해 분할될 때 불가리아가 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 전역을 차지했다.
전쟁 중에 요시프 브로스 티토는 공산주의자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저항운동을 펼친 파르티잔의 마케도니아 파를 조직했다. 파르티잔의 활동으로 1944∼45년에 유고슬라비아가 해방된 후 마케도니아는 재편성된 유고슬라비아 국가의 일부가 되었고, 1946년에 이 국가를 구성하는 6개 공화국의 하나가 되었다.
그 후 동구권 변혁의 열기 속에서 1991년 11월 17일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했다.
마케도니아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다. 인종적으로는 마케도니아인 이 전체인구의 2/3 이상을 차지하는데, 그들은 세르보크로아 티아어보다 불가리아어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남슬라브 어를 사용한다. 알바니아인·터키인·세르비아인이 모여 사는 지역들도 있다. 인구는 서부에 밀집해 있으며, 세르비아 북부와 독일의 산업중심지로 젊은 사람들이 이주하는 바람에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국경 검문소
구 시가지
***알렉산더 대왕 고향땅 마케도니아(깃발;알랙산더 군대 깃발로 일본 제국 국기를 여기서 본 딴것 아닌가?
산악지대를 흐르는 바르다르 강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고대에 일리리아족 의 중심지였던 스쿠프에서 비롯되었으며 4세기에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치하에서 다르다니아 지구(로마 제국의 모에시아 수페리오르 속주의 일부)의 중심지가 되었다.
518년에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7세기에 슬라브족에게 잠시 침략 당했으나
9~10세기에는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1189년 세르비아인들이 처음으로 이 시를 점령했고 1392년에는 투르크인들이 마케도니아를 정복한 뒤 이 시를 지역 중심지로 삼고 상업요지로 만들었다
1689년 오스트리아 군대가 진성 콜레라를 근절시키기 위해 이 시를 완전히 불살라버린 후
쇠퇴일로를 걷다가 19세기 베오그라드-테살로니키 간 철도가 건설되면서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다.
조약에 따라 1913년 세르비아에 합병되었고, 1918년에는 신생국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1년 4월 독일인들에게 점령당했으며, 그 뒤에는 불가리아 군대의 주둔지가 되었다.1944년에 해방되었으며, 1945년 마케도니아의 수도가 되었다.
이 시는 공업·상업·행정의 요지이고, 공업으로는 화학제품·시멘트·농기계·전기제품·벽돌·도자기·유리·담배·맥주·과일 및 증류 알코올, 야채통조림 등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피혁가공업·목공업·제강업 및 크롬 정제업 등도 이루어진다. 철도 및 도로 연결망과 현대적인 공항이 있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이며, 대학교(1949), 공업기술학교, 마케도니아 과학 및 예술 아카데미가 있다. 인구 444,299(1994).
대학교
남부 유럽 발칸반도 중부에 있는 나라이다. 구(舊)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6개 공화국 가운데 하나였으나, 1989년 동유럽을 휩쓴 공산정권 붕괴의 소용돌이를 틈타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하였다. 정식명칭은 마케도니아 공화국(Republic of Macedonia)이며, 그리스와 국명 문제로 다툼이 계속되자 1995년부터 외교적으로는 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 약칭 FYROM)으로 불리기도 한다. 북쪽으로 유고슬라비아, 동쪽으로 불가리아,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
제비가 떨어져...
는 알바니아와 높은 산을 경개로 국경을 접하고 있다.
1998년 세르비아에 코소보 사태가 일어났을 때 알바니아계 난민을 대거 받아들였다. 행정구역은 85개 자치 시(opstina)로 이루어져 있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지방명인 마케도니아와 동일한 이름으로 이로 그리스가 마케도니아 국가 명을 인정하지 않았던 나라이다. 국토의 많은 부분이 600-900m 높이의 고원지대이다. 국토의 중앙을 가로 지르는 바르다르(Vardar)강은 수도 스코피예를 지나서, 그리스 테살로니키 근처의 에게 해로 흘러간다.
서쪽 성벽
마케도니아 소도 스코프에 시내 관통 바르다르강.
남서쪽의 오흐리드(Ohrid)호수와 프레스파(Prespa)호수는 알바니아를 지나 아드리아 해로 물이 빠진다. 이들은 발칸반도에서 가장 큰 호수들이고 오흐리드 호수는 가장 깊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교가 융합되어 이루어진 흥미롭고 독특한 문화를 지닌 나라이다. 스코피예 의 중심가는 대부분 보행자지역이며, 바르다르강 위에는 구시가와 신시가를 연결해주는15세기 터키식의 돌다리가 놓여 있다. 시립미술관에는 돔 형태로 지은 6개의 방이 있다. 도시 북쪽에는 오래된 시장이 있다. 최근 세르비아와 나토의 격돌로 분쟁이 잦은 불행한 지역이었고, 알바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그리스 등에 끼어 있는 마케도니아는 그 위치 때문에 늘 정치적인 화약고였다.
성채
스코프예
바르다르강(Vardar R.)상류에 위치해 있고, 중부유럽과 아테네 사이를 잇는 중요한 통로역할을 하고 있다. 마케도니아에서 제일 큰 도시로 정치, 문화, 경제 및 학문의 중심지로 마케도니아 인구의 25%이상이 이곳에 거주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르게 성장하였으며, 1963년 대지진으로 이러한 성장이 다소 주춤 되었으나 오늘날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근대도시로 성장해왔다. 특히, 금속처리, 화학, 목재, 직물, 가죽관련 산업이 발전했으며 이러한 산업의 발전으로 무역과 금융업이 동반 성장하였고 문화와 스포츠도 발전하였습니다.
산 정상60미터 십자가
시내 . 강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 이며 활기가
도시 발전 속도 빠르게 진행하는 거처럼 보이고
구 시장가는 길
발칸반도 최대의 터키탕인 [다우드 파샤 목욕탕]
그리스 정교회 성상이 있는 [스베티 스파스 교회]
스베티 스파스(Sveti Spas) 교회1824년에 만들어진 정밀하게 조각된 그리스정교회 성상(iconostasis)이 있는 스베티 스파스(Sveti Spas)라는 작은 교회이다. 이 교회가 건축되었던 17세기에는 어떤 교회도 이슬람사원 보다 높이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교회의 절반은 가려져있다.
마늘도 있고 꿀도 좋아요
유럽 시장 중 가장 크고 화려한 옛날시장 [동방 시장]
브라질 출신 건축가 오스카 나마이어 풍의 건축양식(루버.)
강열한 태양빛을 차단을 위한 …….
바르다르 강 위의 구시가와 신시가를 연결해 주는 15세기 [터키식 돌다리]
무스탑하 파스하(Mustapha Pasha) 이슬람 사원
이 사원은 1492년에 건립되었으며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 건축물로 꼽힌다.
유럽 시장 중 가장 크고 화려한 옛날 동방시장 입구.
특히 과일이 싸고 맛이 있었다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프예 테레사 수녀원
마더 테레사는 1910년 8월27일에 마케도니아의 스코프예(현제수도)란 곳에서 태어났다.
3남매 중 막내였고 이름은 '꽃봉오리'라는 뜻을 지닌 아그네스 곤자였다.아그네스의 가족들은 모두 믿음이 깊은 가톨릭 신자여서 그녀의 어머니는 아그네스와 아그네스의 언니, 오빠에게 항상 기도하라 가르쳤고 가난한사람을 도와주라고 가르쳤다.
그러던 중 아그네스가 9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그네스는 어머니께서는 잠시 기운을 잃으셨다가 다시 기운을 찾으셔서 옷감이나 수예품을 팔아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을 보고 어린 아그네스는 이런 어머니에게서 어려움과 가난을 이기고 힘차게 살아가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아그네스는 18세가 되던 해에 수녀가 되어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수녀가 되어 떠나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난한사람들을 도와주려는 딸의 마음을 이해하고 도와주었다 고한다.
아그네스는 인도 지방에서 봉사하고 있는 단체인 로레토 수녀 회에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면접을 봐서 통과, 수녀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1929년 아그네스는 수녀가 되기 위해 테레사라고 이름을 바꾸고 테레사란 이름은 리지에 수녀원에서 일생을 마친 프랑스 수녀의 이름에서 딴 것이 다마더 테레사의 부모님의 출생지는 알바니아 엇고 마더 테레사는 마케도니아에서 출생 하셨다.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프 예에 있는 기념관에는 많은 유물과 생전의 사진이 있다.
1931년5월24일에 테레사수녀는 가난하게 살고 순결하게 살겠다고 맹세하고 거대한 히말라야 산기슭의 작은 구릉에 있는 다르질링으로 파견되었다.
그 마을 한 곳에 자리 잡은 로레토 수녀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기도 했다. 테레사수녀는 다르질링에서 임기를 마치고 캘커타로 돌아와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다. 그러던 1937년5월14일 테레사 수녀는 일생을 하느님께 바치겠다는 종신서원을 했다.
테레사 기념관
이것으로 테레사 수녀는 수녀가 되겠다고 결심한지 10년 만에 비로소 진정한 수녀가 된 것이다. 이제 종신서원을 한 수녀들은 수녀원 담장 안에서만 생활해야 했다.
아주 긴급한일이 있을 때만 밖에 나가게 될 수 있던 것이다.
여러 단계의 수련과정을 거쳐 완전한 수녀가 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테레사 수녀는 수녀원 담장 안에서 세상과 단절되어 살았다.
테레사 수녀가 수녀생활을 익히는 동안 인도는 변화되고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프예 성체
성채 서벽
소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