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자료 단편 ＜강물은 바람을 안고 운다＞ KBS 라디오독서실 대본 2002년 6월 9일 방송

라디오 독서실 (2002년 6월 9일)   이원규 단편소설 󰡒강물은 바람을 안고 운다󰡓   극본; 송정림 연출; 장충길 진행; 김선학     등장인물 -------   해설 : 설영범   이현식 (40대 초반)... 지성적이고 양심적인 작가. : 김익태   김민규 (30대)... 일에 대한 정열이 넘치는. : 양석정   조경호 (30대)... 경박한 데가 있는. : 최정호   오정국 (40대)... 북한 벌목공 지도자. 카리스마 있는. : 홍시호   니꼴라이 (20대) ... 러시아 청년이지만 북한 말을 완벽하게 하는.: 위훈   벌목공 1 ... : 이재웅 벌목공 2 ... : 홍진욱 벌목공 3 ... : 신찬혁 특파원 ... (한국 특파원) : 임채헌 그밖에 북한의 벌목공들... : 유호한, 윤동기, 박찬희 소녀 (10세) ... 북한 소녀 : 전숙경     *연습 : 2002년 6월 8일(토) 오전 9시 *녹음 : 2002년 6월 8일(토) 오전 10시(RS-7)           <라디오 독서실> 이원규 작, 󰡒강물은 바람을 안고 운다󰡓 극본; 송정림 연출; 장충길   사회:----- 지난 현충일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산화시킨 수많은 젊음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봤습니다만... 그들의 희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의미는 우리가 이어가야할 숙제일 듯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해와 통합을 위한 통일지향의 마음이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통일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라디오 독서실에서는 통일문학 작품집 ‘그날이 오늘이라면’ 중에서 이원규의 단편 소설 <강물은 바람을 안고 운다>를 만나봅니다.   * 작가; 이원규 1947년 인천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84년 월간문학 신인상 수상 1986년 현대문학 장편소설 공모 당선 소설집 <훈장과 굴레> <침묵의 성> <깊고긴 골짜기> <황해> 등이 있음. 대한민국문학상, 박영준문학상, 동국문학상 등 수상... 현재 동국대 국어국문학부 출강   * 작품설명 :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꿈을 그런 남북한 문학작품집<그날이 오면> 중에서 남북의 상황과 이별의 아픔, 통일의 의지를 담은 작품.   * 줄거리 : 19세기말에 이주했던 우리 유민들의 발자취를 따라 연해주 취재에 나선 남한의 한 방송 취재팀은 하산 역사에서 우연히 북한 벌목공들을 만난다. 남북한의 주민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서로 급속하게 친해져서 통일문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살아가는 물정에 대한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눈다. 서로에 대한 만남의 관계가 적대적인 분단국가의 구성원에서 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전환된 것이다. 하지만, 남한의 방송 취재팀은 북한 벌목공과의 조우를 상품성 있는 방송 특종으로 만들기 위해 카메라에 몰래 담고 있었다. 그것을 안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에 대한 분노와 배반감을 깊이 느낀다. 북한 사람들로부터 필름을 빼앗기는 곤경을 겪은 이후, 카메라맨은 빼앗길 것을 대비하여 먼저 찍은 필름의 일부를 교묘하게 숨겨 둔다. 완전한 특종이라며 좋아하는 이들. 하지만 작가인 현식은 필름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린다.   * 대 담 *   1) <강물은 바람을 안고 운다> 이 작품은 언제 어떤 동기로 쓰게 된 겁니까?   2) 이제 우리 문학은 전쟁문학에서 분단문학으로, 다시 통일문학으로 그 지향점을 달리하고 있는데요. <강물은 바람을 안고 운다>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3) 통일 문학의 시대에 우리 문학이 나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음악;오프닝 효과;기차가 달려오는 소리, 기적소리 (기차 안에서 고스톱판을 벌이는 세 사람) 김민규;쓰리고에 싹쓸이! 우하하. 조경호;오늘 김pd 왜 이렇게 화투발 잘 받아요? (이현식, 김민규, 조경호 셋이 애드립하며 화투판 벌이는데) 니꼴라이;(러시아 통역관) 십분 후에 하산역에 도착합네다. 내릴 준비 하시라우요. 김민규;응? 어느새 다왔나? 조경호;아, 이거! 내가 한참 지는데 내려야 되네? 이현식;이 정도면 심심풀이 잘하고 왔습니다! (하하 웃고) (애드립하며 짐 꾸리는 동안) 해설;카메라 기자, 조경호는 16밀리 이엔지 카메라를 능가한다는 8밀리짜리 고성능 디지털 캠코더의 작동을 확인하고 배낭을 꾸렸다. 프로두서 김민규와 작가 이현식의 배낭에는 몇 권의 책과 자료 노트, 이날 먹을 두 세끼 분량의 참치밥, 북어국, 고추장, 김치, 소고기 장조림, 골뱅이 따위 통조림과 김, 라면, 커피믹스, 러시아인들이 좋아한다는 초코파이 등, 서울에서 가져온 즉석 식품들이 들어있었다. 효과;기차 멈추고 사람들 내리고... 조경호;(고개 쳐들고 하늘 보며) 아! 하늘 참 맑다! 뭉게구름도 좋고! 김민규;조형! 날씨가 좋아서 카메라발이 잘 먹히겠어. 북한땅이 잘 찍히겠지? 조경호;(외치는, 러시아말) 하라쇼! 김민규;하라쇼? 조경호;니꼴라이. 통역 좀 해드리슈. 니꼴리이;휼륭하다! 충분하다! 그런 뜻입네다. 해설;니꼴라이가 금발을 휘날리고 서서 팔을 들어 역사 앞의 흙길을 가리켰다. 푸석푸석한 그 길은 역사 앞의 공터에서부터 시작되어 잡초 무성한 구릉을 뱀처럼 타고 넘어가고 있었다. 니꼴라이;저걸 넘어가서리 이십분 쯤 걸으면 철교가 나옵네다. 날레들 따라 오시라우요. 해설;니꼴라이는 취재반이 일당 30달러에 고용한 통역이었다. 평양의 김일성 대학에 유학한 백계 러시아 청년이었는데, 평안도 사투리이긴 하지만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앞장서 긴 다리를 휘청거리며 걷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가는 열차, 일행은 왕복표를 가진 터라 네 시간 안에 오늘의 취재 대상인 두만강을 촬영할 계획이었다. 효과;일행,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 물새 소리 등...강가 분위기 김민규;헤이. 꼴려! 니꼴라이;내레 이름이 니꼴라이 알빠뜨이치라고 합네다. 러시아식 애칭으로는 ‘꼴랴’라고 불러주시라우요. 결코 ‘꼴려’가 앵입네다. 모두;(하하 웃고) 이현식;평양에서도 놀림을 많이 당한 모양이군. 니꼴라이;녀학생들도 ‘꼴려’라고 불렀시오. 쌩끗 웃으면서 불렀시오. 내레 참 기가 막혀개지구. 모두;(하하 웃고) 니꼴라이;근데 내를 왜 불랐습네까? 김민규?;국경경비대 장교한테 두만강 철교에 올라가도 좋다는 허락을 얻어내야 해. 이걸 주고 쓱싹해봐. 50달러면 되겠지? (돈을 준다) 음악;짧은 브릿지   해설;이들이 지금 가고 있는 곳, 두만강 철교는 러시아 연해주 포시에트 지역의 문호로서, 지난 세기말 한인들이 유랑의 길을 떠나온 유민 루트였다. 조경호;(외친다) 두만강 철교가 보인다! 두만강 철교야! 해설;조경호 카메라 기자는 배낭을 내려 캠코더를 꺼내 들었다. 김민규 pd도 그 옆에 서서 촬영방향을 지시했다. 이현식은 큐시트를 보았다. 이 고갯길에서 자신이 카메라 앞에 서서 찍을 리포팅은 없었다. 현식은 담배를 한 대 피우며 굽이굽이 흐르는 두만강과 철교, 그리고 그 너머 누워있는 북한땅을 바라보았다. 침묵 속에 꿈결처럼 아련해보이는 산야. 두 차례 만주여행을 하며 북한 땅 가까이 가보았으니, 이제 익숙해질만도 하다. 하지만, 처음과 마찬가지로 설렘과 안타까움과 슬픔이 어우러져 강물처럼 그의 가슴을 타고 흘렀다. 니꼴라이;(OFF에서 ON으로 오며) 근데 어쩌지요? 장교한테 다리 앞에까지 가는 건 허락을 받았지만은, 촬영은 거부당했구만요. 김민규;자, 여기. 50달러 더 있어요. 그리고 이건 우리 방송국 로고가 찍힌 기념시계요. 다섯 개 가져가요. 가서 다시 촬영 허락 좀 받아봐요. 해설;김민규 프로두서가 그냥 물러 설 리가 없었다. 결국은, 그렇게 해서 5분간의 촬영을 승낙받았다. 김민규;로스케놈들. 달러라면 사족을 못 쓰는군. 이선생! 빨리 리포팅합시다. 5분이랍니다, 5분! 구성안 짜고 연습하고 할 시간 없어요. 자, 그 교두보에 서세요. 시작합니다! 자, 카메라, 들어왔어요! 이현식;(마이크 잡고 방송멘트하는) “(시낭송) 잠들지 말라, 우리의 강아. 오늘밤도 너의 가슴을 밟는 뭇 슬픔이 목마르고 얼음길은 거칠고 길은 멀다” (멘트) 저는 지금 이용악의 유민시를 읊으며 우리 유민들의 한이 서린 두만강 앞에 서 있습니다. 지난 세기말 우리 동포들은 이곳을 나룻배로 건너 연해주 땅으로 들어섰습니다. 두만강은 지금 역사의 아픔을 안은 채 말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해설;김민규 프로두서의 욕심은 집요했다. 엔지를 내지 않았는데도 표정과 제스처 연기를 바꾸게 하며 여섯 번이나 반복시켜 나중에는 경비병의 자동소총에 떠밀려나야 했던 것이다. 음악;짧은 브릿지   해설;한역사로 돌아온 것은 한 시간 남짓 시간이 흐른 뒤였다. 세 사람은 긴장을 풀고 터덜터덜 걸었다. 역사 앞까지 이르자 조경호 기자가 소변이 마렵다며 역사 안으로 겅둥겅둥 달려갔다. 현식은 김민규와 니꼴라이와 함께 플랫폼의 미루나무 그늘에 서서 담배를 한 대 씩 물고 연기를 뿜어 올리고 있었다. 조경호;(0ff에서 on으로 사색이 돼서 달려온다, 헉헉거리며) 김민규;왜 그래요, 조 기자. 이현식;왜 그래요? 조경호;(숨을 헐떡거리며)저기! 저기 좀 보세요. 저기! 해설;조경호는 손으로 역사를 가리켰다. 현식은 보았다. 유리창마다 까맣게 그을은 사람의 얼굴들이 마치 사과나무의 사과들처럼 다닥다닥 매달려 이쪽을 보고 있는 것을... 니꼴라이;아아! 저들은 북조선 벌목공들입네다. 해설;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김민규가 현식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그가 끄는대로 돌아서 등 뒤쪽 철로를 보던 현식은 입을 떡 벌렸다. 한 시간 전에는 분명히 없었던 열차, 창마다 커튼을 가린 객차에는 북한기와, “하산 -평양”이라고 쓴 표찰이 한글과 러시아 문자로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북한과 러시아를 왕래하는 전용열차가 분명했다. 김민규;(작은 음성으로 빠르게) 벌목공들 가운데 탈출을 기도하거나 사상이 불손하면 다리를 분질러 깁스를 해서 강제귀국시킨다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실려있을지도 몰라요. 해설; 니꼴라이를 포함해서 네 사람은 발이 땅에 붙어버린 것처럼 꼼짝 않고 서있었다. 현식은 다시 역사 쪽을 바라보다가 문득 닷새 전 하바로프스크 공항에 내렸을 때, 김민규와 조경호가 속한 방송사의 특파원이 마중을 나와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특파원;(약간 에코) 러시아에서는 마피아가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요. 그 놈들은 외국 여행객이 천 달러쯤 지닌 것을 알면 조용히 뒤를 따라가요. 그러다가 기회가 생기면 인정사정 없이 덮치는 거죠. 목숨 안 잃으면 그게 장땡이에요. 그 다음에 무서운 건 북한 벌목공들이죠. 탈출사건이 빈발한데, 탈북자들을 담당하던 우리 영사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죽었잖아요. 동시베리아 자작나무 삼림 속에는 탈출한 벌목공들이 야생인간처럼 살고 있어요. 각지를 유랑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 사람들을 노리거나 남한에서 온 여행객을 노리는 북한인 킬러들도 있다구요. 지난 달에는 벌목장에 접근한 모 신문 특파원이 카메라를 빼앗기고 집단 폭행을 당했잖아요. 해설;현식은 유리창에 매달린 얼굴들을 보았다. 자세히는 볼 수 없었지만 현식은 거기서 수십 개의 화살처럼 꽂혀오는 경계의 빛을 느낄 수 있었다. 조경호;(땀을 닦는 듯 긴장한 목소리로) 아휴... 대합실로 들어갔는데, 바닥에 옹기종기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날 둘러싸드라구요. 마흔 명쯤 될 거예요. 옷차림을 보고 우리 동포들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퉁명스럽게 묻는 거예요. 김민규;뭐라구 물었는데? 조경호;“당신 일본 사람이야, 조선사람이야?” 이렇게 묻드라구요.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게, 소변이고 뭐고 싹 잊어버리고 냅다 달려나왔어요. 내가 왜 그랬을까요? 왜 내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뛰쳐나왔을까요? 참 나... 김민규;그건 조형이 기자 정신이 약해서지. 잘하면 특종을 잡을 기회인데... 조경호;그렇죠? 김민규;그럼. 놓치기 쉬운 특종이지. 일단 우리 신분을 숨기고 부닥쳐보자구. 젠장. 같은 동포들인데 웃는 얼굴을 때리기야 하겠어? (현식에게) 이 선생. 이선생도 좋은 소설감을 잡을지 몰라요. 우리 신분은 잠시 속입시다. 우린 역사 전공 연구원들이라고, 그렇게 하자구요. 어때요? 해설;현식도 작가로서 취재 욕심이 참을 수 없을 지경으로 무럭무럭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우선 두 사람을 가라앉히기 위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현식;아무 욕심없이 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터봅시다. 그리고 난 속이고 싶지 않아요. 작가라고 할 거예요. 김민규;좋아요! 그럽시다, 그럼. 해설;김민규가, 진격하는 선봉장처럼 앞장섰다. 현식의 손이 땀으로 젖었다. 왜 긴장하는 것일까. 두려움 때문인가. 감격을 기대하기 때문인가. 음악;짧은 브릿지   효과;대합실 분위기 (북한 사투리의 사람들, off에서 떠드는 소리...) 김민규;(on으로 들어서며 외치는) 안녕하십니까, 동무들? 우리는 서울에서 왔습니다. 이현식;(외치느) 반갑습니다, 여러분! 헤헤. 해설;십년 쯤 분단소설을 썼던 현식이었다. 비평가들로부터 분단극복에 관한 진보적 시각을 가장 온건하게 표현하는 작가라는 평을 들은 그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연기처럼 피어나는 감정은 두려움, 바로 그것이었다. 소년시절부터 끊임없이 받아온 반공교육, 그것이 안겨준 북한 동포들에 대한 적의가 잠재의식의 밑바닥에 고여있단 말인가. 김민규;(외치는) 우리는 여러분과 대화를 원합니다. 해설;북한인들은 아무 말없이 세 사람을 둘러쌌다. 모두가 뚫어져라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현식은 그들이 주목하는 것이 세 사람이 몸에 걸친 고급스러운 옷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현식도 그들을 하나하나 눈여겨 보았다. 동남아시아인처럼 까맣게 탄 얼굴이며 몸에 걸친 남루한 작업복이며 조잡한 신발이며,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표정은 흙바닥처럼 메마르고 초췌한데 눈빛은 강렬했다. 이런 북한인들을 보다니... 연민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가슴을 가득 메워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김민규;(외치는) 우리와 대화할 수 없겠습니까? 해설;그러나 적의에 찬 눈빛들은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당신들을 거부한다고.... 대합실 안은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니꼴라이;(떨리는 목소리로) 내레...김일성대학에서 공부한 니꼴라이라고 합네다. 여기 이, 세 분이래 좋은 사람들입네다. 해설;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자 니꼴라이는 얼굴이 굳어진 채로 물러나버렸다. 현식은 북한인들 가운데 열살 안팎의 소녀와 소년이 있어 그쪽으로 다가갔다. 배낭 옆 주머니에 넣어온 국산 껌과 초콜릿을 한 줌 꺼내 내밀었다. 이현식;(미소로) 예쁘게 생겼구나. 몇 학년이지? 10세소녀;(경계하며) 내레 인민학교 사학년이고... 동생이레 이학년이야요. 해설;그 소녀는 껌과 초콜릿을 외면한 채 소년의 손을 잡고 어른들 뒤로 숨듯이 걸어갔다. 현식이 돌아보니 김민규와 조경호 역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말을 걸었으나 아무도 대꾸하지 않아 머쓱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 김민규가 현식에게 찡끗, 눈짓을 하고 대합실 구석으로 걸어갔다. 현식은 뒤따라갔다. 그곳에서는 북한인 한 사람이 석유 버너로 밥과 된장국을 끓이고 있었다. 효과;(남비 등... 요리하는 소리) 해설;김민규가 그의 앞에 현식을 이끌고 가더니 간절한 표정을 연출하며 현식의 얼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김민규;동무. 우리 형님, 이 얼굴 좀 보십시오. 러시아에 와서 조선 음식을 못 먹어서 말이 아니에요. 우리 이 형님은 그놈의 러시아 소시지하고 갈바싸하고 시이 냄새만 맡아도 속이 메슥거리는 분이라구요. 오늘 아침도 굶었어요. 해설;현식은 자신도 모르게 배고픈 표정을 했다. 북한인은 현식의 얼굴을 쓱 올려다보더니 묵묵히 또다른 버너에 냄비를 얹어 밥을 안쳤다. 먼저 안친 냄비의 밥과 국이 끓자 그 북한인은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현식에게 숟가락을 내밀었다. 오정국;굶은 동포를 놔둘 수는 없지비. 우리하고 같이 들고, 날래 나가오다. 음악;짧은 브릿지   효과;(북한인들과 같이 식사하는 이현식, 김민규, 조경호) 이현식;아 정말 맛있습니다. 김민규;며칠째 즉석식품과 러시아 음식만 먹었더니 된장국이 그리웠는데 정말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해설;북한인들은 이제,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묵묵히 베풀 줄 아는 인정을 가진 사람들... 진정한 동포애는 이것이 아닌가. 이현식;(담배와 초콜렛 등을 주며) 음식을 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답례하는 거니다. 껌과 담배, 그리고 이건 초콜릿입니다. 모두 서울에서 갖고 온 거예요. 벌목공들;(모두 주저주저하는데...) 오정국;받자우요! 우리레 한 핏줄 한 동포가 아닙네까. 이역 땅에서 만났는데 이바구를 못 틀 거이 없수다. 내레 오정국입네다. 반갑수다. (악수를 청하는) 이현식;(손을 내밀어 악수하며) 나는 이현식입니다. 소설을 써서 밥 벌어먹고 사는 작가지요. 해설;오정국은 인상과는 달리 손이 따뜻했다. 두 사람의 악수를 신호로 김민규와 조경호도 옆 사람과 손을 잡았고 현식도 다른 사람들과 부지런히 악수를 했다. 현식은 북한산 담뱃갑을 집어들었다. 거의 동시에 오정국도 남한산 담배를 집어들어, 결국 담뱃갑을 바꾼 셈이 되었다. 오정국;(성냥불 그어 불을 붙이고 담배를 피우며) 이거, 양담배구만요. 이현식;양담배가 아닙니다. 남조선에서 만든 거죠. 오정국;기런데 왜 조선말을 버리고 영어로 이름을 붙입네까? 이현식;(담배를 피우며) 수출을 해서 외국 상품과 싸워 이겨야 하니까요. 오정국;기래요? 아무튼 맛은 순합네다. 기런데 리 선생이레 무시기 소설을 쓰려고 러시아 땅까지 왔습네까? 이현식;러시아 연해주는 우리 동포 유민들이 개척한 땅입니다. 하지만 동포 십육만 명이 천구백삼십칠 년에 중앙 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쓸 생각입니다. 해설;그는 텔레비전 방송사의 리포터로 왔다는 사실을 밝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엉뚱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신문 연재 원고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그가 방송사를 따라온 것은 사실 소설 취재를 하고 싶은 욕심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오정국;아, 그렇구만요. 년해주레 지난날 우리 민족이 세운 발해국의 령토였다는 거를 리선생이레 아시겠디요. 류민사를 소설로 쓰려면 중앙 아시아도 가실 겁네까? 이현식;내일이나 모레쯤 그쪽으로 떠날 겁니다. 소녀;후훗... (옆에서 수줍게 웃는) 오정국;내 딸입네다. 이현식;(미소로) 정말 이쁘고 똑똑하게 생겼군요. 이거, 껌과 초콜릿인데, 좀 먹어봐라. 조경호;(큰소리로) 아, 이거, 오줌통이 터질 것 같네. 동무들! 화장실이 어딥니까? 벌목공들;- 화장실? - 화장실이라니요? 김민규;화장실은 남조선에서만 쓰는 말이군요. 변소 말입니다, 변소. 벌목공1;아아! 저기! 저쪽으로 가보시라요. 조경호;(OFF로 가며) 아이구, 급해라. 모두;(호탕하게 웃고) 음악;짧은 브릿지   벌목공2;우리레, 한 삼년 고생했수다. 기러티만은 한달에 사십 달러씩 저금했으니까니 걱정 없수다레. 김민규;그러시겠네요. 북조선은 물가가 매우 싸다는 걸 나도 알죠. 사십달러면 몇 사람이나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까요? 벌목공3;국시를 산다면 4백명이레 배 터디게 먹을 수 있시오. 김민규;그렇게나 많이요? (크게 놀라고) 해설;김민규보다 더 놀란 것은 이현식이었다. 그는 머릿속이 매우 복잡해졌다. 1달러면 열 명이, 10달려면 백 명이, 자신이 리포터로 동행 취재하는 대가로 방송사로부터 받은 개런티 3천달러면 3만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침대열차로 이동 중에 네 번이나 벌였던 화투판도 떠올랐다. 그리고, 어제 인투리스트 호텔에서 데리고 잔 여자의 화대 150달러도 떠올랐다. 그 돈이면 천 오백명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찔러왔다. 그것은 정말 날카로운 비수로 찔린 듯한 아픔이었다. 이현식;(생수병을 따서 벌컥벌컥 물 마시는) 오정국;이 생수는 오데서 샀습네까? 이현식;호텔에서 샀습니다. 오정국;로시아제도 있는데 왜 일제를 사 마십네까? 이현식;러시아산 생수는 철분과 탄산 성분이 많아 먹기 나쁘더군요. 오정국;(진지하게) 맛이 없다고서리 왜놈들 거를 사 마시면 어캅네까? 이현식;부끄럽습니다. 오정국;(툭 치고 웃으며) 일 없시오. 로시아 호텔에는 없디마는, 마실 물이라면 고저, 북조선의 신덕 샘물이 세계에서 제일이디요. 이현식;신덕 샘물에 대해서는 나도 들었어요. 신덕이 어딥니까? 오정국;평안남도 덕천군에 있디요. 묘향산을 끼고 있으니까니 물맛이래 좋을 수밖에요. 이현식;그렇군요. 그걸 남조선 사람들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음악;짧은 브릿지   해설;다른 벌목공들과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은 오정국이었다. 그는 매우 유연하게, 오정국;그거레 민감한 문제이니까니... 해설;이렇게, 이야기를 적당히 억제하고, 때로는, 오정국;어드렀습네까. 우리네 동포가 앵입네까. 남조선 사람이레 북조선 사정이 궁금한 거이고, 북조선 사람이레 남조선이 궁금한 거이 앵입네까. 해설;이렇게 이야기를 깊이 끌고 들어가기도 했다. 다른 벌목공들이 그의 눈치를 보는 것을 보고, 현식은 역시 그가 귀국하는 벌목공 단체를 이끄는 지도자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김민규;우리는 하바로프스크에서 북조선 임업 대표부 앞을 차를 타고 지났지요. 벌목일을 잘 됩니까? 오정국;(한숨을 쉬며) 남조선이 원망스럽습네다. 왜 도망자들을 데려갑네까? 기래서 골치 아프니까니 로시아가 협정을 파기하려고 한단 말입네다. 현식;...... 오정국;리선생. 리선생은 통일이 되면 무시기를 하겠습니까? 이현식;금강산에 가고 싶어요. 묘향산도 가보고 싶구요. 오정국;백두산은 안 갑네까? 이현식;가봤어요. 휴전선이 막혀 만주 쪽으로 돌아서 갔죠. 남조선에는 한 해에 오만 명 정도가 백두산을 보러 중국으로 들어갑니다. 벌목공들;(놀라서 애드립으로 - 오만명이나..? - 정말입네까?... ) 오정국;리선생. 마음이 통하면 통일도 하는 겁네다. 이현식;그래요. 저도 그렇게 믿어요. 해설;오정국과 현식이 대합실 뒤쪽으로 난 창문으로 다가갔다. 현식이 그의 어깨 너머로 보니 두만강이 보였다. 현식은 그와 나란히 섰다. 이현식;아까 강 가까이 갔었지요. 두만강은 중국 여행을 하며 두 번이나 봤는데도 가슴이 뭉클했어요. 저 건너에 우리 동포들이 산다는 설렘이었죠. 안타까움과 슬픔이 강물처럼 가슴에 가득찼더랬습니다. 오정국;남조선에 가까이 가본적은 없었지만, 남조선 동포들에 대한 내 감정도 같아요. (한숨쉬는데) 벌목공1;(약간 OFF에서 외치는) 테레비 촬영기다! 남조선 동무레 우리를 찍고 있어! 오정국;(화가 나서 버럭!) 무시기야! 이현식;(놀라 당황하며) 조경호... 화장실에 간다더니... 해설;조경호가 점퍼로 둘둘 말아 싼 캠코더로 이쪽을 겨냥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정국;동무들! 날래 뺏디 않고서리 무시기하고 있소? 벌목공들;(우루루 달려가는) 이현식;(화가 나서) 김 PD! 이거 뭐하는 짓이요! 당신이 욕심을 부린 거지? 당신이 시켰지! 김민규;미리 말하지 않아 미안해요. 하지만 우린 좋은 작품 만들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어요. 조경호;(약간 OFF에서 멱살을 잡힌 채 ON으로 끌려오며, 캑캑거리며) 아 이 멱살 놓고 말해요. 난 그저... 남북동포들이 다정하게 얘기하는 게 좋아보여서 찍은 거라구요. 오정국;(멱살 잡고 흔드는 듯) 무시기! 우리를 속여! 벌목공;1(OL) 동무! 참으오다. 로시아가 지금은 남조선 편을 드니까니 우리한테 불리하단 말이외다. 오정국;당신이레 정체가 무시기야? 방송국 기자지비? 기래서 우리한테 접근했지비? 조경호;여러분이 잘 대해준 게 미안해서 거짓말은 안하겠어요. 맞아요. 나는 방송사 기자예요. 하지만 우리는 여러분을 취재하러 온 게 아니에요. 순전히 내가 욕심낸 거지. 벌목공들;(흥분해서 소리친다) - 서울로 가지 못하게 다리를 분질러 버리자우. -우리가 속았다. 이런 놈들은 가만 두면 안된다. 김민규;(멱살을 잡히고 쩔쩔매며) 사전에 말씀드리지 않은 건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원한다면 우리의 큐씨트, 그러니까 큐씨트라는 건 방송 구성안을 말하는 겁니다. 그것도 보여드릴 수 있어요. 또 우리가 오늘 찍은 필름을 모두 보여드리죠. 여기서 찍은 필름은 내놓겠어요. 해설;조경호가 캠코더에서 필름을 빼서 오정국에게 넘겨주고 큐씨트와 함께 두만강에서 찍은 필름도 내놓았다. 그리고는 휴대용 액정 모니터를 캠코더에 장착했다. 오정국은, 이현식을 바라보았다. 무쇠탈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얼굴이었다. 오정국;도대체 어디메까디가 진심이고, 어디메까디가 거딧입네까. 동포의 량심으로 말하오다. 리 선생이레 정체가 무시기요? 이현식;(간절하게) 작가입니다. 방송사와 러시아 동포들의 유민사를 취재하는 계약을 맺었지요. 북조선 동무들을 취재할 계획은 없었어요. 그리구 아까 말한대로 나 개인적으로는 소설 취재 욕심이 더 컸어요. 오정국;(OL) 믿을 수 없수다! 이현식;그럼 구성안도 보고 필름도 보고 배낭도 조사해 보시오! 효과;(배낭을 다 쏟아놓는... 내용물들 우루루 쏟아지는) 오정국;내레 속았지비. 굶어 개지구 기력이 없다 해서 속았지비. 음악;짧은 브릿지   이현식;이게 제가 쓴 책입니다. 보세요. 오정국;이걸로 리 선생의 신분을 증명하겠다는 거입네까? 이현식;한번만 넘겨보세요. 오정국;(책장을 넘겨보고) 내레 리 선생의 신분은 믿갔수다. 설마 이 책도 선전용으로 개지고 온 건 아닐테니까니. 당신들이 찍은 필름하고 구성안을 보겠수다. 해설;조경호가 필름을 받아 캠코더에 끼우고 작동시켜 오정국에게 모니터를 볼 수 있게 했다. 오정국;록음도 했겠디요. 듣게 해주오다! 해설;오정국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는 조경호가 연결해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액정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두만강에서 찍은 것까지 필름 두 개를 다 확인하고 나서 대합실에서 찍은 테이프를 길게 뽑아 성냥불로 태웠다. 현식은 그의 얼굴에서 분노의 빛이 절반쯤 사라지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아직도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가 이국땅에서 이런 해프닝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에 몹시 서글펐다. 오정국이 천천히 창가로 걸어가 플랫폼을 내다보았다. 이현식;받아주신다면 제 책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서명해서 드려도 될까요? 오정국;(담배에 성냥불 부쳐 피우며) 어케 선생의 책을 받습네까. 오늘 일로 귀국하자마자 문책을 받을 거인데. (담배 연기 뿜는다) 이현식;나도 담배 한 대 피웁시다. 아까 모두 꺼내놔서... 오정국;(빈정대듯) 리 선생한테는 북조선 담배가 쓰디쓰갔디요. 좋은 호텔에서 잘 먹고 배낭에 값비싼 음식을 잔뜩 넣어개지구 와서리, 일부러 허기딘 얼굴을 꾸며개디구 밥을 얻어먹어 환심을 산 거같이, 또 그러고 싶은 거입네까? 현식;..... (한숨) 오정국;내레 테프 맨 끝에 실린 록음을 들어서 리 선생 진심은 압네다. 기러티만 참으로 야속합네다. 같은 동포라고 마음을 연 우리한테 어캐 기렇게 할 수 있습네까. 이현식;(답답한 듯 심호흡하며 창문을 연다) 효과;(대합실 창문 여는) 효과;(바람이 소리내며 불어들어오는) 해설;먼지낀 유리창을 열었더니, 아까보다 성급해진 바람이 소리를 내며 창가를 스치며 불었다. 강쪽에서 불어온 바람은 국경역 주변의 풍경을 심란하게 흔들어 놓고 있었다. 이현식;내, 한가지만 말하지요. 남조선 사람들이 가진 자본주의 생리에 대해서 말이에요. 우리는 엄청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요. 방송사 직원 두 사람은 일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지요. 그래야 살아남으니까요. 나도 그래요. 책이 안 팔리면 굶어야 해요. 오정국;내레 조금은 압네다. 속은 거이 분할 뿐이디요. 해설;오정국은 플랫폼에 서있는 북한행 전용열차에 눈길을 던지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오정국;저 기차가 언제 서울까디 달려갈 수 있을지... 이현식;우리가 아까처럼 마음을 열어야겠지요. 오정국;그거레 리 선생 편에 달렸습네다. 이현식;알았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꼭 그렇게 될 겁니다. 음악;브릿지   효과;기차 기적 소리 해설;한시간쯤 뒤, 취재반이 먼저 하산역을 떠났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북한인들은 아까처럼 다시 유리창에 열매처럼 얼굴을 대고 바라보고 있었다. 악수라도 나누고 헤어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식은 가슴이 저렸다. 효과;기차 안 김민규;어이! 꼴려! 니꼴라이;예? 김민규;특종을 잡았다 놓쳐서 기분도 그런데, ‘카츄샤’나 불러주라. 니꼴라이;아휴... 그나저나 내레 아까는 무서워서 간 떨어지는 줄 알았시오. 해설;그때였다. 조경호가 허리를 굽혀 양말 속에서 필름 카세트를 꺼냈다. 조경호;(히힛, 웃으며) 이게 진짜 테잎이라구요. 김민규;(벌떡 일어나며) 뭐? 조경호;만약을 대비해서 십 분 쯤 찍은 뒤 새 걸로 갈아 끼웠어요. 그걸 뺏긴 거예요. 김민규;그럼...? 조경호;여기 다 담긴 거죠. 뭐. 김민규;(좋아서 얼싸 안으며) 조형! 고마워! 이건 대단한 특종이야! 회사가 발끈 뒤집힐 거야. 어서 상태를 보자구! 해설;조경호가 캠코더에 모니터를 결합하기 위해 필름 카세트를 침대 위에 놓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현식은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민첩하게 그것을 집어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현식;에잇! 효과;(휙 날아가는 테이프) 김민규;(놀라, 버럭!) 이선생 지금 뭐하는 거예요! 조경호;(놀라 어쩔 줄 모르고) 저걸 어떡해 저걸! 해설;김민규와 조경호가 몸을 던지듯 창문밖을 내다보았다. 테잎은 이미 그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김민규는 질끈 눈을 감고 말았다. 조경호는 털썩 주저앉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현식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을 그러고 있다가 김민규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규;내가 이선생을 모셔온 건 실수였지만... 잘한 거예요,젠장! 현식;내가 보드카를 살테니 식당칸에 갑시다. 낮술이라도 마셔야 마음이 풀릴테니까. 해설;그는 침대실 밖으로 나와 복도를 걸었다. 차창으로 무심히 고개를 돌리는데 강이 보였다. 강물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며 흐르고 있었다. 음악;엔딩.   *대 담* 1) 자본주의의 상술 논리가 체질화된 남한 사람과 북한 주민의 만남에 관한 얘기를 비감어린 어조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인 듯 합니다만... 이 작품의 끝을 그렇게 한 의도는 무엇입니까?   (남북한의 진정한 화해와 민족적 동질 의식의 회복은 무엇보다 먼저 따뜻한 동포애로써 상대방을 진실되고 정직하게 감싸안는 태도부터 선행되어야 한다는 메시지)   2) 그런가하면 남한과 북한 사람 모두가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도 함께 녹아있는 듯 한데요. 어떻습니까?   3) 통일이 되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물음에 금강산도 가보고 묘향산도 가보고 싶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렇게 소박한 희망을 담은 의도는 무엇입니까.     MC--------- 초여름의 싱그러운 기운으로 넘쳐나는 6월입니다. 하지만 6월은 유난히 우리 민족에게 아픈 달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희생과 분단의 의미를 새기다 보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보입니다. 그 과제를 말끔히 해내서 이 계절이 온전한 기쁨만으로 채워지는 때가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하고 싶어집니다. 편안한 휴일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