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산 지역에서 살던 동문들중 학교 다닐때 3.15의거탑과 몽고정을 지나다닌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그곳에서 성장했지만 몽고정의 물을 언제 먹어보았는지 기억이 가물 가물하다.
몽고정 유래를 보면, 고려말 충렬왕 7년(1281) 원나라 세조가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위하여 정동행성(征東行省)을 두었으나, 일본 정벌이 2차에 걸쳐 실패로 돌아간 그 해 10월에 연해방비를 위해 이곳 환주산(環珠山)(현, 마산시 자산동 무학초등학교 뒤쪽 마산시립박물관 일대)에 둔진(屯鎭)을 설치하였다. 이 몽고정은 이곳의 둔진군(屯鎭軍)이 용수(用水)를 쓰기 위해 만들었던 우물이었다고 한다. ‘몽고정 맷돌’이라고 불리는 직격 1.4m 가량의 원방형(圓方形)의 돌이 몽고정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를 차륜(車輪)이라는 설도 있으나 맷돌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물 곁의 석비에 몽고정(蒙古井)이라 써서 세워둔 것은 1932년 마산 고적보존회(일본인 고적단체)가 명명한 것으로 알려진다.
몽고정을 연유로 명명돤 몽고간장의 첫 생산은 1905년이며 옆에 몽고정의 물을 사용함에 따라 산전장유에서 몽고란 이름으로 개칭했다. 몽고장유는 1905년 山田信助라는 일본인에 의해 마산시 자산동 119번지에 설립, 당시 산전장유라고 불렀다. 1945년 해방이 되던 해에 김홍구씨가 당시 산전장유의 지배인으로 근무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를 인수, ‘몽고장유’로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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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5 마산의 몽고식품은 장유업계 최초로 1세기 역사를 담은 ‘몽고식품 100년의 발자취’를 발간하기 위한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지난 1905년 산 좋고 물 맑은 마산에 터전을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한 기업의 과거를 다루었지만, 광복과 3.15, 근대화라는 역사적 격동기와 맞물려 지역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용은 유럽과 아시아까지 영토를 확장한 원(元ㆍ몽골)이 세조때 두 번에 걸쳐 일본 원정을 시도한다는 데서 시작된다. 과거 원의 일본원정 당시 몽골군의 식수로 사용한 ‘몽고정’ 우물로 간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일본이 지배하던 당시 상권의 변화상과 몽고식품의 전신인 ‘야마다 장유’가 창업하게 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3.15의거 때 시위대가 몽고장유양조장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역사적 장면도 싣고 있다. 마산의 역사와 더불어 세계 30여개국에 20여 품목을 수출하게 되는 현재까지 외길을 지켜온 이 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
몽고식품 김만식 회장은 발간사에서 “한국 장유업계 최초로 창업 100주년을 맞이한 장유시장 선두 주자로서의 자부심과 장유업계 산증인으로 생생한 고난과 성장의 발자취를 후대에 남기고 사료적 뒷받침을 하기 위해 책을 발간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만식 회장은 마산고 17회 선배다.
서성동쪽에서 바라본 몽고정. 3,15 의거탑이 50년간 몽고정을 내려다 보고있다 |
삼국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전통 장류는 이후 1886년 부산 신창동에 산본 장유라는 공장이 일인에 의해 설립되면서 근대화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며 해방이후 국내인들이 일인 소유 공장을 운영하게 됨으로써 본격적인 산업화를 맞게 된다.
서울의 삼시장유(1946. 현 샘표식품주식회사 전신), 부산의 대송장유, 산본 장유, 마산의 산전 장유(현 몽고 식품주식회사의 전신), 혼금장유, 불로 장유 등이 당시 생겨난 회사들이다.
이후 국가적 환란인 6.25사변은 국내 장류 산업에 있어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군납을 위한 전담 공장만 35개가 세워지는 등 명맥만 유지해오던 이 분야 산업이 식품공업의 한 분야로서 자리하게 됐기 때문이다. 샘표식품(1954), 삼화식품(54)오복간장(52), 신영상사(53) 등이 설립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63년 식품규격기준의 시행은 국내 장류의 품질, 생산 기술면에서도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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