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은 조금도 마시면 안 되는가?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31년에 만든 찬송가에 <금주가>란 노래가 있었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금수강산 내 동포여 술을 입에 대지 마라. 건강 지력 손상하니 천치 될까 늘 두렵다.
2. 패가망신 될 독주는 빚도 내서 마시면서 자녀교육 위하여는 일전 한 푼 안 쓰려네.
3. 전국 술값 다 합하여 곳곳마다 학교 세워 자녀수양 늘 시키면 동서 문명 잘 빛내리.
4. 천부 주신 네 재능과 부모님께 받은 귀체. 술의 독기 받지 말고 국가 위해 일할지라.
[후렴] 아, 마시지 마라 그 술. 보지도 마라 그 술. 조선사회 복 받기는 금주함에 있느니라."
마치 과거에 불렀던 이 찬송가처럼 우리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대에서 고참이, 직장에서 사장님이, 모 장군이 대통령이 권하는데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간증을 영웅담처럼 하기도 합니다. 제가 들은 것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어떤 목사님이 단술(감주)이 술인 줄 알고 평생 마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리스도인들은 술을 한 잔도 마시면 안 될까요? 『김세윤 교수의 신학세계』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서 그분은 "한국 교회의 약점"을 다음과 같이 꼬집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윤리를 겨우 금주, 금연 ... 등으로 축약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안식일을 지키고 음식 몇 가지를 가리고 죄인들과 어울리지 않기 등을 가지고 하나님 백성의 경건을 앞세우고 언약에 안주했듯이 지금 우리가 그런 형국입니다. 소소한 것들에 대단히 율법주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이것을 '아디아포라'라고 합니다. 즉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일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랑의 이중 계명에 비춰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가령 음주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음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져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가족과 이웃에게 불편을 끼치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사랑의 이중 계명을 잘 지키기 위해 금주, 금연하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이중 계명은 지키지 않고 율법적으로만 지키면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동떨어질 뿐 아니라 진정한 샬롬이 없습니다. 그것이 한국 교회의 윤리 부재의 근본문제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세상에 '침투'해 들어가야 합니다. 이 점을 강조하면서 김세윤 교수님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보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소금 노릇을 하지 못하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도 기독교의 '짠맛'(곧 정체성)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대부분의 보수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찾습니까? 또는 세상에 비친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을 믿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의 근본일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실제로 우리들의 삶에 어떻게 표현됩니까? 주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하고, 성경 읽고 기도생활 하며, 십일조 등 헌금하고, 술 마시지 않고 담배 피우지 않으며 ... 등등 몇 개의 외형적인 규범들을 따르는 것만으로 주로 표현되지 않습니까? 아니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헌신과 이웃에 대한 '내 몸 같이'의 사랑(막12:28-34)으로 표현됩니까?
우리의 정체성이 후자로 더 두드러지게 표현되어야 진정으로 세상의 소금 노릇을 할 수가 있습니다. ...
우리의 정체성이 전자만으로 표현되면,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하게 하며, 소금의 둘째 조건인 세상 속으로의 선교적 침투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사실 세상을 변화시킬, 그리하여 살'맛' 나게 할 힘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참으로 옳은 지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저는 목회 초기에 찰스 피니의 책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찰스 피니의 설교 중에 『의심으로 행하는 것은 죄니라』라는 명설교가 있습니다. 이 설교의 본문은 로마서 14장 23절입니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이 구절을 포함한 단락에 대해 찰스 피니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즉 고기가 정결하다든지 부정하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에 차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분별없이 고기를 먹는다면 그것은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반대된다고 믿고 있는 것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롬14:20)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옳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옳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부정하다고 하는 고기를 먹으면 그는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14:22-23)
'정죄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범하여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과연 합법적인지 아닌지 의심하면서 어떤 일을 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며 율법을 범하는 것이 되며, 그 일 자체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정죄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합법성을 의심하면서도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그가 대단히 이기적인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 일을 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그 일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인지 의심하면서도 행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자입니다. 만일 그가 정직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 한다면 의심이 생길 때에는 그 자리에 멈추어서 만족한 해답을 얻을 때까지 묻고 조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의심을 품은 채 일을 진행하는 것은 그가 악하고 이기적임 하나님이 기뻐하시든 기뻐하시지 않든지 혹은 그 일이 옳은 일이거나 그른 일이거나 상관없이 그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그가 그 일을 하는 것은 그 일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이런 원리를 끌어낸 다음, 찰스 피니는 흡연, 과음과식, 주일날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 설날에 세상의 관습을 따르는 것, 지나칠 정도로 시대의 유행을 좇는 것, 불신자와의 결혼문제 등을 다룹니다. 당연히 그는 음주에 대해서도 다루었습니다.
"포도주와 맥주, 또는 그 밖의 다른 주류 등을 마시는 문제를 생각해봅시다. 현재 금주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음료수를 마시는 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바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거나 범죄하게 하거나 연약하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라는 원리를 범하는 것이 아닐지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음주의 합법성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이 합법적이라는 증거는 없으나, 비합법적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있습니다. 합법적인지 의심하면서 음주를 하는 사람은 정죄 받으며, 그리고도 계속 음주를 한다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은 피니의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피니가 로마서 14장에서 끌어낸 원리는 옳습니다. 그러나 술을 비롯한 일부 적용들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피니는 "음주의 합법성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과거에는 저도 이 생각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음주의 합법성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는 많은 학자들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남편으로부터 고통은 받은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 주제를 다루려면 성경에 기초하여 확실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래야 일부라도 시험에 드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기 전 포도주와 술에 대한 성경의 모든 구절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술을 마셔도 되느냐? 아니냐? 는 것이 모호하거나 의심스러운 것이 아니며 매우 명확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해보면 이것은 더 이상 의심스러운 영역이 아닙니다. 명백합니다! 그래서 이 설교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